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샤넬 프라이빗 클럽 파티(13)
* * *
살짝 화가 난 듯한. 진영이 누나의 목소리.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데 미유키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한다.
“누구에요? 진영이 누나라니. 혹시 JTK 김진영 언니?”
미유키의 목소리를 전화로 들은 진영이 누나가 심각한 목소리로 화를 낸다.
“야! 박지훈. 너 미쳤어? 너 설마 지금 여자랑 같이 있는 거야?”
한 번 예슬이랑 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들킨 전적이 있기 때문에 진영이 누나는 내가 여자와 만나는 것에 민감하다.
아,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아, 누나. 그런 게 아니라요. 잠깐 차만 얻어 타고 가고 있는 중인데.”
“뭐? 차? 너 행사장 빠져 나간거야? 그 것도 여자랑? 말도 없이?”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문제가 커져만 간다.
이걸 어떡하지? 잘못하면 진영이 누나한테 뼈도 못 추리겠는데.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는데, 미유키가 자기를 바꿔주라고 손짓한다.
하아·······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미유키가 진영이 누나를 아는 것 같으니까, 미유키에게 전화기를 넘겨준다.
“곤니찌와. 진영상. 아나타와 미유키데스.”
미유키라는 말을 들은 진영이 누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잠잠해 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유키아 진영이 누나와의 대화.
일본어로 얘기해서 정확히 이해는 못했지만, 잘 풀려가는 것 같다.
한 참 동안 둘이 대화를 한 후 미유키가 나에게 다시 핸드폰을 돌려준다.
“받아보세요. 지훈씨.”
미유키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자 한 결 부드러워진 진영이 누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박지훈. 너 미유키씨랑 같이 있는 거야?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난 또··· 미유키씨가 투자 때문에 너랑 상의 할게 있다고 외부에서 미팅하자고 했다며? 우리 지훈이. 많이 컸어. 투자자도 따로 만날 줄 알고.”
아, 미유키가 나를 커버해 줬구나.
역시 미유키는 일본 최고의 대학교를 어린 나이에 들어간 천재답게 비즈니스 쪽으로는 눈치가 빨랐다.
“예, 누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래. 지훈아. 미유키씨랑 회의 잘하고 여기는 신경 쓰지 마. 누나가 알아서 할게. 아, 그리고 지훈아.”
“네?”
진영이 누나가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인다.
“미유키씨가 지훈이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잘해 봐. 누나는 너랑 미유키씨랑 만나는 거 찬성이니까. 지훈이는 아직 신인이니까, 기자들 눈에만 안 들키게 신경 쓰고. 알았지? 미유키씨 같은 재벌가랑 좋은 사이가 되면, 지훈이 뿐만 아니라 회사입장에서도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는 거니까. 그럼 좋은 시간 보내고. 수고했어.”
딸칵.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진영이 누나.
하아·······
그나저나 예슬이와 데이트하다가 들켰을 때와는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지는 온도 차이다.
그때는 정규앨범에 신경써야하니 여자는 만나면 안 된다고 했으면서.
미유키와의 만남은 응원한다니.
이것이 바로 철저한 손익으로 관계가 이루어지는 비즈니스의 세계로구나.
다시 한 번 그 냉정한 세계를 실감한다.
“어때요? 진영이 언니랑 얘기 잘 됐어요?”
미유키가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본다.
“네. 미유키씨 덕분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미유키가 갑자기 손가락을 하나 펴서 나에게 보여 준다.
“자, 그러면 1 대 0. 지훈씨가 저한테 빛이 생긴 거네요?”
“네? 그건 좀 억지 아닌가요? 미유키씨가 같이 빠구리치자고 해서 빠구리 쳤다가 진영이 누나한테 걸린 건데요.”
나도 모르게 미유키한테 전염되었는지 땡땡이가 아니라 빠구리라고 말하고 있다.
미유키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린다.
“아, 그··· 이제 저도 그 빠, 빠구리라는 말 무슨 의미인지 아니까 너무 노골적으로 사용해 주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진영이 언니한테 제대로 얘기 못 들으셨나 봐요?”
“네? 어떤?”
“그쪽한테 투자 할 수도 있다는 얘기.”
“네? 그거 그냥 저랑 같이 있는 거 커버 해 주려고 한 얘기 아닌가요?”
“네?”
미유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서 반짝 거린다.
“아니요. 사업은 사업. 지훈씨 커버 해 주려고 사업 얘기를 장난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희 가문이 SN 엔터테인먼트에 투자 중인데. 조건만 맞는다면 투자 대상을 JYK로 바꿀 생각도 있습니다. 자세한 사업 얘기는, 저희 회사 실무진들과 JYK 실무진들이 하겠지만.”
투자?
사실 연예계에 있어서 투자라는 건 어느 것보다 중요한 사항이다.
투자가 있어야 우수한 뮤지션을 고용해서 퀼리티 높은 음반도 제작할 수 있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규모 홍보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왜 저한테·······”
사실 투자와 관련된 얘기는 신인 아이돌 따위와 나눌 얘기는 아니다.
미유키가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 거린다.
“그거야, 지훈씨가 아마 우리 회사에서 처음으로 투자하는 JYK의 가수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요. 이제 왜 지훈씨가 저에게 빛이 생겼는지 아시겠죠?”
아·······
진영이 누나와 미유키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어서 잘 이해하지는 못 했었지만 그런 얘기가 오갔었구나.
그래서 진영이 누나가 나와 미유키 사이를 오해 한 것이고.
사실 어떤 아이돌을 콕 찍어서 투자를 해 주겠다고 지명하는 것은 보통 없는 일이라, 진영이 누나에게 나와 미유키 사이를 의심 받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
“그런데 왜 저를?”
미유키가 차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수줍은 듯이 얼굴을 붉힌다.
“그게 지훈씨를 보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요. 지훈씨랑은 전혀 다른 외모인데, 이상하게 지훈씨를 보면 그 오빠가 생각이나요. 그리고 그 오빠는 제가 아는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귀엽고 착하고 상냥하고 똑똑하고····”
그 오빠라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미유키의 얼굴이 달궈진 주전자처럼 붉어졌다.
푸쉬쉬! 하고 머리에서 당장에 김이라도 나올 것 같다.
“그. 방금 전에는 사업은 장난이 아니니까, 개인감정으로 하지 않는다고···”
개인감정이라는 말에 미유키가 다시 한 번 날카롭게 눈빛을 빛낸다.
“아니죠! 이건 말이죠. 여태까지 단 한 번도 틀려 본 적 없는 사업가로서의 직감입니다. 제가 선택한 남자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남자. 그런 남자를 사람들이 싫어 할리 없습니다! 물론 우리 오빠가 더 잘생기고 귀엽고 예쁘고 상큼하고··· 헤으응. 헤으응.”
이상하게 그 오빠 얘기만 나오면 냉철한 미유키가 정신을 못 차린다.
지금 미유키의 표정은 Z드래곤을 바라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황홀해 보인다.
도대체 대한민국 최고의 아티스트라는 Z드래곤조차 오징어로 만들어 버린 그 남자는 누구인거야!
Z드래곤도 오징어가 되는데, 나는 근처에도 가지 못 할 정도로 엄청난 남자겠지?
이상하게 질투가 나기 시작한다.
“그 남자는 뭐 하는 분이신데요?”
그 남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미유키의 표정이 급 밝아지며 목소리에서 활기가 넘쳐난다.
“첫 눈에 미유키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그 오빠는, 회사원이었어요.”
회사원?
일 개 회사원이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션 Z드래곤과 현재 가장 떠오르는 아이돌 박지훈을 쩌리로 만들어 버렸다고?
역시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은 것인가?
“그러면 그 남자 분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
나도 모르게 미유키가 좋아하는 남자의 신상을 꼬치꼬치 캐묻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떠오르는 아이돌이 평범한 회사원한테 질투 따위나 하고 있다니.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그,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요! 그냥 다 좋아요. 다! 오빠를 보자마자 미유키 첫 눈에 심쿵 해 버렸어요!”
도대체 어떤 남자야!
한국 최고의 미소년 Z드래곤과 박지훈을 봐도 무덤덤한 미유키를 외모로 한 눈에 사로잡아 버리다니.
하아·····
그런 남자가 곁에 있다면, 내일 미유키와의 약속은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완벽하게 연예인 메이크업까지 받고 명품 의상까지 입었는데 미유키에게는 그냥 아이돌 A쯤인 나다.
평범한 옷차림에 메이크업도 받지 않은 유시현으로서는 그저 초라할 뿐이다.
한편 미유키는 좋아하는 남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신이 나서 물어보지도 않은 말까지 하기 시작한다.
“사실 미유키 지금 너무 떨려요. 오늘은 잠을 못 잘지도 모르겠어요. 내일 그, 멋있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오빠랑 데이트 약속 있거든요. 내일은 꼭 오빠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미유키만의 것으로 만들고 말겠어요!”
으응?
내일 그 오빠를 만나기로 했다고?
그러면 미유키는 이중 약속을 잡기라도 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나를 오전에 만나고 밤에는 그 좋아하는 오빠를 만나려는 걸까?
어느 쪽이든 초라한 건 마찬가지다.
“저기 초면에 이런 것 물어보는 것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네? 예.”
미유키가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에 대한 얘기만 계속하자, 살짝 삐진 나는 성의 없게 대답한다.
“정말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제가 한국 남자랑 얘기 해 본적이 별로 없어서요. 일본 남자랑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네. 뭔데요?”
딱딱해진 내 말투 따위는 전혀 신경 안 쓰고 미유키가 부끄러운지, 복숭아처럼 붉어진 얼굴로 말한다.
하얀 피부에 복숭아처럼 붉어진 볼이 너무 귀엽고 인형처럼 아름다워서 더 속이 쓰리다.
도대체 이렇게 천사처럼 아름다운 미유키가 첫 눈에 반해버렸다는 그 운 좋은 녀석은 누구인거야!
“그 한국 남자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게. 으으···”
“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지.
계속해서 머뭇거리고 말을 못하는 미유키.
답답해서 그녀를 다그쳐 본다.
“아니, 미유키씨. 말을 해야 제가 의견을 말해주죠.”
“네? 네!! 그러면, 미유키 말 할게요. 그러니까. 한국 남자는 혹시 첫 데이트 때 같이 호텔에 가면 이상하게 생각할까요? 요즘 일본에서는 정말 사랑하면 여자의 처음을 주는 것이. 평생가약의 증표라고나 할까요? 그, 그런 것인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