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도도한 유설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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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남녀가 역전 된 사회가 얼마나 멋진지 얘기해 줄게. 시은이도 잘 듣고 좋은 글 써 줘. 이런 거지같은 사회가 아닌 남녀가 역전된 사회에서는, 여자는 남자를 기분에 따라 여러 명 골라서 만날 수 있어. 그러다가 들켜도, 사실 그건 남자가 잘 못 된 거지 여자 잘못은 아니거든? 여자가 왜 한 남자를 안 만나고 여러 남자를 골라 만나겠어? 그건 다 남자가 무능해서 그런 거지. 무능해서. 남자가 잘 났어봐, 여자가 왜 다른 남자를 만나.”
“무능? 남자가 무능하다고? 그게 무슨 의미야?”
시은이가 전혀 상상이 안 간다는 듯 되묻는다.
“그거야 뭐. 남자가 키가 작다든가. 적어도 180cm 이상은 되어야, 사람이라 하지. 그 미만 잡은 난쟁이고. 아니면 얼굴이 훈남에도 못 끼는 평남이라던가. 키 크고 잘생겨도 적어도 외제차에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있어야 남자지.”
“정말. 그런 남자가 있기는 해? 야, 그런 남자를 만나려면 여자는 얼마나 잘나야 해? 무슨 대기업 딸이라도 되어야 하나? 얼굴은 최소 걸그룹 아이돌에 몸매는 모델?”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시은아. 여자는 그저 평범하면 되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키는 한 150 넘으면 되고. 키 작은 여자도 귀엽잖아? 그리고 집이야 뭐. 빛 없으면 되는 거고. 외모는 뭐. 여자가 외모가 뭐 중요하니? 원래 여자란 게 다 숨겨진 원석 같아서, 자세히 보면 다 예쁜 구석이 있는 거야. 그리고 솔직히 여자가 잘나면, 뭐 하러 남자를 만나. 남자 없어도 잘 사는데.”
“뭐? 여자가 남자 없이 어떻게 살아? 아무리 부자라도 남자 만나서 섹스는 해야 할 거 아니야?”
“그거야, 그냥 젊고 어릴 때야, 원하지 않아도 남자가 공주 모시듯 붙을 테니까, 그 중에 적당히 놀고 차 버리면 되는 거고. 나이 들면 영계 남자 애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애 만나서 적당히 섹파 하면 되는 거지. 여자는 원래 나이 들수록 더 매력 있는 거니까. 여자가 진짜 빛나는 나이는 40대 ~ 60대 라니까. 골드 미스라고 해서 그런 여자 좋아하는 젊은 남자애들 의외로 많다니까.”
골드미스?
시은이가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니, 남자야 나이 차이가 좀 나도 어린 여자 만나는 건 이해가 가지만. 어떻게 나이 많은 여자가 어린 남자를···”
그런데 시은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유설화가 화가 나서 빨개진 얼굴로 소리친다.
“야! 시은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만나다니. 그게 말이 돼? 배나온 아저씨면 아저씨답게 주제파악 해야지. 무슨 성범죄자도 아니고. 징그럽게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여자라니. 윽. 토 나온다. 진짜.”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하은이가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유설화에게 말한다.
“야. 아까는 나이 많은 여자가 어린 남자 만나는 건 괜찮다며, 무슨 말이 왔다갔다하냐?”
유설화가 하은이에게 지지 않고 말한다.
“그거야. 남자랑 여자랑 같아? 하은이 너 혹시 남자 아니야? 너 은근슬쩍 남자편 든다?”
안 그래도 유설화의 역겨운 논리에 기분이 나쁘던 하은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이게 진짜 미쳤나! 보자보자 하니까. 야! 유설화. 너는 진짜, 생각 자체가 썩었어. 이 미친년아. 지금 네 얘기 들으니까, 그게 다 무슨 개 같은 소리들이냐? 남자로 태어난 게 죄도 아니고, 전부 다 여자는 되고 남자는 안 돼?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진짜. 나는 진짜로 그런 미친 세계가 있다고 해도 그냥 여기서 살란다. 우리 아빠도 남자고, 동생도 남자인데, 우리 아빠 동생 불쌍해서 나는 그런 세계 그냥 보내줘도 싫다. 아, 진짜. 그런 세계에서 좆뱅이 칠 남자들 상상하니까, 생각할수록 열 받네. 아예 여자는 애기 낳아서 힘드니까 군대도 남자보고 가라고 하지 그래?”
“아, 아니. 하은아. 나는 그게 아니라.”
하은이에게 쫄아서 유설화가 시은이를 도움을 바라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시은이는 무언가 흥미가 생긴 듯 하은이를 말리며 말한다.
“하은아. 그냥 설화가 상상 속 얘기를 하는 거잖아. 현실도 아니고. 너무 열받아하지 말고 좀 더 들어 보자. 설화가 의외로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재미있네.”
“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남자가 무슨 여자 노예야? 잘 못하면 여자는 남자 복근만지면서 성추행해도 무죄고, 남자가 여자 가슴 좀 만졌다고 경찰서 간다는 말 하겠다? 안 그래 시원아? 개소리도 해도해도 정도껏 해야지.”
“어? 어··· 그, 그러게.”
사실 정말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아줌마가 젊은 남자 직원의 엉덩이를 보며 귀엽다고 토닥인다던가 성추행에 가까운 발언을 해도 여자에게는 아무 죄도 없다. 반대로 남자는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에게 밀려 여자의 어깨라도 손이 닿는 날에는 하루아침에 성추행범이 되어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사람들에게 성추행 범으로 몰려 손가락질을 받는 인생 파탄 경험을 하게 된다.
하은이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시은이가 다시 귓속말로 하은이에게 속삭이기 시작한다.
“야, 이 미친년아. 지금 분위기 좋은데 왜 판을 깨고 그래!”
“뭐? 분위기가 좋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지금 유설화가 개소리 지껄이는 거 듣고도 화도 안나?”
“야. 솔직히 말해서 너 지금 시원이한테 잘 보일려고 오버하는 거 아니야. 남자편 들어서. 그건 나도 알겠는데. 잘 생각해봐. 지금 유설화 신나서 자기 무덤파고 있잖아. 네가 시원이라면 아무리 예뻐도 남자는 여자의 노예에, 늙은 여자는 젊음 남자 만나도 킹정이라는 미친년을 좋아하겠냐? 오만정 다 떨어지지.”
그제야 무언가를 이해한 듯 하은이가 시은이의 어깨를 두드린다.
“야! 넌 진짜 이럴 때는 머리 존나 잘 굴러간다. 씨발. 그래. 시은이 네 말이 맞다. 내가 유설화 스스로 자폭 멸망 분위기 깬 거 킹정이다.”
“씨발. 이제야 말이 통하네. 알았으면 가만히 있어. 내가 더 부추겨 볼 테니까.”
“오케이~!”
그렇게 귓속말을 끝내고 시은이가 유설화에게 말한다.
“설화야. 하은이가 잠깐 흥분했었는데,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말해 봐. 그래서, 또 남녀가 역전되는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데?”
“그래. 설화야. 내가 잠깐 흥분했다. 여자는 여자편이지.”
여자는 여자편이라는 말에 유설화가 필을 제대로 받았는지 다시 개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 이제야 하은이도 깨달았구나. 여자는 여자끼리 뭉쳐야지. 너무 정조역전 얘기만 하지 말고, 좀 더 페미니즘 관점에서 광범위하게 얘기해보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더 세거든. 그런데, 힘만 세면 뭐 해? 머리가 단순한 돌인데? 우리 여자들은 남자의 그런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하는 거야. 예를 들어 시원이가 친구들이랑 시끄럽게 술을 마셔서 내가 욕하면서 시원이 머리를 한 대 때렸다고 쳐”
“뭐? 이 씨발년아! 네가 뭔데 감히 우리 시원이 머리를 때려!”
다시 감정이 이입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하은이.
하지만 그런 하은이를 시은이가 말린다.
“아, 이 단순한 년. 진짜.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잘 되 가고 있는데. 그래 설화야.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건데? 설화가 시원이 머리 때렸어.”
고릴라 같이 포효했던 하은이에게 잠시 쫄았던 유설화가 다시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러면 시원이가 열 받아서 나에게 뭐라 할 거 아니야.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머리를 때리 냐고.”
“정상적인 사람이면 당연히 그러겠지.”
“그러면 우리 여자는 말이야. 우리가 힘이 약하다는 걸 역이용 하는 거야. 왜냐하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의 법은 물리적 약자인 우리 편 이니까. 여자가 남자 머리 빡! 소리가 나도록 갈기는 것쯤이야 별거 아니지만, 남자 따위가 손가락으로라도 툭! 여자를 감히 건드리면 좆 되는 거거든. 그러니까 남자는 절대 우리 여자를 못 건드려. 그리고 남자가 쳐 맞은 게 너무 분해서 욕이라도 한 마디 하잖아? 그러면 바로 신고 고고고! 하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중요한 건?”
“그냥 욕했다고 신고하면 안 되고, 성적인 표현을 써서 여자를 비하했다고 해야 하는 거야. 예를 들어, 남자가 ‘아니 진짜. 아가씨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 하네!’ 라는 말을 했다고 쳐. 그러면 우리 여자는 성차별에 성적 수치심이 들잖아.”
성적 수치심이라는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듯 시은이와 하은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거기서 여자가 왜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데?”
시은이와 하은이의 말에 유설화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친다.
“아, 진짜! 너희들은 말이 안 통한다. 일단 남자가 아가씨라고 했잖아! 거기서 성차별.”
“아니 아가씨를 아가씨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시은이가 말하자, 유설화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 몰랑. 하여간 그건 무조건 성차별이고, 다음으로 보자보자 하니까! 그런 말 들으면 하은이랑 시은이 무슨 생각 들어?”
“어? 글세?”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하. 진짜 답답하다 너희들. 이리 가까이 와 봐.”
유설화가 내 눈치를 보며 하은이와 시은이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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