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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미소년이 살아남는 법-257화 (257/413)

〈 257화 〉 세나와 두근 거리는 한강 데이트(3)

* * *

“오빠. 제가 물 사올게요. 시나랑 쉬고 있어요.”

어느덧 5KM를 걸어서 다음 매점에 도착한 것이다.

기진맥진해서 배를 바닥에 대고 헥헥 거리고 있는 시나.

그리고 나도 등이 땀으로 축축해질 정도로 제법 체력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세나는 힘들지도 않는지, 여전히 발걸음이 가볍다.

잠시 후.

물과 음료수, 간식을 사온 세나.

물을 따라주자, 5KM나 갈증을 참았던 시나가 허겁지겁 마시기 시작한다.

그런 시나를 자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세나가 바라보며 음료수를 나에게 건넨다.

“오빠. 남자가 걷기에는 먼 거리인데.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역시 다르네요.”

지금 이 곳은 남녀가 역전된 세상.

남자의 체력이 월등히 여자보다 떨어진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건 세나가 어떻게 아는 거지?

아...

박지훈의 근육을 보고 알았나 보다.

하긴 나도 처음 박지훈으로 빙의했을 때, 운동으로 만들어진 탄탄한 근육에 놀랐으니까.

“아니야. 세나야. 나도 힘들어. 봐. 땀으로 젖어서 옷이 몸에 달라붙었어...”

세미 스타일의 정장을 입었지만, 안에 입은 하얀색 티는 땀으로 젖어있다.

그러다 보니 몸의 굴곡이 다 보일 정도로 살과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내 젖은 몸을 레이저 같은 눈빛으로 뚫어져라 바라보던 세나가 침을 꼴깍 삼키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오, 오빠! 너무 덥죠? 아, 미칠 것 같아요. 갑자기 막 땀이 나고··· 어지럽고.”

“세나야. 어디 아파? 갑자기 왜 그래?”

“아니에요. 오빠. 차, 착학 생각! 세나는 착한생각을 한다! 세나는 짐승이 아니다!”

빨개진 얼굴로 횡설수설 하던 세나가 양손으로 자기 뺨을 때린다.

쫘악!

“하아하으... 지금 오빠는 너무 치명적으로 위험해요. 그러니까. 잠시 만요!”

세나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어서 건넨다.

“오빠! 잠깐만 그걸로 가리고 있어요. 안 그러면 저 오늘 일 낼지도 모르니까요!”

"일을 내? 무슨 일? 그리고 왜 갑자기 자기 뺨을 때리는 건데?"

세나가 붉어진 얼굴로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아! 아하하. 모기가 갑자기 뺨에 붙어서... 모기가 많네요! 역시 여름이고 강가라서 그런지! 여, 여기도 있고!"

쫘악!

세나가 이번에는 자기 허벅지를 때린다.

'차, 참자! 참아야 해! 자꾸 쳐다보면 오빠가 변태로 알거야. 흐읏. 하지만 오빠의 짐승 같은 근육질 몸매. 너무 섹시해!'

세나가 마치 잡념을 쫒듯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더니 힘차게 말한다.

"오빠! 세나 더 이상 나쁜 생각 안 나게 우리 게임해요!"

"게임?"

"네! 게임 해서 우리 소원 하나 들어주기 해요."

소원이라!

소원이라면 나도 있다.

지금 나의 소원은 세나와 다음 데이트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래! 세나야. 그런데 무슨 게임 하지?"

주위를 둘러보던 세나가 계단을 발견하고는 방긋 웃는다.

"오빠.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한 계단씩 내려가기 해요. 그리고. 계단을 먼저 다 내려간 사람이 승자!"

사실 가위바위보 계단 내려가기 게임은...

드라마 속에서 연인들이 많이 하는 게임이다.

두근두근...

야경이 아름다운 한강에서 세나와 연인들이 하는 게임을 하다니.

마치 연인 같잖아!

"좋아. 세나야. 그럼 시작한다. 가위, 바위, 보!"

"보!"

세나와 가위바위보 계단 내려가기 게임은 꽤 접전이었다.

세나와 나는 마지막 계단을 두고 다투고 있다.

"오빠. 다음 가위바위보 승자가 게임 이기는 거예요!"

"알고 있어. 봐주지 않을 테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세나야!"

"치.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오빠! 가위바위~ 보!"

나는 기세 좋게 주먹을 내밀었다.

남자는 주먹이니까.

그리고 세나는.....

"와!!! 이겼다! 세나가 이겼어요! 오빠."

아쉽게도 세나는 보자기를 피고 있다.

하아... 이렇게 세나와 나의 다음 데이트는 물거품이 되는 건가.

밤 야경에 비추어 더욱 아름답게.

별빛처럼 빛나는 세나.

아쉽기만 하다.

"그래, 세나야. 세나 소원이 뭔데?"

사실 소원 들어주기라고 했지만, 너무 억지스러운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물론 세나가 그런 부탁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고.

"제 소원은요... 오빠! 눈감고 손 좀 내밀어 보세요."

세나가 갑자기 손은 왜 주라는 거지?

일단 게임에서 졌으니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세나가 내 손에........

부드러운 촉감의 물건을 올려놓았다.

"오빠. 눈 떠도 되요. 이제!"

"이건?!......."

세나가 내 손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것은 바로 꽃잎이었다.

"꽃잎이잖아? 이걸 왜?......."

"오빠랑 아까 산책로를 걷다가 보여서 땄어요. 이거 무슨 꽃인지 알아요?"

손 위에 올려 진 아름다운 보라색 꽃과 초록색 잎사귀를 살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미안. 세나야. 꽃에는 조예가 깊지 않아서 모르겠네..."

"사실 저도 꽃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런데 이 꽃은 알아요. 아빠가 어렸을 적에 제 손톱을 이 꽃으로 물들여 줬었거든요."

어렸을 적 아빠와의 추억을 회상하듯 세나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리고 손톱을 물들이는 꽃이라면 나도 알고 있다.

"아. 이거 혹시 봉숭아 꽃 아니야?"

"맞아요! 봉숭아 꽃 이예요."

"그런데 왜 이걸 나에게..."

수줍은지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다리를 비비꼬며 세나가 고개를 숙인다.

"그건.... 제 소원이 오빠손톱 봉숭아꽃으로 물들여 주는 거니까요."

응? 봉숭아꽃으로 내 손톱을 물들이고 싶다고?

그거야,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힘들게 게임에서 이긴 소원치고는 너무 소박한데.

사실 세나도 나처럼 다음 데이트를 소원으로 빌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키, 키스 라던가!

세나의 루비처럼 반짝이는 붉은 입술을 보니 자꾸만 입을 맞추고 싶다.

"그래, 세나야. 그건 뭐 어렵지 않지. 자~!"

세나를 향해 손을 내밀자, 세나가 잘게 봉숭아 꽃잎을 빻은 후 손을 감싸기 시작한다.

시원한 강바람과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 별빛.

그리고 어린 아이처럼 봉숭아로 물들이는 우리들.

이 순간의 기억.

평생 간직하고만 싶다.

"오빠. 다 됐어요. 이제 한 시간 정도 후에 이 랩을 풀기만 하면 되요."

"알았어. 세나야. 고마워. 예쁘게 나오면 좋겠다. 그런데 세나는 봉숭아 물 안 들여?"

"해, 해야죠! 이따가요!"

당황한 표정으로 세나가 손을 꼼지락 거린다.

"이따 말고. 지금 같이 하자. 세나야."

세나의 작고 하얀 손을 확 낚아챘다.

나를 바라보는 세나의 별빛같이 아름다운 눈동자.

그녀의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릴 정도다.

"잠시만 그대로 있어. 세나야. 예쁘게 해줄게."

세나의 손을 잡고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여 주기 시작한다.

세나와 나의 마음도 봉숭아처럼 보라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것만 같다.

"오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응?"

세나의 손을 잡고 랩을 감다가 세나를 바라본다.

"첫 눈이.... 올 때까지."

"첫 눈이...?"

수줍은지 고개를 돌리며 잠시 숨을 고르는 세나.

"봉숭아 꽃잎이 물들어 있으면 첫 사랑이 이루어 진데요."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꽃잎이 물들어 있으면 첫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세나와 나.

우리는 같이 아름다운 별빛 아래서 봉숭아물을 들이고 있다.

* * *

"세나야. 요즘에는 이런 것. 그 뭐냐. 인스타인가 이런데 올린다던데."

"네? 네... 그, 그렇다 하더라고요. 아! 조, 좋겠다!"

역시 세나는 수줍음이 많은 미소녀.

내가 먼저 나서야한다.

세나의 손을 잡고는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자, 세나야 포즈 잡아! 봉숭아물들인 손가락 잘 보이게."

"네? 네!!!!"

세나가 재빨리 봉숭아를 물들인 새끼손가락을 내 손가락 옆에 바짝 붙인다.

찰칵­!

봉숭아로 물들인 세나와 나.

우리의 새끼손가락.

비록 아직 시간이 안 지나서 랩을 풀지는 않았지만, 제법 귀엽게 사진이 찍혔다.

"세나야. 사진 잘 나왔다. 카톡으로 보내 줄게."

"고마워요. 오빠!"

세나가 해맑게 웃으며 내가 보낸 봉숭아로 물들인 우리 사진을 바라본다.

그렇게 세나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조용하기만 하던 시나가 갑자기 등을 꼿꼿이 세우며 경계태세를 취한다.

"캬웃!!!! 그르르릉!"

"시나야. 왜 그러니!?"

평소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는 시나.

그리고 세나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두 남자를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세나의 표정.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차가운 표정이다.

내가 알던 세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세나가 그르르릉! 거리며 울어대는 시나를 들어서는 나에게 건넨다.

"오빠. 잠깐 시나 좀 부탁해요. 저 얘기 좀 하고 올게요."

얘기를 하고 온다고?

그럼 지금 우리한테 다가오는 저 남자.

세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

"세나야. 저 남자들 아는 사람이야?"

세나가 고개를 끄덕 거린다.

"네. 회사 사람이에요. 잠깐이면 되요. 오빠. 미안해요."

"미안하기는... 일이 먼저지. 기다릴게. 갔다 와 세나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세나의 살이 애일 것 같은 차가운 표정.

분명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걱정이 된다.

그렇게 나와 시나를 뒤로한 채 삭막하게 생긴 남자들에게 걸어가는 세나.

"됐어요. 알아서 그 분 보러 갈 테니까,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다치고 싶지 않으면."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다리고 계시다니.

도대체 누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나누며 세나와 야쿠자 같이 생긴 남자들이 멀어져 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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