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부산 갸루 누나들과 쓰리썸?(1)
* * *
“하아. 진짜. 그러게 후회 할 짓을 왜 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머리를 땅에 쿵쿵 박으며 사죄를 한다.
“알겠어요. 이번 딱 한 번만 봐줄 테니까 그만 일어나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모님!”
참교육 한 번에 학생에서 사장님과 사모님으로 대우가 달라졌다.
역시 사람은 만만해 보이면 호구로 본다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옥보단상회 아줌마를 향해 손을 내민다.
“그러면 줘야 줘.”
“네? 뭐를 드려야 할지···”
주춤하는 아줌마.
설마 용서해 준 대가로 돈을 바라는 걸까?
라는 눈빛이다.
“우리가 산 우럭이요.”
“아! 네. 넵!”
바닥에서 팔딱팔딱 거리는 크고 싱싱한 우럭을 얼른 손질해서 포장하기 시작한다.
“여기 있습니다. 사장님. 맛있게 드세요!”
억지로 활짝 웃는 미소를 띠며 90도로 인사를 하는 아줌마.
그런 아줌마를 향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아주머니. 그런데 이거 너무 양손이 가벼운 것 같지 않아요?”
“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다는 눈빛의 아줌마다.
“아주머니가 약속한 것 있잖아요. 스끼다시. 스끼다시도 많이 주시겠다면서요. 우럭사면.”
“아! 그, 그건. 진짜 우리 이렇게 크고 싱싱한 우럭 그 가격에 팔면 남는 것 하나 없어요. 좀 봐주세요. 사장님.”
“아, 그건 아주머니 사정이고요. 뭐, 싫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던가요. 세경아~ 여기서 제일 가까운 경찰서가 어디지?”
경찰서라는 말에 상인 아줌마가 다시 넙쭉 엎드리며 공손하게 말한다.
“아, 아닙니다! 아이고, 이거 제가 사장님. 사모님. 양손을 너무 가볍게 해 드렸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열심히 해삼, 멍게, 조개 같은 해산물을 담기 시작한다.
“아. 아줌마. 우리 세경이는 산낙지 좋아한다던데요?”
“산낙지요? 아. 드려야죠. 드려야죠.”
산낙지까지 추가로 득템.
양손가득 산낙지와 해삼, 멍개, 조개가 담긴 비닐봉지를 스끼다시로 얻었다.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양.
물론 아줌마가 처음부터 사기를 치지 않았다면, 당연히 이런 불합리한 요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로 넘어가면, 아줌마는 다음에도 서울에서 온 호구로 보이는 손님한테 똑같이 사기를 치려고 할 테니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다.
양손가득 해산물이 담긴 봉지를 들고 나오며 상인 아줌마에게 차갑게 말했다.
“아줌마. 진짜 운 좋은 줄 알아요. 다음에 또 손님한테 눈탱이치다 걸리면, 그 때는 사기죄에 성추행까지 어떻게든 만들어서 경찰서에 신고해 버릴 테니까.”
“예, 예. 앞으로 절대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살펴가세요. 사장님.”
참교육 한 번에 온순한 양이 되어버린 자갈치 상인 아줌마.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평소 호구 손님을 상대로 사기 치던 버릇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경고쯤은 되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세경이와 함게 자갈치 시장을 나섰다.
* * * * *
쏴아아~! 철썩~!
오후 늦은 시간의 해운대 바닷가 산책.
황금색 모래사장을 세경이와 단 둘이 걷는다.
생각만큼 바다가 에메랄드빛으로 푸르게 빛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올 해 처음 보는 바다.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세경이처럼 아름다운 슈터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시원아. 너 자갈치 시장에서 똑 부러지더라. 사기 치는 상인 아줌마도 다 참교육 시켜주고. 나는 시장 아줌마들 무서워서 아무 것도 못했는데.”
“아니야. 나도 내가 여자였으면 몸 사렸어. 아줌마들 말투도 거칠고. 나는 남자라서 어차피 상인 아줌마가 못 건들 거 아니까 막 나간거지.”
“그래도. 보통 남자들은 무섭고 부끄러워서 시원이처럼 바른말 못하는데. 남자한테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시원이 너 오늘 좀 멋있었어. 연약한 남자를 도와주는 여자처럼.”
그렇게 말하며 세경이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어 온다.
세경이의 긴 생머리에서 나는 기분 좋은 샴프 냄새.
언제까지라도 세경이와 계속 이 해변을 걷고 싶다.
“혹시라도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시원이가 아까처럼 도와 줄 거야?”
“당연하지. 누가 우리 세경이 건들기만 해 봐. 내가 다 갈아 마셔 버릴 테니까.”
“진짜? 누가 들으면 내가 남자고 시원이가 여자인 줄 알겠다. 든든하네. 우리 시원이.”
호수같이 아름답고 큰 눈으로 나를 보는 세경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붉고 상큼한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어 간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볼이 빨개진다.
본격적으로 섹스를 할 때 키스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서로의 감정이 달아올라 키스하는 것이 훨씬 감미롭고 설렌다.
“하아··· 나 정말 어떡하지.”
짧은 키스가 끝난 후 세경이가 한숨을 쉰다.
“왜 그래. 세경아?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응. 있지. 너무 큰 고민.”
“뭔데? 나한테 말 해봐. 세경아.”
세경이가 나를 알 수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비밀. 시원이에게 만은 비밀이야. 그것 보다. 시원아!”
“어???”
“우리 숙소까지 달리기 내기 하자. 여기서 얼마 안 머니까. 지는 사람이 요리하기!”
그렇게 말하며 해운대 바닷가를 달려가는 세경이.
지평선위로 쏟아지는 저녁노을과 청순한 여신처럼 아름다운 세경이의 모습.
나는 이 여름날의 추억을 아마도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 * * * *
“하아하아... 시원이 너는 무슨 남자가 여자보다 더 잘 달려? 아, 진짜 억울해.”
나보다 세경이가 먼저 출발했지만 결국 펜션에 먼저도착한 건 나였다. 아무리 피트니스 실장으로 운동을 평소에 열심히 하는 세경이지만, 남자의 기본 체력은 당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세경이가 요리를 하고 싶어서인지 일부러 천천히 달린 것도 있고.
물론 마지막에는 정말로 역전할 수 없게 되자 자존심 때문에 이를 악물고 달렸지만, 나를 따라잡기에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무리였다.
“눼에 눼에~ 신세경님. 그러면 오늘의 쉐프로 당첨! 맛있는 우럭회와 산낙지 손질 부탁해요~!”
“알겠어. 치. 오늘 실력 발휘 제대로 해 볼 테니까 시원이는 배터지게 먹을 준비나 해!”
세경이의 요리실력.
사실 세경이와 만난 건 벌써 여러 번 이지만 세경이의 요리를 먹어 본 적은 없다.
가정이 행복하려면 와이프가 요리를 잘 해야··· 라고 나도 모르게 세경이와 신혼살림을 차리는 망상을 하고 있다.
그 때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세경이.
“어! 시원아! 큰일 났어!”
“응? 왜???? 무슨 일인데?”
세경이가 당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분하다는 듯 말한다.
“글쎄... 산낙지에 초장이 없어! 상인 아줌마가 챙겨주는 척 하면서 엿 먹으라고 뺏나 봐!”
치사하게 초장으로 복수하다니.
초장은 산낙지나 회를 먹을 때 필수적인 소스다.
초장 없는 회와 산낙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걱정 마. 세경아. 내가 사올 게. 펜션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슈퍼 있더라.”
“진짜? 괜찮겠어? 벌써 어두운데. 같이 갈까?”
“아니야. 세경아. 세경이는 요리해야지.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금방 갔다 올게. 세경이는 요리에 포커스! 알겠지?”
“알았어. 시원아. 조심해야해. 부산 여자들은 거칠다고 하더라. 시원이는 너무 귀여워서 부산 애들한테 보쌈이라도 당할까 봐 마음이 안 놓인다니까.”
“걱정도 팔자 셔. 나 간다. 바이~”
세경이에게 인사를 하고 펜션문을 나선다.
그런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어. 시원아. 너 어디가?”
고개를 돌려 보니 유설화가 다가오고 있다.
“어. 여기 앞에 슈퍼 좀 갔다 오려고. 너는 무슨 일인데?”
“아. 우리 이따 술 마시기로 했잖아. 엄마가 10시까지 오래. 괜찮지?”
“응. 알겠어. 그럼 이따 봐.”
유설화도 이렇게 평범한 대화만 하니까, 그냥 예쁜 대학생 같다.
유설화를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버튼을 누르는데 유설화각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리 앞에 슈퍼 가더라도 조심해. 벌써 저녁이니까. 요즘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부산 여자애들이 서울 남자애들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난리래. 하여간 이 세계 여자들은 다들 왜 이런 건지········”
그렇게 혼잣말 하듯 말하며 유설화가 반대 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웬일이야. 유설화가 내 걱정을 다 하고? 그 사이에 철들었나?’
띵동!
펜션 일 층에 도착.
펜션은 화려하지만 펜션 앞은 조명이 어두운 편이라 살짝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뭐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무슨 일 있겠어?
저벅저벅.
펜션 앞 작은 공원을 지나쳐 가는데, 들리는 발자국 소리.
두근두근.
나도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뛴다.
설마 누가 나를 뒤 쫒기라도 하는 것일까?
최근 들어 부산에서 호캉스 관광객을 타깃으로 노리는 흉악범죄도 늘어났다고 하던데.
펜션에서 봤던 뉴스가 생각난다.
점점 더 걸음을 빨리 하는데, 허스키한 여자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노?”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갸루 스타일의 화장에 일본 애니에나 나올 듯한, 야한 옷을 입은 섹시한 여자가 나를 보며 눈빛을 빛내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