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남녀역전 된 대학교(2)
* * *
끼이익!
경기도 용인으로 가는 버스가 정차하자, 버스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올라탔다.
생각보다 용인으로 가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비었던 그 많은 버스 자리가 하나 둘씩 차기 시작했다.
여기서 경기도 용인까지는 대략 한 시간쯤 걸린다.
자리를 못 잡으면 한 시간을 서서 가야 한다.
아침에 한 시간을 서서 버스를 타고 가는 건, 꽤 곤욕스러운 일이다.
버스에 올라타자 마침 한 자리가 보인다.
나는 재빨리 비어있는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나보다 한발 일찍 쇼트 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보더니 슬며시 자리에 앉으려다가 일어난다.
그리고는 친절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말한다.
“앉으세요. 저는 서서가도 괜찮아요. 금방 내려요.”
귀여운 쇼트 머리의 소녀의 친절이라니.
익숙하지 않다.
“저는 괜찮아요. 남자가 좀 서서 가도 되죠. 아침 운동도 할 겸.”
마음에도 없는 소리지만, 남자가 쪽팔리게 어떻게 귀여운 소녀의 자리를 빼앗는단 말인가.
하지만 쇼트머리 소녀는 물러설 기색이 없다.
“네? 저야말로 여자라서 튼튼하니까 한 시간쯤 서서 가도 괜찮아요. 얼른 앉으세요. 다른 사람들 앉기 전에.”
마침 내 옆에 서 있는 게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나는 귀여운 쇼트머리 소녀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녀도 내 의미를 알고 고개를 끄덕인다.
“할아버지, 여기 앉아서 가세요.”
“어? 아이고. 학생. 고마우이. 내가 관절이 안 좋아서...... 고맙네.”
할아버지가 연신 고맙다고 하시며 자리에 앉는다.
나와 쇼트머리 소녀는 나란히 서서 한 시간을 버스타고 가게 생겼다.
살짝 흘겨보니, 쇼트 머리소녀는 꽤 미인이였다.
눈썹은 정갈하고 귀엽다.
눈은 크고 반짝거린다.
코는 반듯하고 높다.
입술은 붉고 적당한 크기인데, 귀엽게 튀어나왔다.
마치 포켓몬에서 자주 보던 고라파덕. 오리가 살짝 떠오른다.
내가 흘낏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귀여운 오리를 닮은 소녀가 방긋 웃으며 말을 건다.
“저기, 혹시 한국외대 캠퍼스 다니세요?”
“아. 예? 예....... 어떻게 아셨어요?”
“아. 사실 학교 식당에서 몇 번 본 것 같아서요.”
“학교 식당에서요?”
“네. 저도 한국외대 캠퍼스 다니거든요.”
“아. 예.......”
우리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서 있다.
그런데 귀여운 오리를 닮은 소녀가 용기를 내서 다시 나에게 말을 건다.
“저는 최예라 라고 해요. 혹시 이름이?”
“아, 저는 유시원이라고 합니다.”
“아. 옙!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친하게 지내요.”
사실 그냥 같은 버스를 타게 된 것 뿐인데, 그렇게 큰 우연은 아니다.
하지만 귀여우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긴 하다.
“아. 예. 예라씨. 그래요.”
“그, 혹시 이번에 신입생 맞죠? 저도 신입생인데. 그냥 말 놓죠?”
생각보다 성격이 시원시원한 소녀였다.
“그럴까요?”
“응, 그러자. 만나서 반가워. 시원아.”
“응. 그래. 예라야.”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는 여자와 말 거는 것도, 친해지는 것도 어려웠는데.
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고 친해지자고 한다.
여자 친구 만드는 게 너무 쉽다.
“시원이 너는 무슨 학과야? 나는 러시아어 전공인데.”
“오! 러시아어? 그거 엄청 어렵지 않아? 나는 신문방송학 전공.”
“러시아어? 응. 좀 어렵지. 나도 아직 배우는 중이라,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시원이는 신문방송학과가 전공이야? 아나운서가 꿈인가 보다.”
“응? 아나운서가 꿈?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수능 점수에 맞춰서 지원하다보니까. 방송 일에 관심도 있고.”
“그래? 방송일? 혹시 뭐 광고모델이나 아이돌 가수 이런 거 준비하는 거야?”
“어? 아니. 그런 일 말고. 내 주제에 모델이나 아이돌은 무슨. 그냥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나 연출 쪽에 관심이 있어.”
최예라가 큰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니야. 시원이 정도면 충분히 모델이나 배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겨서. 진짜 SN이나 YJ오디션이라도 한 번 봐봐."
최예라가 말도 안 되는 말을 너무 진심을 닮아서 말한다.
물론 남녀역전 세계로 오면서 다른 남자 녀석들 보다야 조금 더 나아진 것 맞지만, 연예인을 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의 여자로 치면, 그냥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면 한 번쯤 뒤돌아보게 되는 몸매 좋고 얼굴 귀여운 여자쯤 되지 않을까?
그런데 최예라라는 귀여운 오리를 닮은 소녀는 정말 친화력이 좋은 것 같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서 친해진 것 같다.
“나는 사실 요즘에 방송 댄스 배우고 있거든. 시원이 너도 관심 있으면 다음에 한 번 같이 가볼래? 내가 우리 얼반댄스 선생님 소개시켜 줄게. 선생님이 방송 댄스 수업도 하시지만, 연예인들이나 연예계 매니저들도 많이 알거든. 응? 진짜, 시원이 너 정도면 아이돌 해도 된다니까.”
나는 손을 휘휘 내 저으며 말했다.
“됐다. 야. 괜히 바람 넣지 마. 내가 무슨 연예인이야.”
“치, 진짠데. 아. 그런데. 시원아 그것 보다, 너 혹시 카통 있어? 카통 친추 해도 돼?”
과연 인싸에 친화력이 좋은 최예라 여서인지 물 흐르듯이 대화를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내 카통을 따려고 한다.
“어, 내가 추가 할게. 너 카통 아이디 찍어 줘.”
“응. 여기.”
최예라가 내 핸드폰에 자기 카통 아이디를 입력한다.
그런데 최예라가 카통 아이디를 입력하는 동안에도 내 카통은 쉴 새 없이 진동이 울려 된다.
부르르릉! 부르르르릉!
“야! 역시, 시원이는 잘 생겨서 인기가 많은가 보다. 카통이 쉴 새 없이 오네.”
“어? 아니야. 그냥 아는 형들이랑 친구들이지 뭐.”
물론 눈치 빠른 귀여운 오리 최예라가 믿을 리 없다.
“치. 아닌 거 다 알거든. 그런데 시원이는 혹시 여자친구 있어?”
최예라는 진짜 갑자기 훅 들어오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서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까지.
그런데 나 스스로도 사실 내가 여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라면..........
사실 형준이 어머니는 여자친구가 될 수는 없는 사이고.
그냥 원나잇으로 즐기는 사이라고 하면 딱 맞다.
PC방 알바녀 금발 태닝녀는 같이 술 마시고 가볍게 놀기에는 좋아 보이는데, 여자친구로 삼기에는 너무 놀아 보여서 별로다.
유라누나는 남자친구도 있지만, 싸가지도 없다.
하지만 섹스 상대로는 왠지 가장 꼴릿꼴릿하고 매혹적이다.
똑똑하고 나쁜 여자라서 그런가.
편의점 알바녀 이유비는 아직 제대로 데이트도 해본 적 없고.
아마 피트니스 실장 세경이가 여자친구에 가장 가깝지 않았을까?
물론 외모나 몸매로만 본다면 홍유나가 가장.........
아, 물론 외모로만.
홍유나는 형준이다.
다시 한 번 마인드 컨트롤 한다.
“시원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어........ 아니야.”
“그래서. 여자 친구는 있어?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뭐. 딱히 대답하기 곤란한 건 아니다.
“응. 여자친구는 없고, 그냥 데이트하는 슈터만 몇 명 있어.”
“진짜? 여자친구가 없어? 와, 대박이다. 나는 시원이는 잘 생겨서 당연히 여자친구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럼 나도 오늘부터 너 슈터 해도 돼?”
진짜 최예라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돌직구로 들이 되네.
“내가 시원이 러시아어도 가르쳐주고, 맛있는 밥도 사줄게. 응? 나도 시원이 슈터하자.”
내가 당황스러워 하자, 최예라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한다.
“야~ 너무 당황스러워 하지 마. 농담이야. 농담. 그래도 우리 조만간 밥이나 한 번 먹자. 내가 학교근처 맛있는 곳 알아. 알았지?”
“어? 어. 그래.”
“야, 근데. 너 당황해서 얼굴 빨개지니까 대게 귀엽다. 또 놀리고 싶다.”
최예라는 그 전까지 만난 여자들과는 스타일이 완전 달랐다.
장난도 잘치고 밝고 명랑하다.
거기다가 붙임성도 좋다.
[이번 내리 실 곳은 분당. 분당입니다!]
분당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나와 최예라도 학교까지는 앉아서 갈 자리가 생겼다.
털썩!
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분당은 신도시라서 확실히 거리도 깨끗하고 정돈도 잘 되어 있다.
이제 학교까지 30분 정도만 더 가면 도착이다.
분당에서 많은 직장인들이 내렸지만, 또 많은 학생들이 버스에 타서 버스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우리 학교 학생들과 외대부고 고등학생들이었다.
외대부고는 한국어외대 용인캠퍼스 안에 있는 고등학교인데, 학년 당 학생이 36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데도 20~30프로 정도가 S대에 합격할 만큼 한국에 있는 모든 고등학교를 통틀어서 탑 3안에 들 정도로 명문 고등학교였다.
남색과 노란색이 조화된 교복에 안에는 하얀 블라우스.
목에는 리본이 달린 독특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다들 공부를 잘 해 보이는 모범생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외대 부고 여학생들이 나를 보며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저 오빠. 그 오빠 맞지? 외대용캠에서 유명한 오빠.”
“어. 맞아. 맞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다. 진짜 귀엽다. 키도 크고.”
“야, 빨리 사진 찍어 봐. 애들 보여 주게.”
어? 설마 나를 보고 하는 말인가?
외대부고 여학생들이 살짝 손으로 가리고 나를 핸드폰으로 찍었다.
“야. 찍었어?”
“어!”
“야, 봐봐. 와. 잘 나오긴 했는데, 그래도 실물은 못 따라 가네. 학교 가서 애들한테 외대 존잘오빠 봤다고 자랑해야지. 헤헤.”
외대 존잘남이라고?
내가?
현세계에 있을 때도 신문방송학과에서는 그래도 좀 잘생긴 편에 속하긴 했지만, 학교에서 유명할 정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아니 지금 보니.
대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외대부고 다니는 고등학생들마저 나를 아는 것 같다.
물론 잘생긴 걸로 유명하다니까 기분이 좋기는 한데.........
[다음 내리실 정거장은 한국외대 용인 캠퍼스, 외대부고입니다.]
마침내, 학교에 도착했는지 버스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사실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학교 가는 길이 귀찮고 지겨웠는데,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감이 차오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버스에서 하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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