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도도한 유설화(final)
* * *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고.
그리고 요즘에는 국회의원이원 아들이라고 해도, 사실상 괜히 사건이라도 나면, 선거 때 트집이라도 잡힐까 봐 더 조심하고 웬만한 일은 쉬쉬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말없이 일단 소주잔에 소주를 따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설화가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소주를 휙! 버리고.
500미리 맥주 잔에 맥주를 가득 따른다.
“야, 유시원.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나랑 만나고 싶으면 제대로 해야지. 어디서 소주잔으로 찔끔. 이걸로 부어.”
마치 나를 퐁퐁남 조종하듯 조종하려는 유설화.
하아.
내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유설화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시원아. 잘 생각해라. 네가 저 새끼 머리에 맥주 시원하게 부어버리고, 무릎 꿇고 애원하면서 매달리면, 혹시 아니. 오늘 밤 너랑 자 줄지?”
그렇게 말하며 요염한 눈빛을 보내는 유설화.
역시 여자의 무기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유설화다.
술도 마셨겠다.
청순하고 요염하기까지 한, 눈처럼 얀 피부의 글래머 유설화가 눈앞에 있다.
이성이 흔들리고 본능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나는 맥주잔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설화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만족한 듯 미소를 띤다.
얼음에 맥주가 가득 담긴 500ML 맥주 잔.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이 맥주 잔 샤워를 받으면 정신이 바짝 들 수밖에 없다.
그래, 결정 했어.
뚜벅뚜벅.
천천히 맥주잔을 들고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
·
그대로 맥주잔을 유설화의 머리 위로 가져가서는 시원하게.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녀의 머리 위로 부어 버렸다.
쏴아아아아!
갑자기 쏟아지는 얼음들과 차갑고 끈적끈적한 맥주에 정신을 못 차리는 유설화.
그녀의 얼굴이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파랗게 질렸다.
머리부터 치마까지 흠뻑 젖어버린 유설화게 오돌돌 떨며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귓가에 대고, 차갑게 말한다.
“아니지. 설화야.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니? 여기는 네가 살던 개한민국이 아니라, 그런 눈빛으로 봐도 하나도 안 무섭거든? 그리고 네가 아직도 감이 안 오나 본데. 여기는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세계가 아니거든? 설화. 네가 무릎 꿇고 애원이라도 하면 내가 한 번 생각해 볼게. 너랑 한 번 자 주는 거? 그럼. 나간다. 계산은 네가 하고.”
* * * * *
“저. 갈게요.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생 가는 거야? 잘 가~ 다음에 누나랑 상담할 고민 있으면 꼭 혼자 오고.”
“네. 누나 다음에 봐요. 계산은 아직 자리에 남아있는 애가 할 거에요.”
덜커덩.
퓨전 술집을 나오자, 가슴 속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사이다!
우리가 마신 술 값 까지 유설화에게 덤탱이 씌우자, 열 받아서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바라보던 유설화의 눈빛이 통쾌해서 잊혀 지지 않는다.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인지, 유설화는 머리로 얼음 잔에 가득 찬 맥주 세례를 받아내고는 물 미역된 머리로 나만 노려보던 유설화. 하긴, 남녀가 역전되기 전 세상이었으면 누가 감히 학교의 퀸카 유설화의 머리에 맥주를 부어버릴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아니 학교의 퀸카이기 이전에 여자한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영상 찍혀서 학교에서 매장 당했을 것이다.
‘하아. 일단 속 시원하게 남녀가 역전 된 세계에서 까지 페미 짓하는 유설화를 속 시원하게 참교육 시켜주긴 했는데, 뭔가 아쉽네.’
사실 유설화는 뇌가 페미 쓰레기라 그렇지, 외모와 몸매는 Top 클래스 중의 탑 클래스였다.
단지 생각이 쓰레기라는 이유로 놓아주기에는 아깝다.
더군다나 그녀의 엄마.
한효린과의 관계도 유설화 때문에 어색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고민을 길게 하는 성격이 아니다.
곧 결정을 내렸다.
그래, 페미라고 못 따먹는 다는 법 있어?
유설화의 약점을 찾아 철저히 공략해서, 다음에는 정말 무릎 꿇고 제발 한 번만 섹스 해 달라고 빌게 만들어 줘야지.
페미 주제에 약점을 공략 당해서 제발 박아 달라고 애원하는 유설화를 상상하니 군침이 싹 돈다. 원래 공략이 힘든 여자일수록 더 공략하는 재미가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유설화가 내 발목을 잡고 매달리며 섹스 해 달라는 상상을 하며 택시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핸드폰이 지이잉 울린다.
설마, 유설화?
유설화가 보복하려고?
아니지. 유설화는 아직 내 전화번호도 모른다.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 해 보니, 그 메시지는 바로 내 첫 번째 슈터 세경이에게서 온 메시지 였다.
[세경이: 시원아. 잘 지냈지? 나는 그 동안 너랑 여름휴가 가려고 일 빡세게 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휴가? 아·······
이제야 생각이 났다.
세경이와 여름에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기로 했었지.
그동안 너무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나: 응. 세경아. 당연히 안 잊었지. 그래서 세경이 여름휴가 언제인데?]
[세경이: 응, 이번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가 이미 숙박이랑 이런 곳 다 예약했으니까, 시원이는 그냥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됨, 알았지?]
역시 우리 세경이는 머리가 쓰레기통인 유설화와 다르구나.
거기다가 운동도 열심히 해서 몸매와 탄력도 끝내주고.
페미 유설화와 술 마시다 보니 갑자기 개념녀 세경이가 보고 싶어졌다.
[나: 응. 세경아. 우리 세경이 밖에 없네. 나 갑자기 세경이 보고 싶다.]
[세경이: 갑자기? 피······· 나는 시원이 항상 보고 싶은데. 그래도 시원이 한테 보고 싶다는 말 들으니까 좋다. 나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 수요일까지만 일 빡세게 하면, 같이 휴가 갈 수 있으니까. 나는 매일 밤 설레서 요즘 잠도 못 잔다니까.]
역시 귀여운 세경이.
나랑 여행 갈 생각에 설레서 잠도 못자고 있다니.
[나: 알겠어. 세경아. 세경이 보고 싶어도 수요일까지만 참을게.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까, 시간 금방 가겠지.]
[세경이: 응. 시원아. 나, 이제 내일 오전 PT 준비하려면 자야겠다. 시원아. 잘 자. 그리고··· 내 꿈 꿔~]
[나: 응. 세경아. 세경이도 잘 자. 목요일에 봐.]
평소에 다른 여자들과 메시지를 할 때는 너무 집착해서인지 귀찮기만 한데, 세경이는 적당히 좋아하고 끊을 줄 알아서 오히려 내가 아쉽다. 그리고 그저 섹스 파트너인 다른 여자들 보다는 그래도 내 여친 후보인 슈터 세경이한테 마음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아, 진짜 세경이 마려운 밤이네.’
솔직히 단순히 외모만 본다면 유설화가 더 화려하고 예쁘긴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 중요한 건 역시 외모뿐만이 아니다.
남자를 하찮게만 생각하는 유설화와 같이 있다, 세경이의 따뜻한 배려를 받으니 세경이의 가치가 잘 세공된 보석처럼 반짝인다.
* * * * *
“시원아. 이제 왔어?”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반겨 준다.
“응. 엄마. 좀 늦었죠?”
“아니야. 아들. 그런데 술 마셨니? 술 냄새 난다.”
“응. 엄마. 학교 애들이랑 한 잔 했어요.”
“그래. 아들. 너무 형준이랑만 친하게 지내서 걱정했는데, 학교 애들이랑도 잘 지내서 다행이다. 그래도 시원이는 남자니까 항상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젊은 여자애들일수록 혈기가 왕성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이거 다 엄마가 우리 시원이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잔소리로 듣지 말고.”
“응. 엄마. 안 그래. 내가 엄마 마음 잘 알지. 걱정하지 마요. 알아서 잘 처신 할 테니까. 엄마 나 그럼 피곤해서 먼저 잔다.”
“그래. 시원아. 우리 시원이 다 컸네. 엄마한테 스위트하게 말도 잘하고. 내일 아침에 미역국 끓여 줄 테니까. 푹 자.”
“응. 엄마.”
엄마와 대화를 마치고 내 방 침대에 누웠다.
술기운이 돌아서인지, 침대에 눕자마자 스르륵 눈이 감겨왔다.
* * * * *
‘이곳은 어디지?’
지금 내가 눈을 뜬 곳은 전혀 낯선 장소다.
우아한 조명과 하얀 침대.
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흔히 내가 알던 곳과는 다른 럭셔리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본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건 하얀색 가운.
영화 속에서나 보던 고급스러운 품질의 우아한 가운이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해서 벗고 싶어진다.
‘으윽!’
불편한 가운을 벗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해 보았지만 내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도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지금 이 곳은 현실세계가 아닌 꿈속이라는 것을.
일명 자각몽이라고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자각몽 속에서의 나는 듣고 볼 수는 있지만,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저 꿈속의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를 뿐이다.
저벅저벅.
천천히 샤워실을 향해 걸어가는 나.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샤워실 문 앞에 걸려있는 야한 핑크색 팬티와 브라자.
분명 여자의 것.
거기다 샤워실 바닥을 투두둑 때리며 떨어져 내리는 물소리.
나와 같이 이곳에 있는 여자는 알몸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꿀꺽···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그리고 꿈속의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샤워실 문을 활짝 열어 재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