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세경이와 바닷가로 여름휴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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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까. 씨발년아. 아줌마만 욕할 줄 알아? 나이 많은 게 벼슬도 아니고. 사기꾼 년한테는 나도 예의 지킬 생각 없으니까.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이 정도 겁을 주면 당연히 물러설 줄 알았던 상인 아줌마가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새끼가. 진짜. 야!”
여기서 손님에게 더 밀린다면 상인협회에서 호구인증이나 다를 봐 없다.
상인 아줌마가 더 세게 나온다.
더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서라도 제대로 한 판 해보려나 보다.
당연히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힘이 세다.
거기다가 매일 매일 상인으로서 일을 하다 보면 생활근육이 생기는 법.
일반인들보다 근력이 저절로 강해진다.
손님과의 마찰로 생긴 깡따구와 생활근력.
그렇기 때문에 부산의 양아치가 와도 상인들은 어지간해서는 밀리지 않는다.
“이 손 치워라. 서울 머스마. 그 고운 얼굴 다치기 전에.”
상인 아줌마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뿌리치려 힘을 쓴다.
그런데···
“어? 이게. 왜·· 왜 이러지!”
손쉽게 뿌리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 손.
상인 아줌마가 아무리 힘을 써도 털어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생활근육으로 다져진 상인 아줌마라 해도 여자는 여자.
내가 키도 더 크고 덩치도 더 크다. 거기다가 평소 헬스로 단련한 내 손아귀 힘을 떨쳐내는 건, UFC에 나올 정도로 죽어라 운동한 여자가 아니면 어지간해선 힘들다.
“놔·· 놔!! 놓으라고!! 이 개새끼야!”
처음에는 멋있게 나를 도발 했지만 예상치 못한 힘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다.
“왜. 이 씨발년아. 뭐가 마음대로 잘 안 돼?”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우당탕탕!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 손을 떨쳐내기 위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던 상인 아줌마가 비틀 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아! 아야야야!!! 아흐으윽.”
앞으로 고꾸라졌던 상인 아줌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하게 엄살을 부린다.
이 어린 남자 새끼.
뭔가 심상치 않다.
그렇게 느낀 상인 아줌마.
일 대 일로는 힘들 것 같다.
판단을 내린 상인 아줌마가 비장의 수를 뽑아든다.
사실 자갈치 시장에 오는 손님들이라고 해서 상인 아줌마보다 더 성격 더럽고, 싸움 잘하는 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인 아줌마는 믿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사, 사람 친다!! 손님새끼가 사람 쳐!!”
옥보단상회 아줌마가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다른 상회 아줌마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뭐!!! 누가 우리 순옥이를 건드려!”
“겨우 손님 주제에, 우리 동생을 건드려!!”
“안 그래도 장사도 안 되서 죽겠는데, 너희들 오늘 잘 걸렸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옥보단상회 아줌마가 help 요청을 보내자 격렬하게 반응한다.
“시, 시원아. 우리 어떡해!”
상인 아줌마들한테 집단 리치 당할 위기!
세경이가 안절부절 못하며,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다 생각이 있다.
이런 일을 예상 못하고 일을 벌인 것이 아니다.
십여 명의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인 나와 세경이.
그리고 의기양양해진 옥보단상회 아줌마.
“이. 씨발 새끼야. 어디 해 봐! 방금 전처럼 또 싸가지 없게 말대꾸 해봐라. 이 씨발놈아.”
그녀가 더 큰소리를 치며 나를 옥죄어 온다.
하지만 나도 남녀역전 세계에 평행이동 하게 된 후 배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자의 섹시함은 권력이라는 것이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로 치자면, 텐프로에서나 일할 것 같은 섹시한 여자가 우락부락한 시장 상인 아저씨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황.
그 상황을 100프로 활용하기로 한다.
“무, 무슨 말이에요. 아주머니. 흐윽. 아주머니가 제 몸을 마음대로 더듬으려 해서 제가 하지 말라고 말씀드린 것뿐이잖아요.”
“뭐··· 뭐!!! 내가 너 이 새끼 몸을 더듬어?”
너무나 황당해서 말문이 막혀버린 옥보단상회 아줌마.
이렇게 어리둥절해 할 때 더 밀어붙여야 한다.
“여자친구도 바로 옆에 있는데, 그렇게 성추행 하시면 어떡해요. 진짜, 너무하세요.”
“아, 아니!!!! 저, 저저저!!!”
너무 당황해서 말을 절기 시작한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옥보단상회 사장을 돕기 위해 적극적이던 시장 상인들도 그녀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하나, 둘 보내기 시작한다.
“뭐야. 에이 그런 거였어? 난, 또. 어느 안하무인 손님이라도 만난 줄 알았네.”
“에유. 순옥아. 너 남자 좀 그만 밝히라고 했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하는 옥보단상회 아줌마.
“아니야! 언니들! 진짜 아니야. 저 새끼가 지금 거짓말 하는 거야. 나 저 새끼가 어깨를 밀쳐서 앞으로 넘어졌다니까. 봐봐. 내 무릎 까진 거!”
옥보단상회 아줌마가 입고 있던 반바지를 걷어 올리며 다친 상처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도 다 대처방법이 이미 머릿속에 있다.
“그거야. 아주머니가 강제로 제 가슴을 더듬으려다가 제가 피해서 넘어지신 거잖아요. 흐윽.”
“가슴을 더듬다니! 내, 내가 언제!!”
“그러셨잖아요. 운동 열심히 해서 가슴 근육 잘 나온 것 같다면서··· 만져 봐야겠다고. 히이잉. 엄마아···”
윽. 내가 봐도 도저히 못 들어 줄 정도의 연약한 척이지만, 사기꾼 상인 아줌마를 참교육하기 위해서는 실감나는 연기가 필요하다
얼마 전 TV에서 본 성추행 당한 남자 배우 녀석이 분명 이렇게 연기했었지?
그리고 내 연기발이 제대로 먹혔는지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맞아요. 저 남자 대학생 말이 맞아요. 저도 봤어요. 상인 아줌마가 억지로 막 더듬으려 했다니까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여자가 남자 가슴을 함부로 더듬으려고 해! 학생 괜찮아요? 울지마요. 아, 진짜 어떡해.”
“하여간 여자들은 남자가 섹시하다 싶으면 어떻게든 한 번 해보려고. 여자친구까지 옆에 있는데 그러고 싶어요!”
옆에서 구경만 하던 자갈치 시장에 놀러 온 손님들도.
여자가 남자 성추행이라는 화제 앞에서는 자기 일처럼 나서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고요. 아, 진짜 답답해 미치겠네.”
하지만 주위에 있는 민심은 이미 우리쪽으로 완벽하게 기울어진 상태.
심지어 옥보단상회 아줌마를 도와주기 위해 나섰던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마저도 등을 올린다.
“에이. 진짜. 찝찝하게. 이런 일은 직접 알아서 처리해야지. 어디서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요. 순옥씨 그렇게 안 봤는데.”
“야. 순옥아! 어서 잘 못 했다고 사과드려. 너 그러다 큰 일 난다. 진짜.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순옥이가 마음은 착한데, 남자를 밝혀서 그래요. 이 번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내가 진짜 저 사장 남자를 너무 밝혀서 언제가 한 번 일 날 줄 알았다니까. 아니, 남자가 여자를 밀어서 넘어트렸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잖아. 거짓말을 하려면 좀 그럴듯하게 해야지.”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까지 욕을 먹는 상황이 되자, 옥보단상회 아줌마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거기다가 진짜로 내가 경찰서에 성추행으로 신고라도 하면, 지금 이 분위기에서 그녀의 죄는 유죄가 될 것이 확실하다.
성추행은 여자가 남자를 성추행 하는 것은 남녀가 역전된 상황에서는 전자발찌를 찰 수도 있는 큰 죄다.
시장 상인이 전자발찌라도 차면.
성범죄자로 낙인 찍혀서 장사가 잘 될 리 만무하고, 평생 성범죄자로 낙인찍힌 체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 하나 묻어버리는 일 따위 간단한 세상이다.
“미, 미안해.”
할 수 없다는 듯, 옥보단상회 아줌마가 사과를 한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성에 찰리가 없다.
성추행은 안했지만, 철면피를 깔고 사기를 치려고 했다.
“진심이 안 느껴지네요. 세경아. 성추행 신고하러 경찰서 가자. 우리 저녁은 건너뛰더라도 사회정의 구현이 먼저지. 안 그래?”
눈치를 보던 세경이도 내 의도를 눈치 채고 그럴 듯하게 연기를 한다.
“그래. 시원아. 어디 다 썩은 동태같은 눈깔로 우리 시원이 가슴이랑 허벅지를 훔쳐 봐. 확 그냥 뽑아 버릴라!”
“가자, 세경아.”
그렇게 말하고 나가려하는데, 옥보단상회 아줌마가 털썩! 무릎을 꿇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이렇게 가만히 체면만 지키고 있으면 정말로 좆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는지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빌기 시작한 거다.
그런 아줌마를 가만히 바라보는 나와 세경이.
이제는 아예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빌기 시작하는 옥보단상회 아줌마다.
“제가 몰라 뵙고···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렇게 빌어요. 제발, 한 번만 선처를 베풀어 주세요. 흐흑. 저 성추행으로 감옥가면 저희 홀어머니는 누가 모셔요. 사장님. 사모님. 제발 이 모자란년 살려 주신다 생각하시고 한 번만. 딱 한 번만 살려 주세요·······”
하아.
물론 우리를 사기 치려고 했던 대가로 참교육을 제대로 시켜주려면 이정도로는 부족하지만, 세경이와 나의 다음 일정도 있으니 이쯤에서 봐주기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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