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남녀역전 된 대학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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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하차하자 한국외대 용인 캠퍼스 학생들과 외대부고 학생들이 우르르 내렸다.
최예라도 나를 따라서 내리며 말했다.
“시원아, 너는 어디로 가? 나는 교양 수업 있어서 본관 가는데.”
“아. 나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전공 수업 있어서, 인문경상관으로 가.”
“아. 진짜? 아쉽다. 시원이도 본관에 수업 있으면 같이 가면 좋은데. 조만간 점심이나 저녁 먹자. 콜?”
“그래, 콜! 카통 하자. 잘가~”
“응. 시원아. 카통 할게. 다음에 봐!”
예라는 참 성격이 남자처럼 시원시원하다.
아니 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여자 같다라고 해야 하나?
나는 인문경상관으로 가기 위해 학교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는 학교로만 친다면 그렇게 취업이 잘 되거나 좋은 학교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에도 장점은 있다.
그건 바로 어중간한 성적 탓인지, 아니면 어문학 계열이 많은 탓인지.
내가 원래 살던 현세계에서도 남자보다 여자 비율이 높은 학교였다.
거기다가 잘 놀고 잘 꾸미는 미인들이 많다.
남녀가 역전된 세계이지만,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이곳이야말로 파라다이스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려고 줄 서 있는데, 남자 한 명에 여자 20명 정도의 비율로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남자는 나 한 명.
나머지는 다 여자다.
거기다가 대략 20명가량의 여자들 중 5명은 눈에 확 들어올 정도의 미인이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의 나라면, 남자는 나 한 명에 나머지는 다 여자인 이런 상황이 부끄러워서 불편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눈으로 보며 즐기고 있는 건 나 하나만은 아닌 것 같다.
뒤에서 허스키한 목소리.
흔히 담배를 많이 핀 노는 누나 목소리가 들린다.
“야. 씨발. 진짜 우리 학교는 남자라고는 존나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냐. 씨발, 여중, 여고 나온 것도 서러운데.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런 절간 같은 학교 절대 안 왔을 텐데. 하아...... 진짜. 어디 야동에 나올 것 같은 쌔끈한 남자 없냐?”
그녀의 친구인 듯 한, 여자가 조근 조근하게 말한다.
“야. 조용히 좀 해라. 누가 듣겠다.”
“씨발. 들으면 어때. 어차피 다 같은 생각일 텐데. 남자라도 있으면 모를 까....... 어? 어......”
허스키한 목소리의 누나가 갑자기 말을 하다가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친구한테 말한다.
“야, 야....... 앞에 남자있다. 남자. 모델이냐? 와. 씨발. 존나 섹시하다. 우리 학교에 저런 애가 있었어?”
“쟤 걔잖아. 우리학교에서 유명 한 애. 신방과 존잘남. 너 모르냐?”
“어? 쟤가 걔야? 와. 나 실물은 처음 보는데, 괜히 유명한 게 아니네. 진짜 뒷모습 쩐다. 다리길고 엉덩이 탱탱한 것 봐. 아, 뒷모습만 보이니까 감칠맛 나네. 야, 너 앞에 가서 좀 보고 와봐.”
“미친년아. 네가 보고 와. 쪽팔려서 어떻게 보고 오냐.”
“아. 씨발년. 너 많이 컸다. 고등학교 때는 내 빵셔틀이었으면서.”
“미친년아. 언제 적 얘기를 하고 계세요. 그리고 어제 빌려 준 돈은 언제 갚을 건데?”
“야! 미안. 내일 줄게 내일. 어제 미정이 다솜이랑 피씨방에서 랄(ROL) 내기 하다가 다 털렸어.”
“아, 진짜. 미친년.”
“야. 미안하다니까. 그건 그거고 가만있어 봐. 내가 쟤 작업 걸어보고 올게.”
“미친년. 해 봐라. 존잘남 앞에 서면 벌벌 떨면서 말도 못 걸 거면서.”
“야, 나 진짜 한다. 기다려 봐. 씨발.”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자가 말을 마치고는 또각또각 걸어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도 호기심이 생겨 그녀를 바라보았다.
긴 생머리에 살짝 찐하게 화장을 했다.
귀엽다는 인상보다는 섹시하고 요염한 얼굴이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였다면, 남자를 잡아먹을 상이라고 해야 할까?
키도 168cm 정도로 큰 편이고 몸매도 좋다.
충분히 학교에서 인기가 많을 외모였다.
거의 내 앞까지 다가 온 허스키한 목소리의 섹시한 여자가 나를 계속 흘깃흘깃 바라본다.
나도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자꾸만 내 주위에서 서성이기만 하고 말을 걸지 못한다.
“저기요?”
내가 먼저 말 걸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섹시하게 생긴 여자가 깜짝 놀라서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네! 네......”
목소리가 떨리고 시선 처리가 불안하다.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곳을 본다.
“뭐, 저한테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그녀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붉은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아, 아니. 그게 저. 그러니까....... 저, 저기 불 좀 빌려주세요!”
“네? 불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담배를 안 피는데, 라이터가 필요한데.”
뭐라 그러는지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하던 섹시한 얼굴에 허스키한 목소리의 그녀가 급하게 뒤로 돌아서 자기 친구에게 돌아간다.
“죄, 죄송합니다.”
뭐지. 왜 저러는 거야.
죄송할 건 하나도 없는데.......
친구에게 돌아 간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거친 숨을 헉헉 되며 말한다.
“야, 봤냐. 나 쟤랑 말 하고 왔다. 씨발. 존나 잘 생겼어. 진짜 미친.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완전 개 쩔어. 재 앞에 섰는데 가슴 떨려서 죽는 줄 알았다. 하아...... 아직도 심장 뛰는 거 봐.”
“미친년아. 나도 다 들었어. 담배도 안 피는 년이 불 좀 빌려 주세요는 뭐냐? 불 좀 빌려 주세요는”
“아. 씨발. 야. 너도 쟤 앞에 서 봐. 무슨 엘프도 아니고. 진짜 심장 떨려서 아무생각 안 든다니까. 하아........ 나 오늘 잠 다 잤다. 집에 가서 쟤 생각하면서 딜도로 자위나 존나........”
그 때 마침 스쿨버스가 도착했다.
끼이익.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는 학교가 워낙에 넓고 오르막길 언덕길이 많아서 마을버스처럼 생긴 학교 스쿨버스가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운행한다.
내가 스쿨버스에 올라타자, 스쿨버스 운전기사 아주머니가 밝은 얼굴로 인사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참 친절한 스쿨버스 운전기사 아줌마다.
그런데,
나 다음으로 우르르 여자들이 올라타자 험악하게 스쿨버스 운전기사 아줌마가 소리친다.
“거, 질서들 좀 지키면서 타라니까. 진짜. 학생들! 학생들!!!”
스쿨버스가 빽빽할 정도로 학생들이 타자, 스쿨버스가 좁다.
나도 스쿨버스 중간에 끼어서 다른 여학생들과 섞이게 되었다.
주위가 온통 여자들뿐이다.
“아, 밀지 말아요!”
“버스가 흔들려서 그런 거예요!”
버스 안이 밀집되고 혼잡하다.
그래도 20대 여자들만 가득한 버스라니.
버스 안 냄새도 향기롭고 상큼하다.
끼이익!
스쿨버스가 어문학관에서 급정차를 한다.
그 덕분에 버스 안에 타고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뒤로 밀린다.
터억!
작고 하얀 손이 내 가슴을 짚는다.
버스가 뒤로 밀려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다가 내 가슴을 짚은 것 같다.
내 가슴을 짚은 소녀를 보니 작고 귀여운 햄스터 스타일의 여학생이다.
물론 수업에 가기 위해 스쿨버스를 탔으니 대학생이겠지만, 얼굴이나 몸매만 보면 중학생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앳된 얼굴이다.
내 가슴에 손을 짚은 앳된 얼굴의 여자의 눈이 깜짝 놀라서 커졌다.
눈이 커지니까 더 귀엽고 어려 보인다.
세상에는 여자가 많고 귀엽고 예쁜 여자는 끝이 없구나.
앳되고 귀여워 보이는 여자가 내 가슴에서 손을 떼며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급하게 머리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절대 일부로 만진 건 아니에요. 진짜 믿어주세요. 버스가 갑자기 정차해서. 죄송합니다.”
응? 그냥 가슴 좀 터치한 거 가지고 너무 오버해서 사과하는 거 아니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저. 그렇게까지..........”
스쿨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여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들린다.
“야! 저 여자 미쳤나 봐. 방금 대 놓고 남자 가슴 만진 거야?”
“아니, 지금 버스에서 안 넘어지겠다고 남자 가슴 만진 거야? 돌은 거 아니야? 버스에서 몇 바퀴 뒹구는 게 감옥 가는 거 보다 나을 텐데.”
버스기사 운전기사 아줌마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학생. 미쳤어요?”
내 가슴을 살짝 터치했던 앳된 얼굴의 귀여운 여학생이 덜덜 떨고 있다.
휴우.......
뭐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다들 왜 이리 난리야.
나는 앳된 얼굴의 여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토닥이며 말했다.
“아,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수업 늦겠어요. 빨리 가보세요.”
내 말을 들은 버스기사 아줌마나 다른 여자들이 다시 웅성거린다.
“학생, 정말 괜찮겠어요? 충격 많이 받았을 텐데.”
“와, 진짜 찐 천사가 강림. 얼굴도 존잘인데 마음씨까지 천사네.”
“이걸 용서 해 준다고? 대놓고 가슴을 만졌는데? 대박이다. 저 여자 오늘 진짜 죽다 살았네.”
“재. 걔잖아. 신방과 존잘남. 보통 남자는 얼굴 몸매 좀 괜찮으면 존나 싸가지 없는데, 쟤는 완전 남자 생태계 파괴종 아니야. 나도 오늘부터 쟤 팬이다. 존나 멋있다. 진짜.”
“야, 나 아까 쟤랑 말 섞었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가슴이라도 한 번 터치 해 볼걸. 용서해 줬을 텐데.”
앳된 얼굴의 귀여운 여학생이 다시 허리를 폴더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혹시라도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연락 주세요. 제가 꼭 피해보상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귀여운 여자가 가슴 좀 살짝 터치했다고.
무슨 문제가 생겨.
그래도 귀여우니까 번호는 받아 두자.
“아. 네. 그럴 필요는 없는데. 여기 제 번호요.”
나는 귀여운 앳된 여학생의 핸드폰에 내 번호를 입력해 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꼭 연락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가 스쿨버스에서 내렸다.
스쿨버스를 타고 있는 여학생들이 전부 다 나만 흘깃흘깃 보고 있다.
으음.
이건 아무리 내가 부끄러움을 안 탄다고 해도 좀 어색하다.
나도 스쿨버스에서 내려서 인문경상관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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