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미유키와 데이트(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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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미유키. 우리 센빠이. 미유키 남자친구 아니 였던 거야? 하긴 우리 천사같이 귀여운 센빠이가 미유키 같은 패배자를 여자친구로 선택했을 리가 없지. 잘도 속였겠다. 흥. 그러면 나에게도 기회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아유미.
그녀가 주저 없이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는다.
“뭐야! 아유미. 우리 오빠한테 바짝 붙어서. 얼른 떨어져! 오빠 이리 와요. 미유키 오른쪽으로.”
미유키가 내 옆에 자기 말고는 아무도 앉을 수 없게 오른쪽으로 손을 잡아 이끈다.
그러자 먹이를 놓친 독수리처럼 아쉬운 듯 나를 보며 아유미가 미유키에게 말한다.
“뭐야. 아직 미유키. 네 것도 아니면서. 치. 센빠이를 독차지 할 셈인거야?”
마치 먹음직스러운 토끼를 놓고 다투는 호랑이와 독수리 같은 미유키와 아유미.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긴급히 제안을 한다.
“미유키씨. 아유미씨. 싸우지 말고 우리 도시락 먹어요. 진짜 배고파 죽겠어요.”
비싼 음식이 잔뜩.
잘 차려진 식탁을 보며 배고파서 군침을 흘리는 나.
하지만 미유키와 아유미는 생각이 다른가 보다.
“이거 람쥐쉐프님이 시식하느라, 다 식어서 이제 맛이 없을 텐데요. 오빠.”
아니 이런 고급 음식이 고작 식어버렸다는 이유로 버리려 하다니.
이렇게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버리면 천벌 받는다!
“아니에요. 미유키씨와 아유미씨의 요리라면 식어도 맛있어요! 그러니까 저 먼저 먹을게요.”
그렇게 말하면 생전 처음 맛보는 랍스터를 뜯기 시작한다.
이, 이건! 으헉!
마치 쫄깃쫄깃 한 게살과 고급스러운 새우 살이 만난 느낌이랄까.
입에서 랍스터의 살듯이 살살 녹아 없어졌다.
정신없이 새로운 음식들을 맛보며 열심히 신세계를 경험하는데, 웬일인지 미유키와 아유미는 깨작대며 잘 먹고 있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서 미유키에게 말했다.
“미유키씨, 별로 입맛이 없어요?”
그러자 미유키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식은 음식은 사실 잘 먹지를 못해서요. 저희는 걱정하지 마시고 드세요. 오빠가 잘 드시니까 기분이 좋아요.”
두 명의 미소녀가 나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무릉도원인가?
하지만 아무리 무릉도원이라도, 일행들이 같이 먹지 않으면 불편하다.
식은 음식을 잘 못 먹는 다니, 역시 부자 아가씨들의 입맛은 나와는 달리 까다롭구나.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나한테 있었다.
따뜻한 음식이.
물론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음식들에 비한다면 형편없고 초라하지만.특별히 미유키를 위해 준비한 도시락이었지만, 이런 고급요리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진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나 꺼내보자.
“그러면 제가 준비한 도시락이도 드실래요? 아직 따뜻할 텐데.”
“오빠가 준비한 도시락이요?”
미유키는 귀가 번뜩 뜨이는지 고개를 마구마구 끄덕인다.
“오빠가 미유키를 위해 준비한 도시락이라면, 미유키 먹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먹겠습니다. 저를 위해 도시락까지 준비하다니. 미유키 감동했어요. 오빠.”
아, 아니.
비록 지금 차려져 있는 진수성찬에야 한 없이 부족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이 무슨 독약도 아니고.
먹다가 죽는다니···
어찌되었든 미유키가 내 정성을 봐서라도 먹어 줄 것 같으니 일단 꺼내기로 한다.
“너무 보잘 것 없어서 미유키씨 입맛에는 안 맞을 거 같긴 한데···”
부끄러워서 빨개진 얼굴로 내 도시락 통을 열었다.
잘 묵혀 두었던 배추김치.
아침에 나름 신경 써서 만든 문어모양의 비엔나소시지.
그리고 케첩으로 토끼를 그린 오므라이스와 바삭하게 튀긴 치킨 너겟이 미유키를 위해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어머님이 바쁘실 때는 혼자 점심을 준비했기 때문에, 요리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저런 일류 요리 앞에서는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고급스러운 미유키와 아유미의 음식들 사이에서 수줍게 살포시 놓인 소박한 반찬들.
미유키가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아, 미유키씨. 아무래도 이런 서민음식은 미유키씨에게 무리죠? 제가 괜한짓을 했나봐요.”
역시 미유키가 나를 좋아한다 해도 최고급 스테이크와 3대 진미도 식었다고 안 먹는 재벌가의 손녀딸에게 이런 평범한 음식은 무리구나.
의기소침하게 도시락 뚜껑으로 닫으려는데, 미유키가 젓가락으로 탁! 도시락을 못 닫도록 막는다. 그리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도시락에 들어있는 문어 모양으로 만든 켄터키 비엔나를 바라보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문어 아저씨?”
뭐지?
문어 모양으로 만든 비엔나소시지 따위는 흔한 거 아니던가?
나는 마리가 말한 문어 아저씨 켄터키 비엔나를 젓가락으로 콕 찍어서 마리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먹어 볼래요?”
미유키가 약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냉큼 귀여운 입을 벌린다.
쏘옥~
미유키의 작고 귀여운 입 속에 문어 모양으로 장식한 켄터키 비엔나를 넣어주었다,
그러자 미유키가 몇 번 씹으면서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꿀꺽 삼켰다.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미유키를 바라봤고, 미유키가 두 손을 모으며 작게 말했다.
“맛있어. 문어 아저씨.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주던 맛이 나!”
미유키가 맛있다고 하자 기쁜 마음에 이번에는 치킨 너겟을 하나 집어서 미유키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미유키는 역시나 약간 고민을 하더니 귀엽게 너겟을 한 입 베어 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작은 입으로 요리조리 뜯어먹으며, 너겟 하나를 먹어 치웠다.
잘 차려져 있는 고급 음식도 식었다는 이유로 깨작거리며 마다하던 미유키가 순식간에 나가 준비한 초라한 평민 도시락을 먹어치우고 있다.
놀라서 움찔거리는데, 미유키가 이번에는 아예 내 도시락 반찬 통을 자기 앞으로 맹수처럼 채어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유미도 젓가락을 들어서는 비엔나소시지를 하나 콕 찍어 먹었다.
그러자 젓가락으로 번개같이 다시 낚아채는 미유키.
“이건 우리 오빠가 미유키만을 위해서 만든 도시락이란 말이야! 어딜 감히!”
아이구, 우리 미유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질투심만은 대단하다.
하지만 자고로 음식은 나누어 먹을수록 맛있지!
“미유키씨. 아직 많으니까 아유미씨도 나눠 먹어요.”
뭔가 불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아유미를 바라보는 미유키와 애원하는 눈빛의 아유미.
미유키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푸욱 쉬며 말한다.
“그러면 딱 하나만 먹어! 문어 아저씨는 몇 개 없단 말이야.”
아유미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재빨리 끄덕끄덕 거린다.
그리고는 내 젓가락을 바라보며 아유미가 아~ 하고 입을 벌린다.
아니 이게 뭐야.
아기 새들도 아니고, 설마 아유미도 먹여달라는 건가?
에휴, 할 수 없지,
그래도 아유미가 허락해 줘서 미유키와 즐거운 점식식사를 한강에서 할 수 있으니까.
젓가락으로 문어 모양 비엔나 소시지를 코옥 찍어서 아유미의 입속에 쏘옥 넣어준다.
우물우물~
미유키처럼 비엔나소시지를 몇 번 씹더니 이내 꿀꺽 삼킨다.
그리고는 굉장히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이거 굉장한 요리가가 만든 건가요? 보기에는 꽤나 초라해 보이는데. 비싼 건가요? 아니 당연히 비싸겠죠? 저, 저도 내일 당장 주문하겠어요!”
어? 뭐지? 이 반응은?
젓가락으로 콕 찍어서 나도 비엔나 소시지를 먹어 본다.
우물우물. 꿀꺽.
으응? 이건 그냥 평범한 비엔나소시지인데···
“이거요? 이거 제가 만든 건데요? 맛있다면 다행이지만요.”
“센빠이가 만들었다고요? 설마 센빠이는 세계 최고의 쉐프가 목표였나요? 마치 문어 아저씨가 입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짭짤하면서 중독되는 맛. 아유미는 처음 먹어 보는 신세계에요!”
미유키도 입안 한가득 치킨 너겟을 넣고 우물우물 거리며 말한다.
“우응. 오빠, 이 치킨. 계속 먹게 되요. 으웅... 멈출 수가 없어요.”
“그 치킨도 맛있는 거야? 나, 나도 한 입만!”
“아, 안됑! 몇 개 없단 말이야. 우물우물.”
아니, 방금 전까지 최고급 음식들도 마다하던 두 명의 재벌가 자제들이 왜 고작 비엔나 소세지와 치킨너겟에 난리지?
어느덧 미유키의 방해를 뚫고 치킨너겟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는 아유미도 황홀해 하며 중얼거린다.
“이 짭짤하면서 계속 당기는 맛! 머, 멈출수가 없어!”
짭짤하면서 당기는 맛?
앗! 그러고 보니.
다시 포크를 들어 미유키와 아유미가 만든 음식들을 먹어보았다.
역시나!
너무 좋은 재료들을 쓰고 품질에 신경을 쓰다 보니, 풍미가 가득하고 건강에 좋을 것 같은 맛이지만.
무언가 불량스러운 맛!
MSG!
그것이 빠져있다.
아유미와 미유키는 부잣집 금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건강에 좋은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은 음식들만 먹었다.
한 마디로 자극적인 음식은 입에 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려서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된다.
우리가 어머님의 따뜻한 밥상 대신에 가끔은 몸에는 안 좋지만 자극적인 불닭라면이나, 패스트푸드가 끌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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