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귀한 세계의 절대자-66화 (66/117)

〈 66화 〉 순애로운 전진교주 따먹는 이야기(1)

* * *

“정말, 그 말이 사실이야?”

류수경은 내 말에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지금도 충분하잖아? 구파일방은 물론, 사도 방파도 조금씩 우리에게 협조하고 있어. 화산파는 이미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그녀의 품에서 고개를 저었다.

“더 확실하게 구하기 위해서.”

“화산파를?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더 확실하게 준비해야해. 누나.”

“청송….”

나는 어린 류수경의 눈을 보았다.

‘내가 구하려는 건 바로 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구파일방과 황실, 오대세가 심지어 사도 방파까지 화산파를 돕기로 했다.

모두 내가 이룬 업적들이었다.

하지만 한 곳이 더 남았다.

전진교.

내가 배신자를 투입한 문파.

정확히는 배신자를 노예로 만든 곳이었다.

한때 기행을 일삼는 도사들의 성지였으나 지금은 요괴화하여 흑요곡의 앞잡이가 된 곳이었다.

그곳을 점령하면 적의 심장부를 단숨에 노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웬만한 리스크는 전부 피해가는 동시에 급소만 노릴 수 있을 정도로 파괴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요괴로 변신할 수 있어. 이미 전진교에 배신자를 심어뒀어. 나만 믿어. 내가 구해줄 테니까.”

“싫다! 나는 너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흑흑흑.”

류수경이 내 몸을 꽉 안고는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도망을 갈 듯 외쳤다.

나는 그녀의 옆에서 보빔을 하고 있는 음양쌍검을 보았다.

툭!

음양쌍검 중 음검의 손날이 류수경의 뒷목을 때렸고 류수경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감히, 주인님이 말씀하시는데 토를 달다니.”

음양쌍검이 류수경을 안고 침대로 데려갔다.

“내 여자다. 내가 없는 사이 확실히 지켜라.”

“히잉, 우리는요?”

“좆집.”

“하앙♡ 그것만으로도 저흰 만족해요.”

“사랑해요. 주인님♡”

나는 전진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주인님!”

“무우!”

거미 요괴 여인인 하보연과 젖소 요괴인 유방, 유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동굴 안을 손가락질 하며 나를 불렀다.

“우유.”

“무우.”

나는 일단 젖소 요괴 유방의 유두를 물었다.

나는 입에 힘을 주는 짓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유방과 유선 자매가 내가 문 가슴을 짜며 스스로 우유를 내 입에 흘려주었다.

“무우♡ 주인님이 준비하라고 한 미녀 요괴들을 전부 잡아왔다.”

“저항이 심해서 조심해야 할 거야.”

­스킬【촉수 괴물화】를 사용합니다.

“상관없어.”

스르륵!

나는 홀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끼야약!

­케렉! 크르륵!

동굴 안에서 요괴들의 엄청난 괴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라는 새로운 요괴의 등장에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잠시 후.

­꺄항♡ 꾸응♡

­끼잉♡ 끼잉♡

­갸르르르르♡

요괴들이 계집애처럼 내게 애교를 부리며 촉수를 빨고 있었다.

“전진교로 가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전진교만 점령하면 요왕이 직접 섬서성에 온다고 해도 지지 않을 것이다.

# # #

전진교의 교주 태을랑.

그녀는 흑요곡의 요청을 받고 화산파 주변에 함정을 만들고 있었다.

“저기로 돌을 옮겨라.”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

거대한 두 개의 양 뿔이 없다면 그저 뛰어난 미녀로 보이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귀엽게 돌돌 말린 양뿔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고혹적인 눈빛과 거대한 가슴 그리고 얇은 허리는 그녀의 귀여운 요괴 상징도 섹시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저 녀석은 누구지?”

그때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요괴가 보였다.

아까부터 계속 눈에 띄는 것이 느낌이 살짝 이상했다.

“녹수라고 새로 들어온 신입입니다.”

“녹수?”

녹색 액체 괴물은 수십 개의 촉수로 돌을 나르고 있었다.

“전투력이 낮아 보이는데?”

“그저 볼 품 없는 요괴입니다. 아마, 얼마 가지 않아서 죽고 말 겁니다. 전투에 투입되면 바로 죽겠죠. 크크크.”

“그래?”

그녀는 녹수에게 다가갔다.

끼잉, 끼잉.

녹수는 돌을 나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남들이 거대한 바위를 세 개, 네 개 나르는 사이 녹수는 작은 돌멩이 하나도 낑낑 거리며 옮기고 있었다.

“요괴가 이리도 힘이 약하다니.”

척!

녹수의 돌을 한 손에 든 태을랑이 돌을 멀리 던졌다.

“너는 다른 이들이 마실 물이나 구비해 놔라.”

척!

녹수가 촉수로 경례를 하듯 인사했다.

“재밌는 녀석이로군.”

끼잉!

“잘 할 수 있다고? 후후훗, 그래. 물이라도 잘 날라야지. 물을 나르는 일로 그렇게 신날 수 있다니. 너는 참 특이한 요괴로구나.”

끼이잉!

교주와 녹수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간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교주님은 이 녀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제 귀에는 그저 낑낑 거리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데요.”

“그래? 나는 아주 잘 알아듣겠다.”

“하하하, 농담도 참.”

“무슨 소리지?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네? 정말로요? 혹시, 운명의 실이 이어진 그런 겁니까?”

“다시 한 번 그런 재미없는 농담을 한다면, 네 녀석을 불에 태워 죽여주마.”

“히익! 죄송합니다!”

태을랑은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작업장에 끌려 다녔다.

과거에는 전진산에 있는 수십 개의 도장 중 가장 힘이 센 다섯 개의 도장 중 한 개의 주인이었던 그녀는 이제 유일무이한 지배자였다.

그만큼 책임지는 일이 많기에 혼자 속을 썩이며 흑요곡의 눈치를 봐야 했다.

작업장 한켠에 있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던 그녀는 남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끼잉.

어지럽게 책상 위에 올려진 서책들 사이로 물 잔 하나가 올라왔다.

“너는…. 녹수?”

끼잉, 끼잉.

녹수가 물 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훗, 물이로구나. 정말로 내가 시킨 일을 성실히 하고 있나보군.”

그녀가 녹수에게 받은 잔을 받고 안을 보았다.

그 안에는 분홍색 꽃잎이 하나 있었다.

“꽃잎?”

끼잉.

‘설마 나를 위해?’

태을랑은 꽃잎이 입에 들어가지 않도록 천천히 물을 마셨다.

“후훗, 참으로 맛있는 물이로구나.”

끼잉!

“후훗, 나는 일을 볼 테니 너도 열심히 일을 하거라.”

낑!

녹수가 촉수를 팔처럼 들고는 근육을 자랑하듯 뽐냈다.

“후훗, 힘이 넘치는 모양이군. 혹시,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나?”

끼잉!

“내 옷장에서 신발을 하나 가져와 주겠나. 지금 신고 있는 것은 건설 현장의 흙이 너무 많이 묻어서. 내일 아침에 들고 오면 될 거야. 쉬운 부탁이지?”

끼잉~

녹수는 알았다는 듯 대답하고 물 잔을 들고나갔다.

전진교 교주 태을랑은 정신없이 업무를 보았다.

밤이 되었고 부하들이 그녀의 집무실에 요등을 켜 불을 밝혔다.

도깨비불이 은은하게 그녀의 책을 밝히는 가운데 서책 옆으로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벚꽃 잎이었다.

“녹수가 물 잔에 띄워줬던 꽃잎이 여기 있었구나.”

밤이 늦은 시각.

괜스레 전진교 내에서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낯선 호의에 감상에 젖었다.

“참으로 요괴답지 않은 신입이 들어왔군.”

그녀는 꽃잎을 들고 조용히 감상했다.

스윽.

그녀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재빠른 손놀림으로 꽃잎을 책장 사이에 넣어 보관했다.

“벚꽃. 벚꽃이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봄이 오고 있었다.

# # #

아침이 되었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햇살이 아름답게 보였다.

끼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무언가 문에 걸렸다.

고로롱, 고로롱, 고로롱.

“녹수?”

녹수가 문 앞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자신의 신발을 들고 있던 녹수는 그것을 꼭 껴안고 집무실 앞에서 하룻밤 내내 자고 있던 것이다.

“설마, 어제부터 이곳에 있었느냐?”

끼잉!

“바보 같은 녀석! 그저 신발을 가져오는 일일 뿐인데.”

끼잉? 끼잉!

“나는 전진교의 중심이니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하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전지교의 중심이라.

오히려 전진교를 팔아먹은 요괴의 앞잡이가 아니라.

“녹수, 고맙다. 정말 고맙구나.”

스륵.

태을랑이 신발을 벗자 녹수가 신발을 가져갔다.

그녀는 새 신발을 신자 기분이 좋아졌다.

“후훗, 좋구나. 정말 따듯하고. 네 분덕이다.”

끼이이잉!

“뭐? 발 냄새? 네 이놈!”

끼잉, 끼잉.

“장난이라고? 하하하, 녀석도 참.”

그 모습을 본 하녀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교주님이 웃고 있어.”

“고혹 마녀라고 불리던 교주님이? 에이, 설마.”

“하루 종일 진지한 모습만 보이시는 분이신데. 웃음이라니…. 헉! 정말이잖아!”

하녀들이 녹수와 함께 웃음을 짓는 전진 교주를 보곤 웅성대기 시작했다.

“참으로 요괴답지 않은 녀석이 들어왔구나. 후후후.”

전진 교주는 신기한 요괴를 발견했다는 듯 녹수의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녹수가 밤 새 품고 있던 신발 안은 따뜻했다.

# # #

다음 날.

전진 교주는 새로운 요새를 짓고 있었다.

“중원의 공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뭐가?”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동시에 무림맹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섬서를 탈환하기 위해 집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뭐라?”

구파일방을 거대한 열 개의 문파다.

한 번에 두, 세 개라면 괜찮으나 열 개의 거대 방파가 한 번에 움직이는 경우는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그리고 요즘 최고의 화젯거리는 화산파의 예정된 멸문과 흑요곡의 움직임이었다.

당연히, 심상치 않은 느낌이 진하게 들었다.

“황실은?”

“워낙 은밀한 자들이라서 모릅니다. 황제의 병사들이 움직이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요.”

“젠장!”

태을랑은 초조한 기색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끼잉!

그때 그녀의 옆에 물 잔 하나가 놓였다.

“녹수?”

낑!

“후훗, 화내지 말라고?”

그녀는 녹수를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괜스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끼잉. 끼잉!

“그래, 참 고맙구나. 언제나 네게 빚을 져서 어쩌지? 후후훗.”

그녀가 녹수의 물 잔을 받고 잔을 비웠다.

이번에 물 잔 안에는 매화 꽃잎이 있었다.

향긋한 물에 그녀의 화가 살짝 가라앉았다.

“녹수, 한 잔 더 줄 수 있겠니?”

낑!

그녀는 녹수가 준 물을 한 잔 더 마셨다.

“후.”

그녀는 시원한 냉수를 마시고 숨을 돌렸다.

그리고 맑아진 정신으로 다른 부하들을 둘러 보며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예정대로 방어 요새를 먼저 짓는다. 흑요곡은 우리를 아끼지 않아. 방어를 먼저 하여 우리의 생명을 지킨다. 공격은 그 후에 생각하자고. 알겠느냐?”

“존명!”

그녀의 말에 부하들이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녹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물 잔을 돌려주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화병에 걸리고 말았을 것이다.”

기잉~ 끼잉~

“호호호, 또 귀여운 소리를 내는구나.”

밤이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회식 날로 부하들에게 고기와 술을 먹여줘야 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사기에 절대적인 먹을 것과 마시는 것이기에 절대로 돈을 아껴서는 안 됐다.

“전진교를 위하여!”

“섬서성을 우리의 집으로!”

“우리가 섬서의 주인이다!”

부하들이 술에 취하며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부하들이 즐겁게 노는 자리에서도 근엄한 모습을 지키며 지도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고혹 마녀.

어떤 순간에도 긴장을 풀지 않는 냉철한 인간.

아니, 요괴였다.

“술잔을 가득 채우고 즐기거라.”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는 철혈의 무인 그 자체였다.

“글쎄, 그 신입이랑 같이 잡담을 나누면서 웃었다니까.”

“에이, 무슨, 그게 말이 돼? 아니, 교주님은 웃는 법을 잊은 이 시대의 철혈 군주라고.”

“그 녹수인지 뭔지가 교주님을 망치는 거 아니야?”

그녀의 귀에 그녀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 있다.

­그 녀석이 교주님을 현혹하여 망치고 있다.

­아주 글러먹은 요괴 녀석이니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

­고작 신입 주제에 교주님의 눈에 들려고 하는 것이 의도가 불순한 것이 분명하다.

그 말들을 들은 태을랑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꽈드득.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석으로 된 술잔을 찌부려트리고 만 것이다.

‘감히 나를 모함해?’

아무리 부하들 앞에서 무게를 지키는 교주지만.

자신도 인간 출신 요괴였다.

‘조금의 숨구멍도 없다니. 왕의 길은 험난하구나.’

그때 평소 자신에게 충성하던 전투조의 조원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교주님, 교주님은 녹수라는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급 전투조의 조장인 젖소 요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단지, 개인적인 물음은 아닐 것이었다.

젖소 요괴가 한 질문의 대답은 태을랑 자신의 의견으로 부하들에게 퍼질 게 분명했다.

“참으로 요괴답지 못 한 녀석이지.”

“그렇습니까?”

젖소 요괴가 고개를 갸웃했다.

부하의 의심스러운 반응에 태을랑의 가슴이 살짝 서늘해졌다.

철옹성 같은 던 자신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조금 흔들리는 걸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주님.”

젖소 요괴와 전투조의 분위기가 한 겨울 서리처럼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요괴답지 않다는 것은 좋은 뜻입니까? 아니면, 나쁜 뜻입니까?”

고혹 마녀 태을랑이 부하의 눈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의도지?”

“대답해 주십시오.”

젖소 요괴는 굴하지 않았다.

부하들에게 단 한 번도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태을랑의 감정은 검은 연기를 마신 듯 답답했다.

“당연히…, 나쁜 의미지….”

태을랑은 말끝을 흐렸다.

“하하하, 역시 그런 의미죠? 잘 알겠습니다.”

“무엇을 알겠다는 거냐?”

“아닙니다. 그저 미천한 부하들의 작은 호기심일 뿐입니다.”

그들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수군수군.

오늘따라 남들의 담화가 그저 대화인지 자신을 향한 수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내가 민감한 것일까.’

태을랑은 괜시리 마음이 걸렸다.

‘내가 무엇이 떳떳하지 못 한가.’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자꾸 작은 생선가시가 식도에 남아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이지. 내 가슴이 왜 이리도 답답한 것이지? 억울하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그저…. 부하를….’

그때 그녀의 머리에 녹수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저…, 부하였던가…?’

그녀는 도저히 더 이상 자신의 뒷담화를 들을 자신이 없었기에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먼저 들어가겠다.”

“예?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몸이 조금 무겁구나.”

“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교주의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부하들이 더욱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교주가 이상하다.

­교주가 변했다.

­이게 다 그 이상한 신입 녀석 때문이다.

­아니다. 교주는 신입을 각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쁘게 생각해서 막 다뤄도 상관없다는 말투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태을랑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자신의 행동과 모순된 대답은 의혹과 관심을 더욱 증폭하여 태을랑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제 녹수와 노는 것도 그만둬야겠군.’

가끔 몇 분씩 녹수와 환담을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거늘.

어두운 골목을 지나 자신의 거처로 향하는 그때.

어디선가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끼잉! 끼이이잉!

녹수였다.

‘이제 나와 녹수의 관계는 끝이다. 모르는 척을 하자.’

전진 교주 태을랑은 녹수의 부름을 무시하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끼이잉!

퍽! 퍽!

“가만히 있어!”

“너 때문에 교주님이 변하셨잖아!”

“교주님은 우리의 중심이다! 너 때문에 교주님의 위엄이 무너지기 시작했어!”

퍽! 퍽! 퍽!

끼이잉…….

‘녹수가 맞고 있다. 도와줘야 한다!’

태을랑이 분노한 듯 내기를 끌어올렸다.

그때 그녀의 부하들이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부하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부하들 앞에서 무언가 고뇌하고 또 망설이는 모습은 군주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녹수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더 피해야 했다.

‘모른 척 지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하들의 충성심이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기울지도 몰라.’

태을랑은 조용히 자리를 피하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귀를 막고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끼잉…, 끼잉….

녹수의 소리가 들린다.

녹수의 소리가 그녀의 귀에 울린다.

그리고 녹수의 소리가 진득한 무언가처럼 그녀의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젠장….”

그녀의 발이 접착제로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이 전진교의 지존의 발을 묶는 것인가.

“젠장, 젠장, 젠장!”

태을랑은 녹수가 맞는 것을 보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녀는 주먹을 강하게 쥐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화라락!

그녀는 경공술을 사용하여 단번에 이동해 녹수의 몸을 감쌌다.

퍽! 퍽! 퍽!

녹수를 감싸 안은 교주.

녹수를 향했던 공격은 그녀의 등에 막혔다.

“헉!”

“교, 교주님? 교주님이 남을 위해 주먹을 대신 맞아줬다고?”

“교주님이 어째서 이 시간에?! 한참 잔치를 즐길 때인데….”

“히익!”

그녀의 등을 때린 부하들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들은 이성을 잃고 그곳을 떠나기 위해 마구 달렸다.

태을랑은 그들의 괘씸함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아니, 그럴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녹수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녀의 정신, 감각, 시선, 모든 것이 오직 녹수에게로만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간이 멈춘 듯 녹수만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힘도 약하고 볼품없는 녀석!”

끼잉.

“너는 바보다! 왜 이렇게 맞고만 있냔 말이다! 도움을 요청하든! 도망을 치든 하라고!”

끼잉!

“이 한심한 녀석이! 그게 무슨 말이야!”

끼이잉….

‘요괴다운 구석도 없이 남들에게 맞고만 다니는 멍청한 바보 같은 녀석! 이 바보 같은 녀석이 자꾸 나를 화나게 한다. 왜 나는, 왜 나는…. 나 혼자 이 녀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냐. 귀찮게. 짜증나게!’

와드득!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뭐냐.”

태을랑이 녹수를 빤히 쳐다봤다.

“너는 뭐냐.”

끼이잉?

녹수의 대답에도 태을랑은 불꽃을 씹은 듯 이글이글 타는 눈동자로 녹수를 노려보았다.

“너는 뭔데, 자꾸 내 눈에만 밟히는 것이냐.”

끼이잉. 끼잉.

“왜 자꾸 내 눈에 띄는 거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태을랑은 답답한 마음에 자꾸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바보 같은 녀석에게 자꾸만 눈이 간다. 왜 계속 아른 거리냔 말이다.’

태을랑.

그녀는 요괴가 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거칠게 뛰는 소리를 들었다.

“너의 말은 왜 내 귀에만 들리는 것이냐! 크윽!”

꼬옥.

태을랑이 녹수를 거칠게 안았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끼잉…?

“대체, 나는 너를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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