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화 〉 세 명의 여자와 야한 바캉스(5)
* * *
“부산 자갈치 시장의 명물. 납작 만두!!”
“오징어무침, 회무침 팝니다!”
맛있게 팔짝팔짝 거리고 있는 물고기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이 친절해 보이는 사장님 가게로 들어갔다.
옥보단상회.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사장님.”
말 한 마디를 듣자마자 사장님이 훅 들어온다.
“서울에서 오셨나 봐요?”
“네? 네···”
예슬이가 대답하자 옥보단상회 사장님이 친절하게 말한다.
“아, 그리시면 방금 막 들어온 신선한 우럭 있는데, 이거 사가요. 두 분 다 대학생 같은데 내가 학생이니까 싸게 줄게.”
팔짝팔짝!
꼬리를 부르르 떨며 맛있게 몸부림치는 우럭.
군침이 싹 돈다.
“봐요. 신선해 보이쥬~ 이거 원래 사 만원인데. 학생들 같으니까 특별히 3만 오천 원에 줄게. 어때요? 오케이? 그럼 포장한다~”
예슬이와 내 의견은 듣지도 않고 마음대로 우럭을 포장하는 사장님.
예슬이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 아니요. 사장님. 저희 그냥 구경만 하러 온 거라···”
“구경? 구경만 할 거면 여기 왜 들어오는데? 지금 장난하나···”
세상 친절한 인상에서 갑자기 조폭 아줌마로 돌변한 옥보단상회 사장.
역시 호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시장 상인들은 험악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되지!
“지금 우리 우럭 손님들한테 팔려 갈려고 마음에 준비 다 했는데, 이거 어쩔 거야?
아니 무슨 억지도 이런 억지가 다 있어.
우럭이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우리보고 책임지라는 거야?
“혹시 돈이 모자라서 그래? 그러면 내가 특별히 1,000원 더 할인 해 줄게. 34,000원. 됐지? 자 그럼 다른 말하기 없기다.”
예슬이가 부산시장 아줌마의 억센 말투와 거친 성격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대로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우럭을 사게 된 상황.
“아줌마!”
내가 큰 소리를 치며 옥보단상회 사장을 쏘아 본다.
“왜··· 왜?”
설마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지, 옥보단상회 사장도 움찔한다.
“사기 싫다고 했잖아요. 가격도 싼 것 같지도 않고. 올라오면서 보니까 다른 데는 우럭 25,000원에 팔던데요.”
정확히 얼마에 우럭을 다른 가게에서 팔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격을 후려쳐서 말 해 본다. 이렇게 손님을 호구로 보는 상인이라면 만 원 정도는 가격을 올려서 팔아치우려 했을 거다.
“아니. 학생. 그건 학생이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학생? 이런 기 싸움에서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상대보다 밑 보이면 안 된다.
“학생요? 아줌마가 저를 언제 봤다고 학생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왜 말은 함부로 놓는데요. 존댓말 쓰시죠?”
그제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옥보단상회 사장이 꼬리를 말기 시작한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진짜 다른 집 우럭은 크기도 작고, 다 죽어간다니까요. 우리 집 우럭만큼 이렇게 신선한 우럭을 살려면, 3만원은 줘야 해요.”
가격이 3만 4천원에서 3만원으로 내려갔다.
그러니까 일반 적인 부산 사람들에게는 정가가 대략 2만 원 정도 할 것이다.
일명 서울에서 온 호구 손님 프리미엄으로 만 원 정도의 차액을 아직까지 챙기려는 것이다.
“다른 집 우럭도 신선하고 좋아 보이던데요. 뭐. 난 2만 5천원 아니면 안 살래요. 그러니까, 2만 5천원에 줄 거 아니면 저희는 가 볼게요.”
사실 서울호구 손님 프리미엄으로 5천 원 정도 손해 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감안하고 들어가야 한다.
상인분들도 지금 같이 호구 손님들 많이 오는 바캉스 시절에 바짝 장사는 해야 하니까.
“2만 7천원! 우리도 더 이상은 안돼요. 좀 봐줘요. 진짜. 대신 스끼다시 많이 줄게요.”
2만 7천원에 스끼다시라.
뭐 그 정도라면 이해해 주고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살짝 고개를 틀어 예슬이를 바라 봤다.
예슬이도 가격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 거린다.
“알겠어요. 아주머니. 그럼 스끼다시 많이 챙겨 주셔야 해요.”
“아유. 걱정 말라니까요. 그런데 젊은 분이 참 똑 부러지네요. 그런데 둘이는 무슨 사이에요? 연인 사이?”
그렇게 말하며 내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기분 나쁜 눈빛으로 훑어 내린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 소매가 없는 민소매나시에 다리가 들러나는 반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자꾸만 아줌마의 시선이 내 가슴과 허벅지에 꽂힌다.
연인사이냐는 말에 예슬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아줌마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한다.
“아유, 맞나 보네. 둘이 참 잘 어울려요. 여자 분은 씩씩해 보이고, 남자 분은 참 섹시하고.”
“아니요. 뭘 그렇게까지.”
예슬이가 상인 아줌마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우럭을 담고 있던 상인 아줌마의 손이 빠르게 파바밧! 움직인다.
아, 뭐야. 진짜!
하여간 사기꾼들 같으니라고.
방심할 수 없다니까.
상인 아줌마가 재빠르게 싱싱하게 팔딱팔딱 거리던 큰 우럭을 힘없이 축 처져 있는 우럭과 바꿔치기 하는 순간.
내가 그녀의 어깨를 꽈악 잡는다.
“아줌마. 어째 우럭이 그 사이에 크기도 작아지고, 다 죽어가는 되요? 갑자기 무슨 병이라도 걸렸어요?”
깜짝 놀란 아줌마가 뒤를 돌아보며, 철면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똑같구만. 봐요. 이렇게 싱싱한데!”
상인 아줌마가 우럭을 칼로 툭 건드린다.
하지만 싱싱하다는 말이 무안하게, 두 어 번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요단강을 건너고 마는 우럭.
“어? 우럭이 너무 싱싱해서 심장마비로 죽었나 본데요? 지금 장난해요?”
“장난이라니! 우리, 이거 생계로 하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물고기 앞에서 장난 할 사람처럼 보여!”
오히려 더 화를 내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상인 아줌마.
그런 아줌마를 향해 도저히 그녀가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다.
몰래 상인 아줌마가 바꿔치기 하며 바닥으로 떨어뜨린 신선한 우럭.
그 우럭을 발로 툭 밀어서 보여준다.
“아줌마. 이 우럭. 이 우럭이 우리가 아줌마한테 샀던 그 팔팔한 우럭 같은데? 맞지?”
이제는 나도 열 받을 만큼 열 받았다.
파렴치한 상인에게는 더 이상 존대고 뭐고 없다.
“뭐! 씨발.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오냐 오냐 해 줬더니 끝까지 기어오르네. 지금 나보고 사기 쳤다는 거야! 어린놈의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호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밑장 볼 장 다 본 상인은 역시 무섭다.
이제는 증거가 다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나오기 시작한다.
“조까. 씨발년아. 아줌마만 욕할 줄 알아? 나이 많은 게 벼슬도 아니고. 사기꾼 년한테는 나도 예의 지킬 생각 없으니까.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이 정도 겁을 주면 당연히 물러설 줄 알았던 상인 아줌마가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새끼가. 진짜. 야!”
여기서 손님에게 더 밀린다면 상인협회에서 호구인증이나 다를 봐 없다.
상인 아줌마가 더 세게 나온다.
더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서라도 제대로 한 판 해보려나 보다.
당연히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힘이 세다.
거기다가 매일 매일 상인으로서 일을 하다 보면 생활근육이 생기는 법.
일반인들보다 근력이 저절로 강해진다.
손님과의 마찰로 생긴 깡따구와 생활근력.
그렇기 때문에 부산의 양아치가 와도 상인들은 어지간해서는 밀리지 않는다.
“이 손 치워라. 서울 머스마. 그 고운 얼굴 다치기 전에.”
상인 아줌마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뿌리치려 힘을 쓴다.
그런데···
“어? 이게. 왜·· 왜 이러지!”
손쉽게 뿌리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 손.
상인 아줌마가 아무리 힘을 써도 털어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생활근육으로 다져진 상인 아줌마라 해도 여자는 여자.
평소 헬스로 단련한 내 손아귀 힘을 떨쳐내는 건, UFC에 나올 정도로 죽어라 운동한 여자가 아니면 어지간해선 힘들다.
“놔·· 놔!! 놓으라고!! 이 개새끼야!”
처음에는 멋있게 나를 도발 했지만 예상치 못한 힘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다.
“왜. 이 씨발년아. 뭐가 마음대로 잘 안 돼?”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우당탕탕!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 손을 떨쳐내기 위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던 상인 아줌마가 비틀 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아! 아야야야!!! 아흐으윽.”
앞으로 고꾸라졌던 상인 아줌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하게 엄살을 부린다.
이 어린 남자 새끼.
뭔가 심상치 않다.
그렇게 느낀 상인 아줌마.
일 대 일로는 힘들 것 같다.
판단을 내린 상인 아줌마가 비장의 수를 뽑아든다.
사실 자갈치 시장에 오는 손님들이라고 해서 상인 아줌마보다 더 성격 더럽고, 싸움 잘하는 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인 아줌마는 믿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사, 사람 친다!! 손님새끼가 사람 쳐!!”
옥보단상회 아줌마가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다른 상회 아줌마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뭐!!! 누가 우리 순옥이를 건드려!”
“겨우 손님 주제에, 우리 동생을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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