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몽마신의 선물
“헉?!”
짧은 비명과 함께 눈이 번쩍 떠졌다. 동시에 싸늘한 겨울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 이건…….”
서주환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익숙한 밀리터리 패턴의 옷을 입은 20대 청년들이 그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 청년들의 손에는 K-2 소총까지 들려 있었다.
“서 뱀, 왜 그러십니까?”
“서주환 병장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얼굴에 갈색, 검정색, 초록색 크림을 대각선으로 바른 청년들이 보였다.
엿 같은 위장크림을 보니 욕설이 절로 나왔다.
"씨발."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염라 이 개새끼야…….’
자신이 현역 군인으로 회귀하였음을.
*
서주환이란 인간은 회귀 전 잘못 부여된 업 때문에 행운(幸運)과는 도통 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즉 불행(不幸)하다는 뜻이었는데, 이를 바꿔 말하면 요행(僥倖)과도 담을 쌓았다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그는 매사에 신중했고, 요행을 바라지 않았으며, 실력으로 인정받으려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과할 정도로 몸을 사린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그만큼 실력에 안정성이 있고 잔 실수가 드물었다. 그나마도 타고난 불행 때문에 제대로 된 평을 받지 못했지만…….
여하튼, 그랬던 서주환이 지금은 실수를 연발하고 있었다. 빠릿빠릿하지 못한 움직임은 물론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통행로에 서 있기까지. 본인의 일로 모자라 다른 사람까지 방해하고 있는 꼴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중대장이소리를 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서주환, 지금 뭐 하는 거야!”
하이톤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남성이 절대다수인 군대에서 여성의 하이톤이 울리니 단번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에 본인의 실수를 깨달은 정소라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하아.”
그녀는 군대라는 집단에서 여자 특유의 하이톤으로 말하는 것을 지양해왔다. 특히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는 더욱 각별히 조심했다. 여성으로서군 생활을 하려면 여러 가지로 주의할 게 많았다.
정소라는 좀 전보다 진정된 톤으로 다시 말했다.
“주환아, 네가 최고참이고 분대장이잖아. 애들 통솔해야 될 놈이 정신을 어디 빼놓고 있는 거야. 설마 일부러 반항하는 건 아니겠지. 왜, 말년에 훈련받으니까 짜증 나서 못 해먹겠어?”
목소리는 낮아졌으나 어조는 더 날카로워졌다. 그 말에 당사자가아닌 병사들도 몸을 사릴 정도였다. 실제로 몇 주 전, 타중대의 몇몇 말년들이 훈련 주에 휴가를 사용하겠다고 했다가 크게 혼난 사건이 있었다.
‘회귀 하자마자 욕부터 먹는구나.’
사실 서주환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다. 그는 조금전까지만 해도 앞으로 펼쳐질 회귀 생활에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있던 참이었다.
한데 갑작스럽게 군 시절로 돌아왔다. 그것도 하필이면 시간대가 혹한기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중으로 말이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어디에서 맞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비단 그가 아닌 다른 누구였더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 했을 상황이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기는 군대였고, 군대는 개인의 시시콜콜한 사정을 들어주지 않는 곳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변명 없이 죄송하다고 하는 게 답이었다.
“너… 아니다. 정신 차리고 마저 정리하자.”
“예! 정신 차리고 하겠습니다!”
“대답은 잘하네. 행동도 잘하자, 좀.”
“넵! 행동도 잘하겠습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가서 애들 도와줘.”
“옙! 강철!”
“허….”
힘차게경례까지 올려붙이며 넉살을 떨어대니 정소라도 기가 빠졌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얘가 이런 면도 있었나?’
못 보던 모습에 의아한 생각도 잠시,그녀도 얼른 따라붙어 물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서주환은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 열심히 움직였다. 최고참인 그가 신병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니 후임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졌다. 덕분에 물자정리가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빨리 끝냈기 때문인지 정소라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모두 고생했다. 다들 생활관 가서 짐 풀고 위장 지워. 샤워 순서는 지휘통제실에서 방송할 테니까 그때 하자.”
“옙!”
“주환이 너는 짐 다 풀고 내려와서 특이사항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정소라는 지휘통제실로 향했고 병사들은 생활관으로 올라갔다.
서주환도 얼른 올라가려는데,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같이 물자를 정리하던 병사가 그를 보고 말했다.
“서 뱀, 애들 먼저 보내고 담배 한대 어떻습니까?”
같은중대 소속이니 당연하겠지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다만 서주환의 입장에선 10년 만에 보는 얼굴이라 곧장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계급과 이름을 보고서야 병사가 누군지 알아챘다.
‘이정훈? 아, 정훈이 형!’
이정훈은 짬 차이가 네 달 정도 나는 맞후임이었는데, 서주환보다 세 살이 더 많은 형이었다. 그리고 그가 군 생활을 하며 몇 안 되게 좋아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봤자 전역 후에는 몇 번 연락하다가 서주환 쪽에서 연락을 끊었지만 말이다.
찰칵.
두 사람은 불을 붙이고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서주환은 되살아나서 처음 피는 담배 맛에 크으감탄성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이정훈이 웃으며 말한다.
“하하. 그렇게 맛있냐? 하긴 역시 훈련 끝나고 피는 담배가 꿀맛이긴 해. 그치?”
“네. 답답했던 게 쑥 내려가요.”
서주환은 이정훈의 반말을 개의치 않고 받아줬다. 이맘때쯤 말을 놓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이 있을 때 그는 이정훈에게 존대를 썼다. 이정훈은 반말을 하라고 했지만 나이 차이가 나다보니 이게 더 편했다.
“그런데 형.”
“응?”
“뭐 할 말 있어서 부른 거 아니에요?”
“…티 났어?”
“그야 뭐, 다른 애들도 담배 피는데 굳이 나만 불렀으니까.”
“하하. 별건 아니고 그냥 기운내라고. 오늘 애들 앞에서 까인 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이정훈. 그가 기운 내라는 듯 서주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주환은 그런 이정훈을보고 있으니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훈이 형이 자주 챙겨줬었지.’
선후임을 따지면 서주환이 최고참이고 분대장이었지만, 세 살 차이는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당시의 그는 말만 분대장이었지 군 생활을 하며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불행을 달고 다니는 몸인데 1년을 넘게 같이생활했으니…….’
부대 내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나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선임들은 물론 간부들에게도 참 많이 갈굼 받았고,후임들 또한 그와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 했다. 그나마 그를 챙겨주던 이정훈이 아니었으면 하극상이 일어났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지금의 서주환은 그 시절과 다른 사람이다. 회귀 전의 그는 32살이었고, 짧지만 회사를 다니며 사회생활도 해 본 몸이었다. 결정적으로지금의 그는 저주처럼 따라다니던 불행이 사라진 상태였다.
서주환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잘못한 건데요, 뭐.”
“…그래?”
“네.”
“그렇다면 다행인데….”
“하하. 뭐 이런 걸로 그래요. 실수하면 욕 좀 먹을 수도 있는 거죠.”
이정훈은 그를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아는 서주환은 이런 걸 대범하게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니까.
“올라가죠. 보고 늦으면 저 또 혼나요.”
“어어. 그래.”
이정훈은 앞서 달려가는 서주환의 등을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서주환은 빠르게 적응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현재 그는 특이사항 보고는 물론 샤워까지 마친 후 생활관에 누워 있는 중이었다.
‘병장으로 회귀한 게어디냐.’
자칫 염라대왕이 1년만더 인심을 썼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차라리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는 게 정신건강에 좋았다.
‘그나저나 아까 그건 뭐지? 무슨 시스템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서주환은 회귀 당시를 떠올렸다.
회귀 직후, 눈앞으로는 웬 메시지가 나타났었다. 서주환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을 탔던 진짜 이유였다.
‘아, 마신님이랑 같은 이름이었어. 분명 러스트 시스템이라고…’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메시지.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욕망 시스템(Lust System)이 일부 활성화 되었습니다.]
[상태창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스타트 패키지를 받았습니다.]
[튜토리얼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시스템 알아보기(1)』
▶ 인벤토리를 열고 스타트 패키지를 사용해보자.
보상: 없음.
갑작스레 떠오른 메시지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서주환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들아, 누가 나 찾으면 화장실 갔다고 해.”
“예.”
“알겠습니다.”
서주환은 화장실로 들어간 뒤다시 메시지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마신님이 선물을 준다고 했었지?’
아무래도 이 시스템이라는 게 마신님이 준 선물인 것 같았다. 서주환은 일단 메시지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인벤토리.”
말과 함께 게임에서나 보던 인벤토리가 반투명한 창으로 나타났다.
[인벤토리에는 시스템을 통해서 얻은물건만 보관 가능합니다.]
[아이템은 굳이 인벤토리를 열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도움말 같은 메시지가 뒤따랐다.
‘스타트 패키지 사용.’
띠링!
[스타트 패키지를 사용했습니다.]
[축복, 몽마신의 축복(60)이 적용되었습니다.]
[축복, 헬창의 축복(60)이 적용되었습니다.]
[아이템, 랜덤 스킬 박스를 습득했습니다.]
[아이템, 스킬 업 쿠폰(B)을 습득했습니다.]
메시지가 정신없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메시지는 이전 퀘스트의 연장선으로 보이는퀘스트였다.
『시스템 알아보기(2)』
▶ 패키지에서 받은 아이템과 축복을 확인하자.
▶ 패키지에서받은 아이템을 사용하자.
▶ 상태창을 비롯한 스킬, 축복, 재능을 확인하자.
보상: 없음.
퀘스트는 말 그대로 게임의 튜토리얼처럼 상세하고 친절했다. 서주환은 시스템의 메시지를 따라 하나씩 차분하게 진행했다.
‘랜덤 스킬 박스 사용.’
[랜덤 스킬 박스를 사용했습니다.]
[스킬, 페로몬(pheromone)을 습득했습니다.]
‘페로몬?’
이름만 봐서는 정확히 어떤스킬인지 알기가 힘들다. 그는 스킬을 확인하는 김에 지금 불러낼 수 있는 모든 창을 눈앞에 띄웠다.
이름: 서주환
나이: 22
성별: 남성
키: 170cm
몸무게: 92kg
재능: 글쓰기(C+/B+), 게임(C+/B+), 교육(D+/A+)
스킬: 페로몬
축복: 몽마의 축복(60), 헬창의 축복(60)
<재능>
1. 글쓰기(C+/B+)
2. 게임(C+/B+)
3. 교육(D+/A+)
<스킬>
1. 페로몬(Rank: F)
▶ 효과: 향기로운 체향이 미미하게 흘러나온다.
<축복>
1. 몽마신의 축복(60일)
▶ 효과1: 성(性)과 관련된 행운이 대폭 상승한다.
▶ 효과2: 어떤 일을 숙련할 때 200%추가 효과를 받는다.
▶ 효과3: 정력이 샘솟는다.
2. 헬창의 축복(60일)
▶ 효과1: 남성 호르몬이 대폭 상승한다.
▶ 효과2: 모든 운동의 숙련도가 200% 상승한다.
▶ 효과3: 근육의 회복 속도가 300% 상승한다.
서주환의 눈이 한꺼번에 떠오른 정보를 받아들이려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다행히 그는 글줄을 제법 빨리 읽는 편이어서 금방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글을 다 읽기 무섭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욕망 시스템(Lust System)을 활성화시켜라!』
▶ 현재 욕망 시스템은 완전히 활성화 된 것이 아닙니다. 욕망 시스템을 완전히 활성화 시켜서 잠겨 있는 기능들을 해금하십시오.
달성 조건: 어떤 여성이든 상관없으니 섹스 하십시오.
추가 달성 조건: 매춘부를 제외한 여성과 섹스 하십시오.
▶ 보상: 시스템의 완전 활성화.
▶ 추가 달성 보상: 1,000LP.
“하하…….”
마침내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렸다.
‘엄청난 걸 받아버린것 같네.’
이미 얻은 능력과 축복만 해도 굉장한데 숨겨진 기능이 더 있다고 한다. 이쯤 되니 당황스러웠던 감정이 가라앉고 어떤 기능들이 더 있을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것처럼 심장이 흥분으로 쿵쿵 뛰었다.
‘그런데 퀘스트 완료 조건이 왜 이래?’
그러고 보니 그냥 마신이 아니라 몽마신(夢魔神)이라고 했던가? 이를 생각하면 마냥 뜬금없는 조건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시금 돌이켜 보면 이름부터가 러스트(Lust)였으니.
‘…휴가 나가서업소라도 가야 되나?’
당연하게도 그는 모태솔로였다.
나이 서른에는 텐트조차 쳐지지 않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나마 지금은 발기부전에 걸리기 전이었음에 안도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