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 미소년이 살아남는 법-212화 (211/413)

〈 212화 〉 미유키와 데이트(11)

* * *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요리선생님.

그런 요리선생님을 보며 미유키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역시, 선생님은 다르군요! 이 감자탕 맛있어요. 저희 가정부 아저씨가 해주던 건강한 맛이 느껴지는 군요. 흐음··· 미유키도 선생님을 본받아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역시 한식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어렵군요.”

자신만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고 참가자들을 속인 엉터리 요리선생님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칭찬을 받다니. 가정부 아저씨와 비교하는 것이 좀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정중한 말투로 봐서는 분명히 비꼬는 게 아니라 칭찬이다.

“선생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마침 제가 아는 분이 외국인들 상대로 교육하는 한식 요리선생님을 구하신다고 하셔서. 선생님 같이 경험 많고 열정 있으신 분이 하시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한식 요리 선생님이요?”

어리둥절한 표정의 요리선생님.

미유키는 그런 요리선생님의 손에 명함을 한 장 건네준다.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규모가 조금 크다고 하시긴 했는데. 미유키 소개로 연락했다고 하면 잘 해주실 겁니다. 그럼 저희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이만···”

그렇게 말하고 한국음식 만들기 일일체험 교실을 나가는 미유키.

아름다운 분홍머리의 미소녀 미유키가 나가자,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명함을 펴 본다.

그리고 그 명함에 적혀있는 건.

다름 아닌.

국내 최정상급 호텔 한정식 레스토랑.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도 최고로 정평이 난 수석 쉐프(chef) 백정원의 전화번호.

그리고 미유키가 말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한식 요리 선생님은.

지금과 같이 고작 10명 남짓의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알바가 아니라 수 천 명의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아카데미 수준의 정규직이었던 것이다.

* * * * *

“미유키씨. 그 요리 선생님이 한 음식. 저도 먹어봤는데요. 미유키씨는 일본에서 와서 잘 몰랐겠지만, 그 선생님만 사골을 우려내서 육수로 썼어요. 거기다가 고기도 채소도. 학생들보다 훨씬 더 좋은 품질의 것을 썼고요. 왜 그런 사람에게 그런 제안을···”

미유키가 사짜 요리선생님에게 속은 것 같아 진실을 얘기해 주려 하는데, 미유키가 방긋 귀엽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알고 있었어요. 오빠.”

“네? 알고 있었다고요?”

“네. 일본도 한국도 요리를 만드는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요리의 근본은 같거든요. 좋은 품질의 재료로 훌륭한 요리사가 조리하면 맛있고 건강한 요리가 만들어진다! 거기다가 그렇게 티나게 일반 참가자들과 다른 재료를 썼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헤헤.”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미유키의 생각.

“오빠. 오빠는 그 요리 선생님의 손에 배인 굳은살을 봤어요?”

“굳은살이요?”

굳은살이라니.

사실 요리 선생님의 손에 배인 굳은살까지 볼 정도로, 그 아저씨에게 관심이 많지 않았다.

“아니요. 그건 왜 물어보는 거죠?”

“그 선생님 손에 배인 굳은살로 볼 때, 적어도 요리를 20년 이상 열심히 해 오신 분이에요. 그런데 그 분이 서 있는 곳은 고작 10명 정도의 요리 초보들에게 한국음식 만들기 체험을 시켜주는 허름한 일일요리 체험장.”

“그게 어떻게 미유키씨가 사기꾼 요리 선생님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안한 것이랑 연관이 있는 거죠? 설마 불쌍해서요?”

“아니요. 제가 본 것은 그 요리 선생님의 열정입니다. 요리 선생님의 눈빛. 살아있었어요. 마치 요리를 막 배우기 시작하는 10대의 소년처럼. 거기다가 음식으로는 지고 싶지 않다는 경쟁심. 조금 지나쳐서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나이 먹고 경력이 쌓인. 삶의 끈이 느슨해진 베테랑 요리사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귀한 것이죠. 분명 그 선생님 같이 나이는 있지만 열정이 가득한 분. 필요할 거예요.”

미유키의 설명을 듣고 보니.

내 좁았던 시야가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역시 미유키는 단순한 동정심이나 충동으로 생각을 결정하는 소녀가 아니········

“그, 그리고. 뭔가 오늘 오빠랑 첫 데이트 때, 좋은 일을 하면 기억에도 남고. 오빠랑 결혼까지 잘 이루어 질 것도 같고··· 헤헤.”

“네? 네에!!? 좋은 일을 하면 기억에 남고 저랑 결혼까지 잘 이어질 것 같아서?”

그, 그래. 미유키도 사람인지라, 조금은 충동적인가 보다!

* * * * *

“자 그러면 미유키씨 우리 이제 어디로 갈까요?”

한국문화를 체험시켜주겠다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어느덧 미유키의 주도하에 내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다음에는 오빠랑 저랑 미리 약속했던 것처럼 한강에 가요. 저 아직 한강에 가 본적이 없어서요. 드라마에서 보면 연인들끼리 한강에서 산책도 하고, 소, 손도 잡고. 그리고. 그리고!”

갑자기 급격하게 빨갛게 달아오르는 미유키의 얼굴.

“키, 키스도 하더라고요! 그냥 K드라마에서 본 걸 얘기한 것 뿐이에요. 결코 미유키가 오빠랑 키스하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에요. 무, 물론 오빠가 거절하지 않는다면 미유키의 첫 키스를 시현오빠에게 바, 바칠 마음의 준비는 항상···”

부끄러운지 끝까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리는 미유키.

다른 일에는 항상 당당하고 거침없는 미유키지만, 유독 연애에 관해서는 순수하고 부끄러움이 많다. 아마 내가 그녀에게 있어 처음으로 썸타는 남자라서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순수한 미유키의 모습도, 결국 다른 남자를 만나고 나이가 들수록 변해 갈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미유키를!

라는 욕심이 미유키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생기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단지 미유키의 아름다운 미소녀 외모와 그녀의 재벌가의 손녀딸이라는 배경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미유키와 함께 있은 지 고작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미유키만의 당당하면서 순수한 그녀만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질문 실례일수 있지만, 미유키는 알고 싶어요. 오빠. 오빠는··”

말하다 말고 다시 얼굴이 복숭아처럼 붉게 달아오른 미유키.

“왜 그래요. 미유키씨? 무슨 질문이든 해 보세요. 미유키씨 질문이면 무엇이든 말 해 드릴게요.”

“오빠는····· 혹시 키스 해 본적 있어요? 책으로 읽었을 때는 부드럽고 감미로워서 마치 슈크림 같다고 하던데. 미유키는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한테 억지로 볼 뽀뽀 당한 것 말고는 키스 경험이 없어서···”

하아······

미유키가 궁금한 것은 나의 첫 키스 경험.

그리고 나의 첫 키스는 너무나 상큼하고 달콤해서 신비롭기까지 했던 예슬이와의 키스였다.

그것도 바로 미유키와 함께 향하고 있는 한강에서. 사실 키스 경험이 없다는 말로 지금 당장 미유키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할 순 있겠지만, 그건 비겁한 짓 같다.

“네. 첫 키스 경험. 있어요. 미유키씨.”

첫 키스 경험이 있다는 말에 잠시지만 미유키의 아름다운 보라색 눈동자에 실망감이 가득하다. 하지만 곧 기운을 되찾은 미유키가 씩씩하게 말한다.

“그렇죠. 오빠. 오빠처럼 천사같이 귀여운 남자가. 그것도 남자가 귀한 한국에서. 첫 키스 경험이 없을 리가 없죠. 그런데 오빠. 혹시 그 여자. 아직도 만나고 계신가요?”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미유키의 초조함.

그녀의 하얀 손이 가녀리게 떨린다.

내 첫 키스를 가져간 소녀 예슬이.

지금 그녀는 나와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예슬이를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슬픈 얼굴이 되어버렸다.

“아니요. 지금은 만나고 있지 않아요.”

“진짜요? 휴우······”

지금은 만나고 있지 않다는 말에 미유키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그러면 괜찮아요. 오빠. 미유키. 힘내서 오빠의 첫 키스 미유키의 키스로 지워 버릴거예요! 그래서 평생 오빠가 미유키와의 키스만 기억할 수 있도록.”

허억!

방금 전까지만 해도 키스 얘기만 나와도 부끄러워하던 미유키가 이렇게 당당하게 첫 키스 NTR 선언을 하다니.

역시 미유키는 알다가도 모를 당당한 소녀다.

그리고 미유키의 이런 당당한 매력에 끌려 조금씩 예슬이만을 생각하던 내 마음이 미유키쪽으로 모래시계의 모래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 * * * *

“오빠, 이곳이 한강이군요! 낮인데도 강바람이 너무 시원해요!”

밝고 탁트인 곳에 오자 기분이 좋아진 미유키가 강아지처럼 귀엽게 입을 헤~ 벌리고 좋아한다.

역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매력은 다 다른가 보다.

예슬이가 가진 매력은 새침하면서 수줍음이 많은 고양이 같은 매력이라면.

미유키는 당당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강아지 같은 매력이다.

“미유키씨. 한강 마음에 들어요?”

“네. 오빠! 한강은 K드라마에서 보던 것 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많고요. 그리고 미유키는.”

귀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미유키.

그녀의 아름다운 분홍색 머리가 강바람에 휘날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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