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미유키와 데이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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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유키씨. 미유키씨와 결혼하게 되면 안심하고 밥상 쇼핑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멋있었어요.”
멋있었다는 말에 미유키가 살짝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오빠가 인정해줬어. 나를 신부 후보로 인정해 주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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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특별할인 물품을 획득한 미유키와 다음으로 간 투어 장소는 전통한국음식 일일체험 교실이었다.
그 곳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음식 만들기 일일체험을 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자 오늘 저희가 만들어 볼 음식은 감자탕과 김치전 그리고 계란말이입니다. 다들 재료는 준비해 오셨죠?”
한국음식 만들기 체험을 주관하는 한국 아저씨가 능숙하게 앞치마를 두르며 말했다.
미유키가 자랑스럽게 E마트에서 득템한 감자와 돼지고기 계란을 쇼핑바구니에서 꺼냈다.
역시 미유키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할인품목 중에서도 감자와 돼지고기 그리고 계란에 집착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직접 쇼핑한 품목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미유키 정도의 재벌집안이라면 이렇게 자기 손으로 직접 장을 보고 그 재료로 음식을 만들 기회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들이 음식을 대신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오빠. 마치 신혼집에서 오빠를 위해 아침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기뻐요.”
수줍게 웃으며 귀여운 하얀색 에이프릴이 달린 앞치마를 두르는 미유키.
그 모습이 너무 청순하고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역시 여자는 여자답게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할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자! 그러면 다들 준비 되셨지요? 오늘 저희가 만들 첫 번째 음식은 감자탕인데, 가장 먼저 음식 재료를 다듬는 법부터 시범을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깨끗하게 씻은 깻잎과 통감자, 얼갈이배추, 대파를 준비한 후 각자 앞에 놓여있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손질을 하기 시작한다.
과연 한국음식 만들기 일일체험 선생님은 능숙하게 칼질을 하며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요리에 능숙하지 않으면 적어도 10분은 걸릴 재료 손질을 무려 5분 만에 깔끔하게 끝내는 선생님.
그리고 그런 선생님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일체험 참가자들.
역시 노련한 경험자는 다르다.
“자! 다들 보셨지요? 이렇게 제가 한 것처럼, 재료들을 칼로 손질해 주시면 됩니다. 물론 요리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쉽지 않으실 테니, 혹시 재료를 다듬다가 잘 안되면,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저에게 말해 주세요!”
얼굴은 험상 굳게 생겼지만 생각보다 친절한 요리 선생님 아저씨였다.
“자, 그럼 다들 시작해 주세요!”
요리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슥삭슥삭! 칼질 소리.
대부분이 외국인 체험자들이어서 한국에서 주로 쓰는 재료를 칼로 다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오 마이 갓! 우리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와 피자만 만들어서 이런 정교한 칼질은 익숙하지 않아요!”
“우리 영국 사람은 피쉬엔 칩스만 만들 줄 알면 되는데··· 한국음식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군요. 에이. 저는 포기하고 축구나 보렵니다.”
역시 각 나라의 개성이 잘 들어나는 요리교실.
하지만 예외도 있었으니.
아시아권에서 온 참가자들은 제법 능숙하게 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특히 중국에서 온 갈색 머리 여자의 칼 솜씨는 제법 현란했다.
“오! 진가련씨. 칼 솜씨가 훌륭하군요. 마치 식당에서 일해 본 사람 같아요.”
요리 선생님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 올라간 중국에서 온 진가련.
하지만.
어디에나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법!
미유키는 고작 칼을 쥔 손이 몇 번 스사삭! 움직였을 뿐인데, 벌써 재료 손질이 끝나있다.
미유키가 손을 번쩍 들어서 요리선생님을 부른다.
“네? 일본에서 온 미유키씨. 무슨 일이죠? 혹시 재료 손질이 어려워서 그런 건가요?”
미유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는 요리 선생님.
“재료 손질 다 끝냈는데요. 다음에는 뭘 하면 되나요?”
“네? 벌써 재료 손질이 끝나다니요. 미유키씨. 아무리 칼질이 어려워도 그렇게 대충대충 재료를 손질하면··· 어? 어어! 이럴 리가 없는데!”
가지런히 손질된 깻잎과 통감자, 얼갈이배추, 대파.
심지어 요리선생님이 손질한 야채들 보다 더 정갈하고 깔끔하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요. 선생님?”
미유키가 귀엽고 큰 눈망울로 요리선생님을 올려다본다.
“아, 아니요. 이렇게 하는 게 맞기는 한데···”
자신보다 더 능수능란한 미유키의 재료 손질 실력에 자존심이 상한 한식 요리경력 20년의 요리선생님.
열심히 노력했지만 일류가 될 수 없어서 지금은 일일요리교실에서 알바나 하고 있지만, 한식을 처음 만들어보는 참가자가 자기보다 잘했다고 티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요리선생님의 속마음도 모른 채 미유키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아, 역시. 감자를 더 잘게 썰걸 그랬나? 너무 대충 썰어서 선생님 마음에 안 드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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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 험. 미유키씨. 집에서 요리 좀 하셨나 봐요. 재료손질은 그만하면 됐고, 이번에는 요리의 꽃. 간을 맞춰보도록 하죠.”
가끔 뛰어나게 칼을 다룰 줄 아는 학생들도 일일 요리수업에 참여한다.
한국요리에는 초보여도 각자의 나라에서 오랫동안 요리를 한 참가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보통은 요리를 전문으로 배운 요리선생님 실력에는 못 미치지만.
요리 선생님이 정갈하게 마치 일류 요리사의 요리처럼 썰린 미유키의 식재료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래. 일본에서 식당 알바라도 빡세게 했나보지. 그래봤자, 어차피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 건. 바로 완벽한 요리 간! 이다. 아무리 보기 좋은 음식이라도 맛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이번에야 말로 애송이 참가자에게 요리 선생님으로서의 실력을 보여주고 말테다!’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지고 참가자들 앞에 선 요리선생님.
젋었을 적 다 타버린 줄 알았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자! 다들 재료 손질은 끝내셨죠?”
미유키 때문에 재료 손질 시간이 짧게 끝났다.
아직 재료 손질을 끝내지 못한 참가자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선생님! 너무 재료 손질 시간이 짧아요!”
“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코리안 타임! 과연 한 순간의 실수도 용서치 않는군요!”
“아! 이제 겨우 감자 한 개 잘랐는데. 요리 시간이 이렇게 짧다니! 우리 필리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특히 동남아시아나 남미, 아프리카에서 참가한 여유롭고 느린 문화권의 학생들의 불만이 컸다.
하지만 이미 미유키와 경쟁구도를 마음대로 잡아버린 요리선생님.
그의 귀에 다른 학생들의 불만은 들리지 않는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손질된 재료를 넣고, 끓기 시작하면 옆에 준비 된 조미료들 보이시죠?”
각 참가자들의 자리에는 양조간장, 국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맛술, 고주청, 후춧가루 등이 놓여 있다.
“준비된 조미료들을 사용해서 양념장을 만들고 넣어주시면 됩니다. 양념장을 만드는 방법은 제 설명을 잘 들으시고 따라해 주시면 되고요”
요리선생님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감자탕의 양념장을 만드는지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에 나오는 방법대로 양념장을 만든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감자탕을 많이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감자탕 특유의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원래 요리의 간을 맞춘다는 것이 음식을 맛보면서 조금씩 조절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다들 맛있는 감자탕을 만들 수 있도록 분발하세요. 감자탕이야 말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전통요리이자, 술 마신 다음날 숙취를 얼큰하게 풀어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요리입니다. 한국에서는 감자탕만 잘 만들어도 부인 혹은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어요!”
감자탕만 잘 만들면 부인 혹은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미유키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기 시작한다.
‘감자탕만 잘 만들면 우리 시현이 오빠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단 말이야? 꼭. 해내고야 말겠어. 세계 최고의 감자탕을 만들어서 우리 오빠에게 사랑받을 거야!”
물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감자탕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유키는 역시 미유키 답게 거침없이 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열정에 불타 옆에 있는 조미료들로 감자탕에 넣을 양념장들을 만들고 있는 미유키,
그런 그녀의 능숙한 손놀림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요리선생님.
아무리 봐도 미유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미유키는 나이는 어리지만 일본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일식당 다래정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자 요리전문가.
한식은 만들어 본적이 없지만, 다섯 살 때부터 지독하고 혹독하게 요리 수업을 받아왔다.
요리는 결국 맛이라는 하나의 길로 통하는 법.
그녀의 전문적인 실력은 당연히 일반적인 요리사들이 따라 올 수준이 아니다.
미유키의 능숙한 손놀림을 보던 요리선생님이 은근 슬쩍 수업 참가자들 사이를 걸으며 요리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한다.
“사샤씨. 이건 스튜가 아니라 감자탕입니다. 감자탕에 케첩을 넣으면 안되지요!”
러시아에서 온 금발머리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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