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 얀데레 강세나와 데이트(6)
* * *
“뭐야. 씨발년아. 너 나 알아?”
카운터 알바녀가 대자로 화장실 바닥에 뻗어있는 금태양녀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네. 네. 그 저도 불광 고등학교 나왔거든요.”
“불광고?”
“네. 저 그. 제가 선배인데요. 53회 졸업생.”
후배는 반말하고 선배는 존댓말을 쓰는 기묘한 사항.
세나는 그런 건 좆도 신경 안 쓴다는 듯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홍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래서? 선배면 후배 화장실에서 시비 걸고 때려도 돼? 여기가 학교도 아니고.”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꽤나 정중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카운터 알바에 김이 세어버린 세나가 후우~!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의 얼음 공주 같이 차가운 분위기를 되찾았다.
파스스스!
불타오를 것 같던 홍안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선배.”
거울을 바라보며, 세나가 카운터 알바녀를 부른다.
“네··· 넵!”
세나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자연스럽게 카운터 알바녀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공손히 올려놓는다.
하지만 본채 만 채 돈을 무시하는 세나.
이번에는 카운터 알바녀가 휴우~! 한 숨을 쉬며 핸드폰까지 올려놓는다.
그러자 카운터 알바녀를 확! 째려보는 세나.
겁에 질린 카운터 알바녀가 급하게 말한다.
“이, 이제 진짜 가진 것 없어요. 이, 이쯤에서 봐 주세요··· 진짜에요. 흐윽.”
하지만 세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돈과 핸드폰을 카운터 알바녀에게 돌려둔다.
“무겁게 이런 걸 왜 줘요. 립스틱 좀 줘 봐요.”
어느덧 불광동 휘발유 강세나 모드가 off가 된 강세나.
그녀가 붉은색 립스틱을 건네받아서는 그녀의 루비같이 아름다운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한다.
원래도 완벽하지만, 다소 밋밋했던 분홍색 입술에 붉은 립스틱까지 덧입혀지자.
눈처럼 하얀 피부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유럽 명화 속에나 존재하는 공주님과 같은 모습이다.
심지어 방금전까지만 해도 강세나에게 뒤질 뻔 했던 카운터 알바녀도 강세나의 인간계를 뛰어 넘는 신급 미모에 매혹당해 그저 입만 벌리고 감탄사만 연발한다.
루즈를 다 바른 강세나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멈칫한다.
그리고는 거울에 붉은색 루즈로 무엇인가를 적고는 툭 던지고 화장실을 나갔다
....
..
.
[Fuck off]
(기어오르지 마, 또 까불면 죽여 버린다.)
붉은 루즈를 통해 날리는 경고장.
루즈의 전언.
그것이 세나만의 방식이었다.
* * * * *
PC방 알바생 두 명의 몸과 정신을 탈탈 털어버린 세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장실을 나와 유시현의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세나씨. 꽤 오래 걸렸네요. 어디 몸 안 좋은 건 아니죠?”
“아, 아니에요. 오빠!”
세나가 부끄러워하며 빨개진 얼굴로 부정한다.
“아. 예. 그러면 다행이고요. 그런데···”
유시현이 갑자기 손을 뻗어서 세나의 하얀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쥔다.
갑작스러운 시현의 스킨십에 세나의 심장이 두근두근 미칠 듯이 뛰기 시작한다.
‘오, 오빠! 그렇게 예고 없이 훅~! 들어오면 저 심장 마비 걸린단 말이에요!♡’
세나가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유시현을 바라보자 유시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세나를 바라본다.
“세나씨. 얼굴이 왜 그래요! 예쁜 뺨에 상처 났잖아요!”
그제야 세나도 핸드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금태양년에게 뺨을 맞을 때 살짝 생채기가 났는지, 할퀸 자국이 있다.
“아니에요. 오빠. 고작 이 정도쯤이야. 제가 이 정도면 상대방은 반쯤 죽어·····!”
라고 말하려다가 급하게 입을 막는다.
‘아, 안 돼! 우리 시현 오빠는 얌전하고 귀여운 여자를 좋아한단 말이야!’
지금까지 분석한 정보로는 시현 오빠는 다른 남자들처럼 활발하고 재미있는 여자다운 스타일보다 귀엽고 얌전한 여자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거칠게 싸움하는 여자 따위에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분하게도 한예슬이 딱 우리 시현 오빠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한예슬과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세나.
세나의 원래 성격은 말이 별로 없고 차갑다.
다만 한 번 꽂히면 물 불 안 가리고 목숨을 다해 좋아한다는 것이 다를 뿐.
마치 길들이기는 힘드나 한 번 길들이면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하는 늑대와 같다.
‘오빠와 친해지려면 원래 성격을 숨길 수밖에 없어.’
세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약한 척 해본다.
“아, 오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서 살짝 콩! 얼굴을 벽에 부딪쳤어요. 별거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정말요? 세나씨 일도 좋지만, 몸이 우선이에요. 힘들며 좀 쉬면서 일해요.”
걱정이 가득 담긴 시현 오빠의 눈빛.
세나는 그 눈빛이 너무 좋았다.
사실 세나가 처음에 유시현에게 반한 건 당연하게도 유시현의 꽃 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주일간의 24시간 스토킹으로 유시현의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된 지금.
세나는 유시현의 외모보다도 그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성실하면서 착함 마음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알겠어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오빠.”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있는 유시현의 따뜻함.
세나는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유시현에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유시현을 바라보는 세나.
그런 세나에게 시나가 다다닷! 달려가 품에 안긴다.
“냐아옹! 냐옷! 야오오옹!”
(세나 주인님. 보셨죠! 제가 시현이 형님을 금태양녀에게서 지켜냈습니다!!)
세나에게 칭찬을 바라는 듯 야옹! 거리며 세나의 품에 얼굴을 비비고 있다.
세나도 이번에는 시나의 애교가 마음에 드는지 시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준다.
“잘했어. 시나. 좋아! 오늘 저녁은 시나가 좋아하는 햄버거다.”
“냐옹! 버거오옹!”
어느 덧 햄버거와 오렌지 주스에 맛 들린 시나.
기뻐서 헬리콥터처럼 꼬리를 빙빙 흔든다.
“녀석 좋아하기는···”
세나가 기뻐하는 시나의 목을 어루만져주는데 유시현이 말을 건다.
“그러면 세나씨. 점심도 다 먹은 것 같은데 ROL 한 판 땡기죠?”
“아. ROL이요. 좋아요. 오빠. 그러면 ROL 접속해서 친추해요. 저는 아이디가···”
자신의 아이디를 말하려다가 갑자기 뇌정지가 온 강세나.
‘씨발··· 미치겠네. 오빠한테 [자지큰남자빨고싶다]가 내 ROL 아이디라고 어떻게 말 해!’
끙끙 거리며 머리를 굴리던 세나가 재빨리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저기. 수진아.”
세나가 전화를 건 상대는 절친 수진이.
수진이가 평소대로 거칠게 말한다.
“뭔데. 미친년아. 목소리 갑자기 왜 존나 착한 척? 평소대로 해. 존나 소름 돋으니까.”
세나가 으드득 이를 간다.
아니. 이 미친년 같으니라고. 대충 이렇게 목소리 연기하는 것 보면 분위기 파악해서 좀 맞춰줘야지.
“아니. 수진아. 그게 무슨 말이니. 저기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부탁이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ROL 아이디 한 개만 빌려 주면 안 될까? 수진이는 ROL 열심히 해서 아이디가 많잖아.”
유시현을 신경 쓰며 상냥한 말투로 수진이에게 말하는 세나.
사실 세나도 속으로는 어색해 죽을 맛이다.
‘하. 씨발. 수진이 년한테는 라임에 맞춰서 쌍욕을 갈겨줘야 대화가 잘 되는데.’
수진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
“미친년아. 그만 좀 하라고! 존나 오랜만에 전화해서는 존나 꼰데 말투로 ROL아이디나 빌려 달라고 하고. 미친년아. 너 때문에 골드에서 실버로 강등당한 아이디가 몇 개인데! 병신 같이 소라카로 원딜을 쳐 한다고 날리고.”
세나가 수화기를 막고는 고개를 돌린다.
‘하아 역시 수진이는 좋은 말로는 안 된다.’
마음을 정한 세나가 원래 말투로 시현이는 못 듣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미친년아. 그거야 네가 블리치로 그랍을 좆같이 자주 하니까···”
“썅년아! 그럼 블리치로 그랍을 하지, 딸이라도 잡을까? 서폿이 그랍 잘 한다고 지랄 떠는 년은 또 처음 보네.”
“개년아. 그거야 내가 소라카 원딜이니까 맞딜 하면 뒤진다고. 미니언 먹고 커야 하는데. 크기도 전에 자꾸 상대 봇이랑 딜교 상황 만들면 어쩌겠다는 거야? 아 또 그 생각하니 개 열받네.”
“조까. 썅년아. 그것보다 요즘 왜 연락 안 된 건데? 너 닮은 년이 요즘 유튜브에 나오던데. 그거 너 맞지? 얼~! 화면발 좀 받던데?”
“하··· 봤냐? 아 진짜 내가 쪽팔려서. 우리 오빠만 아니면 내가 미쳤다고···”
“오빠? 무슨 오빠?”
점점 더 파고들어오는 수진이.
그녀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재빨리 수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떠올린다.
“야! 너 차우누 좋아하지? 내가 사인 받아 줄까?”
“뭐! 차우누!”
갑자기 수진이의 목소리가 급 흥분했다.
하긴 요즘 가장 잘나가는 귀여운 남자 차우누.
그의 싸인을 받아준다는데.
“야! 너 차우누 하고도 친해? 진짜 많이 컸다. 우리 세나. 하긴. 세나가 고등학교 때부터 좀 예쁘긴 했지. 물론 나보다는 못했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