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순애로운 전진교주 따먹는 이야기(2)
* * *
끼이잉.
녹수가 의식을 잃었다.
그의 촉수들이 축 늘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녹수! 녹수!”
태을랑이 아무리 녹수를 흔들어 깨워도 녹수는 일어나지 못했다.
“의원! 의원을 찾아야 한다!”
태을랑이 녹수를 들쳐 업고 의원을 찾으려고 할 때.
‘이미 녹수에 대한 여론은 차갑다. 만약, 의원에게 데려가도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태을랑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녹수를 업고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다음날이 되고 녹수는 잠에서 깨어났다.
기잉, 끼잉.
그의 옆에는 태을랑이 옷을 벗고 녹수를 감싸 안고 있었다.
자신의 체온으로 녹수를 데운 것이다.
툭.
녹수의 커다란 남근 같은 촉수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으음.”
태을랑의 눈이 슬며시 떴다.
“녹수….”
그녀가 복잡한 심경으로 녹수를 보았다.
“오늘 있었던 일은 잊어라. 아무 일도 없었으니.”
스르륵.
태을랑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햇빛이 그녀의 육감적인 전신을 비쳤다.
그녀는 담요로 자신의 몸을 가린 채 녹수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은 내렸으니 그만 가 보거라.”
끼잉.
녹수는 침대에서 내려와 문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태을랑이 말을 잇지 못했다.
“앞으로 내게 물을 건네지 마라.”
끼잉?
“나를 찾아오지도 말고.”
끼! 끼잉!
“아니. 오지 마. 나는 네가….”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정말로 싫다. 힘도 약하고, 마음씨도 요괴 같지 못하고. 그리고 매일 이렇게 다정하게 말하는 네가 너무 싫다. 두 번 다시 나를 찾지 말거라.”
끼잉.
“가라고!”
쾅!
태을랑이 책을 녹수에게 던졌다.
낑! 낑!
“가라니까! 네가 뭘 알아! 나는 멋진 여자들이 많이 있다! 너 같은 남자는 필요 없어! 너를 대신할 요괴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쾅! 쿵!
녹수에게 붓과 벼루마저 던진 태을랑이 끝내 검을 꺼냈다.
스르릉.
“정말 피를 보아야 떠나겠느냐?”
끼잉….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태어나 한 번도 떨린 적 없었던 칼끝이 떨렸다.
“아니. 나는 원래 이런 여자다. 어서 가! 가란 말이야!”
끼잉! 끼이잉! 끼잉!
녹수가 허겁지겁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크윽! 젠장!”
챙그랑!
그녀는 검을 던졌다.
검이 벽에 부닥쳐 볼품없이 땅에 떨어졌다.
“요괴가 무엇이고. 왕이 무엇이란 말이냐. 단, 한 번 웃을 수도 없는데.”
그녀는 자신의 잘 못을 계속 되뇌며 거울을 보았다.
“나는 추악한 여자다.”
그리고 알몸인 상태 그대로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최악이야…. 나는….”
그녀는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쭈그려 앉아 어두운 방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 최악이야….”
# # #
“주인님, 어떻습니까?”
하보연이 거미 다리를 흔들며 내게 다가왔다.
“거의 다 넘어왔어. 촉수만 박아 넣으면 거의 넘어오겠던데.”
“역시 주인님입니다! 그때 전진교주 등에 주먹을 나리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요!”
“훗! 걱정하지 마라. 내 술법은 완벽하니까.”
이름: 이성훈
레벨 33
체력:95
민첩:91
근력:90
마력:157
정력:195
회복력:72
S포인트: 25,053
스킬
진리의 눈(SS), 월하노인의 실(A), 화려한 언변(C), 감쪽같은 현혹술(D), 자하활극신공(S), 태유극도(A), 황금자지(S), 초회복(A), 정력은 힘이다(A), 촉수괴물화(B), 이십사수매화검법(A), 독고구검(S)
아이템
절대 복종권(A), 체형 교정주사기(C), 절대 보호 상자(S)
어느새 내 레벨은 30을 넘어 33이나 되었다.
여러 스탯이 올랐고, D급인 이상형 거울이 A급인 월하노인의 실이 되었다.
월하노인의 실(A)
원하는 이성 단 한 명과 운명의 끈으로 연결됩니다.
너무 강력한 저항이 생기거나 상대가 당신의 의도를 눈치챈다면 실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절대로 순수한 사랑에 월하노인의 실이 있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됩니다.
한 달에 단 한 번만 사용 가능합니다.
무려 ‘운명’의 실이란다.
한 달의 한 명만 사용할 수 있는 대신 엄청난 효과를 발하는 스킬.
30 레벨 특전으로 무려 아이템을 받았다.
무려 S급 아이템을.
절대 보호 상자(S)
무엇이든 절대 보호하는 상자입니다.
이 안에 담는 것은 완벽하게 격리되어 보관하게 됩니다.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열 수 없습니다.
굳이 인벤토리가 있는데도 이런 아이템이라니.
뭐, S급 아이템이니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저 관심을 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내게 빠지게 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네!”
물론, 월하노인의 실이 알아서 잘해주겠지만.
“주인님, 새로운 친구들을 꼬셔왔습니다.”
“그래?”
“예. 인원이 많아지니까 신입을 데려오기 더 쉬워졌어요.”
나는 하보연이 준비한 집으로 들어갔다.
새하얀 깃털의 아름다운 백보지를 갖고 있는 하피.
고양이 귀에 요염하게 꼬리를 흔드는 묘인족.
얼음으로 된 투명한 설녀까지.
“흠, 꽤 신경을 썼구나.”
“특별히 예쁜 녀석들만 영입했습니다.”
수많은 요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신입이 나에게 걸어왔다.
“미야옹♥”
작은 고양이 요괴로 작고 귀여운 여자였다.
“하, 나도 태을랑 눈치 보느라 싸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특히, 어젯밤부터 그 엄청난 몸매를 보면서 참느라 아주 혼났다.
“주인님, 이게 뭐죠?”
내 쿠퍼액을 보며 새로운 고양이 신입이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빨아.”
“냥♥”
태을랑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이.
나 또한 다른 물을 흘리고 있었다.
# # #
전진교주 태을랑은 그날부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과거 녹수가 없던 그 시설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녀는 녹수를 찾지 않았다.
녹수는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여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나흘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 한 부하가 그녀를 찾아왔다.
“교주님.”
“무슨 일이지?”
“어제 화산파의 무인들과 일부 교인들이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래, 보고를 들었다.”
“크게 부상을 당한 자들이 섞여있다고 합니다. 그들과 같은 조에 녹수라는 녀석도 있다고 하더군요.”
“하아.”
전진교주는 지겹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게 나와 무슨 관계라는 것이지?”
“예? 그게….”
부하는 교주의 시원찮은 반응에 당황하여 말끝을 흐렸다.
“교주님께 말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백인장.”
“네.”
“병사가 전투에서 다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내게 보고하지 마라.”
“아, 예! 알겠습니다. 제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녹수라는 자가 속한 조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요. 살아남아도 대부분 죽거나 병신이 될 거라고….”
“그래? 그대의 뜻은 충분히 알았다. 나가서 일을 보거라.”
“예!”
부하가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방을 나갔다.
쾅! 쾅! 쾅!
태을랑이 책상을 강하게 때렸다.
두꺼운 자단목 상의 표면에 그녀의 주먹 자국이 새겨졌다.
“녹수가…, 녹수가…. 죽어?”
파직, 파직, 파직.
그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었다.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된단 말이다. 아아….”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자신을 탓하는 태을랑.
“다 나 때문이야. 나만 아니었어도…. 녹수! 지금이라도 보러 갈까?”
주르륵.
태을랑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안 돼. 흑흑흑. 안 돼. 녹수야. 안 돼. 흑흑흑.”
덜컹! 드르르르륵!
그녀가 방의 기물을 만지자 비밀문이 생겨났다.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거면 돼!”
덜컥!
검은 나무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동그란 단약이 하나 보였다.
“선현단.”
자신의 본문인 선현문의 신물이었다.
전진산은 원래 수십 개의 도장이 있던 도교의 명산이었다.
그들을 통칭하여 전진교라고 불렀고 그들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도장 중 하나의 장문인이었던 태을랑.
태을랑의 선현문의 신물인 선현단이었다.
이제는 인간이었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한 마지막 편린이었다.
자신에게 문주 자리를 물려주며 함께 선현단을 주었던 사부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영약을 쥐었다.
“이거야. 이거라면, 녹수를 살릴 수 있어.”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 # #
“교주님이 찾아오셨다!”
의양당 의원이 요괴들을 보고 소리쳤다.
“무슨 일이지?”
“설마, 저 녹수라는 녀석 때문인 건가?”
“확실히 요즘 소문이 안 좋잖아.”
“아니야, 요새는 녹수라는 녀석과 상종도 하지 않는데.”
의원들을 수군수군하며 교주의 입장을 기다렸다.
곧 태을랑이 그곳에 들어왔다.
고혹 마녀라고 불리는 별호에 어울리는 냉정하고 엄격한 눈빛이 의원들을 쓸어보았다.
“여긴가? 부상자들이 쉬고 있다는 곳이?”
“예.”
“부상자들을 잘 치료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
그녀는 뚜벅뚜벅 의무실을 걸으며 부상자들을 보았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모든 환자를 돌본다.’
태을랑은 첫 번째 부상자를 살폈다.
“으윽, 교주님이 저희 같은 하급 병사를 보러 와주실 줄이야. 영광입니다.”
“팔은 괜찮나?”
“잘렸지만, 어떻게든 복구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에서 요괴가 되고 나니 사지가 잘려도 회복할 수 있어 좋습니다.”
“다행이로구나.”
팔이 잘린 요괴의 상처를 본 태을랑의 동공이 파들파들 떨렸다.
‘설마, 녹수도 이렇게 다친 건 아닐 테지?’
다음 환자를 보자 그녀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으윽! 으…, 거기 누구 있소?”
다음 환자는 눈을 잃은 채 자리에 누워있었다.
‘설마, 녹수도 이렇게 다쳤을까?’
태을랑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교주다. 눈이 심하게 다쳤군.”
“하하하, 교주님이 다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상태는 어떤가?”
“뭐 보시다시피 맹인이 되었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왜 웃고 있는 거지?”
“왜 긴요. 저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편입니다. 우리 조의 소속된 인원들은 대부분 죽거나 완전히 불구가 되어 버렸죠.”
비틀.
태을랑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의식을 잃을 뻔했다.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의원이 태을랑의 팔을 잡았다.
“어제 잠을 잘 자지 못해서.”
“탕약이라도 드릴까요?”
“그 정도는 아니다.”
다음 환자를 보러 옆 침상으로 걸어간 교주.
“아아아아!”
교주는 다음 침상에 누워있는 자를 보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침상에 누워있는 자의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에 사지가 사라진 자와 녹수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안 된다! 녹수도 이렇게 된 건가? 안 돼! 모두 나 때문이야! 안 돼, 안 돼!’
벌벌벌벌.
그녀가 불안감에 몸을 벌벌 떨었다.
“의원.”
“네.”
“아까 주겠다고 한 탕약을 받을 수 있겠나?”
“예, 매일 준비해 두는 약이 있습니다.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고맙네.”
의원이 사라지자 태을랑은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다친 환자를 보았다.
‘만약, 녹수가 다친 모습을 보고도 버틸 수 있을까?’
아니었다.
그녀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하아, 하아.”
사지가 잘린 자는 의식이 없었다.
‘녹수도 의식이 없는 것인가.’
그때 어디선가 단말마가 들려왔다.
“끄아아악! 끄르르륵!”
한 환자가 피를 토하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태을랑의 눈에 그와 녹수가 겹쳐 보였다.
“젠장! 어서 몸을 잡아! 약을 준비해!”
자신의 탕약을 가지러 가던 의원이 긴급 환자에게 달려갔다.
“아무나 교주님께 탕약을 전해 줘! 나는 이 자를 살리겠다!”
태을랑이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죽어가는 부상병을 보았다.
“크아아악!”
그때 다른 침상에서도 요괴가 피거품을 물며 단말마를 질렀다.
“카악! 카악! 검상이! 찢어진다! 너무 아파!”
“이러다 나도 죽겠어! 크에에엑!”
한 명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다른 위중한 환자들도 피를 토하며 발작을 일으켰다.
‘빨리! 빨리! 녹수를 찾아야 한다! 녹수도 저들처럼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있을지도 몰라!’
아득!
그녀는 자신의 품에 있는 선현단을 강하게 쥐고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녹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바보 같은 요괴 녀석! 어디 있냐? 어디 있는 것이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녹수를 찾았다.
‘그렇게 보이지 말라고 할 때는 자꾸 눈에 아른거리더니! 이번엔 왜 보이는 않는 것이냐! 왜!’
스스슥!
그녀가 내기를 끌어올리고 엄청난 속도로 거대한 병실을 일일이 찾아보았다.
‘어디냐! 어디 있는 것이냐! 지금 당장 나오 거라! 내가 살려 주겠다! 녹수! 제발…, 나는 너를 치료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려고 이곳으로 왔단 말이다.’
사사삭!
아무리 병실을 찾아도 녹수는 보이지 않았다.
“교주님! 탕약을 보내겠습니다.”
“필요 없다.”
“저는 위급한 환자가 많아서 다른 녀석이 탕약을 들고 올 겁니다.”
태을랑은 그러거나 말거나 대답도 하지 않고 녹수를 찾았다.
툭! 툭!
그때 누군가 탕약을 들고 그녀의 등을 쳤다.
끼잉!
“녹수?”
녹수.
녹수가 탕약을 들고 그녀의 등을 톡톡 치고 있었다.
끼잉?
와락!
태을랑이 녹수를 꽉 안았다.
끼잉, 끼잉.
“이 바보 같은 녀석아.”
그녀가 녹수를 너무 강하게 안아서 녹수가 들고 있던 그릇에서 탕약이 흘러넘쳤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탕약이 그녀의 몸에 쏟아졌지만, 그녀는 그딴 것엔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걱정하지 않았느냐.”
끼잉?
“내가 널 너무나 걱정했다고.”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이 바보 같은 것아.”
왠지, 마지막 말은 내가 아닌 태을랑,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