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 밀프 헌터가 되었다-143화 (143/370)

〈 143화 〉 집착녀 얀데레 홍유리(1)

* * *

“미안해 시원아. 혼자만 가버려서.”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유비가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한다.

“괜찮아. 유비야.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

위로 해 주었지만, 토끼인 걸 들킨 게 부끄러운지 유비가 휴우··· 한 숨을 쉰다.

“가자, 유비야. 다 챙겼지?”

“응. 시원아.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시간은 이미 아침이 가까워지고 있다.

어차피 택시를 타고 갈 거고, 특히 혹시라도 엄마에게 여자랑 같이 있다가 들키면 뒷수습이 만만치 않다.

“아니야, 유비야. 어차피 택시타면 금방인데 뭐. 안 데려다 줘도 돼.”

“아니야. 그래도 남자 혼자 위험한데.”

“이미 아침인데 뭐. 걱정하지 마. 자 빨리 가자.”

그렇게 유비와 모텔을 나오니 해가 뜨려 하고 있다.

“유비야. 그럼 잘 가.”

“시, 시원아.”

유비가 헤어지려는 나를 빨개진 얼굴로 바라본다.

“시원아. 혹시 내가 세, 섹스 잘 못해서 연락 안 받고 그러는 건 아니지?”

귀여운 유비.

오늘 혼자만 가버린 게 마음에 걸리는 가 보다.

“아니야. 유비야. 연락할게. 다음에 보자.”

“응. 시원아. 진짜 우리 또 만나기로 약속하는 거다! 집에 가면 문자 보내. 걱정 되니까.”

“알겠어. 유비야. 잘 가~”

유비가 아쉬운지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서 걸어간다.

유비를 보내고 나자 사실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박기만 하고 끝을 못 봤으니.

이건 섹스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느낌이다.

집에 가서 야동이나 한 편 보고 풀어야 하나?

그런데 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의 단 하나의 단점은 남자가 볼만한 야동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나는 수그러들지 않는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택시를 타기 위해 골목을 걸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시원아.”

투명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

이 시간에 그녀가 여기를 왜?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곳에는 인형처럼 아름답게 생긴 유리 누나가 붉은 눈을 반짝이며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 * * * *

“유리누나? 누나가 이 시간에 여길 왜?”

유리 누나가 얼음 같이 차가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잘근 잘근 씹는다.

“일단 차에 타. 여긴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모텔이 많은 골목이라서 사실 오래서서 얘기하기는 적당하지 않다.

“알겠어요.”

짧게 대답하고는 유리누나를 따라 그녀의 차에 탄다.

유리 누나의 차는 세련되어 보이는 검은색 아우디였다.

­딸칵.

아우디 차 문을 열고 유리누나 옆 자리에 앉았다.

유리누나가 차를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표정이 차가워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유리누나이지만, 오늘은 다른 날 보다 더 차가워 보인다.

도대체 이 새벽에 유리누나를 모텔 앞에서 만난 게 우연인 것일까?

질문을 던져 한 번 찔러보기로 한다.

“누나. 우연이네요, 새벽에 누나를 다 만나고.”

유리 누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차를 몰고 달리기만 한다.

무안해져서 창문을 살짝 내렸다.

시원하면서 상쾌한 새벽 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누나. 새벽 공기 좋죠?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그녀가 운전하는 방향이 우리 집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유리 누나가 우리 집이 어디인지 모르는 구나.

“누나 저 집에 데려다주시는 거면 저희 집 방향 그쪽 아닌데요. 저희 집은 다음 신호등에서 우회전···”

자연스럽게 우리 집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데, 유리 누나가 칼날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야. 유시원. 너는 내가 너 운전기사로 보여? 너희 집 가는 거 아니니까 따라 와. 너희 집이 어딘지는 나도 알아.”

우리 집 가는 게 아니라고?

“누나. 어디 가는지 말은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저 피곤하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서 학교도 가야 하거든요.”

“너는 지금 나한테 할 말이 고작 그거 밖에 없어?”

유리누나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때 내리기 시작하는 굵은 빗방울

­투두둑 투둑.

빗물 방울이 차에 맞아 부서져 내린다.

나는 버튼을 눌러 다시 창문을 닫으며 생각에 잠겼다.

유리 누나가 왜 기분이 안 좋은 거지?

그저 우연히 모텔 앞에서 만난 거 아닌가?

아니면 아직도 게임방에서 나한테 당한일 때문에 화가 난 건가?

하긴 유리누나처럼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유리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보드 게임방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화난 거예요? 그러면 미안해요. 그 때는 나도 누나가 나를 장난감처럼 대해서 화가 나서 그랬어요.”

사실 나도 아무리 정당방위라고 하지만 유리누나를 때린 건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끼이익!

유리누나가 달리던 차를 한강이 보이는 한적한 곳에 주차했다.

“너는 정말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구나.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차를 주차한 누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드 게임방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화난 게 아닌가?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지?

“누나. 제대로 말을 해야 누나가 무슨 일 때문에 화났는지 내가 알거 아니에요.”

유리누나가 평소의 차가운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며 말한다.

“너, 내가 몇 시부터 시원이 네 연락 기다렸는지 알아?”

“연락이요?”

아, 생각해보니 유리누나와 연락하다가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꿔났었지.

유비를 만나서 놀다보니 정신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서 열어보았다.

­카통, 카통!

카통 소리가 울린다.

[이유비: 시원아. 집에 잘 들어갔어? 집에 들어가면 꼭 카통 줘. 이상하게 집에 와서부터 시원이 생각밖에 안 나.]

확인 해 보니 유비에게 온 카통 메시지다.

유비에게 온 카통을 확인하는 나를 유리 누나가 그 아름답고 고양이같이 요염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혼자서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쁜 새끼. 다른 년들 메시지는 잘 확인하면서. 내 메시지만 씹었구나.”

그리고 무음으로 설정해 놨던 유리누나와의 카통 방을 열어 보았다.

무려 118개의 메시지가 쭈르륵 올라왔다.

[홍유리: 시원아. 제발 대답 메시지 좀 봐. 나 지금 너희 집 앞으로 갈게]

[홍유리: 혹시 많이 아파서 답장 못하는 거야?]

[홍유리: 시원아. 너 집에 있니? 초인종 눌렀는데 왜 대답이 없어.]

[홍유리: 시원아. 나 지금 너희 집 문 두드리고 있는데···]

[홍유리: 거리에서 중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애랑 같이 걷고 있는 사람. 너 아니지? 너랑 닮은 사람을 봤어. 시원아.]

젠장. 이거 뭐야.

유리누나 나 스토킹이라도 하는 거야?

메시지를 보니 유비와 나를 하루 종일 쫒아 다닌 것 같다.

유리 누나가 자신의 메시지를 읽고 있는 나를 보며 격양된 감정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시원이 얼마나 밖에서 기다린 줄 알아? 무려 8시간이야. 8시간. 이 나쁜 새끼야. 왜 메시지는 안 읽는 건데? 그리고 그 중학생 같이 젖비린내 나는 여자애는 누군데? 그 년이랑 모텔에 가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참았던 울분이 한 번에 터진 것 같다.

하아·······

이 누나 피곤하게 왜 이러지.

“누나. 내가 언제 누나보고 기다리라고 했어요? 왜 쓸데없이 기다리고 그래요. 그리고 누나 무슨 스토커에요? 저랑 친구 만나는데 쫒아다니 게.”

유리누나가 서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씨발. 나쁜 새끼야. 너는 내가 8시간이나 기다렸다는데 고작 할 말이 그거 밖에 없어?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누나한테 그러면 왜 안 되는 데요? 누나랑 나는 아무사이 아니잖아요. 잘난 남자친구도 있으면서 저한테 왜 그러는 건데요? 화내는 게 아니라. 저도 이해가 안가서 그래요.”

“그걸 몰라서 물어? 네가. 시원이 네가. 너 이 나쁜 자식이. 내 순결을 빼앗아 갔잖아. 그랬으면 적어도 연락이라도 제때 잘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네가 연락만 잘 받았어도 내가 너랑 다른 여자가 모텔 가는 비참한 꼴은 안 봤을 거 아니냐고. 이 나쁜 새끼야!”

감정이 격해졌는지 유리 누나가 손에 잡히는 대로 담배케이스를 잡아서 나에게 던졌다.

담배 케이스에 맞는 게 아프지 않았지만, 기분은 나빴다.

“내가 다른 여자랑 모텔 가는 게 뭐 어때서요. 그게 왜 누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데요? 누나도 남자친구랑 호텔가고 다 할 거 아니에요?”

“나는 남자친구랑 호텔가도 잠만 자지 다른 건 안하거든. 너는 그 년이랑 했지?”

그러면 유리누나는 나랑 야스한 후에 아직도 남친이랑 야스를 안했다는 건가?

이건 좀 의외인 걸?

어찌되었든 나와 다른 여자가 섹스를 했는지 안했는지 까지 대 놓고 물어 보는 건 사생활 침해다.

기분 나쁘다.

그래서 유리누나가 열 받으라고 아예 대놓고 말했다.

“네. 했어요. 그래서. 뭐? 누나가 내 여자 친구도 아닌데, 다른 여자 좀 만나면 어때서? 나는 누나랑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집에나 데려다 줘요. 피곤해.”

유비랑 섹스를 했다는 말에 유비누나가 고운 이마를 찡긋 거리며 손을 부들부들 떤다.

“이 걸레 같은 새끼야. 그 걸 지금 말이라고 해? 남자면 남자답게 조신해야 할 거 아니야. 여자도 아니고,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나서 몸이나 굴리고. 내가 진짜. 시원이 너 때문에. 너같이 걸레 같은 새끼 때문에. 흐흑. 내가 이게 무슨 꼴이야. 바보 같이.”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