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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세계 밀프 헌터가 되었다-182화 (182/370)

〈 182화 〉 도도한 유설화(7)

* * *

“애들아. 나 왔어.”

무려 한 시간이 늦었는데도, 사과도 없이 자리에 앉는 그녀는.

바로 얼음공주 유설화.

그리고 그런 그녀를 못 마땅한 눈길로 쳐다보는 시은이와 하은이.

더군다나 자리에 앉은 유설화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뭐야? 벌써 술자리 시작한 거야? 나 빼고?”

하아·····

진짜 원래 세계에서 공주 대접만 받아서 그런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주제에, 먼저 술자리 시작했다고 오히려 짜증내는 유설화.

진짜 그녀가 아무리 예뻐도 왕따인 데는 다 이유가 있긴 있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늦게 쳐 온 주제에, 술자리 먼저 시작했다고 짜증을 내?”

역시나 고문관 유설화 담당은 싸움 좀 할 것 같은 단단한 몸매를 가진 하은이다.

하은이가 날을 세우자 유설화가 또 꼬리를 말며, 말을 얼버무린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처음부터 같이 시작하고 싶었는데, 서운해서·····”

변명도 참······

이러다가 진짜 하은이가 열 받아서 유설화 멱살 잡고 끌고 나갈지도 모르겠다.

내가 적당히 중간에서 중재를 해야지.

“그래, 설화가 사실 나한테 급한 일이 있어서 늦는다고 했는데, 내가 깜빡했네. 말하는 걸. 그러니까 이제 시작이다! 생각하고 다시 꿀주로! 분위기 살리자. 오케이?”

사실 설화에게 늦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여기서 내가 거짓말로라도 커버를 안 해주면 술자리 분위기가 이상해 질 것 같다.

“아. 진짜. 내가 시원이 봐서 참는다. 똑바로 하자. 좀. 똑바로. 알겠어?”

유설화를 보며 으름장을 놓는 하은이.

유설화가 그런 하은이한테 쫄았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술잔을 내민다.

“자자, 아까는 시원이가 꿀주 만들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만들게. 하은이 너도 좀 참고. 설화야, 오느라 수고했어.”

그렇게 말하며 넉살좋은 시은이가 아까 내가 만든 것처럼 맥주와 소주를 9 대 1로 섞어 꿀주를 만든다.

“자, 다 같이 원 샷!”

그렇게 외치며 다들 원 샷을 하는데, 유설화가 눈치를 보며 입술만 축일 정도로 맥주를 마신다.

한 마디로 나는 너희들과 달라! 하는 마인드로 얌전빼고 있는 것이다.

아, 진짜! 설화야 너 왜 그러니?

이제는 나도 분위기 너무 못 맞추고 공주 짓만 하는 설화가 짜증날 정도다.

하지만!

역시 고문관에는 귀신 잡는 조교가 상극이지.

그런 유설화를 보며 하은이가 매섭게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는 입 모양으로 원 샷 안하면 뒤진다! 라고 말하자, 유설화도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며 꿀주를 원 샷 한다.

“그래. 그래. 설화도 원 샷 하니까 보기 좋네.”

그렇게 하은이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있는데, 설화 앞에 놓인 소주잔에 시은이가 다시 소주를 가득 따른다.

“설화야, 물론 사정이 있어서 늦었겠지만, 일단 늦은 건 늦은 거니까. 가볍게 세 잔 원 샷 하고 시작하자. 괜찮지?”

능글맞게 웃으면서 후래자 삼배를 권하는 시은이.

원래 시은이에게 호감이 있던 설화가 시은이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술 잔을 든다.

“그래. 할 수 없지 뭐.”

그렇게 말하며 다시 소주 세 잔을 연거푸 들이키는 유설화.

그녀의 고운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오른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하은이와 시은이가 서로에게 눈빛을 보낸다.

둘이서 계속 눈빛을 주고받는 게 분명 뭐가 있는데·······

뭐 어찌되었든 설화 골뱅이 만들어 주면 나야 좋지.

그리고 설화도 술이 좀 오르자, 말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역시 설화 같이 도도하고 차가운 여자도 술이 들어가니, 말문이 트이는 구나.

“그나저나 너희들 안주가 이게 뭐니? 징그럽고 냄새 나게. 여기 퓨전 주점인데 좀 깔끔한 안주는 없어?”

막창에서 냄새난다는 말에 하은이가 인상을 쓰며 말한다.

“거 참. 남자도 아니고, 대게 까다롭게 구내. 그럼 처먹지 말던가. 우리는 막창 다 맛있게 먹고 있으니까, 따로 안주 시킬 거면 네 돈 내고 시켜.”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술 만 마실게. 나 스테이크 먹고 와서 배도 별로 안 고파. 사실.”

하·······

이제 보니 설화가 늦은 건 혼자 우아하게 스테이크 먹고 오느라 늦은 거였다.

진짜 설화가 원래 살던 세계의 남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원래 살던 세계의 남자 녀석이 혼자 스테이크 처먹는다고 술자리에 늦었으면, 스테이크빌런이라고 학기 생활 내내 극딜 당했을 거다.

하은이도 이제는 더 이상 설화에게 신경 쓰기 싫은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야, 시은아. 어제 토트넘 경기 봤냐? 손흥미 언니 진짜 죽이더라. 1골, 1도움. 1기점. 완전 혼자서 그라운드를 다 씹어 먹더라.”

“당연하지. 손흥미 언니 경기인데, 그거 보느라 밤새고 학교 오느라 뒤질 뻔 했다. 졸려서. 강의 시간에 좀 자서 다행이지. 진짜. 야 그런데 손흥미 언니가 경기를 지배했는데, 왜 MOM은 90분 내내 한 거 없는 하리카녀? 진짜, 아무리 영국 자국 리그라고 해도 너무 한 거 아니냐?”

시은이와 하은이가 어제 열렸던 토트넘과 노리치의 축구경기 얘기를 하고 있다.

당연히 프리미어리그 광팬인 나도 대화에 끼어든다.

“그치? 와. 하리카녀 요즘 완전 폼 떨어져서 버러우 타던데. 아, 진짜 해리케녀는 어디가고 하리카녀가 경기 뛰냐?(경기력이 좋을 때는 헤리케녀. 나쁠 때는 하리카녀라고 부른다.)”

“와. 대박! 시원이 너 프리미어 리그도 봐? 남자가 월드컵 빼고 축구 보는 거 처음 봐. 시원이 너도 토트넘 팬?”

“당연하지. 손흥미 언니가 있는데. 손흥미 언니가 탈트넘 하면 물론 손흥미 언니 따라서 응원하는 팀 옮길 거지만. 그래도 요즘에 감독 바뀌고, 잘하고 있으니까. 챔스권 기대해 보자.”

그렇게 한 참 시은이, 하은이와 프리미어 리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설화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긴 원래 세계에서도 축구 경기는 안 봤을 텐데, 남녀가 역전 된 세계라면 더더욱 관심이 없겠지. 그렇게 지루해하며 핸드폰만 보고 있는 유설화를 본 시은이가 이번에는 대화 주제를 바꾼다.

“설화야. 너는 축구 안 좋아하나 봐. 그러면 랄은 좀 하지?”

랄이라는 말에 설화가 고개를 갸웃 거린다.

“라? 랄? 그게 뭐야?”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랄은 워낙 유명한 게임이기 때문에 대부분 이름은 알고 있는데, 설화는 게임에도 도통 관심이 없나 보다.

“야, 너는 여자가 랄도 몰라? 그래가지고 어떻게 친구 사귀겠냐? 너 하는 게임 없어? 여자라면 게임 정도는 하나 할 거 아니야?”

답답한지 설화를 몰아붙이는 하은이.

유설화가 쭈뼛거리며 말한다.

“아, 나도 핸드폰 게임 했었어. 왕자님들의 연애 생활. 지금은 없는 것 같지만.”

윽·······

왕자님들의 연애 생활이라니.

나도 들어보기는 했지만 정말 끔찍한 게임이다.

남자 녀석들을 공수로 정해서, 서로 짝짓기 놀이하는 BL게임.

생각만으로 토가 쏠린다.

유설화 얘기를 들은 하은이가 내 눈치를 살피며 유설화에게 압력을 넣는다.

“야, 너 미쳤어? 지금 시원이도 있는데. 그런 천박한 게임 얘기를 해?”

시은이도 나에게 사과를 한다.

“아, 시원아. 미안해. 설화가 술에 많이 취했나 보다. 더러운 얘기 들어서 기분 나빴지?”

BL게임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죄인이 되어버린 유설화.

이 상황은 마치 유설화가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 술자리에서 야한 AV 얘기를 꺼내버린 찐따남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상황이다.

“설화야. 너도 빨리 사과해.”

시은이가 설화에게 나에게 사과하라고 말하자, 남자에게 머리 숙여 본 적 없는 도도한 유설화가 망설인다.

하지만 하은이까지 무언의 압력을 주자 할 수 없이 유설화가 사과를 한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야. 설화야. 아, 그리고 시은아, 하은아. 나도 BL같은 건 역겹지만, 정상적인 남녀가 야스하는 야동은 가끔 보는데 뭐. 너무 설화한테 뭐라 하지 마.”

가끔씩 야동을 본 다는 말에 시은이와 하은이의 눈빛이 갑자기 활기가 뛴다.

“아 맞다. 시원이도 야동 본다고 했지.”

“진짜······· 시원이는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이 청순하게 생겼는데····”

“어. 뭐 남자는 사람 아니냐? 사람이면 다 야스에 관심 있는 거고. 당연히 보지. 그 것보다 저번에 재미있는 야동 추천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

점점 더 수위가 높아져만 가는 대화.

시은이가 용기를 내어 나에게 말한다.

“아 참 그랬었지. 시원이는 어떤 야동을 좋아해? 혹시 좋아하는 취향이······?”

질문을 하면서도 식은땀을 흘리는 시은이.

사실 시은이의 질문은 원래 세계라면 굉장히 위험한 질문이긴 하다.

원래 세계에서 아무리 섹시한 미소녀가 자기도 야동을 본다고 추천해 달라고 얘기했어도, 진짜 야동 얘기를 적나라하게 하면, 돌변한 미소녀에 의해 성희롱으로 철컹철컹 경찰서에 갈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시은이는 술도 취했고 야동 얘기가 나오자 너무 흥분해서 주체가 안 되는 상황. 그냥 보지가 시키는 대로 말이 나와 버린 것이다.

“아, 나는 좋아하는 야동 취향이. 사실 이거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응? 이상해? 설마 SM 이, 이런 건 아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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