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귀한 세계의 절대자-74화 (74/117)

〈 74화 〉 흑요곡(4)

* * *

“끄아아아! 자식들! 도저히 참지 못한다!”

요왕의 가장 강력한 부하 중 한 명인 대력혼종이 콧김을 뿜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혼종 님! 부하들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조금 속도를 줄이시죠!”

“약한 녀석들은 필요 없다! 정 안 되면 나만이라도 앞으로 나간다!”

“아앗!”

쾅! 쾅! 쾅!

대력혼종이 발을 구르며 앞으로 나가자 거대한 흙파도가 생기며 후발대를 덮쳤다.

“콜록! 콜록!”

화재에서 살아남은 하급 요괴들은 흙먼지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재채기를 했다.

“으악!”

“컥!”

그런 하급요괴들이 달리다가 멈추자 뒤에서 오던 후발대와 부닥치며 몸이 엉켰다.

당연히, 사상자가 생기고 말았다.

“저런, 멍청한 자가 대장이라니. 우리가 흑요곡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나?”

나는 절벽 가까이에 서서 요괴들의 행렬을 보았다.

“아니, 대력혼종은 확실히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진 자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지고도 그런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건 엄청난 일이지.”

태을랑이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2계를 위해 전진교에서 벗어난 요괴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

“막상 저들과 맞붙게 되면 지금까지 얻은 이득이 싹 사라질 수 있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 대력혼종과 그의 최측근인 철혼병들은 흑요곡 최고의 무력집단이다. 작전은 필요 없어. 그냥 가서 짓밟는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지. 가장 단단한 몸과 덩치가 그들의 무기다.”

“무식함을 채우고도 남는 강력한 힘이라. 훗!”

운이 좋다.

진리의 눈이 있다면 저런 녀석들이 가장 손쉬운 먹이였다.

작전을 펴는 족족 걸려들 근육 두뇌들이었으니.

태을랑은 조용히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며 침묵했다.

영혼이 없는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지? 긴장되지 않나?”

“생각? 무슨 생각을 하냐고?”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녹수’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눈의 답변에 살짝 죄책감이 생겼다.

“아직도 녹수라는 요괴를 잊지 못한 건가? 적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화산파. 녹수를 그 입에 올리지 마라. 나의 목표는 요왕의 몰락. 너희를 돕는 것은 그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냉정한 태을랑의 대답에 살짝 가슴이 아팠다.

내가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 녹수로 변장했다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절대자의 권능에 취해 아무리 사이코패스 같이 살고 있는 이성훈이라도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해서라도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 부하들에게 시킨 대로 일을 잘하는지 살펴봐야겠군. 적어도 반 시진 내로 일을 벌여야 할 테니까. 끄응.”

나는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턱!

그때 태을랑이 내 손을 잡았다.

“방금, 그 소리를 다시 내 보거라.”

“무, 무슨 소리를 말하는 것이오.”

“끙, 끄으으응. 이런 소리를 냈잖아. 기지개를 켜면서.”

“아아! 그게 무슨 말씀 이시오.”

“끼잉, 끼잉. 소리를 내보아라. 나처럼, 끼잉…, 끼잉….”

“정말, 왜 이래!”

“끼잉, 끼으으응, 께애앵, 이렇게! 따라 해 보거라!”

“에잇! 진짜!”

탁!

내가 그녀의 손을 쳤다.

시무룩.

태을랑의 눈빛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미안하다.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구나.”

태을랑이 다시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준비가 잘 됐는지 확인해 보겠소.”

“……….”

태을랑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 # #

두두두두두두.

지면이 흔들린다.

엄청난 수의 요괴들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꿀꺽.”

긴장을 한 무림인이 창을 들고 마른침을 삼켰다.

“허허, 긴장들 푸시오! 살아남으면 이걸 얻을 수 있소!”

내가 바지를 벗은 채 병사들의 앞을 지나갔다.

최고의 동기부여는 역시 자지였다.

“와아아아! 자지왕! 자지왕!”

“색왕이다! 구파일방을 무릎 꿇린 색왕!”

“청송♡ 어디 갔었어!”

내 등장에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신뢰 Lv.5】, 【경애 Lv.2】, 【복종 Lv.1】, 【친밀 Lv.9】……….

다들 나와 살을 섞고 사랑이 싹튼 자들이었다.

“오늘 우리는 승리할 것이오! 만약, 오늘 승리를 거둔다면! 내 특별히 며칠간 여러분과 성교를 할 것이오!”

“와아아아아아!”

“이 정도면 용기가 생깁니까!”

“와아아아아! 청송! 청송! 청송!”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화아아아아!

나는 나의 아우라를 펼쳐보았다.

황금빛 아우라가 등 뒤로 생기자 나에게 빠진 여인들이 당장이라도 눈으로 하트를 발사할 듯 기세를 높였다.

“청송! 곧 온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았다.

폭풍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어마어마한 먼지가 공중으로 부유하며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전진교!”

“예!”

“준비!”

드르르르륵!

약 백 장 앞의 평원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지면 밑으로는 전진교의 요괴들이 땅을 파고들어 지면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급하게 만들었지만, 그 효과는 엄청났다.

“튀어!”

파라라라락!

지반이 슬금슬금 물결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

저 멀리 흑요곡의 선봉들이 보였다.

쾅! 쾅! 쾅!

가장 앞에서 방금 자신을 쫓아왔던 회색 도깨비가 돌진하고 있었다.

저렇게 발을 강하게 굴리면 약해진 지반이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쾅! 콰직! 콰직!

“응?”

쾅! 우르르르르르!

적의 선봉대가 밟은 지면이 와르르 무너지며 적들이 넘어졌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적들의 후열은 선봉들을 따라잡기 위해 전력질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상상도 못 할 무식한 방법이지만, 요괴들의 강력한 체력으로는 가능한 방법이었다.

“으악! 뒤에서 계속 밀려온다!”

“피해!”

와직! 으적! 콰드득!

덩치가 큰 요괴들은 그 크기가 집채만 했다.

아니, 성만큼 큰 요괴도 있었다.

그들은 구덩이에 몸이 전체가 다 들어가지 못했으나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했다.

그들이 만든 먼지 폭풍은 적들이 보기에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반대로 뒤에 있는 요괴들이 앞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퍽! 퍽! 와드득!

“끄악! 계속 밀려온다!”

“후방! 멈춰!”

“으아아아악! 내 손! 누가 내 손을 밟았…!”

와득!

적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모두 창 들어!”

전진교의 요괴들이 철로 된 창을 들었다.

“투창!”

휙! 휙! 휙!

“크악!”

“키에엑!”

전진교의 요괴들은 인간보다 훨씬 강한 근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공을 사용하는 무림인도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나 무림인의 내공은 그렇게 물처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탁! 휙! 탁! 휙!

앞 열이 투창을 하면 뒷 열의 무림인들이 쌓아놓은 창을 요괴들에게 건넸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내 배에 창이! 으큭!”

맨날 여자들의 신음소리만 듣다가 단말마를 들으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기름을 뿌려라!”

척!

무림인들과 요괴들 중 힘이 센 자들이 통을 들었다.

이번 전투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든 철창 그리고 기름통이었다.

“투척!”

쾅! 쾅! 쾅!

무너진 지반 아래에서 끝없이 요괴들이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수십,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구덩이에서 요괴들이 허우적거리며 서로를 밟았다.

지반은 약했기에 조금만 힘을 줘도 다시 새로운 구덩이가 생겼다.

하지만 기름통에 맞아 온몸이 미끌 거리자 지네 요괴나 벌레 요괴같이 다리가 많은 종이 아니고선 구덩이에서 나오기 힘들었다.

“불화살.”

화르르르륵!

삼류 무인들이 전방에서 검을 들지 않는 대신 발에 땀이 나도록 불화살과 횃불을 가지고 후방을 돌아다녔다.

“발사.”

촤라락!

활활활!

“끄아아악!”

“또 불이다!”

“물 요괴들은?”

“본진의 불을 끄느라 없어!”

눈앞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청송!”

화적결이 내 옆으로 달려왔다.

물컹.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쥐었다.

“괜찮니? 청송이 다치면 마마 가슴이 아야 해요.”

“저는 괜찮아요.”

“그래? 이것도 잘 있어? 지금 볼까?”

전투를 겪어서 흥분을 했는지 화적결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일대일 대련이나 작은 전투가 아닌 수천 명이 동시에 나서는 전투였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자하신공 좀 운용하세요. 남들이 보잖아요.”

그때였다.

“엄마! 또 엄마만 쌀보리 놀이하려고 했지!”

화무린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말 못 산다니까! 내가 대왕 자…, 흡!”

화무린이 ‘대왕 자지 님’을 외치려고 하자 화적결이 황급히 화무린의 입을 막았다.

“후방은 정리됐어요?”

“그래, 대부분 요괴는 항복했고, 강한 녀석들을 모두 제압되었단다. 엄청난 보급품을 미끼로 사용했더구나. 네 말대로 저들은 자기들이 진다는 계산을 아예 상정하지 않았어.”

그때였다.

쿵! 쿵! 쿵!

구덩이 사이에서 엄청난 큰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으! 죽인다! 이 개자식들!”

회색 도깨비.

가장 선봉에서 화산파를 향해 달려오던 녀석이었다.

“대력혼종.”

태을랑이 옆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대력혼종?”

“그래. 요왕의 사대암종 중 가장 강한 자다. 물론, 그만큼 멍청하지만.”

“호오, 그래서 작전이 잘 맞았나.”

“아니, 그건 너의 예지에 가까운 신산 능력도 한몫했지. 너는 정말 이럴 걸 전부 알고 있었나?”

“그럼.”

SS급 스킬의 작전인데 당연하지.

“질기기도 하군.”

스르릉.

나는 검을 뽑았다.

“저 녀석이냐.”

그때 옆에서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상대할 녀석이?”

나의 사부이자 화산파의 고금제일검인 추양혼이었다.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있지 않았다.

파르르르륵!

그가 손을 뻗자 주변에 주인이 없이 널브러진 검이 스스로 날아와 그의 손에 안착했다.

“네 노오오오옴! 용서하지 않겠다!”

쿵! 쿵! 쿵! 쿵!

회색 도깨비 대력혼종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감히 본진에 불을 붙이고, 이런 추잡한 함정을 파? 네 녀석은 전사도 아니다!”

쾅! 쾅!

그가 손이 닿자 그를 막으려는 전진교 요괴들이 먼지처럼 부서지며 사라졌다.

“전사?”

추양혼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보았다.

솩! 착!

그리고 무언가 베는 소리가 들렸다.

추양혼은 검을 놓았다.

“우린 도사인데.”

그리고 다시 내 뒤로 걸어갔다.

“역시 화산파로 돌아가야겠군. 당장에라도 선계에서 상제의 손이 튀어나와 나를 데려갈 것 같아.”

추양혼은 담담하게 몇 마디를 내뱉곤 신선처럼 몇 걸음에 화산파로 돌아갔다.

“으아아아아! 나를 무시해?! 다 죽여 버리겠다!”

대력혼종은 분노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

픽! 픽! 픽! 픽!

그때 그녀의 몸에 혈선이 하나 씩 생기기 시작했다.

“조심해! 대력혼종에게 잡히면 그대로 가루가 될 거야!”

태을랑이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괜찮아요. 이미 죽은 자입니다.”

“뭐?”

와르르르륵!

태력혼종의 몸이 사분오열되며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녀는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는 채 분노하며 몸이 절단되었다.

그 모습을 그녀의 철혼병들이 보고 경악했다.

“적의 대장이 죽었다!”

“대력혼종이 단 한 번에 당했다!”

“적들을 추격해라!”

“최대한 많이 죽여라!”

뒤에서 휴식을 취하던 매화검수들과 무림인들이 화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마지막 체력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가라! 오늘이 적들의 제삿날이다!”

“우와와아아아아아아!”

수천의 무림인들이 검을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

“도망쳐!”

요괴들이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활! 활! 활!

하지만 그들은 도망칠 수 없었다.

그들의 뒤에는 이미 불에 활활 타고 있는 숲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젠장! 젠장! 요왕이시여!”

뎅강!

요괴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저승사자가 어떻게 죽었냐고 물어보면, 청송의 검에 목이 잘렸다고 대답해라.”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터덜터덜 전쟁터로 돌아갔다.

학살의 장이었다.

“청송, 정말 고맙다.”

류수경이 요괴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 내게 걸어왔다.

“고마우면,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사요.”

“청송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푹! 솨아아악!

나와 류수경의 검에 매화검기가 생기며 적들을 갈랐다.

“사랑한다.”

응? 갑자기 고백이네.

픽!

류수경이 내 뒤에서 나를 노리고 오던 요괴를 검으로 찔렀다.

“너를 사랑한다. 청송.”

솨악!

나도 류수경의 뒤에서 그녀를 덮치려던 요괴를 찔렀다.

“나도 사랑해. 누나.”

촤좌작!

나와 그녀는 서로를 노리는 요괴들을 물리치며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 모습을 태을랑이 멀리서 지켜봤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 있던 목갑을 굳게 쥐었다.

촥!

류수경의 검이 적들을 갈랐다.

부끄러운지 곧바로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그럼, 나중에 보자.”

그녀의 눈빛은 불이라도 붙은 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타다닥!

그리고 경공을 이용하여 죽들을 베러 떠났다.

‘정말, 못 말리는 숙맥이네.’

예쁘니까 봐주자.

그래도 얼굴만 보면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가 아닌가.

거기다 심기체 처녀의 어린 시절이었다.

이런, 순수한 맛을 눈앞에서 직관하자 가운데로 피가 쏠렸다.

아무도 밟아본 적 없는 설원의 눈을 가장 먼저 밟아보고 싶었다.

사막을 횡단하며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다가 마지막에 맥주 한 캔을 따먹고 싶었다.

“크으으으, 어서 화산파를 구해야 해. 어서 진짜 지구로 돌아가서 수경이 누나를 맛봐야겠어.”

이제 진짜로 얼마 남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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