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남녀역전 된 대학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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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기억이 떠오르자, 시은이와 하은이를 실망하게 둘 수 없었다.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나와 같이 점심을 먹을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림선배를 곤란하게 할 생각도 없었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는 얼굴만 예쁘고 도도한 재수 없었던 선배라고 할지라도, 지금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혜림 선배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다.
학과 선배한테 찍히면 나한테 좋을 것도 없고.
거기다가 혜림 선배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빙의되기 전 남녀역전 세계 유시원이 혜림 선배와 점심 먹기로 약속을 잡았던 것 같은데, 오히려 약속을 깨는 건 나니까.
“혜림 선배님.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죠. 오늘은 시은이 하은이랑 학생식당에서 점심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선배랑 점심 약속 있는 걸 깜빡하고 시은이랑 하은이한테 먼저 점심 같이 먹자고 꼬셨거든요. 대신에 선배 다음에 제가 근사한 곳에서 저녁 살게요. 오늘만 어떻게 선배 다른 선배님들이랑 밥 먹으면 안 될까요? 미안해요. 선배.”
처음에는 약속을 잊어버렸다는 말에 살짝 화가 난 듯 했는데, 다음에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에 어느 덧 혜림 선배의 얼굴이 나긋나긋하게 풀어졌다.
그래, 남자를 꼬실려면 점심 보다는 저녁이 낫지.
그것도 단 둘이서.
그게 혜림 선배의 생각일 것이다.
혜림 선배가 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래? 아, 진짜 서운하네. 나는 시원이랑 점심 같이 먹으려고 일주일을 꼬박 설렌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시원이는 나랑 약속한 것도 잊어버리고. 그래도 뭐. 선배가 돼서 동기들이랑 점심 먹는다는데 훼방 놓을 수도 없고. 저녁에 꼭 나랑 단 둘이 좋은 데 가는 거다. 알았지? 거기 시은이랑 하은이가 증인이니까 나중에 다른 말하기 없기.”
역시 남녀가 역전된 세계의 여자들은 적극적이고 노골적이다.
“알았어요. 혜림 선배. 자, 가자 시은아, 하은아.”
내가 시은이와 하은이 이름을 부르자 그녀들이 기분이 좋아서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혜림 선배를 지나쳐 가는데, 혜림 선배가 하얀 손으로 내 어깨를 살짝 잡는다.
은은하면서 상큼한 향수 냄새가 퍼져 나온다.
역시 혜림 선배는 부자여서인지 좋은 향수를 쓰는 것 같다.
“시원아. 말 나온 김에 우리 확실하게 날짜를 정해야지. 나는 오늘 밤도 괜찮은데.”
혜림 선배가 성격도 참 급하네.
하긴 혜림 선배 표정을 보니 요염한 눈빛으로 나를 유혹하듯 바라보는 게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따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밀린 약속들이 너무 많다.
“선배, 아무래도 이번 주는 힘들 것 같고요. 다음 주 화요일 저녁 어때요?”
혜림선배가 달아올라서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시원아 그건 너무 오래 기다리는 거 아니야? 어떻게 이번 주말에라도 시간 없어?”
“선배, 미안해요. 제가 약속이 너무 많아서요. 진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 같아요. 하으.... 그리고 주말에까지 학교 사람들 만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선배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 만나야죠.”
혜림선배가 그제야 자신이 너무 나에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짐짓 비싼 척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주말에는 약속이 많네. 그래 우리 다음 주 화요일에 보자. 그때 스케줄 보고.”
하, 혜림 선배.
이제 와서 비싼 여자인 척 가오 잡아봤자 이미 밑장 다 드러났어요.
하지만 이럴 때는 또 선배 가오도 살려 줘야지.
선배한테는 후배인 동기 여자애들도 있는데.
“네, 선배 고마워요. 주말에 카통 할게요. 그 때 정확한 날짜랑 시간 정해요. 선배 인기 많아서 바쁠 텐데 저 때문에 시간 허비하고 미안해요~”
내가 혜림 선배를 인기 많은데 나 때문에 시간 허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혜림 선배가 나름 가오가 사는지 밝게 웃었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동기들이랑 밥 맛있게 먹어. 나는 가볼게. 바빠서 말이야. 아, 그리고 주말에 꼭 카통하고. 꼭이야. 꼭!”
“네, 선배.”
혜림 선배가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혜림 선배가 가 버리자 시은이와 하은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잘했어. 시원아. 야, 혜림 선배 진짜 웃기지 않냐. 남자친구도 있는데 너한테 왜 찝적 된데? 아, 진짜. 재수없어.”
“시원아. 그런데 너 진짜 다음 주에 혜림 선배랑 저녁에 만날 거야? 위험 한 거 아니야? 혜림 선배 질 안 좋다고 꽤 유명한데.........”
사실 내가 혜림 선배와 점심 먹는 걸 거부하고 시은이 하은이와 점심을 먹기로 결정 한 건, 시은이와 하은이한테 학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싶어서였던 것도 있다.
나는 이세계에서 온 유시원이다.
그러니까 아직 남녀가 역전 된 세계에서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도 많다.
이 기회에 비교적 성격이 털털한 시은이와 하은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그나저나 혜림 선배는 남자친구가 있구나.
하긴 저 우월한 외모에 재력이면 충분히 남자친구가 있을만하다.
남녀가 역전 된 세계에서도 상위 1프로의 여자는 여전히 상위 1프로의 여자일 테니까.
그리고 사실 혜림 선배의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누구나 아는 사실.
원래 여자는 처음 본 여자가 제일 예쁘고 섹스하고 싶은 법이다.
지금 이 세계는 남녀가 역전 된 세계인만큼.
여자의 성욕이 내가 원래 살던 세계의 남자와 비슷하다.
그러니까 혜림 선배도 아무리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새로운 파릇파릇한 남자랑 섹스가 존나 하고 싶겠지.
그리고 나도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나는 성욕이 미친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20살의 남자다.
그리고 널린 것은 정복이 가능한.
아니 제발 정복해달라고 애원하는 예쁜 여자들.
이곳보다 더 천국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실 언제까지 남녀가 역전된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남녀가 역전이 된 세계로 오게 된 것도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일.
어떻게 돼서 이렇게 남녀가 역전된 세계의 유시원에게 빙의가 된 것인지 이유도 모른다.
그 말은, 언제든지 다시 원래의 재미없던 현실 세계로 차원이동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남녀가 역전된 이세계에 머무는 동안은 매일 예쁜 여자들과 일일 이떡, 삼떡을 목표로 그동안 쌓여서 곪을 대로 곪은 성욕을 다 해소 할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원래 살던 세계로 다시 평행이동 했을 때, 얼마나 후회되고 아쉬울까!
나는 학생식당으로 걸어가며 시은이에게 먼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시은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시은이 너는 집에서 야동 보면서 자위도 해?”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시은이와 하은이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학과에서 제일 퀸카인 여자애와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그 조신한 줄 알았던 퀸카 여자 동기가 갑자기 나에게 너 야동 보면서 자위 하니? 라고 물으면.......
아마 멘탈이 나가버리겠지.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시은이와 하은이 정도로 털털한 여자애들이 아니고서는 이런 걸 물어 볼 기회가 많지 않다.
먼저 입을 연건 얼굴은 못생겼지만 재미있고 털털한 시은이였다.
“어? 야동. 보, 보지. 세상에서 야동 안보는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진짜. 그 시원이는 남자라서, 야동 보는 여자 징그럽지? 그런데 그게 여자라는 동물의 생리라서. 하루에 한 번씩은 야동 보면서, 자위를 해야 시원~....... 아, 미안 내가 너무 구체적으로 말했지. 시원아, 잊어. 잊어. 시원이 같이 청순한 남자는 몰라도 되는 더러운 여자들의 세계야.......”
나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시은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떤 야동 보는데? 흔하게 남자가 리드하는... 아니 여자가 리드하는 야동? 아니면 소프트한 강간물? 그것도 아니면 좀 하드한 SM물? 요즘엔 NTL보다 NTR물이 더 꼴리긴 하던데.”
내가 줄줄이 즐겨 보는 야동 취향 목록을 얘기하자 시은이와 하은이의 눈동자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린다.
심지어 하은이는 무슨 상상을 하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헉헉 되고 있다.
거기다 결정타로.
“아니, 어제 집에서 딸딸이 좀 치려고 구글로 포르노 사이트 좀 들어가 봤는데, 도저히 내 취향의 야동이 안 보여서. 너희들한테 조언 좀 얻으려고. 내 취향은. 남자가 리드해서 하드하게 섹스하는 게 좋긴 한데. 뭐 집단으로 하는 것도 배우들만 예쁘면 꼴리고. 그것도 아니면 약한 SM이나. 촉수물.. 아 요즘엔 여배우만 예쁘면 촉수물도 괜찮더라. 온천이나 미망인 나오는 건 너무 뻔하고........”
내가 계속해서 요즘 관심 있는 야동 목록을 얘기하자, 시은이와 하은이가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입을 헤..... 벌리고 서로 쳐다보고 있다.
으음.
둘 다 완전히 맛이 간 것 같은데.
하긴 지금이게 원래 내가 살던 세계였다면..........
그동안 순진하고 청순한 줄만 알았던, 신문방송학과 신입생 중에서 제일 미녀가.
갑자기 자기가 어제 자위하고 싶어서 예쁜 딜도를 샀는데, 자위할 때 볼 야동 목록이 부족하다면서, 좋은 야동 좀 추천해 달라고 하는 거랑 다를 봐가 없는 건가?
그래도 이왕 말 나온 김에 끝을 봐야지.
사실 여자랑 섹스를 하는 것도 좋지만, 남자라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욕을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야동이야 뭐 사실 물이나 공기. 식사나 전기. 게임이나 간식과 같은 생활필수품이지 않은가!
하여간 혼자만의 방식으로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좋은 영상이나 잡지가 필요한데.
어제 인터넷으로 찾아 본 결과, 지금 이 남녀가 역전이 된 세계에서는 도저히 내 성욕을 만족시켜 줄 만한 고품격 영상물을 찾는 게 힘들었다.
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의 야동은 주로 남자의 관능적인 면이 메인이다.
즉 포커스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에 맞추어져 있다.
게이가 아니고서야 어떤 녀석이, 남자가 관능적으로 앗흥 앗흥 하는 장면을 보면서 딸을 치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절실하게 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의 남성향 야동이나 잡지를 찾아야 한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로 치자면 BL.
하지만 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로 말하자면 GL.
즉 백합물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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