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미유키와 데이트(12)
* * *
하얀 얼굴에 천사 같은 미소를 짓는 인형같이 아름다운 그녀,
그런 그녀가 너무 신비롭고 예뻐서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미유키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그런 내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미유키가 속삭이듯 말한다.
“미유키는 사실 오빠와 함께라면 어디든 다 마음에 들어요. 비록 그 곳이 아무리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라고 해도 오빠만 있다면, 그 곳은 미유키에게 항상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 이예요.”
부끄러운 말을 천사 같은 얼굴로 속삭이는 미유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화끈거린다.
분명 이런 많을 한국 사람이 했다면 오글거렸을 텐데, 미유키는 일본 여자라서인지 오글거린다는 느낌보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외국인이라 이런 낯 뜨거운 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직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겠지?
이래서 외국인과 사귀는 커플이 많은 것일까?
“오빠. 그런데, 미유키 한강에서 접선하기로 한 사람이 있어요. 어? 마침. 저기 오네요.”
미유키가 모자를 푹 눌러쓴 음침하게 생긴 남자를 보고 있다.
딱 보기에도 무엇인가 어두운 기운을 풍기는 남자이다.
미유키가 그 남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서는 조용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물건은 준비 된 것이겠죠?”
“네. 어렵게 구했습니다. 역시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렵더군요. 아가씨.”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효과는 확실한 거겠죠?”
“네. 혹시 가짜일지도 몰라서 제가 그 하얀색 가루를···”
하얀색 가루까지 말하다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죽여서 말하는 모자를 눌러 쓴 남자.
아무리 청력을 높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은밀한 거래에 하얀색 가루라니.
설마··· 미유키가 마약 거래를!
아무리 비즈니스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자, 여기 대금은 준비되어 있으니 물건을 건네주세요.”
미유키가 건넨 돈이 두둑하게 든 하얀색 봉투를 건네받은 남자가 재빨리 세어본다.
“예. 맞군요. 아가씨, 그럼 여기 물건을···”
봉투에 든 물건을 건네며 나를 바라보는 모자를 눌러쓴 남자.
“저 분이 바로 이 물건을 쓰실 분이신가요? 과연··· 부작용이 없으면 좋겠는데요.”
뭐, 뭐라고!
내가 물건을 쓴다고?
그리고 부작용?
설마 미유키가 나에게 마약을 투약하려는 것인가?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네. 이노우에 씨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 해서 구입을 부탁드리긴 했는데, 오빠한테도 잘 맞았으면 좋겠네요. 민감한 사람들은 아무리 품질이 좋다고 해도 부작용이 있다고 하니.”
이노우에 아저씨가 강력 추천을 했다고!
아니, 이 야쿠자 아저씨가 사람을 뭘로 보고! 마약을!
미유키와 이노우에 아저씨에 대한 배신감이 커져간다.
은밀하게 거래를 끝낸 미유키.
그녀가 나를 향해 강아지처럼 달려온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온통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봉투로만 향한다.
“미유키씨.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거 뭐예요?”
차갑게 날이 선 말투로 미유키를 향해 질문하자, 당황한 미유키가 봉투를 황급히 뒤로 숨기며 말한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내 청력은 일반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좋다.
남녀역전 세계로 평행하게 되면서 얻게 된 능력 중에 하나.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아무것도 아니긴요! 어서 그 봉투에 든 것 이리 줘 봐요!”
재빨리 손으로 미유키가 들고 있던 봉투를 낚아챈다.
봉투를 빼앗긴 미유키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한다.
“오, 오빠, 그건 지금 열면 안 되는데. 저녁에 선물로 주려고 준비한 건데요!”
“이런 선물 필요 없어요! 미유키씨.”
화를 내며 미유키에게 뺏은 봉투를 열자, 그 곳에서 들어있는 건!
* * * * *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럭셔리한 황금색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보나마나 백색가루인 마약!
이 아니라.
얼굴에 바르는 파우더였다.
그것도 금가루까지 뿌려진 엄청나게 럭셔리 해 보이는 파우더!
“미, 미유키씨 이게 뭐에요? 왜 얼굴에 바르는 파우더를 저에게?”
미유키가 수줍은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한다.
“그, 그게. 오빠와의 첫 데이트라 선물을 주고 싶은데, 꽃이라던가 이런 건 너무 흔한 것 같아서 특별한 걸주고 싶어서요. 마침 이노우에씨가 한국 남자들은 고급 화장품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이번에 에미에르에서 출시한 한정판 파, 파우더를. 그런데 오빠, 마, 마음에 안 드세요? 워낙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파리까지 직원을 보내서 공수해 오긴 했는데.”
아, 아니.
일단 미유키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 마약이 아니라 다행이고.
이 화장품이 고급지고 비싸 보이는 건 알겠는데.
남자에게 화장품을 선물하다니.
역시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면 수치를 당하게 된다.
“아니요. 미유키씨.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저는 평소에 화장은 하지 않아서. 요즘 세상에는 화장하는 남자도 많다고 하지만, 제 기준에서는 남자가 화장을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지라···”
미유키에게 뺏었던 봉투를 재빨리 미유키에게 건네주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던 원래 세상에서도 점점 화장을 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기는 했지만, 내가 틀딱인 건지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거부감이 있다.
내가 원래 살던 세상도 남자가 화장을 하는 시대인데,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남자가 화장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봉투를 다시 건네받은 미유키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오, 오빠! 미안합니다! 스미마셍!!! 오빠의 취향도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선물을 사 버려서 화가 나신 거군요! 사실 오빠는 화장 안한 청순한 얼굴이 더 귀여워요! 전부 다 제 불찰입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오빠.”
사실 나는 미유키를 위해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신경 써서 해외에서 선물을 공수까지 해 온 미유키가 사과를 하고 있다니.
양 손을 내 저으며 미유키에게 말한다.
“아니에요. 미유키씨. 오히려 선물도 준비 못한 제가 더 미안하죠. 그러니까 이제 그만 사과하셔도···”
라고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바람처럼 이노우에 아저씨가 나타나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도련님!!! 이 모든 것은 다 이 이노우에의 모자란 머리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저희 아가씨에게는 아무런 잘 못이 없으니, 부디 이 이노우에를 탓해 주십시오.”
진중한 얼굴로 도게자를 세게 박는 이노우에 아저씨.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한 무서운 얼굴의 아저씨가 도게자를 박고 있으니 위압감이 대단하다.
“아, 아니에요. 아저씨. 그냥 제가 화장을 안 하는 것일 뿐, 아저씨나 미유키씨에게는 아무런 잘 못이···”
하지만 내 용서 따위는 이노우에 아저씨의 귀에 들리지 않나보다.
“이노우에! 오늘 저지른 이 실수! 손가락을 잘라 사죄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서 손을 그으려는 아저씨.
그런 아저씨의 팔을 붙잡으며 급하게 말린다.
“아, 아저씨! 그러지 마시라니까요. 진짜 괜찮다니까요!”
“여, 역시! 이 따위 손가락 따위로는 성이 차지 않으시군요. 그렇다면 아가씨!”
비장한 얼굴로 이노우에를 바라보는 미유키
“저희 가족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이노우에의 시신은 바다에 뿌려주십시오. 그럼 할복을!”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는 미유키.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말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무서운 이노우에 아저씨의 뺨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쫙!
뺨을 맞고야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이노우에 아저씨.
“아저씨! 사람 목숨이 그렇게 우스워요! 고작 선물하나 잘 못 추천했다고, 손가락을 자른다느니. 할복을 한다느니! 그런 말이 쉽게 나오시냐고요. 해도 해도 정도가 있지. 앞으로 다시는 아저씨 몸을 해 하겠다는 말 쉽게 하지 마세요. 알았죠? 다시 한 번 그런 말 하시면, 저 미유키씨도 아저씨도 두 번 다시는 안 볼 거예요!”
미유키도 두 번 다시 안 본다는 말에 놀란 토끼처럼 눈이 커진 미유키.
“오, 오빠. 노, 농담이에요. 이노우에가 농담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화 풀어요. 그, 그렇죠. 이노우에?”
이노우에 아저씨가 험악한 얼굴로 최대한 미소를 짓는다.
“노, 농담이었습니다. 도련님! 이노우에 정말 농담 한 것입니다!”
미소를 짓자 더 무서워 보이는 이노우에 아저씨.
정말 얼굴만으로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만큼 무섭다.
하아···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물론 이노우에 아저씨는 무섭지만, 사람의 목숨을 경시하는 것만큼은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용기를 냈었다.
하지만 역시 다시 봐도 야쿠자의 웃는 얼굴은 무섭다.
“알겠어요. 아저씨. 다시는 그런 농담하지 마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도련님. 이 이노우에···”
주르륵.
선글라스 사이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이노우에 아저씨.
아니 아저씨. 얼굴만으로 살인 할 수 있을 것 같이 생긴 주제에 그렇게 쉽게 눈물 흘리지 말라구요!
바람처럼 다시 사라지는 이노우에 아저씨의 혼잣말이 들렸다.
“이노우에 도련님에게 미천한 목숨을 빚졌습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아, 이 이노우에 아저씨.
얼굴만 험상궂지 사실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받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였던 것이다.
* * * * *
“오빠, 화 안 나신거죠?”
미유키가 내 눈치를 보며 말한다.
“네. 미유키씨.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그렇고. 그런데, 혹시 이상한 느낌 받지 않았어요? 한강에 오고 나서부터 누가 자꾸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남녀역전 세계로 평행이동 한 이후 나의 감각은 일반인들 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그래서인지 멀리서부터 지속적으로 미유키와 나를 향한 기분 나쁜 눈빛이 신경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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