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미유키와 데이트(19)
* * *
미유키를 믿고 따라오라고?
도대체 미유키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그러지?
그리고 한국에서도 오히려 미유키 때문에 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미유키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살짝 불안하긴 하지만 일단 미유키를 믿고 모든 걸 맡겨본다.
“알겠어요. 미유키씨.”
내 말을 들은 미유키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오빠.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네? 부탁이요?”
“네. 시현오빠. 그러니까···”
수줍어서 빨개진 얼굴로 말하기를 머뭇거리던 미유키가 용기를 내서 말한다.
“저는 오빠가 저를 이름으로만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미유키를 부를 때 항상 미유키씨라고 불렀는데, 그게 거리감이 좀 느껴졌나 보다.
나는 미유키의 하얀 손을 잡으며 정답게 말했다.
“알겠어요. 미유키씨. 그러면 이제 미유키라고 부를게요.”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요!”
“네? 또 있어요?”
미유키가 귀엽게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말한다.
“한국에서는 가까운 사이는 오빠가 동생한테 반말하는 거라고 K드라마에서 배웠거든요.”
“아··· 미유키는 제가 미유키한테 말을 놓았으면 좋겠어요?”
미유키가 반짝거리는 분홍색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고는 들릴 듯 안 들릴 듯 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드라마에서 보면 연인끼리는 반말하던데···’
연인이라니!
역시 혼자서 진도가 빨리나가는 미유키.
하지만 나도 연인이라는 말이 싫지는 않다.
사실 예슬이한테 고백도하기전에 차여버려서 너무나 외로운 지금 상황에서는, 미유키 같이 아름다운 미소녀가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알겠어요. 미유키씨. 아, 아니. 이제부터 그럼 미유키한테 반말할게. 괜찮지?”
처음으로 미유키에게 말을 놓자 내 마음도 두근두근 떨린다.
미유키와 있던 벽이 한결 허물어 진 것만 같다.
“네. 오빠. 미유키는 오빠가 반말 해 줘서 기뻐요. 이제 우리 진짜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점점 더 거리를 좁혀오는 미유키.
눈처럼 하얀 얼굴에 반짝반짝 거리는 붉은 입술이 빛난다.
꿀꺽···
미유키의 입술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간다.
미유키도 묘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점점 더 나에게 말없이 다가온다.
그리고 스르륵 눈을 감는 그녀.
자연스럽게 미유키의 아름다운 얼굴을 손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다가가는데···
* * * * *
“아가씨! 도련님!”
정확하게 키스타이밍에 들려오는 이노우에 아저씨의 걸걸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미유키의 고운 얼굴이 일그러진다.
‘칙쇼!!! 빠가야로!! 왜 하필 지금!’
그렇게 혼잣말을 말하며 아쉬운 듯 감았던 눈을 뜨는 미유키.
그리고는 이노우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본다.
부릉 부릉 부우우웅!
엄청난 굉음을 내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검은색 스포츠 카.
마치 우주에서 온 것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자동차다.
그리고 그 안에 타있는 건 다름 아닌 이노우에 아저씨.
그가 자랑스럽게 차 안에서 손을 흔든다.
“아가씨! 차 가지고 시간 맞추어서 도착했습니다.”
제 시간에 맞게 도착한 게 자랑스러운지, 기뻐 보이는 이노우에 아저씨다.
딸칵.
외계인들이 운전할 것만 같은 검은색 차에서 내린 이노우에 아저씨가 미유키에게 차 열쇠를 건네주며 말한다.
“아가씨. 진짜 운전하고 오면서 혹시 차에 흠집이라도 날까봐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사장님이 이 차 가지고 온 거 아시면, 난리 나실 텐데요.”
부카티 Divo라고 새겨진 차 열쇠를 이노우에 아저씨에게 건네받은 미유키가 살짝 짜증을 낸다.
“아저씨는 진짜. 하여간 타이밍을 못 맞춰요! 오빠와 처, 첫··· 흐으. 진짜!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미유키는 베스트 드라이버니까 차에 흠집 가는 일 따위는 없을 거예요. 아빠는 진짜 차 사놓고 타지도 않으면서. 딸이 좋아하는 남자 새로 산 자동차로 드라이브 좀 시켜주겠다는데, 차도 안 빌려주고 진짜. 하여간 짠돌이 라니까.”
미유키의 아빠는 짠돌이라는 말에 이노우에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한다.
“그거야 이 차가 보통차가 아니라서 그러신 거죠. 무려 차 한 대에 60억이 넘는 부카티 DIVO 아니에요. 그것도 전 세계에 40대만 한정판매된 차다 보니까······”
“치. 그래도 그렇지. 하여간 수고했어요. 이노우에 아저씨. 차는 잘 쓰고 돌려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고요.”
“네. 네······ 아가씨와 도련님 부탁이라 목숨 걸고 가져오긴 했는데, 제발 운전 살살 부탁드립니다. 아가씨.”
부카티 DIVO?
도대체 무슨 자동차이기에 카리스마 넘치는 이노우에 아저씨가 저리 쩔쩔 매는 거지? 거기다가 차 값이 60억이 넘는다니. 도저히 상상도 못할 엄청난 차인가 보다.
우리 앞에 주차된 외계에서 온 것 같은 차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우면서 독특한 디자인.
화려한 조명.
멋지게 새겨진 bugatti.
모든 것이 확실히 다른 차들과 차이가 나기는 한다.
더군다나 한강에 주차되어있는 차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들,
“와! 저거 부가티 디보 아니야? 미쳤나봐. 나 저차 실물 처음 봐!”
“우리나라에 부가티 디보가 있었어? 저거 전 세계에 40대 밖에 없는 차라던데?”
“저 여자가 차주인 인가 봐.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진짜 간지 개 쩐다. 야 빨리 사진 찍어 사진!”
점점 더 모여드는 사람들.
미유키가 그런 사람들이 부담스러운지 내 손을 잡으며 차에 탑승한다.
그리고 시동을 거는 미유키.
우웅! 우웅! 우우우웅!!!!!
힘찬 엔진소리와 함께 부카티 디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와! 엔진소리 킹정! 진짜 60억이 넘는 차는 소리부터 다르구나! 웅장하다. 웅장해!”
“아··· 고막이 녹을 것 같아. 장난 아니다. 그리고 60억이 뭐냐. 저거 돈 100억 싸들고 가도, 소유할 사람이 클라스가 안 되면 절대 못 구하는 차라더라.”
그다지 자동차 매니아가 아닌 나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정말 이 부카티 디보라는 차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회적 명성이 없으면 구할 수 없는 슈퍼카 중의 슈퍼카인 것 같았다.
확실히 미유키는 일반인들과는 클라스가 다르구나.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미유키 가문의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미유키씨, 이거 비싼 차 같은데. 천천히 운전해요. 혹시 사고라도 나면···”
이라고 말 하려는 순간!
우웅! 우웅! 우우우웅!!!!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하는 부카티 디보!
미유키가 멋들어지게 포즈를 잡으며 마치 프로 레이서처럼 부카티 디보를 운전하기 시작한다.
“오빠! 꽉 잡으세요. 한강에서 김포공항까지 10분 내로 돌파할 테니까요! 오빠, 드라이브 하니까 너무 신나요. 오빠도 신나죠?”
부웅부웅 부우우우웅!
거침없이 공도를 질주하는 무려 60억이 넘는 스포츠카 디보!
“유··· 유키야! 미유키이!!! 사, 살려줘!!!”
하지만 내 절규는 미유키가 틀어 놓은 신나는 음악에 묻혀간다.
* * * * *
하아하아···
무사히 김포공항에 도착한 미유키와 나.
60억짜리 부카티이고 뭐고 진짜 죽을 뻔 했다.
다시는 미유키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안타기로 마음먹는다.
다행히 그 어떤 차량도 혹시 부카티 디보에 흠집이라도 낼까봐 가까이 붙지 않아서 다행이지, 잘 못하면 골로 갈 뻔 했다.
“오빠! 오늘 제 운전 어땠어요? 프로 레이서 같죠? 헤헤. 차들 사이를 막 지나가는데 스릴 넘치지 않았어요?”
“아. 예? 아, 아니. 으응. 그, 그래.”
아니 미유키야.
그건 미유키가 운전을 잘해서가 아니라 다른 차들이 피해 준거지.
사실 부카티에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몇 천 만원은 수리비로 우습게 나온다.
그래서 다들 부카티 디보를 부러워는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아··· 그래도 조금 아쉽네요. 시속 380km까지 낼 수 있는 자동차인데, 답답한 도로를 달리니까. 오빠, 우리 다음에는 레이싱 트랙 한 번 돌까요?”
레이싱 트랙? 380km?
우읍.
갑자기 점심으로 먹은 귀한 음식이 쏠리는 것 같다.
진이 다 빠져버린 내 모습을 보며 미유키가 토닥토닥 거리며 말한다.
“오빠. 체했어요? 그러게 음식을 너무 급하게 먹더라니.”
아, 아니.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미유키의 스포츠카 도심거리 질주가 문제였다니까!
하지만 나 태워준다고 기껏 좋은 차를 몰래 빌려온 미유키인데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괜찮아. 미유키. 좀 쉬면 나아질 거야.”
내 말을 들은 미유키가 손을 벌리며 말한다.
“오빠. 여권 주세요. 우리 출국 수속해야 해요. 앞으로 30분 후에 비행기 뜰 거거든요.”
“응? 출국? 그것도 30분 후에?”
사실 미유키가 여권을 가지고 오라 할 때부터 혹시 어디라도 가나? 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건 너무 당혹스럽다.
“미유키. 어디 가는 거야? 지금 우리 비행기 타러 가는 거 아니야? 지금 우리 제주도 가는 거 맞지? 제주도는 여권 필요 없는데 미유키가 잘 몰랐나 보다. 그리고 사실 나 오늘 밤에 꼭 할 일이 있어서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하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