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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귀한 세계의 절대자-78화 (78/117)

〈 78화 〉 악당은 나였고(4)

* * *

“끄아악! 요괴들이 죽이려고 해! 살려줘!”

“더 이상 못 싸워!”

“나도 다쳤단 말이야! 나 먼저 고쳐줘!”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화산파 본단에 가득 누워있었다.

시체와 부상자가 넘치는 상황 속에서도 무림맹에서 온 자들과 화산파 무인들은 부상자를 돌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뒤늦게 화산파에 돌아온 나는 류수경에게 물었다.

“우린, 너의 계획을 따르지 못했다.”

“어째서? 누나가 있잖아.”

“우린 적들의 발을 묶기 위해 많은 수를 이용하여 요새를 세웠다. 함정으로 적들이 그곳에서 우릴 상대하기 위해 준비를 하길 기다렸지.”

거대한 전투에는 커다란 준비가 필요하다.

가까이는 섬서성 북부에서, 멀리는 대막이나 천산에서도 온 요괴들이 있었다.

그들이 대군을 보면 반드시 준비를 할 것이고 그것만으로 일주일은 벌 것이다.

전면전을 피하며 꼬리를 물고 무는 싸움을 하면 충분히 구파일방의 무림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요왕이 직접 이곳으로 왔다.”

“요왕?”

“그래. 그가 너를 찾더군.”

요왕이 나를 찾는다고?

“요왕은 너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같은 운명을 공유한다고 했었지.”

“그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태어나서 이쪽 세계에 오기 전에 요괴 비슷한 건 군대 선임 밖에 없는데.

요왕이 나를 알고 있다고?

“너를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요왕이?”

“그래. 그는 우리의 전략을 꿰뚫어 본 후 우릴 완전히 유린했다. 그는 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어.”

“그래?”

“너랑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군.”

“요괴주제에 대화를 신청해? 전쟁이 아니라? 정말 특이하네.”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뭐, 저쪽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조금 이용해줄까?

“열흘 뒤 만나자고 하자.”

이참에 시간이나 끌어야지.

# # #

열흘 뒤.

화산 앞 공터에 수천 마리의 요괴가 화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운데 검은 머릿결의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고고히 앉아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미물로 내려다보는듯한 그의 표정은 전쟁을 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산책을 하러 온 사람 같았다.

요왕.

흑룡이라 불리는 그는 인간의 형상으로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나를 불렀나?”

무림인들이 줄지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녀들은 당장에라도 검을 뽑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흠, 확실히. 내 감이 맞았군.”

그가 살짝 웃었다.

“뭐가?”

“너도 절대자의 권능을 가지고 있겠지?”

쿵!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이곳은 원래 요괴와 인간이 평화롭게 살던 세계. 하지만 어느 순간 인간은 요괴에게 무공과 도술을 배우고 도리어 배은망덕하게 요괴들은 사막과 설산으로 내쫓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갑자기 뜬금없는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는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말투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원하는 것은 파멸이 아니다. 공존의 재림. 나는 인간과 요괴가 함께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모두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를.”

“지금껏 그렇게 피를 뿌려놓고 평화를 원한다고? 너 외국어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냐?”

“피? 피를 내가 뿌렸나? 우리는 선제공격을 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로지 방어만 했을 뿐. 전진교를 먼저 침투한 것도 너희지. 우린 스스로를 방어할 요새만 짓는 것에 집중했다.”

“요새를 짓는다는 것은 전쟁을 각오한다는 거잖아.”

“하지만 선제공격은 너희가 했지.”

“너희가 군대를 옮겼잖아.”

“……….”

그가 말을 멈췄다.

“훗, 네가 맞다. 어찌 되었든 나는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중원을 평정할 것이다. 인간 황제가 있는 한 진정한 평화란 찾아오지 않겠지.”

쩌억!

녀석이 실눈처럼 작은 눈이 크게 떠졌다.

검은색만 있는 불길한 눈이었다.

“그런데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지? 다른 세상을 지키고 있어야 할 절대 수호자 아닌가? 나는 내 세상의 조화를 위해 싸운다. 너는? 너는 왜 남의 세상에 있는 거지? 내 여의주로 보았다. 몇 달 동안 네가 얼마나 이 세상을 어지럽게 엎어 놓았는지.”

“여의주로?”

이 녀석 용이었나?

용도 요괴로 분류되나?

일단, 동양이든, 서양이든 드래곤으로 분류되면 최상위 포식자였다.

“너는 화산파의 수준을 높이고, 추양혼이라는 늙은 선인을 다시 동굴에서 끌고 오고, 전진교를 장악하고 끝끝내 구파일방과 사마칠회 그리고 황실까지 하나로 만들었지.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달마 조사나 장상품 진인 같은 전설 속 인물밖에 없어.”

이거 칭찬인가?

“섬서성은 나의 첫 발자국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사막과 설산으로 쫓겨난 요괴들은 이곳에 이상 세계를 세울 것이다. 인간과 요괴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요왕 혁진건 Lv.98】

­상대는 이 세계를 수호하는 절대자입니다.

“뭐야.”

녀석이 이 세계의 수호자라고?

그럼, 녀석의 행동이 순리에 맞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혁진건의 혁명이 성공하면 이 세상은 최소 삼백 년간 태평성대가 지속될 것입니다.

나는 요왕을 보았다.

“화산파.”

요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화산파를 비워라. 그럼 모두 살려 보내주마.”

너그러운 제안.

아직 구파일방과 황실의 지원이 완벽히 오기 전이었다.

엄청난 전력 차가 있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다니.

그는 불필요한 희생을 원하는 살인광이 아니었다.

‘요괴답지 않은 녀석이네.’

하지만, 내 결정은 이미 굳어있었다.

화산파를 지키는 것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였다.

화산파를 넘겨주는 것은 절대 죽어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럴 수 없어.”

아쉽게도 나는 류수경의 파괴된 정신을 위로하고자 왔다.

화산파를 비우는 것도, 요왕이 혁명을 성공시키거나 화산파를 차지하는 것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왜지?”

요왕이 진지하게 물었다.

“왜냐하면, 우린 화산파니까.”

요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 절대자가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구나.”

“뭐?”

“그래, 좋을 때다. 낭만에 마음껏 취해 있어라. 곧 죽을 날이 올 테니.”

요왕이 부하들과 함께 물러갔다.

“어떻게 하죠?”

제갈유은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긴 예정대로 전쟁을 하는 거지.”

# # #

요왕은 분명,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아마, 사부님을 제외하면 도저히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화산제일검 추양혼 Lv.110】

사부님의 레벨은 110.

요왕 보다 훨씬 높다.

심지어 고레벨끼리 차이가 1만 나도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무조건 쉽게 이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절대자 특성상 나처럼 레벨 몇 개는 가볍게 뛰어 넘겨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자를 이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았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사부님이 계신 건물만 하늘에서 빛 무리가 내려와 있다.

빛들은 지금이라도 순리를 해하지 말고 선계로 올라오라는 듯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내가 저번에 죽인 도깨비를 아느냐.”

“사대암종 중 한 명이라고 들었어요.”

“그날 그 녀석이 죽여야 할 이천여 명이 살았다. 그 덕분에 순리가 많이 변했지. 천 단위의 인간들이 만드는 미래에 대한 변수는 엄청나거든.”

그는 자신이 만든 인계의 인과율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많아야 다섯 번.”

“그게 뭐죠?”

“내가 적을 향해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숫자다.”

두둥실.

그의 앞에 놓여있던 낡은 검이 허공에 떠올랐다.

“내가 전투를 펼칠 수 없으니, 제자인 네가 힘을 좀 써줘야겠다.”

휘리릭! 휘릭!

허공에 뜬 검이 독고구검을 시연하고 있었다.

“오늘 고생 좀 하자꾸나.”

“사부님?”

쉬이이익!

그의 검이 내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

탱!

나는 검을 뽑아 사부님의 검을 쳐냈다.

“화산의 검은 아름답고 고결하나 위협적이지.”

쉬이이익! 척!

사부님의 검이 내 몸을 향해 베어왔다.

탱! 챙! 파바박!

나는 매화검법을 10성이나 익힌 상태였다.

명문대파의 성명절기를 10성이나 익혔다는 것은 무림에 적수가 거의 없다는 말과 일치했다.

“내가 알려준 검법은 잊었느냐?”

탱! 탱!

“독고구검 1초식. 전륜탄영!”

타다당!

“힘은 좋구나. 하지만 노련하지 못해.”

쉬이익! 샤아악!

옆에서 또다른 검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젠장.”

두 개의 검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를 향해 날아왔다.

“요왕이라는 자는 흑룡이라고 하더구나. 용의 공격은 천지를 무너트리고 사방에서 몰아치지.”

샤아악! 쉬익!

“절마식! 회절삭마!”

콰콰쾅!

사부님의 이기어검에 검강이 씌워지기 시작했다.

“용들은 강하고 빠르지. 강하고 빠른 것 외에 전투에서 다른 것이 필요하겠는가?”

쾅! 쾅! 쾅!

내 검과 사부님의 검이 부닥칠 때마다 내 몸속이 진탕이 되었다.

“크윽!”

“너는 타고난 재능 덕분에 위기를 겪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늘 충분히 위기를 겪어 보거라.”

세에에에에에에에에엑!

엄청난 속도로 한 개의 검이 추가되었다.

세 개의 검이 속도를 높여 내 몸을 노렸다.

챙! 챙! 챙! 챙! 챙!

목숨을 건 대련.

독고구검의 숙련도가 높아지는 것이 체감될 정도로 아슬아슬한 전투가 이어졌다.

쾅!

결국, 건물이 터져나가며 우리 둘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챙! 챙! 챙!

사람들은 나와 사부님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차기천하제일인.”

“대단한 승부다.”

“제자를 가르치는 것인가?”

무림인들이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들의 모습을 보듯 나와 사부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팍! 퍽!

나는 발로 나무판자를 차 사부님의 머리에 날렸다.

휘릭! 휘리릭!

저 멀리 지나가고 있던 무림인의 검집에서 검이 스스로 빠져나와 나의 공격을 막았다.

나는 느티나무의 가지 위로 올라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지잉.

나뭇가지가 밑으로 쳐지며 내 신형도 아래로 내려갔다.

핑! 솨아아아아악!

내 신형이 쏜살처럼 사부님을 향해 날아갔다.

“화산매풍!”

콰아아앙!

사부님은 흔들림 없이 내 공격을 받아냈다.

“만룡춘석!”

챙! 쾅!

엄청난 압력이 내 몸을 짓눌렀다.

“요왕은 이것보다 강하다. 너는 그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나는 피를 삼키며 곧바로 사부님에게 돌진했다.

­오른쪽으로 회피. 아래로 공격이 들어옵니다. 호신강기를 쓰십시오!

진리의 눈이 내게 이동경로를 알려주었다.

“마치 예지를 하는 듯 한 움직임. 하지만, 지략은 더 큰 힘 앞에 무력하다.”

쾅!

“6초식! 참룡격!”

콰아아아아아아앙!

내 검에서 엄청난 폭풍이 일어나며 사부님을 덮쳤다.

“검술이 많이 늘었구나. 그래도 딱 그 정도야.”

괴물 노인네가 언제까지 무리를 시킬 거야.

“슬슬 한계가 오느냐?”

쉬익! 샤라락!

이미 열 개가 넘는 이기어검이 내 몸과 머리, 다리 등을 노리며 복잡한 검로로 움직였다.

“이미 한계는 예전에 지나쳤습니다.”

“내가 볼 때는 아니다. 더욱 한계까지 몰아쳐 보아라.”

챙! 쾅!

검과 검이 부닥쳤는데, 폭발소리가 났다.

“독고구검. 7검. 만리풍운.”

화아아아.

내 검식이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검기에 실린 힘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사아아아.

사부님이 처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휘릭!

“꽤 괜찮은 공격이었다. 내 몸을 움직이게 하다니.”

챙! 챙! 챙! 챙!

나는 검들을 쳐내며 그에게 달려갔다.

스윽.

사부님이 검을 들었다.

자신의 두 손으로 직접 검을 든 것이다.

이기어검으로 싸울 때와는 다르게 엄청난 중압감이 내 몸을 짓눌렀다.

자신의 손으로 검을 잡았다는 것은 진심으로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전륜탄영.”

“만리풍운!”

화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앙!

사부님의 독고구검 1초식과 내 7 초식이 부닥쳤다.

“크윽!”

나는 뒤로 날아갔다.

푹.

사부님의 발이 반 발자국 뒤로 물렸다.

“내게 반 발자국을 가져가다니.”

사부님이 씩 웃었다.

“확실히 너는 천재다. 내 제자야.”

그의 머리 위에서 햇빛이 더욱 강해졌다.

턱! 턱! 턱!

저 멀리 하늘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계단이 한 계층씩 생겼다.

“안 돼! 지금 올라가면 안 돼! 요왕과 싸워야죠!”

“그 정도면 요왕과 싸워도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요왕과 일각 정도 싸우는 것보다 이게 나은 방법이야.”

“안 돼!”

네가 싸우라고!

사부가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빛 계단을 디디며 한 층씩 위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독고구검의 묘리는 결국, 검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 신검합일이란 두 가지로 완성된다.”

“그게 뭐죠?”

“모든 것을 잊어서 마음을 텅 비게 만들거나. 아니면, 완전히 가득 채워서 마음을 하나로 통하게 만들거나. 대부분 전자를 선택하지.”

“저는요?”

“너의 검은 네가 완성시켜라.”

그가 선계로 올라가며 나지막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제자야, 네가 가는 길이 순리를 어지럽히는 길이라도. 무사가 검을 뽑았으면 끝까지 가보아라.”

젠장!

내가 적으로 둔 자는 이 세계를 지키는 절대자였다.

이 세계가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악당이었다니.

“반드시, 지킨다.”

나는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우화등선하는 사부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반드시 지킨다. 화산파. 내가 반드시 지키고 말겠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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