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 미소년이 살아남는 법-217화 (216/413)

〈 217화 〉 미유키와 데이트(16)

* * *

미유키와 아유미는 갑자기 입맛을 찾은 듯 급속하게 내 반찬들을 아구아구 먹기 시작했다.

잘 묵혀 두어둔 김치를 밥 위에 쓱쓱 비벼 먹으며, 매운지 켁켁 거리면서도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마, 맛있어!!!! 숟가락을 멈출 수가 없어. 이것이야 말로 한국의 맛인건가!?”

윽. 진짜 한식을 잘 하시는 요리 장인분들에게 몰매 맞을 소리를!

사실 우리 엄마가 만든 김치가 입맛 당기게 만들고, 내가 만든 음식들이 초딩 입맛으로 자극적이고 맛있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그렇게 미유키와 아유미가 정신을 못 차리고 내 도시락을 먹어치우고 있는데.

하얀색 주방장 옷을 입은 고듬람쥐가 코를 킁킁 거리며 나타났다.

“아니. 미유키씨! 아유미씨!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 탄 내나는 삼류 음식들은 다 뭐고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고듬람쥐.

마스터 쉐프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 괴팍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무섭게 우리를 향해 다가와서는 내가 만든 도시락 반찬들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아니 이건! 이 조잡한 문어 소시지는 다 모야! 삐뚤삐뚤! 어떤 문어는 코가 너무 크고! 다른 녀석은 다리가 너무 길고! 이런 장애인 문어 소시지를 도대체 음식이라고 만든 거야!”

윽. 이 장애인 문어들을 만든 사람이 바로 앞이 있는데.

역시 고듬람쥐의 평가는 냉혹하다.

“그리고! 이 탄내! 도대체 치킨으로 무슨 장난을 친 겁니까! 온도도 하나 제대로 못 맞춰서, 이 따위 쓰레기를 만들어 내! 이건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어!!!! 신성한 음식을 모욕하다니!!!!”

불같이 화를 내는 고듬람쥐.

하지만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고듬람쥐의 모습을 이미 많이 봤는지 아유미와 미유키는 전혀 동요가 없다.

대신에 아유미가 이쑤시개로 콕.

문어 아저씨 비엔나소시지를 찍어서 고듬람쥐의 입속에 쏘옥 넣어준다.

“우윽! 이, 이건 몹니까!!!!”

방심한 사이 입속에 들어 온 비엔나소시지.

평소 음식을 버리는 걸 극혐하는 고듬람쥐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할 수 없이, 비엔나소시지를 우물거리며 먹기 시작한다.

“으, 음식물 쓰레기를 내가 먹고 있다니. 으응? 응?”

비엔나소세지를 꿀꺽 삼킨 고듬람쥐.

그가 슬그머니 이쑤시개를 도시락 반찬에 들이 댄다.

“이, 이거. 이상하네. 분명 손질도 엉망이고 재료도 최하급 재료들인데. 소, 손이 간다!”

한 개, 두 개!

어느 덧 아유미와 미유키 사이에서 날름날름 문어 아저씨 비엔나소시지를 주워 먹던 고듬람쥐가 이번에는 치킨너겟에도 손을 댄다.

와그작, 와그작. 바사삭.

살짝 타긴 했지만 원래 탄 음식이 맛있다.

거기다가 불량스러운 맛을 증가시켜주는 특제 피카츄 돈까스 소스.

달면서 새콤한 맛의 정석이다!

“이, 이 맛은!!! 오 마이 갓!!!!”

역시 고듬람쥐도 피카츄 소스에는 굴복해 버리고 말았다.

정신없이 입에 한 가득 피카츄 돈까스 소스를 잔뜩 바른 치킨너겟을 넣고 우적우적 씹어 된다.

“머, 멈출 수가 없어요!”

조심스레 젓가락을 들어 몇 개 남지 않은 치킨너겟을 콕 찍으려는 순간 미유키와 아유미가 맹수 같은 눈빛으로 고듬람쥐를 바라본다.

“쉐프님. 이제 몇 개 안 남았거든요. 손 떼시죠. 잘 못하면 손모가지 날아갑니다.”

“아유미! 그러는 너야 말로, 젓가락 얼른 안 치워? 이거 우리 오빠가 미유키만을 위해 만들어준 거란 말이야!”

“치사하게! 센빠이가 너랑 나랑 나눠 먹으라고 했잖아!”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전쟁터를 방불하듯 치열한 도시락 쟁탈전을 벌이는 미유키와 아유미.

그런 그녀들을 말리며 말한다.

“그. 다음에 또 만들어 줄게요. 그러니까 그냥 사이좋게 먹어요. 미유키, 아유미씨.”

내가 중재에 나서자 할 수 없다는 듯이 싸움을 멈추는 미유키와 아유미다.

“알겠어요. 오빠. 저야 뭐. 오빠랑 결혼하면 매일 오빠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참기로 하죠.”

“센빠이! 오늘부터 아유미의 이상형은 문어 소시지랑 치킷너겟 잘 만드는 남자입니다! 그렇다고 센빠이한테 고, 고백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며 귀엽게 양볼을 붉히는 두 미소녀.

이거 어째 점점 더 미소녀들이 꿀에 끌리듯 꼬이는 느낌이다.

그렇게 양볼을 붉히며 수줍어하는 소녀들 사이를 치킨너겟을 노리고 조심스럽게 비집고 들어오는 젓가락.

하지만.

미유키와 아유미가 동시에 고듬람쥐의 젓가락을 막으며 소리친다.

“아니! 아저씨는 아저씨가 음식해서 먹으라고요 좀! 우리 오빠가 만든 음식 노리지 말고.”

“무슨 세계 최고의 쉐프라는 사람이. 남의 음식이나 탐내고. 참 뻔뻔하기도 그지없네!”

하지만 미유키와 아유미가 뭐라고 하든, 이미 MSG가 가득 든 불량한 맛에 중독되어버린 고듬람쥐가 피카츄 돈가스 소스가 묻은 젓가락을 쪽쪽 빨며 애원하듯 말한다.

“하, 한 개만···· 진짜 한 개만 주면 이제 안 뺏어 먹을게요!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단 말이에요!”

* * * * *

“하아하아.... 이제 더 이상은 못 먹겠어요. 오빠.”

“나, 나도. 센빠이.”

미유키와 아유미가 볼록해진 배를 만족스럽게 두드리며 잔디밭에 드러눕는다.

먹을 때는 너무 당기는 맛이라 몰랐지만, 다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인 미유키와 아유미.

하긴 저렇게 작은 가녀린 몸매로 그렇게들 먹어 되었으니.

그래도 마치 새끼들에게 밥을 잔뜩 먹여 뿌듯한 어미새처럼 미유키와 아유미가 내 도시락을 배불리 먹고 잔디밭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오빠도 이리 와서 누워봐요. 풀냄새가 참 좋아요.”

미유키가 자기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두드리며 나를 부른다.

“그럴까요?”

나도 모르게 발이 움직여 미유키가 마련해 준 자리에 눕는다.

시원한 강바람.

하늘 위를 떠다니는 구름들.

마치 어렸을 적 친구들과 소풍 온 기분이다.

이렇게 여유롭게 하루를 즐기던 때가 언제더라?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 걱정하느라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대학교 때는 취업 걱정하느라 도서관에서 토익이며, 각종 자격증 준비.

군대에서는 선임들 눈치 보느라 하루 종일 마음 졸이고.

간신히 회사에 취업해서는 팀원들에게 왕따 당하고, 일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처럼 일만 죽어라 했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정말 기억이 안날 정도로 오랜만에 마음 편히 놓고 한강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그것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두 명의 일본 미소녀와 함께.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두 명의 미소녀들과 함께 있는데도, 자꾸만 예슬이 생각이 나는 건 왜 그런 걸까?

한강 잔디밭에 누워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매점이 보인다.

매점에서 예슬이와 함께했던 기억들.

그리고 가슴 설렜던 첫 키스.

미유키와 같이 있는데도 예슬이가 보고 싶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예슬이와의 추억을 생각하고 있는데, 미유키가 잔디밭에 앉아서는 나를 바라본다.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순홍색 눈동자.

그리고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분홍색 머리.

마치 만화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미소녀 미유키.

이런 그녀를 두고 예슬이를 생각하고 있다니.

내가 예슬이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렸나 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유키씨. 그냥 한강에 오니 옛날 생각이 나서요.”

“오빠. 혹시···”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미유키.

“그 여자 생각하는 거예요? 오빠와 키스 했던?”

역시 여자의 직감은 무섭구나.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미유키.

그녀 앞에서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미안해요. 미유키씨.”

“아니에요. 오빠. 오빠가 생각하고 싶어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워서 생각나는 사람을 어쩌겠어요. 사실은 저도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미유키씨도요?”

그러면 미유키도 나처럼 좋아했던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사실 미유키는 전혀 남자 경험이 없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착각이었나?

담담하게 말하는 미유키.

“네. 저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어요. 너무나 보고 싶은데.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서 매일매일 자신을 몰아붙이며 바쁘게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안 그러면 계속 생각날까봐.”

미유키에게 너무너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매일매일.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빠진다.

방금 전까지 예슬이 생각으로만 가득했었는데, 미유키 역시 매일매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에 구멍이 난 것 같이, 허탈하다.

나 혹시 미유키를 좋아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잡스러울 때, 미유키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사실 오빠가 준비해 온 도시락. 처음 봤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그 반찬들은 제가 너무나 보고 싶은 사람. 저희 엄마. 저희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 몰래 해 주셨던 것들과 너무 닮았어요.”

엄마!

그렇구나.

미유키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었다.

미유키가 매일매일 자신을 바쁘게 몰아붙일 정도로 그리운 사람은 미유키가 어렸을 때 사고로 돌아가신 미유키의 어머니였다.

“미안해요. 미유키씨. 제가 괜히 다른 생각을 해서 미유키씨에게 안 좋은 과거를 떠올리게 했나봐요.”

“아니에요. 오빠. 사실. 제가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것도. 물론 오빠가 귀엽고 잘생겨서인 것도 있지만, 그것 보다는. 오빠와 함께 있으면 마치 어렸을 적. 엄마와 함께 있던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아서예요. 오빠에게서 엄마와 같이 따뜻한 냄새가 나거든요. 그래서 자꾸만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빠에게 매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또 놓쳐버릴까 봐. 나 바보같죠?”

살짝 눈물이 글썽이는 얼굴로 고백하는 미유키.

그런 그녀의 순수함이 너무 아름답고 진실 되어서 마음을 움직인다.

“아니에요. 미유키씨. 사실 나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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