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차악의 히어로(3)
* * *
지잉!
다시 기계가 가동된다.
검사를 시작한다.
기계에서 나온 정령으로 보이는 연기가 내 몸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온 세상이 밝아지며 조명이 강해졌다.
아우라 검출!
파아아아!
그때 내 몸에서 어마어마한 아우라가 발산되었다.
“아, 아니! 저 아우라는!”
박선아가 입을 쩍 벌리며 깜짝 놀랐다.
“으으! 서, 설마!”
옆에 있던 대마도사 김도정도 놀람을 감추지 못하며 눈을 부릅 떴다.
내 몸이 태양처럼 환하게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분명히 황금빛이었다.
‘스킬 쓸데없는 절대 거짓말 사용. 아우라를 황색으로 바꾼다.’
후우웅!
그때 내 황금빛으로 활활 타오르는 아우라의 색이 짙어지더니 황동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 오해할 뻔했네.”
“역시, 황색인가.”
“오랜만에 돌리는 기계라서 오해를 했나 봐요.”
“순간 나도 깜짝 놀랐네. 황금색이라니. 그런 아우라가 쉽게 나올 리 없지. 황금빛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건 한국에 ‘그’ 밖에 없으니까.”
“히어로 랭킹 1위 셀렉티오.”
“그래. 그 미친놈 말고는 우리나라에 없지.”
사아아아!
김도정의 몸에서 환하게 빛나는 은빛 아우라가 넘실 거렸다.
“아름다운 실버 아우라예요.”
“그래, 우리나라에 세 명 밖에 없는 색이지. 내가 이곳에 오고 실버 아우라라는 걸 확인하자 전 세계가 기뻐했지. 그런데…, 나와 같은 세계에서 온 저 녀석은 똥색 아우라라니.”
똥색 아우라.
황색 아우라를 무시하는 멸칭이었다.
무색 아우라처럼 아예 무시받는 권능도 아니고 애매하게 걸친 자들을 말한다.
“차라리 의료 권능자라서 다행이군. 의료 능력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소모품 취급을 당했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똥색 아우라가 신의 능력을 얻은 거지? 흥! 신의 능력의 십 분의 일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어설픈 반푼이가 되겠구나!”
아니, 저 늙은이가 말을 막 하네.
나중에 레벨 올리고 너부터 손을 봐주마.
취익!
권능 검사기의 문이 열렸다.
“고생했어요. 오늘 스케줄은 끝이에요.”
박선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녁에 회식이나 하죠.”
박선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대마도사 늙은이도 마지못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리운 고향사람 아니던가.
우리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여기가 겉보기에는 초라해도 이 근방에서는 알아주는 곳이에요.”
확실히 초라해 보이는 인테리어와 다르게 고기 값이 비쌌다.
물가는 과거에 있던 지구와 비슷한 모양이군.
치이익!
특상급 소고기가 불판 위로 올라왔다.
가장 처음 입을 연 것은 김도정이었다.
“자네는 몇 년도에 이곳에 왔지? 내가 있을 때는 19년도였다네.”
“저는 22년도에 왔어요.”
“오, 그래? 자네는 몇 살이지?”
“저는 서른 살인데요.”
“응?”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 나는 14 살에 이곳에 넘어왔지. 지금은 2백 살이 넘었어. 확실히 차원 간에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모양이군.”
잠깐, 19년도에 14살이면 나보다 한 참 어린 새끼 아니야.
그와 나의 눈빛이 부닥쳤다.
“그 불쾌한 눈빛의 의미를 대충 알겠군. 년도 상으로 나보다 형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 아닙니다. 2백 년도 넘게 사셨잖아요.”
“흥, 그래.”
이 애늙은이 새끼.
언젠가 처절하게 복수해 준다.
그가 음료수를 들이켰다.
약을 먹고 있다고 해서 술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대마도사 님 같은 분께서 약이라니. 어디 아프세요?”
“하하하, 그냥 보약이네.”
그가 약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백색 아우라의 약
무언가 수상쩍은 과정으로 만든 약.
주재료는 백색 아우라의 권능자다.
미, 미친놈!
내가 황금색 아우라의 쪼렙이었다는 걸 알아냈다면 당장에 고아서 먹었을 녀석이다.
아니, 산삼처럼 생으로 씹어 먹었을 녀석이다.
그때 김도정이 피식 웃으며 나와 박사 그리고 박사의 조수들을 보았다.
“그나저나 자네 재미 좀 봤겠군. 그렇지?”
“예? 예?”
“하하하, 그렇잖아. 다른 세계와 달리 우리 세계는 남자가 여자한테 쩔쩔 매는 곳이지. 반면 이곳은 남자는 신성불가침이야.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혐오스럽게 생기지 않은 이상 여자들이 줄을 서지.”
“하하하.”
“한참 좋을 때야.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여자들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지. 하지만 곧 적응을 하고 다른 남자들처럼 정조를 지키고 있다네. 정조를 지키는 것을 사실 마나를 정순하게 모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네. 자네도 나처럼 강해지고 싶으면 여자는 멀리 하게나.”
웃기지 마라.
나는 여자랑 잘수록 강해지는 능력이다.
고자 늙은이 주제에.
“자네, 속으로 날 욕했나?”
【진리의 눈】이 【현자의 눈】을 현혹합니다.
“아니요.”
“흠, 내가 잘못 봤나? 그럴 리 없는데…. 아무튼, 내 현자의 눈은 다른 사람의 마음도 꿰뚫어 보니까 조심하게.”
“예.”
“그나저나 저 여자들 자네에게 푹 빠졌구먼. 내 눈에는 다 보여.”
김도정이 박선아 박사와 한조현, 강한나를 보며 말했다.
“뭐, 이해는 하네. 우리 세계 남자들이 좀 밝혀야지. 사실, 남자가 여자를 밝히는 걸 단 한 번도 공감받은 적 없어서 억울한 적이 많았네.”
“그러시겠죠.”
“크크크, 자네가 있어서 조금 마음이 풀리는구먼.”
“감사합니다.”
“능력은 쓰레기지만, 그래도 술친구로는 나쁘지 않겠어.”
“이 개새….”
아차! 속으로 생각만 하는 걸 입으로 뱉어버렸다.
“뭐?”
“이계 생활이 어땠습니까?”
“흠.”
그가 눈에 힘을 주고 나를 째려봤다.
【진리의 눈】이 【현자의 눈】을 현혹합니다.
“이상하네. 왜 자꾸 기분이 나쁘지. 확실히 욕을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말이야.”
“그거 노망이….”
“뭐?!”
“로망이 있습니까? 이 세계 생활의 로망 말입니다.”
그가 이번엔 아주 확신에 찬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진리의 눈】이 【현자의 눈】을 현혹합니다.
“흠.”
대마도사인 그가 혼란스러워하며 머리를 감쌌다.
‘크크크, 병신 새끼. 놀려먹는 재미가 있네.’
“으, 이상하군. 내가 이 세계로 온 사이에 지구의 언어생활이 많이 변했나? 자네가 하는 말이 자꾸 욕처럼 들리네.”
“그건 병신이라서….”
“이 새끼가! 진짜!”
【진리의 눈】이 【현자의 눈】을 현혹합니다.
“그건 병의 신인 제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제 권능이 의료계열 아닙니까.”
김도정의 눈이 태양처럼 활활 빛나며 나를 째려봤다.
하지만 도저히 내 진심을 알 수 없었겠지.
그는 자신의 권능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절대 자신의 현자의 눈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갑자기 왜 욕을 하려고 하십니까! 저는 미약하지만 의료 능력자라서 대마도사님을 도와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으! 으! 으!”
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게 변했다.
분명 가슴은 나를 조지라고 명령하는 데, 머리는 쟤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싸우는 중이리라.
감히, 자신의 현자의 눈이 틀릴 리 없다는 2백 년의 믿음.
그것이 김도정의 최대 실수였다.
“미, 으윽! 미안하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군. 아마도 오랜만에 같은 고향의 사람을 만나서 혼란이 온 모양이네.”
그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수백, 수천 조개가 넘는 무한한 평행세계에서 완전히 동일하거나 거의 흡사한 세계에서 온 사람이니까요.”
“그래. 하지만 내 현자의 눈이 말해주고 있네. 이성훈. 이 자는 나와 완벽히 같은 고향의 사람이야.”
내 진리의 눈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아야!”
그때였다.
박사의 조수 중 한 명이 가위에 손을 베였다.
따로 무공이나 마법을 배우지 않은 순수 학자라 몸이 약했다.
“피가 나는군. 자네가 치료해주게.”
나는 조수의 손을 잡았다.
“아앗.”
조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살짝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귀여웠다.
이쪽 세계의 여성들은 남자가 손만 잡아줘도 쉽게 흥분을 한다.
아주 살짝 째진 정도의 상처였다.
이 정도면 1 포인트면 충분히 치료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집중했다.
S포인트가 부족합니다.
뭐?
【진리의 눈】이 발동합니다.
타인의 몸을 변형하는 것은 더욱 많은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현재 플레이어의 포인트로는 부족합니다.
“이런.”
“왜 그런가? 설마 저런 작은 생채기도 치료해주지 못하는 쓰레기 의료 권능은 아니겠지?”
이런 개 같은 녀석이 말을 함부로 하네.
“쓰레기는 너.”
나는 다시 녀석을 도발했다.
“뭐?”
“쓰레기는 너무하지 않습니까.”
【진리의 눈】이 【현자의 눈】을 현혹합니다.
질리지도 않는지 김도정은 끈임 없이 내 행동을 현자의 눈으로 확인했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죽이려고 하겠군.
“제 신의 권능은 특별합니다. 고작 이런 생채기에 쓸 허접한 능력이 아닙니다.”
“뭐?”
“예. 제 능력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이 권능의 주인인 제가 가장 잘 압니다.”
내 힘을 숨기는 것을 성공했으니 앞으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위해 적당히 힘을 드러내기도 해야 했다.
“제 능력은 한 번 사용하는 데 엄청난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작은 일에 쓰기엔 너무 과한 권능입니다.”
“호오, 그래?”
그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흥! 그래 봤자 전투에는 써먹지도 못할 반푼이 능력이로구나. 오히려 실망이다!”
“저는 아주 고치기 힘든 것들을 고치는 데 특화된 능력입니다. 그런 흔한 치료술사들과 비교하는 것은 제게 실례입니다.”
“뭐! 실례? 실례? 감히 내게 실례라고 말했느냐?”
“예. 동향 사람끼리 실례라는 단어도 못 씁니까? 병신이나 개새끼 같은 욕도 아니고.”
그가 나를 사납게 째려봤다.
“그럼, 나와 내기라도 하겠느냐?”
“무슨 내기 말이십니까?”
“자네가 그 대단한 능력을 내게 선보여 보게!”
“예?”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그 기분 나쁜 뉘앙스로 말하는 입으로 말이야.”
“하하하, 솔직히 조금 유치하네요.”
“뭐? 유치? 유치?”
김도정이 이성을 잃은 듯이 얼굴살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심계에 얕다고 보일 수 있으나 나는 충분히 공감했다.
무려 대한민국 히어로 랭킹 2위의 대마도사였다.
그 누구도 그를 이렇게 대하진 않는다.
무려 200년이나 삶을 살았다.
어딜 가도 존경을 받는 그였다.
심지어 그를 적대하는 빌런들도 그 앞에서는 행동을 조심했다.
그런데 같은 고향에서 온 사람이 하루 종일 이상한 뉘앙스로 말을 하며 자신의 신경을 긁다가 이젠 대놓고 성절을 드러냈다.
동향 사람이 아닌 다른 이였으면 진즉에 수십 조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좋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보상을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크크크, 걱정 말게. 하지만 과연 2백 년 간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눈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당연하지.
나는 황금 아우라의 주인이니까.
고작 실버 아우라 따위와의 작은 내기에 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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