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미유키와 데이트(22)
* * *
“초밥? 응. 당근이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한 가지가 초밥이다.
거기다가 일본은 초밥의 본고장 아닌가!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를 정도로 기대가 된다.
“오빠. 초밥이 아니라 당근 좋아해요? 그럼 당근 먹으러 갈까요?”
미유키가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윽, 미유키도 한국어 패치가 완벽한 건 아니구나.
“아. 그게 말이야. 미유키. 당근이지 라는 말은 그러니까 진짜 그 먹는 당근이 아니라······”
내가 설명을 하려고 하자 미유키가 배를 잡고 웃으며 말한다.
“저도 알아요. 오빠. 그냥 장난 한 번 친 거예요. 오빠 은근 말투가 아저씨 같은 면이 있어서.”
“아저씨? 미유키! 오빠랑 나이차이도 별로 안 나면서, 아저씨라고 놀리기야! 그냥 나랑 친한 형들이 나이가 많고, 유부남이고 해서 나도 그 아저씨들이랑 놀다보니까 말투가·······”
나도 장난스럽게 화를 내며 변명해 보지만, 미유키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웃고 있다.
“미안해요. 오빠. 오빠랑 이렇게 장난치는 거 처음이라, 그냥 오빠랑 가까워진 것 같아서 기분 좋아서 계속 웃음이 나와요. 그리고 이렇게 웃으니까. 엄마 생각도 좀 덜 나는 것 같고요.”
“미유키········”
역시 미유키는 아직 까지도 엄마 생각 때문에 우울 한 것 같다.
억지로 웃고 있지만.
“그렇다고, 오빠를 계속 놀리면서 웃어? 그렇게 웃고 싶으면 마음껏 웃게 해줄게.”
똑똑하고 완벽하기만 할 줄 알았던 미유키의 마음속에 그렇게 큰 상처가 있었다니.
미유키가 어색하지 않게, 가녀린 미유키를 한 손으로 잡고 그녀의 옆구리를 간지럼 태운다.
그러자 미유키가 손으로 내 손을 막으며 계속해서 웃기 시작한다.
“오, 오빠. 하지 말아요! 저 옆구리 약점이란 말이에요!”
“옆구리가 약점이라고? 그러니까 더 간지럼 태우고 싶잖아! 각오 해. 미유키!”
그렇게 말하며 미유키의 옆구리를 마구 간지럼 태우는데, 자연스럽게 손이 미유키의 탱탱하게 출렁 거리는 가슴에 닿았다.
화들짝 놀란 미유키가 자기도 모르게 내 몸을 슬쩍 밀어낸다.
그리고 그 바람에 나는 주르륵 뒤로 밀려 머리를 쿵 리무진 천장에 박았다.
“오, 오빠 괜찮아요? 오빠 손이 미유키의 민감한 곳에 닿아버리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그만.”
으으······
역시나 무술을 배운 미유키 답게 손이 맵다.
하지만 이해는 간다.
만약 미유키의 손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내 은밀한 곳에 닿았더라면 나 역시도 놀라서 미유키를 밀어버렸을 것이다.
“으응. 괜찮아. 미유키.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장난치다가 그만·······”
“아, 아니에요. 오빠라면 미유키는 괜찮아요. 다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푸쉬쉬.
빨개진 얼굴로 수줍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미유키.
이렇게 남자 손길 한 번 닿지 않은 천연기념물 같은 순진한 미유키인데, 내 손이 미유키의 가슴에 닿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다시 한 번 나를 자책한다.
하지만 그 때 들려오는 미유키의 혼잣말.
‘여, 역시 호텔을 예약했어야 했어. 시현이 오빠랑 좀 더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갈 수 있는 기회였는데. 지, 지금이라도 호텔. 스위트룸으로 예약을 해야 하나??·······’
허억!
호텔 스위트룸을!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그런데 가슴이 뛰어서인지 아니면 머리를 살짝 쿵 박아서인지 살짝 현기증이 느껴진다.
그런 내 모습을 미유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빠. 괜찮아요?”
“고, 괜찮아. 미유키. 잠깐 어지러워서 그래.”
그렇게 리무진에서 머리를 기대고 쉬고 있는데, 귓가에 청명한 맑은 소리가 들린다.
띵!
그리고 나에게만 보이는 하나의 메시지.
[한 개의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아이돌 재능 중 중요한 능력이 향상 되었습니다.]
[아이돌 상태창]을 확인 해주세요.(미확인)
망설일 이유가 없다.
‘확인’
띠링!
청아한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열린다.
+
[이름]
유시현(남녀역전 세계 월드스타 아이돌 후보)
[나이/신장/체중]
26세/ 168cm/ 58kg
[아이돌 능력치]
랭크 A(본판은 S급이나 패션센스 부족)
랭크 C(상당한 개선이 필요)
> 랭크 C+(오페라 공연을 통해 깊은 감동과 영감을 얻었습니다. 능력치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랭크 A(국내 아이돌 중에서는 최정상급 실력. 월드 스타에는 못 미침)
랭크 F(로봇 연기의 대명사.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짤이 유행)
외모 등급 상세>>
노래 등급 상세 >>
춤 등급 상세 >>
연기 등급 상세 >>
+
오랜만에 열린 아이돌 상태 창.
놀라운 것은 노래연습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단지 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노래 등급이 C에서 C+로 바뀌었다.
사실 C+도 가수를 하기에는 모자란 능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능력치를 향상시키기 어려운 노래 등급이 향상되었다.
물론 이런 갑작스러운 능력 향상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대단한 성과였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고 미유키와 다정하게 장난도 치고 놀다보니 어느 덧 리무진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미유키가 나에게 정장셔츠를 건네주었다.
“오빠, 이곳은 캐쥬얼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요. 불편해도 이 정장셔츠를 입어주세요.”
“응. 알았어. 미유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기에 캐쥬얼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조차 없는 식당인 것일까?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럭셔리하고 화려한 식당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긴자 지하철역이었다. 물론 옆 앞에는 각종 명품샵들이 즐비하고 화려하긴 했지만.
“응? 미유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긴자? 라는 곳의 역 같은데?”
“네. 맞아요. 오빠. 일단 내리시죠.”
그렇게 미유키를 따라서 리무진에서 내리니 이노우에씨만 보디가드를 하 듯 뒤에서 따라 붙는다.
계속해서 긴자역 지하상가 안을 걷는다.
보이는 곳이라고는 작은 가게들 뿐.
그런데 그 작은 가게들 중 스키야바시 지로라고 써진 평범한 초밥 가게로 들어간다.
사실 재벌집 손녀 미유키가 보여주었던 재력에 비해서 너무 초라한 작은 가게에 살짝 실망도 했다.
가게 안은 좁았다.
겨우 10명 남짓 앉을만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스키야바시 지로라는 식당 안에 있는 손님들은 모두 다 비범해 보인다.
입구에서 안내를 하는 직원이 정중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오늘 예약주신 미유키님과 유시현 님이시죠? 자리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 따라오시죠.”
직원을 따라 자리에 앉는데 한 장의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미유키씨. 저 사진 진짜야? 합성 아니고?”
미유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는다.
“네. 맞아요. 진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버마와 저희 일본 총리 분이에요.”
“헉. 가게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데, 미국 대통령까지 다 방문하고 유명한 곳인가 봐?”
“네. 오빠. 사실 이 초밥 집은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는데, 대기가 일 년 이상 밀려있어요. 사장님이 저희 할아버지랑 친분이 있어서, 부탁 좀 드려서 겨우 예약 잡은 거예요. 오빠한테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초밥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미유키가 인정한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초밥!
이곳이 그렇게 유명한 곳이었어?
역시 식당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작은 가게 안에 걸려있는 액자들은 하나 같이 이 가게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무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등급인 3스타를 준 식당이다!
미슐랭 1스타 식당도 별을 획득했다는 것만으로, 끝없이 웨이팅하는 손님들로 유명세를 치른다.
그런데 미슐랭 3스타라니!
으·······
물론 오늘 미유키와 아유미가 해준 점심도 평생 먹어보지 못한 진기한 재료들로 가득 찬 호화 식탁이었지만, 미슐랭 3스타의 위엄은 과연 달랐다.
연륜이 묻어나오는 장인 쉐프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초밥을 쥐기 시작한다.
초밥은 딱 보기에도 신선하고 두툼한 게 최상급의 품질 같았다.
거기다 스시 장인 할아버지가 허리를 꼿꼿히 세우시고 힘줘가며 스시를 잡으시는데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동작으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것이야 ‘스시의 신’이 구나!
그리고 드디어 쯔마미 없이 니기리만 그것도 굉장히 빠른 스피드로 나오기 시작한다.
광어, 도미, 참치 등 일반적으로 초밥집에 가면 맛 볼 수 있는 종류의 초밥이지만, 그 맛의 차이는 상당하다.
“어때 입맛에 좀 맞아요?”
스시를 쥐던 장인 쉐프님이 질문한다.
“네. 너무 맛있어요. 으음. 뭐라고 할까요. 아주 훌륭한 고 퀄리티의 재료에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선이 굵고 정직한 스시 맛이. 정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이에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