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일진녀 신세경(2)
* * *
“야! 너 지금 어디야?”
형준이가 상기된 목소리로 내가 어디 있는지를 물어 본다.
아, 씨발. 아무래도 자기 엄마랑 나랑 떡친 거 들킨 것 같다.
차라리 그냥 몇 대 맞고 끝나면 좋겠는데.
절교 하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비록 형준이 어머니가 너무 꼴려서 떡을 치기는 했지만, 형준이 만큼 좋은 친구는 찾기 힘들었다. 그냥 너희 엄마가 너무 꼴려서 그랬다고 이실직고 할 까?
아니야. 그렇게 솔직하게 말했다가는 형준이 저 소심한 성격에 분명 다시는 안 본다고 난리 칠거다. 일단 모르는 척 하자.
“어, 나 지금 집인데.”
“집? 야. 너 빨리 나 좀 데리러 와라. 아 씨발. 미치겠다. 진짜.”
어? 뭐야.
들킨 게 아니잖아.
그런데 자기를 데리러 오라니.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일단 형준이한테는 미안한 감정이 있으니, 곤란하다면 바로 가야겠지.
평소에 이렇게라도 잘 도와주면 나중에 나랑 자기 엄마랑 떡친 사실을 알게 되어도 좀 봐주지 않을까?
나는 바로 대답했다.
“너, 지금 어딘데?”
“어, 나 지금 신림동.”
“신림동 어디? 신림동이 다 너희 집도 아니고.”
형준이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야, 너희 엄마 듣고 있는 거 아니지? 나 지금 로망스 모텔이야. 야. 여기로 빨리 오만원만 가지고 와. 아. 씨발. 진짜 돌겠다.”
오만원?
아, 아침부터 왜 이리 나한테 돈 빌려달라는 애들이 많냐.
뭐 그래도 형준이에게는 앞으로 미안 할 일이 많을 테니, 아깝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어, 알겠어. 지금 바로 갈게.”
“어, 야. 고맙다. 역시 너 밖에 없다. 기다릴게. 빨리 와.”
나는 밥을 재빨리 먹고는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밥주걱을 들고 따라 나왔다.
또 맞을까봐 재빨리 등짝을 보호했다.
“야! 너는 또 어디를 가? 밥 먹다 말고.”
“어, 엄마 형준이 만나러. 형준이가 급한 일이 생겼다고 잠깐 보재.”
“아니, 진짜. 너는 뭐 걔랑 사귀냐? 어제도 걔네 집에서 잤다면서. 하여간 이것들이 공부는 안하고 말이야. 매일 놀러 다니고. 너희 설마 여자나 만나러 다니고 그러는 거 아니지? 사내는 순결이 중요 한 거 몰라?”
“아, 엄마. 징그럽게 무슨 말이야. 하여간 나간다. 금방 올게.”
나는 엄마에게 대충 얼버무리고는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엄마가 아까부터 진짜 이상한 말만 늘어놓는다.
사내가 순결이 중요하다니.
사내라면 당근 남자답게 젊었을 때는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택시!”
끼익!
택시가 섰다.
역시 토요일 아침이라 택시를 잡는 건 수월했다.
“어디 가세요?”
어? 얇은 목소리.
오늘은 택시가사도 아줌마네?
거, 참 희한한 날이다.
“신림동 로망스 모텔이요.”
“네? 모텔이요?”
아줌마가 살짝 놀랐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되묻는다.
왜요?
성인남자가 모텔에 갈 수도 있지.
아, 여자도 없이 혼자 가서 그런가.
뭐, 그건 좀 이상하긴 하네.
“예, 빨리 가 주세요.”
“아, 예.......”
부우우웅!
택시기사 아줌마가 능숙하게 택시를 몰았다.
여자는 운전을 잘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여자라고 해서 다 김여사는 아닌 것 같다.
베테랑 운전사처럼 편안하게 도로를 주행한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택시기사 아줌마가 자꾸 귀찮게 이것저것을 물어 본다.
“그, 아직 어린학생 같은데. 몇 살이에요?”
“저요? 스무 살이요.”
“아, 그래요. 어쩐지 참 귀엽네. 파릇파릇하고.”
백미러로 나를 바라보는 택시기사 아줌마의 눈빛이 능글맞다.
야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머리 아저씨가 먹잇감 처녀를 바라 볼 때의 눈빛이라고나 할까? 아주 익숙한 변태같은 눈빛이다.
아, 뭔가 성희롱 당하는 느낌인데?
“아, 오해는 하지 말아요. 그냥 조카 같고 귀여워서 하는 말이니까. 학생 잘생기고 몸도 좋아서 학교에서 인기 참 많겠다. 여자 친구 있어요?”
아, 아줌마는 왜 자꾸 젊은 남자 몸을 징그럽게 훑어보면서 이상한 걸 물어보는 거야.
나는 성의 없게 대충대충 대답했다.
예쁘고 섹시한 아줌마면 몰라도 저런 개그맨 유지석 닮은 능글맞은 아줌마랑은 말을 많이 섞고 싶지 않았다.
끼이익!
어느 덧 택시가 신림동 로망스 모텔에 도착했다.
아줌마가 갑자기 자기 명함을 꺼내서는 나에게 건넸다.
“학생, 언제 심심하면 연락해요. 밥 한 번 살 테니까. 진짜 오해는 말고. 우리 조카같이 귀여워서 그러는 거니까. 알았지?”
으........
뭔가 아저씨가 어린 여자를 꼬실 때나 쓸 것 같은 저렴한 멘트였다.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어서 짧게 대답했다.
“아, 예.”
나는 택시기사 아줌마의 명함을 받고,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택시기사 아줌마의 명함을 꾸겨서 휴지통에 버렸다.
아, 오늘 진짜 이상하네.
형준이에게 카통으로 전화를 걸었다.
따라단다 딴다. 따라딴다단~
“여보세요.”
형준이가 받았다.
“어, 야. 나 지금 로망스 모텔인데. 빨리 로비로 나와.”
“어. 알겠어. 금방 나갈게.”
로망스 모텔 로비에서 조금 기다리자 형준이가 헬쓱해진 얼굴로 나타났다.
새끼 어제 떡 존나 열심히 쳤나보네.
있는 단백질 없는 단백질 다 쏟아냈나 보다.
어, 그런데?
형준이가 키가 원래 이렇게 작았나?
오늘따라 형준이 키가 작아 보였다.
“야, 오만 원 가져왔지?”
“아이, 진짜. 너는 나 보자마자 돈부터 찼냐? 의리 없는 새끼. 진짜.”
“알았어, 임마. 알았으니까, 일단 돈부터 줘. 아, 진짜 내가 미치겠다. 혜라 그 씨발년 때문에.”
나는 주머니에서 누런색 신사임당 누나를 꺼내서 형준이에게 건넸다.
형준이가 이제 살았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푹 쉰다.
“여깄다. 다음 주까지 갚아라.”
“걱정 마 임마. 내가 설마 네 돈 떼어먹겠냐?”
뭐, 하긴. 형준이네 집이 그렇게 부자인데, 돈 떼어 먹을 놈은 아니다.
돈을 받은 형준이가 모텔입구에 가서는 방값을 계산했다.
보통은 선불제인데, 여기는 후불도 가능한가 보다.
“야! 진짜, 그래도 너 덕분에 살았다. 아, 씨발. 혜라 썅년이 떡만 치고 계산도 안하고 튀었다니까. 무슨 씨발 여자가 모텔비도 계산안하고 튀냐. 거지새끼도 아니고.”
어?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보통 모텔가면 남자가 계산하는 거 아닌가?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모텔비는 여자가 계산하는 존나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거지?
“야, 너 돈 없어? 너 여자 만나면서 돈도 안 가지고 나갔던 거야?”
“뭔 소리야. 여자 만나는데 돈을 왜 가지고 나가. 씨발 당연히 혜라 샹년이 쏠 줄 알고 대충 나갔지. 그런데 너무 대충 나갔나 봐. 지갑도 안 가지고 나왔어. 썅. 혜라 씨발년. 존나 나 따 먹으려고 술만 먹이고.......”
이 새끼가 언제부터 이렇게 여자한테 얻어먹는 빈대가 됐지?
그리고 혜라가 자기를 따 먹으려고 술 먹였다고? 반대가 아니고?
에이 모르겠다.
오늘 하루 종일 이상한 일 투성이다.
“야, 너 지갑도 안 가지고 나왔으면 집에는 어떻게 가게?”
형준이가 나를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야, 3만원 만 더 빌려줘라.”
아, 씨발. 진짜.
내가 너희 엄마랑 떡쳐서 미안해서 준다. 줘.
그러니까 혹시 들켜도 그냥 몇 대 패고 끝내는 거다 형준아.
나는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서는 형준이에게 내 밀었다.
“야, 시원이 오늘 화끈하네. 남자답다. 남자다워. 다음 주에 형이 돈 갚으면서 밥도 사마.”
응? 그런데 형준이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가늘었나?
하루 만에 자식이 키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가늘어 진 것 같다.
어제 혜라라는 애랑 너무 떡을 열심히 쳐서 목이 맛이 갔나 보다.
그때 내 카통이 울렸다.
카통. 카통 왔섭!
나는 천천히 핸드폰을 들어서 확인 했다.
허겁.
형준이 어머니에게 온 카통이다.
나는 형준이에게 안 들키게 은밀하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손나은: 시원아. 오늘일은 실수야. 정말. 앞으로 카통 보내지 말아 줘.]
흠.......
앞으로 카통 보내지 말아 달라........
어찌 보면 내가 이미 예상했던 형준이 어머니의 답변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게 요염한 얼굴과 탱탱한 젖가슴과 엉덩이.
꽉 조이는 보지를 가졌는데.
내가 쉽게 포기할리 만무하다.
그건 그렇고 형준이 어머니 이름이 손나은이구나.
얼굴만큼이나 이름도 섹시하고 예쁘네?
나은씨......
아, 입에 촥촥 달라 붙는다.
“야, 너는 누구한테 온 카통인데 그리 숨겨서 보냐?”
형준이가 내 옆으로 붙으며 내 핸드폰을 훔쳐보려 한다.
“야! 짜샤. 나도 연락하는 여자 있거든. 너만 있는 줄 아냐?”
“뭐? 시원이 네가 여자가 있어? 그렇게 청순한 척 얌전은 다 떨더니만. 새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어디서 만났냐? 어떤 여잔데?”
이 새끼가 뭘 잘 못 처먹었나.
남자한테 청순한 척이라니.
그나저나 내가 만나는 여자가 너희 엄마다!
이럴 수는 없고.
아, 그래 마침 잘 됐다.
나는 시치미를 딱 떼고, 형준이에게 말했다.
“너 세경이 알지. 신세경.”
“뭐? 세경이? 우리고등학교 다닐 때 일진이었던 그 양아치?”
“어, 걔. 세경이.”
“와, 씨발. 너 세경이랑 연락하는 거야? 안 그래도 세경이 궁금하기는 했었는데. 걔 지금 뭐하고 사냐?”
“어, 세경이 지금 헬스장에서 피트니스 강사로 일해.”
뭐 사실 나도 오늘 아침에 알게 된 사실인데.
뭐 어떠냐.
일단 세경이를 팔아먹어서 위기를 넘기자.
형준이 자식 성격에 내가 만나는 여자가 누구인지 말할 때 까지 나를 괴롭힐게 뻔했다.
“그래서 너 세경이랑 사귀는 거야? 걔 우리 학교 다닐 때 소문 안 좋았잖아.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닌다고. 뭐, 그런데. 알고 보니 다 헛소문이라고 하기는 하더라.”
“어? 뭐가 헛소문인데?”
“야, 너는 세경이랑 만난다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 걔가 학교 다닐 때 일진들이랑 놀러 다니고 양아치 짓 하고 다녀서 매일 떡이나 치고 다니는 발랑 까진년으로 생각했잖아. 애들이. 그런데 알고 보니까, 걔가 그렇게 조신했다고 하더라. 여자가 그러기 쉽지 않은데. 아직 처녀라는 소문도 있고. 하여간 잘 만나봐 자식아.”
응? 세경이가 의외로 성적인 면으로는 문란하지 않았던 건가?
갑자기 더 세경이에게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형준이 어머니도 미칠 듯이 좋았지만, 처녀는 또 처녀만의 매력이 있는 법이니까.
내가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는데, 형준이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야, 그만 가자. 아이씨. 난 몸이 안 좋아서 택시타고 갈 거다. 잘 들어가고. 내일은 집에서 쉬고 월요일에나 보자.”
“어, 그래. 야. 너 진짜. 목소리도 그렇고 몸 안 좋아 보인다. 푹 쉬어라. 좀."
"그러게.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소리가 이러네. 설마 그거 걸린 건 아니겠지. 하여간, 간다. 연락할게. 택시!”
형준이가 택시를 잡아서는 재빨리 사라졌다.
하으.......
힘들다. 새벽부터 형준이 어머니랑 떡치고 집까지 지하철 타고 왔다가 다시 형준이 새끼 때문에 신림동까지 오고.
에이 모르겠다.
몸도 힘들어 죽겠는데, 돈은 나중에 생각하고 택시를 타자.
나도 택시를 다시 잡아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택시 운전기사가 여자였다.
그것도 젊고 예쁜.
아이, 씨발.
뭐 택시운전기사가 젊고 예쁜 아가씨라 좋기는 한데.
오늘 이상 하네 진짜.
이거 운수가 좋은 날이야? 나쁜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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