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도도한 유설화(10)
* * *
“보자보자. 그 여자의 소중한 부분이랑 발음이 비슷하잖아! 어떻게 남자가 여자한테 그런 말을 해? 미친놈도 아니고.”
유설화의 말을 들은 하은이가 소리 내서 푸후후 웃고 말았다.
“아니, 야. 진짜 너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그게 그렇게 연관이 되냐? 그냥 갖다가 붙이면 다 보지 되는 거야? 그게 말이야 방구야? 그러면 씨발 가이 바위 보 할 때 남자는 보도 말하면 안 되겠네? 보지 생각나게 하니까? 야. 진짜 내가 살면서 들은 말 중에서 제일 말도 안 되고 황당하다. 진짜 상상력 쩐다.”
이번에는 시은이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지 배를 움켜쥐고 하은이와 같이 웃고 있다.
“아, 진짜. 설화야. 오늘 너 때문에 내가 평생 웃을 거 다 웃는다. 너 코메디언 해도 되겠다. 보자보자가. 보지보지? 악! 씨발 진짜 미친 거냐고! 그래, 유설화 네가 이 구역의 미친년이다. 진짜. 와. 이 년 알고 보니 개드립 존나 찰지는 구나. 나 내일 학교 가면 이거 학과 애들한테 다 퍼트려야지. 아, 벌써부터 내일이 존나 기대된다.”
당연히 여성인권 주의적으로 엄청난 호응을 얻을 줄 알았던 유설화.
그녀가 배를 잡으며 자신을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병신으로 능욕하는 시은이와 하은이의 반응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얘, 애들아! 왜 그래? 그게 지금 웃을 일이야? 여자의 소중하고 신성한 곳을 비하했는데. 여자들끼리 서로 뭉쳐야지. 안 그러면 남자들에게 무시당한다니까!”
“야! 됐다니까. 이제 설화 너 존나 웃긴 거 알았으니까, 그만 해. 이러다 배꼽 빠지겠다. 야, 술이나 마시자 술. 알고 보니 유설화 골 때리게 웃긴 년이네.”
유설화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은이와 하은이는 유설화가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지껄이는 남녀역전 세계의 페미 컨셉을 잡고 자기들에게 농담을 하고 있는 걸로 착각했다.
하긴 내가 들어도·······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뭐더라?
보겸 + 하이루의 합성어인 보이루? 가 여성을 비하했다고 하던가?
하아, 진짜 기가 막혀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페미니즘에 빠지면 남자들이 하는 모든 단어가 여성비하로 들리나보다.
“하, 거기 저 여자 진짜 꼴 때리네. 미쳤나 봐. 진짜. 어떻게 하면 저런 생각을 다 하지? 진짜 상상력 쩐다.”
“그러게. 야, 그러면 우리는 무서워서 자위도 못하겠다. 남자 거기 비하하는 것처럼 들릴 테니까.”
“씨발 진짜. 오랜만에 보지 떨리게 웃는다.”
심지어 다른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마저도 유설화의 개소리를 듣고는 배꼽 빠지게 웃고 있다. 그제야 자신의 상식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의 여자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을 안 유설화가 침울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닫았다.
그런 모습을 본 시은이가 유설화를 위로한다.
“야. 설화야 너의 그 상식개변 의도는 좋았는데 말이다. 아무리 남녀가 역전된 세계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고 해도, 어느 정도 적당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여야지 먹히지. 그거는 너무 갔다. 하여간 우리 웃기느라고 수고 했어. 너 생각보다 재미있네? 다시 봤다.”
하은이도 유설화의 말도 안 되는 페미니즘 개소리 때문에 실컷 웃어서인지 기분이 좀 풀린 것 같다.
“그래, 너 재수 없는 년 치고는 좀 웃기네? 술 한 잔 하자. 자, 쭉 들이켜 쭉! 원 샷 ~”
하은이가 술을 권하자 유설화도 못 이기는 척 술을 마신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세 잔.
계속해서 이어지는 술자리.
그리고 어느 덧 눈이 풀어진 하은이와 그런 하은이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시은이다.
시은이가 눈이 풀어져 꾸벅꾸벅 머리를 자꾸만 테이블에 박고 있는 하은이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야, 이 미친년아. 너 술 잘 마신다며. 소주 다 섯 병 마신다며. 아직 너 두 병도 안 마셨는데, 왜 골뱅이 되고 지랄이야.”
눈이 풀려버린 하은이가 술주정 하 듯 시은이에게 말한다.
“아, 그거. 나 다섯 병 맞는데. 다섯 명이서 다섯 병. 그저께도 애들이랑 그렇게 마셨는데 말짱했다니까. 아, 씨발. 유설화 저 년 술 존나 세네.”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며 시은이에게 엉겨 붙는 하은이.
시은이가 그런 하은이를 보며, 기가 막혀 혀를 찬다.
“아, 진짜 꼴값을 떤다. 미친년아. 누가 주량을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마신 술로 쳐, 자기만 마신 술로 쳐야지. 그러면 뭐야? 너 진짜 주량은 두 병도 안 되는 거야?”
“어? 그래? 아, 씨발. 몰라. 머리가 빙빙 돈다. 돌아. 시은아. 우리 시은이 가슴 생각보다 크네? 언니가 가슴 마사지 해 줄게.”
술 취하면 여자 가슴 만지는 게 술 주정인지 하은이가 시은이에게 달라붙어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른다.
“흐윽. 아, 진짜. 이거 개념 없이. 술 취하면 곱게 취할 것이지. 아 미치겠네. 진짜. 아직 시원이도 못 만져본 처녀 가슴을 감히 네가 개통을 해! 손 치워라. 좋은 말로 할 때.”
술주정 부리며 계속해서 시은이의 가슴을 만지려는 하은이와 그런 하은이한테서 떨어지려는 시은이.
둘 다 정신이 없어 보인다.
이제 슬슬 내가 원하던 그림이 나오기 시작 한 거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유설화는 생각보다 주량이 강하다.
하은이가 술을 잘 못 마시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하은이가 강요하는 바람에 유설화도 혼자서 거의 소주 두 병은 마신 것 같은데?
정말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그대로다.
그런 유설화에게 칭찬하듯 말을 걸어본다.
“설화야. 너 술 완전 세다. 주량이 몇 병이야?”
아예 이제는 혼자서 자작을 하던 설화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 주량? 나도 모르는데? 아직 술 마시고 취해 본 적이 없어서. 우리 엄마 닮아서 그런가···”
아, 그러고 보니 설화의 엄마가 한효린이지.
형준이 어머니와 하던 대화를 엿들었을 때, 한효린은 대학교 때부터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했다. 설화도 그런 한효린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
어? 그러면 이거 뭐야.
유설화 술기운 오르면 적당히 들이대어서 따 먹으려고 했는데, 유설화가 술기운 오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뻗어 벌릴 것 같다.
이러면 작전 에바 인데. 어떡하지?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술에 잔뜩 취해 버린 하은이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쿵! 머리를 테이블에 박고 뻗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유설화가 여유롭게 승자의 미소를 짓는다.
“아, 저게 무슨 꼴불견이야. 술 맛 떨어지게. 그러게 술도 잘 못 마시면서 덤비긴, 어딜 덤벼.”
원래부터 하은이를 마음에 안 들어 하던 유설화.
하은이가 말짱 할 때는 무서워서 찍 소리도 못했지만, 술에 취해 뻗어버리자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속 시원하게 해 버린 것이다.
하은이는 맛탱이가 가 버렸고, 이제 남은 건 나와 시은이 그리고 유설화.
시은이만 보내 버리면, 그래도 단 둘이 유설화와 술을 마시며 분위기가 만들어 질 것 같은데. 슬쩍 시은이를 보니 사실 시은이도 술이 올라서,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 보인다.
“시은아, 너도 많이 취한 것 같은데, 하은이 데리고 들어가지 그래?”
걱정하는 척 시은이에게 하은이 데리고 들어가라고 은근슬쩍 의사를 물어본다.
하지만 시은이는 단호하다.
“아니야. 나 더 마실 수 있어! 진짜야. 이거 어떻게 온 처녀딱지 뗄 수 있는 기회인데. 나, 진짜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이미 그녀의 발음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졌다.
골뱅이 되라는 유설화는 멀쩡하고 하은이와 시은이만 골뱅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때,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우·· 웩. 우웨엑!”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기절해 있던 하은이가 빈대떡을 빚으려 준비하기 시작한 거다.
아, 이건 진짜 아니지.
“시은아, 하은이 완전 맛이 갔나보다. 시은이가 하은이랑 같은 동네 사니까, 좀 데려다 줘. 저러다, 애 죽겠다. 진짜.”
“아, 진짜. 하은이. 이 미친년. 가지가지 하네. 진짜. 이건 뭐야. 물귀신 작전도 아니고.”
그렇게 불평을 하면서도 하은이가 걱정되는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시은이.
“이년아. 정신 차려.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시원아. 나. 갈게. 그리고 설화야.”
“응. 시은아. 잘 가. 하은이 때문에 고생이 많다.”
“응? 나 왜?”
유설화가 하은이의 말에 반응하며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시은이가 유설화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야. 너. 시원이 술 취했다고 따 먹으면 진짜 죽는다. 씨발. 아, 개 빡치네. 진짜. 겨우 골뱅이 될랑 말랑 하는데, 죽 써서 개주는 꼴이네. 이거 완전.”
박력 있는 시은이의 협박에 유설화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아, 안 따먹을게. 걱정 마. 지, 진짜야.”
“뭐? 뭘 안 따먹는다는 거야?”
내가 궁금해서 물어보자, 시은이가 검지를 들어서 입술을 누르는 시늉을 한다.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제스처다.
그리고는 양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포크로 찌르듯이 가리켰다가 유설화를 가리킨다.
지금은 일단 물러나지만 쭈욱 지켜볼 테니 딴 마음 품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이다.
“하아. 진짜. 내가 이 년 때문에. 다 잡은 고기도 놓치고, 이게 뭔 고생이야.”
시은이가 투덜투덜 되면서 바닥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하은이를 들쳐 매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은이와 하은이가 술자리를 떠나자 드디어 남은 건 나와 유설화 단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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