〈 5화 〉대항군
서주환은 중대원들에게 보다 완벽한 진지 구축을 지시했다. 덕분에 4중대 병사들은 눈 내리는 겨울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미 한참 전에 해가 떨어져 날이 어둑어둑 했다.
“서주환 병장님, 굳이 이렇게까지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몇몇 후임들이 불만에 찬 어조로 말했다. 단순히 모양새만 잡는 걸 넘어 낙엽과 나무줄기 따위를 모아 위장하는 것은 무척 번거롭고 힘든 작업이었다. 하지만 서주환은 단호했다.
“이번에 대항군 투입되잖아. 평소대로 하면 백퍼 털린다. 이번 훈련 사단급으로 진행하는데 만에 하나라도 털리면 큰일 나.”
서주환은 차분한 목소리로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에 후임들의 얼굴에서 조금이지만 불만 어린 기색이 옅어졌다. 하지만 끝까지 반발하는 놈이 하나 있었다.
“앞에 1, 2, 3중대가 있는데 대항군이 여기까지 올 리가 있나. 앞에서 해결될 거 같은데. 괜한 헛수고 아닌가….”
말끝을 흐리며 투덜대는 김종학. 혼잣말이라기엔 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다. 황당해서 바라봤더니 자기가 뭐 틀린 말 했냐는 듯 도전적인 눈빛으로 쏘아보기까지 한다. 아까부터 쉬지 않고 투덜대더니 이제는 거의 싸우자는 식이었다.
서주환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어지간히 얕보였었구나.’
솔직히 말해, 불만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누가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할까. 만약 반대 입장이었다면 그라도 불만을 가졌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훈련 중 이런 태도는 아니었다.
불만이 있다면 훈련이 끝난 다음 말하면 된다. 하다못해 조용히 다가와서 말하는 게 맞다. 누가 훈련 중에 짬 차이가 반년도 넘게 나는 선임에게, 그것도 최고참이자 분대장에게 싸우자는 듯 노려보며 지껄인단 말인가.
여기서 참으면 그는 분대장도 뭣도 아닌 병신밖에 되지 않는다.
“김종학.”
서주환은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던지고 김종학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김종학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김종학.”
“…….”
“대답 안 해?”
“…예.”
“관등성명은 어디 갖다 버렸어. 너 내 후임 아니냐? 아니면, 내가 네 후임인가? 그래서 너는 나한테 반말 짓거리인 거고.”
서주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옆으로 째진 눈이 인상을 쓰니까 더욱 날카롭게 보였다. 빈말로라도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상황에서는 유효했다.
김종학이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언제 반말을 했다고…”
“지금도 하네. 끝까지 정신 못 차리지. 누굴 병신으로 아나. 혼잣말인 척 하면 막 지껄이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냐?”
서주환은 강하게 나갔다. 이미 소심하고 찌질하게 사는 건 전생에 다 해봤다. 그는 이번 생마저도 그리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중요한 사실은.
‘김종학 말대로 하면 다 털린다.’
김종학의 생각과 달리 대항군은 3중대를 먼저 털고 이쪽으로 온다.
일반적으로 훈련을 할 때는 1중대부터 순서대로 터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암묵적인 약속이란 어디까지나 암묵적일 뿐 공식으로 정해진 게 아니다. 결국 산기슭을 타고 돌아온 윤 중사에 의해 1대대 전체가 탈탈 털리는것이 예정된 결말이었다.
결말을 바꾸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성격에 맞지 않지만 지금은 좋은 말로 할 때가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하지?’
갈구는 것도 뭘 해봤어야 알지. 분위기는 한껏 잡아놨고, 이미 김종학 앞에 기세 좋게 섰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냥 이대로 노려보고있으면 되나?
그렇게 무거운 침묵이 감돈 지 5초 정도.
어느새 다가온 이정훈이 김종학 대신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맞후임 관리를 똑바로 못했습니다! 돌아가면 확실히 교육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침묵하고 있던 4중대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실상 분대장인 서주환보다 더 무게감 있었던 25살 맏형이 고개를 숙인 게 충격이었던 것이다.
놀란 건 서주환도 마찬가지여서 당황하는데, 이정훈이 김종학의 머리를 꾹 내리눌렀다.
이정훈은 낮은 목소리로 김종학에게 씹어뱉듯 속삭였다.
“너 끝까지 개길 거냐? 맞선임 계속 쪽팔리게 할래! 그만 뻗대고 서 병장님이 기회 줄 때 빨리 끝내라.”
평소 서글서글했던 것과 달리 낮게 깔린 목소리가 제법 살벌하다.
결국 김종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하는 사과라기보다는 얼떨결에 당황해서 하는 사과다. 하지만 지금은 사과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서주환은 여기서 더 따지고 들 생각이 없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후우. 됐으니까 얼른 진지 보수나 다시 해. 위장도 확실히 하고.”
“…예.”
“네 진지 끝나면 책임지고 후임들 것도 돕고.”
“…알겠습니다.”
“자, 너희도 그만 구경하고 빨리 다시 시작하자. 어서.”
“옙!”
서주환이 박수를 짝 치며 말하자 중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금 전보다 더 빠릿빠릿해진 움직임이었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서 이정훈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 곤란했는데 고마워요.”
“고맙긴. 주환이 너 무게 잡으니까 무섭더라, 야. 카리스마 쩔어.”
“아, 놀리지 마세요. 카리스마는 무슨.”
“크흠. 야, 김종학. 대답 안 해? 관등성명은 어디 갖다 버렸어?”
이정훈이 짐짓 목소리를 낮게 깔며 좀 전의 상황을 흉내 냈다. 그 모습에 서주환은 소름이 돋았다.
“아, 형!”
“어이쿠. 죄송합니다, 분대장님!”
“아, 진짜. 형도 빨리 진지 만들어요. 다른 것도 해야 되니까.”
“또 할 게 남았습니까?”
이정훈이 의아하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어느새 말투는 존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서주환은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커터칼과 기역자 후레쉬를 꺼내들었다.
“이게 우리에게 포상을 내려줄 거에요.”
“포상 말입니까? 이게?”
“예.”
서주환은 하나하나 설명하는 대신 작업을 시작했다.
카각카각.
커터칼로 미리 표시해둔 부분을 구멍이 뚫릴 때까지 갈아낸다. 표시해둔 위치는 건전지가 있는 부분. 이윽고 칼집이 생기고 틈새가 벌어졌다. 이 틈새로 보이는 건전지 사이에 종이를 끼워 넣으면 완성이다.
서주환은 작업을 마무리한 후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딸칵.
스위치를 올려도 후레쉬에 불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종이를 슥 빼자 전지가 맞물리며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됐다. 발광 장애물 완성.”
드디어 작업이 끝났다.
현재 시각은 20시 15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슬슬 올 때가 되었다.
서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 밖으로 나왔다.
“다들 경계 잘하고 있어. 난 이거 설치하고 올게.”
“알겠습... 서주환 병장님? 장애물 설치 방향은 저쪽입니다.”
가는 방향을 본 이정훈이 장애물 설치 장소를 정정해주었다.
“아니, 이쪽 맞아.”
서주환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3대대에서 대항군 역할로 파견 온 윤정수 중사.
그는 대항군 스페셜리스트라는 자신의 별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오늘 기록 한 번 세우자.’
윤 중사는 오늘 역대급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만큼 사전에 철저히 준비했음은 물론 환경까지 모두 그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대항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야간.
미리 파악한 상대방의 보급물자.
승리를 위한 모든 조건이 다 갖춰졌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특히 1대대 보급물자 중 발광장애물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
마침 어제부터 눈도 내렸다. 짙게 깔린 눈은 작게 뽀득거리는 발소리를 만들어내지만, 대신 나뭇가지와 수풀 소리를 감춰주었다.
이제 조심할 건 발성장애물 뿐이었다. 게다가 발광장애물과 달리 발성장애물은 걸리더라도 정확한 위치를 들킬 위험이 낮았다.
“얘들아, 준비됐냐?”
윤 중사의 말에 뒤에 대기하고 있던 소대원들이 대답했다.
“포상 탈 준비 말입니까?”
“그 준비라면 한참 전에 끝났지 말입니다.”
윤 중사는 믿음직스러운 소대원들의 대답에 흐흐 웃음을 흘렸다.
“걱정 마라. 이번에 두 개 중대 이상 털면 내가 책임지고 포상 만들어준다.”
“크. 역시 윤 중사님”
“쉿. 이제 준비해라. 기도비닉 알지?”
“옙.”
“가자.”
윤 중사는 다섯 명의 대항군을 이끌고 산을 올라가기시작했다. 이미 3중대는 신속하게 제압한 참이다. 이제 4중대를 제압하고 2중대, 1중대 순으로 가면 계획대로 시간 안에 모든 중대를 털 수 있을 듯 했다.
‘좀 치사하긴 하지만… 어쩌겠어. 위에서 까라는데.’
본래라면 1중대부터 순서대로 터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 부대는 사단장님과 작전사령관님이 바뀐 후 어떻게든 훈련 성과를 어필해야 되는 상황이다. 이에 1대대장과 동기이자 라이벌인 3대대장이 윤 중사에게 직접 당부했었다.
‘이봐, 윤 중사.’
‘중사, 윤정수!’
‘1중대부터 순서대로 간다는 룰이 언제부터 있었지? 군법에 적혀있나?’
‘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이 때문에 윤 중사는 사전 답사까지 하면서 산길을 다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그밖에 모르는 샛길을 통해 산을 오르자 걸리는 장애물 하나 없이 목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지가 어디 있는 거지? 분명 이쯤일 텐데’
목표지점에 도착했는데도 진지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밤이라 주위가 어두워졌다지만 이미 그들의 눈은 어둠에 익숙해진 상태. 이렇게까지 안 보이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쯧. 어쩔 수 없군.’
윤 중사는 하는 수 없이 좀 더 가까이 접근하기로 했다.
‘짜식들아, 아까처럼 좌우로 돌아가라. 안 들키게 조심하고.’
수신호를 통해 명령을 내리는 윤 중사. 집중하고 있던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 산개를 시작했다.
그렇게 발소리를 죽이고 얼마나 걸었을까.
‘저건가…?’
무언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이 그냥 풍경인지 진지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윤 중사는 확인을 위해 조금 더 앞으로 접근했다.
그때였다.
번쩍!
“흐억?!”
“헙!”
짧은 비명과 함께 환한 불빛이 들어왔다.
*
번쩍!
설치해둔 발광 장애물이 작동 됐다. 기역자 후레쉬가 빛을 내뿜으며 대항군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잡아!”
서주환의 외침과 동시에 병사 세 명이 뛰쳐나갔다. 세 사람의 행동은 신속했다. 그들은 대항군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 나가며 입으로 총 소리를 냈다.
““빵! 빵! 빵!””
대항군들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진짜 총이 아니라지만 이 정도로 명백한 상황에서는 맞지 않았다고 우기지도 못한다.
“한 명, 따라와! 이쪽에 한 명 더 있어!”
서주환은 제일 멀리 있는 불빛으로 뛰면서 외쳤다. 이정훈이 얼른 그를 쫓아갔다.
도주자는 윤정수 중사였다. 그는 불빛이 들어오자마자 뒤돌아 도망쳤다. 미처 입으로 총소리를 내기도 전이었기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서주환은 이를 악물고 산길을 달렸다.
‘허억, 헉. 뭐, 뭐가 저렇게 빨라?’
도망치는 윤정수 중사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누가 특급전사 아니랄까 봐 더럽게 빨랐다.
판단은 빠르게. 여기서 더 쫓아봐야 잡지도 못 한다.
서주환은 속도를 조금 늦추며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여기는… 어…”
이런 미친. 갑자기 진지명이 기억나지 않았다.
올빼미? 독수리? 까치?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서주환은 일단 질렀다.
“중대장님, 중댐!”
치직.
[…서주환 병장, 제정신인가? 누가 무전을 그따위로 하나.]
무전기에서 화를 꾹꾹 눌러 참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할 시간이 없다. 그는 다시 무전기에 대고 말할 뿐이었다.
“거수자 여섯 명 발견! 다섯 명 제압! 현재 한 명 도주 중!”
[…뭐?]
“도주 중인 거수자는 갈색 패딩에 검정 비니를 쓰고 있다! 현재 본인 외 병사 한 명이 추격 중!”
[지금 어디…!]
다급해 보이는 정소라의 목소리.
그때 다른 무전 하나가 그녀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정소라 대위.]
[예, 옙! 대대장님!]
대대장이라는 소리에 서주환은 숨을 들이켰다.
‘아니, 대대장이 왜 나와!’
깜짝 놀라서 무전기를 확인해보니 분명 중대 채널로 맞춰 놓았던 무전기가 대대 공용 채널로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추격 중 실수로 채널이 돌아간 듯했다. 조금 전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야매로 외친 걸 전 대대원이 다 들었단 소리였다.
‘아, 망했다.’
어쩐지 정소라의 목소리가 장난 아니게 살벌하더라니. 그나마 욕을 안 한 이유도 대대 공용채널이라 그랬을 것이다. 나중에욕을 한 보따리 들어먹게 생겼다.
그렇게 자책하고 있는데, 무전에서 대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소라 대위, 병사들 데리고 당장 수색에 들어가게.]
[예, 알겠습니다!]
이 순간 서주환은 갈등했다. 대대장의 말을 따라 이대로 수색에 들어가 봐야 윤 중사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 그가 있으니 결국 어떻게든 찾겠지만 효율이 떨어진다. 윤 중사가 작정하고 숨는다면 언제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갈등은 짧았다. 어차피 지른 거 끝까지 가야하지 않겠는가.
서주환은 무전 버튼을 누르고 끼어들었다.
“병장 서주환입니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대대장님, 그냥 수색하시면 안 됩니다.”
[…서주환이라고 했나?]
“병장, 서주환.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지 말해보게.]
서주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소라의 호감을 사자고 시작한 일이 어쩌다 이렇게 커졌는지 모르겠다. 빌어먹을 무전기 같으니라고.
다행히도 혼란스러운 마음과 달리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매우 침착하고 또렷했다.
“대항군이 지나온 길이 저희가 예상했던 방향과 다릅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샛길이 있는데 그쪽을 통해서 왔습니다. 현재 도주 중인 대항군도 그 샛길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샛길? 정소라대위, 잠깐 대기.]
[예!]
[서주환 병장, 계속 말해보게.]
“예.샛길의 위치는… 그리고 각 중대 상황을….”
서주환은 무전을 통해 샛길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각 중대의 상황을 다시 파악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대항군이 이쪽에 온 것을 보면 3중대는 벌써 점령당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확인한 대대장은 곧바로 작전을 수립했다.
현재 추격 중인 그와 이정훈이 윤 중사를 뒤쫓고, 정소라가 대원들을 이끌고 윤 중사의 도주 경로를 예측해서 내려온다. 그리고 주변으로 도망갈 가능성을 고려해 인원이 많은 2중대 병사들을 주변으로 배치해서 수색을 실시한다.
간단하고 확실한 작전이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윤 중사가 4중대장인 정소라의 손에 잡히며 상황이 종료되었다.
사실상 발광 장애물을 건드렸을 때부터 끝난 게임이나 다름없었다. 서주환을 비롯한 1대대 병사들은 예상보다 이르게 부대로 귀환했다.
“서주환 병장님, 끝내줬습니다.”
“서 뱀, 진짜 대단했습니다. 설마 그렇게 발광 장애물을 만드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대 흡연장에서 4중대 후임들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서주환을 추켜세웠다. 그리고 조가 달랐던 4중대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와, 모르긴 몰라도 우리 조 진지가대대에서 제일 빡세게 만들었을 겁니다.”
“서 뱀이 갑자기 커터칼을 꺼내들고 기역자 후레쉬를 박박 갈아대는데…."
이야기를 들은 중대원들이 감탄한 눈으로 서주환을 보았다. 그는 괜히 민망해져서 슬쩍 한 발 뒤로 빠졌다.
‘엄청 민망하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기분 좋았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좋은 쪽으로 관심을 받아본 건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그렇게 내심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피는데, 치직 하는 기계음과 영내 방송이 울렸다.
[아아, 지휘 통제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지휘 통제실에서 알려드립니다. 4중대 서주환 병장은 지금 당장 지휘 통제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4중대 서주환 병장은…]
“오, 서주환 병장님. 아까 말했던 포상 타 오시는 겁니까?”
이정훈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주환은 엄지를 척 들며 그를 뒤로하고 지휘통제실로 향했다.
오늘 이토록 고생한 보상을 받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