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미유키와의 데이트(FINAL)
* * *
그렇게 미유키를 품에 안고 수만은 사람들과 화려한 도시의 불빛 네온사인 아래서 미유키를 바라본다.
분홍색의 단발머리와 인형처럼 오모조목 너무나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만화 속에나 나오는 히로인 캐릭터 같다.
눈처럼 새하얀 얼굴은 너무 맑고 투명해서 눈이 부실정도다.
거기다가 자안(??)의 크고 맑은 보석같이 빛나는 눈동자는 도시의 네온사인에 비춰 그녀만의 신비로운 매력을 한껏 돋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의 루비처럼 붉은 상큼하고 귀여운 입술.
나도 모르게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향해 내 입술을 덮쳐간다.
천천히 눈을 감는 미유키.
그런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는데········
손에서 느껴지는 뜨겁고 축축한 액체.
그리고 힘없이 떨궈지는 미유키의 고개.
서, 설마.
하지만 언제나 나쁜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투두둑.
미유키의 허리에서 붉은 피가 계속해서 손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미, 미유키!!!!!”
너무나 놀라서 미유키의 가녀린 몸을 잡고 흔들어 본다.
천천히 힘들게 눈을 뜨는 미유키.
“오빠······· 다리에 힘이 없어요. 오빠. 미유키 추워요.”
그러면서 다시 눈을 감는 미유키.
그리고 그녀의 옆구리에는 예리한 단도가 박혀있다.
나는 재빨리 나와 미유키 옆을 지나갔던 남자를 찾아본다.
은발머리에 눈이 가느다란 남자.
미유키를 그 새끼가 나와 미유키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누, 누가 좀!!!!! 도와주세요! 카, 칼에. 맞았어요. 사람이 칼에 맞았어요!”
미친 듯이 소리를 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이노우에 아저씨가 보인다.
“아, 아가씨!!!!!!!!”
순식간에 사람들을 밀치며 거리를 좁혀 우리 앞에 다가 선 이노우에 아저씨가 미유키의 상태를 확인하며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아, 아가씨. 도련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 새끼가, 미유키를. 내 미유키에게!!!!!!”
은발의 히죽 거리며 웃고 있는 실눈 녀석을 향해 미칠 듯이 끌어 오르는 분노.
미유키를 이노우에 씨에게 맡기고, 감히 미유키를 건드린 새끼를 향해 달려가려는데, 미유키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는다.
다행히 칼이 깊이 박히지 않아 미유키의 잠깐 의식이 돌아 온 것 이다.
“오, 오빠. 가지 말아요. 쫒아 가면 안돼요. 저, 저 사람. 내가 아니라 오빠를 노리고 있었어요. 오빠가 쫒아오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미유키가 그렇게 말하며 힘든지 거친 숨을 내쉰다.
“오, 오빠. 그것 보다 저 오늘 오빠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미유키! 말 하지 마!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단 말이야.”
“오빠, 가까이··· 미유키에게로.”
내가 고개를 숙여 미유키의 입술에 귀를 바짝 대자 미유키가 가녀린 새처럼 숨을 헐떡이며 힘들게 말하기 시작한다.
“오빠··· 저 오늘 오빠에게··· 야, 야경을 보면서.”
“미유키. 알겠어. 알겠으니까····”
“아니에요. 오빠· 지, 지금 말하게 해 줘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떨리는 손으로 쥐는 미유키.
“오빠. 조, 좋아해요····· 진심으로.”
“알겠어. 미유키. 알겠으니까. 더 이상 말하면··· 피가 너무 많이 나. 미유키. 제발.”
“하지만 저 이미 알고 있어요. 오, 오빠의 마음에 지금 누군가 있다는 것을. 그, 그러니까 기다릴게요. 미유키, 기다릴 테니까.”
이제는 더 이상 입술을 움직이는 것 조차 버거운지 점점 더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져만 간다.
“제, 제가 한··· 고백 진심이라는 것만. 이, 잊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힘이 빠져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마는 미유키.
“미유키!!!! 미유키, 정신 차려 봐. 미유키!!!!!!”
미유키의 몸을 붙잡고 흔들어 보았지만, 그녀는 눈을 뜨지 못한다.
그 때 도착한 구급차.
이노우에 아저씨가 구급 대원들과 미유키를 앰뷸런스로 옮기며 말한다.
“도련님. 아가씨는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지만 힘없이 추욱 늘어진 미유키의 하얀 얼굴을 보며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는 이노우에 아저씨.
“제, 제가 아가씨를 지켜드렸어야 하는데. 다··· 이건 다 제 탓입니다. 으흐흑.”
험상궂게 생긴 이노우에 아저씨의 눈에서 계속해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나 역시·······
점점 도시의 화려한 네온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 * * * *
미유키가 앰뷸런스에 실리자, 나도 그녀를 따라 앰뷸런스로 옮겨 타려 했다.
하지만, 이노우에 아저씨가 막아선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이 이후는 외부인은 간섭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유키가 저렇게 된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감 때문인지 고개를 숙이고 내 앞을 우직하게 막아서는 이노우에 아저씨.
“하지만, 나 때문에 미유키가. 미유키가!!”
“도련님!! 저도 도련님 마음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 부터는 가슴 아프시더라도 도련님을 위해서 제가 하는 말을 잘 따라주었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노우에 아저씨·····”
“도련님. 잘 들으십시오. 정리가 되면 저희 쪽에서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만 본국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잘 못하면 도련님도 미유키 아가씨를 해한 용의자 선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부디 더 이상 미유키 아가씨 마음 아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미유키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일단 돌아가 주세요. 모든 절차는 제 부하직원이 처리해 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제야 나는 이노우에 아저씨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
미유키는 지금 의식이 없고, 그녀가 은발의 남자에게 칼을 맞을 때 나는 그녀 바로 옆에 있었다. 거기다가 이곳은 사람들로 가득 찬 긴자 거리의 한복판.
가해자를 찾지 못한다면 충분히 내가 미유키를 해친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지금은 비록 미유키가 걱정되고, 범인을 찾고 싶을 지라도 미유키를 위해 이곳을 떠나는 것이 맞다.
“도련님을 모시도록 해. 그럼 저는 이만. 아가씨의 상황은 정리되는 대로 즉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떠나는 이노우에 아저씨.
그의 명령을 받은 검은 옷을 입은 수행원들이 나를 차에 태운다.
그리고 나를 태운 차가 도착한 곳은 다시 공항.
신속하게 입출국 처리가 이루어지고, 나는 다시 미유키 가문의 전용기에 몸을 싣고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우우우우웅!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는 자리에 앉아 깊은생각에 잠겼다.
‘미유키는 괜찮겠지?’
의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장기가 있는 급소는 피한 것 같아 보였다.
다만 피를 많이 흘려서 잠시 의식을 잃어버린 미유키.
그녀의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한 얼굴이 생각나자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분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병신 같은 새끼.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 할 정도로 약해서 미유키가 대신 다치게 만들다니.’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실눈을 뜨고 웃고있던 은발의 사나이.
그가 노렸던 표적은 ‘나’ 였다고 미유키가 말했다.
그 말은 미유키가 재빨리 알아채고 나 대신에 칼을 몸으로 막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유키처럼 대단한 재벌가의 자제가 아니라 왜 나를 타겟으로 노린 거지?
설마, 이 세계에서 평행이동 한 내 존재를 알아 챈 집단에 의해 제거 될 뻔한 것인가?
사실 평행이동이라는 것 자체가 우주의 기본적인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집단이 있을 것이고.
사실 나 같이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을 노리고 암살자를 보냈다면, 이유는 그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연예인 아이돌 박지훈의 나는 특별하다.
하지만 그것도 살인 청부업자에 의해 암살당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라 할 수 없다.
내가 모르는 거대한 사건.
그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에 의해 제거 대상이 된 만큼.
내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내 주변 사람.
나 때문에 칼을 맞고 붉은 피를 흘리던 미유키의 모습이 떠오른다.
꽈악···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세게 쥐었다.
지켜야해.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돼!
그렇게 다짐하며, 미유키의 허리에 칼침을 놓고 실실 웃고 서있던 은발 머리에 실눈을 한 암살자를 상기시킨다.
감히 내 미유키에게 피를 보게 한 너부터 일단.
어떻게든 찾아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산 채로 껍질을 벗겨버리겠어.
* * * * *
위이이이잉! 우웅!
드디어 한국에 가까워진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고도를 낮추자 먹먹하던 귀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고 인터넷도 연결이 된다.
지잉 지잉.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다.
이노우에 아저씨에게서 온 메시지다.
재빨리 열어 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