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남녀역전 된 대학교(1)
* * *
따르르릉~ 따르르릉!
으........
귓가에서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잠깐 동안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아침이 된 것이다.
꿈속에서 형준이 어머니랑 섹스를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꿈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 아침이 되면 기억이 안 난다.
나는 힘겹게 오른손을 뻗어서 핸드폰을 잡는다.
검지를 핸드폰 지문 센서에 가져다 된다.
꾸욱.
찰칵.
핸드폰이 열리자. 핸드폰 알람을 눌러서 끄고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양손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커튼을 걷자, 눈부신 아침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제 남녀역전 세상으로 4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학교를 가야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
핸드폰을 꺼내서 수강일정을 확인해 본다.
오늘은 오전 10시부터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 수업이 잡혀있다.
지루하지만 전공수업이기 때문에 꼭 들어야 한다.
학교가 경기도에 있기 때문에 10시까지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아침 8시30분에는 나가야 한다.
지금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침 7시.
아직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다.
덜커덩.
내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노릿노릿하게 굽는 냄새가 나는 걸로 봐서는 삼치를 굽고 계신다.
삼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 중에 하나이다.
가느다란 뼈가 없어서 뼈를 발라먹기에 참 좋다.
“엄마, 오늘은 삼치 굽는 거야?”
“응. 아들. 아들이 삼치 좋아하잖아. 삼치랑 계란프라이 해서 얼른 아침 차려줄게.”
“알겠어. 엄마. 나는 계란프라이는 완숙으로 해 주세요.”
“알았어~ 지, 아빠 닮아서 하여간 완숙을 좋아해요.”
엄마와 아침에 대한 대화를 잠깐 나누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한다.
쏴아아아........
아침에는 찬물로 샤워를 한다.
찬물로 샤워를 하는 게 춥기는 해도, 피부 탄력 유지를 위해서는 좋다.
그래서 배우 하시원은 그 추운 러시아에 촬영을 가서도 찬 물로 샤워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에취~”
그래도 역시 찬물로 샤워를 하는 건 춥기는 춥다.
샤워를 하면서 발꿈치를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복근과 엉덩이에도 힘을 주며 위 아래로 조였다 풀었다를 하며 간단하게 아침 운동을 한다.
뿌지직, 찌이익.
샴푸를 손에 짜서는 머리를 감는다.
머리가 짧아서 샴푸로 머리를 감을 때는 참 편하다.
머리를 감으며 오늘 할 일에 대해 정리를 해 본다.
일단 아침에 전공 수업인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듣고.
과사에 들려서 선배와 동기녀석들과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좀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오후 3시에 교양 수업인 서양문학의 이해를 들으면 학교에서의 수업은 끝난다.
그리고 오후수업이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온다.
오늘 하루 정도는 집에서 푹 쉬고 싶어서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요일에는 형준이 어머니와 청담동 한정식 집에서 식사 약속이 있다.
그리고 목요일에는 액세서리 가게 미시 아줌마랑 저녁약속.
금요일에는 형준이나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토요일에는 세경이.
일요일에는 이유비를 만날 생각이다.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과사에서 여자 동기나 선배를 만나는 것 말고는, 따로 여자를 볼 일이 없었는데.
참, 일주일에 4~5번이나 여자와 데이트 약속이 잡혀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갑자기 핵 인싸가 된 것만 같다.
“시원아~ 밥 다 차려 놨다. 얼른 나와서 먹고 학교 가. 엄마는 석촌호수에 산책 갔다 올게.”
나는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말했다.
“엄마. 하나도 데리고 가는 거야?”
하나는 우리 집에서 기르는 요크셔테리아 강아지다.
“응. 하나도 산책 시켜야지.”
“알았어. 엄마. 아 그리고, 나 용돈.......”
“응. 아들. 식탁 위에 오 만원 올려놨다.”
“고마워, 엄마.”
매일 같이 이어지는 엄마와의 아침 대화다.
덜커덩, 쿵!
엄마가 하나를 데리고 집을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거실로 나갔다.
거실 식탁위에는 잘 차려진 밥상과 오 만원이 놓여있다.
나는 대충 속옷만 챙겨 입고 식탁위에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물우물.......
역시 엄마가 만든 김치는 매콤하면서 입맛이 당기는 맛이다.
미역국도 어제 마신 술을 풀기에 딱 좋았다.
하으...... 배부르다.
밥을 다 먹고 용돈 오 만원을 챙겼다.
하루 용 돈 오만원이 작은 돈은 아닌데, 요즘 들어 만나는 여자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5만원도 작아 보인다.
정력은 팔팔하고 만날 여자는 많고.
조만간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하나 알아봐야 할 듯하다.
물론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겠지만, 여자만나겠다고 엄마한테 더 용돈을 주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내 방으로 돌아가서 옷을 입었다.
학교에 가는 날이니까, 평소 보다는 좀 더 신경을 써야지.
새로 산 검은색 슬랙스에 발렌시아갸 하얀색 티셔츠 그리고 탐 브라운드 가디건을 입었다.
제법 캐주얼하면서 댄디한 느낌이 난다.
가방에 맥북과 전공교과서를 챙겨 넣고는 집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가도 대충 학교까지 가는 버스와 시간대가 맞을 것 같다.
터벅터벅.......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의 시선들이 느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여자들의 시선이다.
내가 민감한 편이 아닌데도 이렇게 뚜렷하게 여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질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대놓고 보고 있는 건가?
물론 오늘 따라 내가 봐도 평소에 비해 좀 더 산뜻하고 캐주얼 해 보이기는 하다.
오늘따라 왁스도 잘 먹어서 머리 스타일도 괜찮고.
“야, 방금 지나간 애 봤냐. 몸매 쩐다. 엉덩이 탱탱한 거 봐.”
이제는 아예 들릴 정도로 내 몸매를 품평하고 있다.
“무슨 모델인가 봐? 키도 크고 몸매도 쩔고. 얼굴도 귀엽게 생겼더라.......”
“야, 말이라도 한 번 걸어 봐.”
“아침부터 무슨....... 보니까 학교 가는 것 같던데.”
“야. 네가 말 안 걸면 내가 건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살짝 고개를 틀어서 대화가 들리는 곳을 바라봤다.
지금 시각은 아침 8시.
보통은 이 시간대에는 출근하거나 학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아직도 술에 덜 깬듯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한 명은 긴 금발에 파란색 렌즈를 끼고 있다.
제법 섹시하게 생긴 누나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의 누나였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라면 저 정도의 A급 누나들이 나를 바라보며 헌팅을 한다, 안한다 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금발머리 누나가 담배를 꺼내서는 입에 물고는 쭈욱 빨았다.
“후우~ 야, 네가 말 안 걸면 진짜 내가 말 건다.”
“해봐. 병신아. 저 정도 모델 같은 애가 너한테 관심이나 있겠냐.”
“씨발. 네가 매사에 이렇게 부정적이니까, 우리가 클럽에서도 남자 하나 못 꼬신 거 아니야.”
“야. 말은 바로 하자. 씨발. 우리가 못 꼬신 게 아니고, 꼬실 남자가 없었던 거지. 미친 보지년들 진짜. 평일에 집에서 발 닦고 잠이나 쳐 자지. 어떻게 남자하나 먹어보겠다고 다들 기어 나와 가지고. 어제는 진짜 글램(GLAM)에 남녀비율 최악이더라. 어떻게 남자들은 씨가 말랐는지 하나도 안 보이냐. 여자 오십 명에 남자 하나? 그나마 괜찮은 애들도 별로 없고. 다들 아저씨나 얼굴 빻았더라.”
금발머리 누나가 고개를 푹 숙이며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치? 씨발. 어제 그 얼굴 빻은 애들도 연예인 같은 년들이 달라붙어서 어떻게 한 번 먹어보겠다고 쌩지랄이던데. 저 정도 모델 같은 애면, 우리 같은 여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내가 술 마셔서 잠깐 돌았었나 보다. 헌팅은 무슨 헌팅이냐. 해장이나 하고 집에 들어가자. 씨발. 오늘도 모텔도 못 가보고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집에 가는 구나. 아, 아빠한테 보지되겠다. 가자, 가.......”
검은 긴 생머리의 청순하게 생긴 누나와 섹시하게 생긴 금발머리 누나가 아쉬운 듯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자리를 옮겼다.
“야, 오늘도 클럽 갈 거냐?”
“안가. 이 보지년아. 매일 허탕인데. 돈만 졸라 쓰고. 씨발.”
잠시 동안 둘이 말이 없다.
하지만, 금발 머리 누나가 검은생머리 누나를 바라보자, 검은생머리의 청순한 누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야! 저녁 10시 이태원?”
금발머리 섹시한 누나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한다.
“씨발. 콜. 오늘은 어떻게 남자 한 번 낚아서 모텔 한 번 가보자. 진짜 나도 뜨거운 원나잇 한 번 해보고 싶다. 맨날 야동만 쳐 보고 이게 뭔 짓이냐. 보지에 거미줄 친지 벌써........”
“뭔 개소리야. 병신아. 아직 남자 따 먹어 본 적도 없으면서. 너나 나나 25년 딜도처녀잖아.”
“씨발. 말이 그렇다는 거지. 씨발년 진짜. 안 그래도 남자랑 모텔 못 가서 보지 꼴려 죽겠는데.”
그 다음 대화부터는 잘 안 들려서 듣지 못했지만, 클럽 죽순이 누나들 같았다.
남 녀 비율이 1 대 10.
거기다 남자들은 조신하고 섹스에 여자들 보다 관심이 적다.
그러다 보니, 클럽에 가면 있는 건 죄다 남자랑 어떻게 원나잇 한 번 해보겠다는 여자들 뿐.
다시 말해서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의 클럽은 지금 나처럼 성욕이 강한 남자에게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형준이를 꼬셔서 클럽이나 한 번 가볼까?
사실 잘 하면 형준이.
아니 홍유나 같은 미소녀를 좋아하는 레즈비언 여자도 꼬일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덧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