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 미소년이 살아남는 법-209화 (208/413)

〈 209화 〉 미유키와 데이트(8)

* * *

“이건 내거라고! 어젯밤부터 계란한판을 100원에 얻는 꿈을 꾸며 밤잠을 설쳤어. 알아!”

“흥. 초보자는 입만 살아서 징징거리는 법이지! 문답무용(??無?)!”

꽤나 장보기 고수로 보이는 이마에 주름살 가득한 한국 아저씨가 마치 허공답보를 하듯 날랜 발걸음으로 사람들을 가르며 순식간에 계란 한판 100원! 품목에 근접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미유키가 아니다.

“주군 먼저 가십시오! 저희가 적군들을 막아보겠습니다.”

야쿠자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아 길을 만들어가는 미유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야쿠자 아저씨들이 한국 아저씨 좀비 때에 의해 한 명씩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희생 없는 승리는 없는 법!

마침내 야쿠자 아저씨들의 희생을 딛고 계란 한판 100원! 판매대 앞에 도착한 미유키와 그런 그녀를 힘으로 밀어보려는 고릴라 같은 덩치의 아저씨.

“비켜! 어디서 빼빼 마른 일본년이 나타나서 감히 내 물건을 노려!”

쿵!

발을 헛디딘 척 미유키를 힘으로 밀어보려는 아저씨.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 정도의 엄청난 덩치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미유키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미유키가 살짝 방향을 틀며 덩치 큰 아저씨의 무게중심을 비켜내 버리자.

고릴라같은 아저씨가 그대로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데구르르 굴러서 E­마트 기둥에 쾅! 하고 나가 떨어져 버리고 만다.

어느 덧 남은 계란한판 100원 품목은 한 개.

그리고 그 마지막 남은 계란한판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는 미유키와 허공답보와 같은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센 몸놀림을 보여준 이마에 주름살 가득한 한국 아저씨.

“허어. 이거 왜인 중에도 이정도의 고수가 있을 줄이야. 방금 아가씨가 펼친 기술은 천근추(???)?”

천근추!

천근추라 하면 중국 매화권(?花?)무술의 한 수법으로 적의 압도적인 힘에 맞서 버텨낼 때 날아가지 않게끔 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중국 무술의 고수만이 전개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아저씨야 말로 대단하던 걸요? 사람들을 피해 움직이는 그 물이 흐르는 듯한, 유려한 경공술. 혹시 종파가 태극권 아니신지요?”

태극권이라는 말에 아저씨가 허허 웃음을 터트린다.

“아가씨 보는 눈썰미가 꽤 있군. 이거 내 제자로 삼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말을 내 뱉은 이마에 주름이 가득한 아저씨가 곧바로 손을 움직여 마지막 남은 계란 한판을 낚아채려 한다.

“만나는 장소가 좋지 않았어. 이건 내가 꼭 가져가야 하거든. 안 그러면 우리 애 엄마의 독공술에 오늘도 배앓이를 할지 몰라.”

역시 아무리 태극권의 고수라 할지라도 아내의 바가지는 무서운 법.

더군다나 이마에 주름 가득한 아저씨의 아내분은 당가쪽에서 무술을 배운 독공의 고수인 것 같다.

“저 역시. 이것만은 우리 오빠의 신부가 되기 위해 양보 못해요!”

한 쪽은 미래의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다른 한 쪽은 아내의 바가지를 피해.

달걀 한 판을 놓고 살벌한 비무가 시작되었다.

* * * * *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미유키와 아저씨의 손.

그리고 미유키와 아저씨의 손에서 왔다 갔다 하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계란 한 판.

미유키와 아저씨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계란 한판을 차지하기 위해 비무중이다.

“허어. 이거 약관의 나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애송이 같은데, 손이 제법 무섭군 그래.”

“아저씨야 말로 이제는 후진기수나 양성해야 할 이빨 빠진 호랑이로 보이는데, 근력이 이십 대에 못지않네요.”

용호쌍박!

마치 호랑이와 용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고작 계란 한판을 100원에 차지하기 위해 두 명의 고수가 재능낭비를 하고 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그런데, 이렇게 미유키와 아저씨의 비무를 보고 있자니 문득 다시 한 번 이곳이 내가 원래 살던 세계와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 와 닿았다.

분명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무림 고수라고 자처하며 태극권, 소림권, 형의권 등을 펼치는 대가들은 사기꾼에 가까웠다.

거의 백이면 백!

그런 자칭 무림 고수들은 종합격투기를 배운 파이터들에게 제대로 된 무술 한 번 펼치지 못하고 형편없이 맞고 곤죽이 되어 나가 떨어졌다.

종합격투기를 어설프게 배운 연습생들조차 자칭 무림고수들이 자세를 제대로 잡기도 전에 흠씬 두들겨 패서 오히려 그들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미유키와 태극권을 쓰는 아저씨의 공방을 보니.

이 곳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원래 세계 속 무협지 속에서나 존재하는 기(?)를 운용하는 무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매섭게 휘몰아치는 미유키의 권술과 반대로 그녀의 권술을 부드럽게 받아서 다시 역이용하는 아저씨의 태극권.

미유키는 절도 있고 파괴력 있는 타격 형식의 무술을 구사한다면, 아저씨는 유연하면서 부드러운 마치 물이 사방으로 주위를 감싸는 것과 같은 무술을 구사했다.

계속해서 아저씨의 부드러운 태극권에 권술이 막히자 초조해진 미유키가 이번에는 각법을 사용한다.

빠르면서도 날카로운 발차기!

하지만 마치 다람쥐처럼 뒤로 재주넘기를 하며 피해내는 아저씨.

여전히 계란 한 판은 아저씨의 손에 들려 있다.

파바밧!

미유키가 아저씨에게 계란 한 판을 빼앗기 위해 다시 한 번 빠르게 뒤 돌려차기를 날린다.

마치 한 마리의 학이 승천하는 것과 같이 우아한 동작!

아저씨도 이번에는 피하기에 급급해 손에 들고 있던 계란 한 판을 그만 놓쳐 버리고 말았다.

공중에서 붕 떠 있는 계란 한 판!

이대로라면 계란은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하고 전부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아저씨와 미유키 둘 다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계란 한 판을 몸으로 다이빙해서 받아내는 야쿠자 대장 이노우에씨!

“아가씨! 제가 목숨을 다해 계란을 지켜냈습니다!”

배 위에 놓여진 계란 한 판을 쓰다듬으며, 비장한 얼굴로 미유키를 바라보는 이노우에.

그의 희생으로 아저씨와 미유키의 숨 막히는 계란 한판을 둔 공방은 미유키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잘했어요, 이노우에씨. 이 번 일은 다 이노우에씨의 공이군요. 잊지 않겠습니다.”

“아가씨······· 언제든지 아가씨가 필요하다면 이. 이노우에! 아가씨를 위해 몸을 내 던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미유키의 칭찬에 감동 받은 듯 이노우에가 무릎을 꿇고 계란 한 판을 미유키에게 바친다.

거, 참.

고작 계란 한판에 참으로 비장하기 그지 없다.

자랑스럽게 100원을 계산하고 계란 한 판을 손에 든 미유키가 이마에 주름이 많은 아저씨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한국에 무술 고수분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만나 뵌 것은 처음이군요.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 어르신께서는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으시련 지요?”

그런 미유키를 향해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저씨.

“이거 아가씨에게 한 방 먹었구먼. 깨끗하게 승복했네. 역시 믿을만한 동료를 두는 것 보다, 더 큰 힘이 되는 건 없지. 뭐,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바가지나 좀 긁히면 될 일이니. 너무 근심치는 말게나. 그나저나 아가씨 옆에 서 있는 저 소년이 바로 아가씨가 말한 미래의 신랑. 그 오빠인가?”

미래의 신랑이라는 말에 미유키의 볼이 복숭아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네. 어르신. 역시 보는 눈이 탁월하시군요. 단 번에 알아보시고.”

“그래? 과연. 기골이 좋아 보이는 군. 자네 무술을 배워 본 적은 있나?”

갑자기 화제가 계란 한 판에서 나로 전환되었다.

나도 모르게 포권을 취하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무슨 무협지도 아니고 오글거리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니 자연스럽게 포권이 나온다.

“아니요. 어르신. 그냥 체육관에서 미트나 좀 치고 종합격투기만 조금 배웠습니다.”

“종합격투기? 에이. 시간이 아깝네. 그려. 요즘에 누가 종합격투기 같은 구시대 싸움법을 배운다고. 언제 시간나면 한 번 연락하고 찾아오게. 내가 제대로 한 번 봐 줄 테니.”

“예? 예··· 감사합니다. 어르신.”

공손하게 이마에 주름이 가득한 아저씨가 보여주는 QR코드를 찍자, 카카오통에 친구 추가가 된다.

“그럼 잘들 가게. 잘 어울려 보이는 한 쌍이야. 에이. 여보야가 오늘은 또 반찬에 무슨 독공을 펼치려나. 벌써부터 배가 아파오려고 그러네.”

그렇게 한숨을 쉬며 점점 멀어져가는 태극권 고수 아저씨.

반면에 미유키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우며 기뻐하고 있다.

“오빠. 저 해냈어요. 100원에 계란 한 판 사기. 이 정도면 오빠 신부가 되기 위한 기본 테스트는 통과 한 거죠?”

“네???”

사실 미유키 정도의 뛰어난 미모와 재력. 거기다 명석한 두뇌라면 미유키와 결혼하기 위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할 사람은 나지. 미유키는 아니다.

당연히 미유키는 이런 희한한 테스트를 통과해야할 이유 따위도 없었다.

하지만 치열했던 한국 아저씨들과의 세일 품목 획득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기뻐하는 미유키를 보니 그렇게 말 할 수는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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