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샤넬 프라이빗 클럽 파티(11)
* * *
그제야 왜 하이린이 그토록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저 분홍머리 미친년을 대했는지 알 것 같다.
단순히 싸움을 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SN의 대주주.
그 것만으로 이미 승패는 정해진 것이다.
미유키는 애초부터 그녀들이 상대할 수 있을만한 레벨이 아닌 것이다.
하이린의 설명을 들은 혜민과 설영이 곧장 비즈니스 모드로 돌변한다.
아무리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는 걸그룹 아이돌이라고 할지라도,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그저 광대에 불가하다.
인기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아니 인기라는 것을 만들고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하이린의 말을 듣고 다시 미유키를 보니, 그제야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흥분해서 놓쳤던 것들.
미유키가 입고 있는 옷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작품이다.
그가 만든 한정판 옷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 만으로는 살 수 없다.
거기다가 그녀의 한 손에 들린 우아하면서 고풍스러운 핑크색 가방.
에르메스 버킨 백.
경매가가 무려 5억 원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방 중에 하나이다.
그 밖에 미유키가 하고 있는
목걸이와 귀걸이.
시계와 팔찌.
대충 봐도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고가 제품들이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하늘위에 또 다른 하늘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니까.
* * * * *
“죄송합니다. 미유키님. 저희가 실수 했습니다. 지훈씨랑 예슬이 언니가 미유키님 친구 분인 것도 모르고··· 다시는 이런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90도로 고개를 숙여 잘못을 시인하는 판도라 멤버들.
굴욕적이지만 미유키의 정체를 알아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녀들도 연예계라는 험난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존심 따위 얼마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
미유키가 역시나 무표정한 얼굴로 판도라 멤버들을 바라보며 관심 없다는 듯 말한다.
“친구? 친구 아닌데? 그냥 우연히 내가 아는 남자랑 닮은 게 눈에 띠여서 도와준 것뿐인데. 하아··· 사실 그 쪽들이 저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하던 다음부터 난 상관없어. 그저 오늘은 내 눈에 들어왔으니 막아준 것뿐이고. 그리고 당신들.”
미유키가 나와 예슬이를 차가운 목소리로 부른다.
“다음부터는 이런 행운 없을 거니까, 처신 잘하고. 무슨 말인지 알겠죠?”
내가 알던 미유키가 맞나?
내가 알던 미유키는 허점투성이에 맹한 소녀인데.
지금 그녀의 말투가 너무나 이지적이며 차갑다.
마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날 것 같은 냉철한 모습이다.
“네. 고맙습니다.”
예슬이가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만 미유키는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어 가는데.
갑자기 사방이 밝아온다.
뒤를 돌아보니 은색의 화려하면서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자동차 한 대가 헤드라이터를 키며 들어오고 있다.
끼이익!
그리고 우리들 앞에 멈춰 선 자동차.
롤스로이스 팬텀.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가 1등급 자동차라면 롤스로이스 팬텀은 마사지사와 미슐랭스타 셰프가 탑승한 고급 전용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재벌들을 위한 자동차였다.
그리고 그 고급 전용기와 같은 자동차에서 내리는 한 남자.
선글라스에 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간지와 카리스마가 아우라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있다.
차에서 내린 남자를 발견하고 가장 먼저 탄성을 내지른 것은 바로 판도라 멤버 설영이었다.
“오빠. Z드래곤 오빠!”
바로 이 남자가 Z드래곤?
Z드래곤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아이돌을 통 틀어서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부동의 NO.1 스타였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탑스타로 인정받는 Z드래곤.
그의 활동범위는 이미 한국을 벗어난 지 오래다.
사실 Z드래곤은 더 이상 아이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혼자만의 영향력이 이미 대형 기획사인 SN, YJ, JYK만큼 커 버렸기 때문이다.
미유키도 Z드래곤은 알아보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반짝 거리며 빛난다.
마치 식당에서 나를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다.
“다들 여기서 뭐해요?”
Z드래곤이 그를 향해 달려오는 설영을 무시하며, 판도라의 멤버 혜민에게 말을 건다.
혜민도 Z드래곤에게는 마치 한 명의 10대 소녀라도 된 듯 수줍어한다.
“오, 오빠. 오빠가 여기는 무슨 일로?”
“응. 볼 사람이 있어서 왔지. 어. 미유키도 여기 있었네?”
미유키 역시 빨갛게 볼을 붉히며 인사를 한다.
“네. Z드래곤 오빠. 오랜만이에요.”
“응. 그러네. 일본 프로모션 때 이후로 처음이네. 잘 지냈어?”
“네. 오빠.”
수줍어하며 고개를 숙이는 미유키.
Z드래곤을 보고 수접어하는 미유키를 보니 괜히 질투가 난다.
“오빠가 밥 사준다고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니까. 조만간 연락 해. 알았지?”
“네. 오빠. 미유키 요즘에 너무 바빠서요. 오빠도 바쁘고. 그래도 조만간 봐요.”
응? 미유키가 바빠?
한국 최고의 아이돌 Z드래곤의 식사 초대를 거절할 정도로?
내일 나랑 만나기로 했는데?
설마 유시현이 Z드래곤을 이긴 건가?
Z드래곤을 향해 타올랐던 질투심이 사그라진다.
이런 걸 정신승리라고 해야 하나?
사실 Z드래곤은 감히 나 따위가 질투를 느낄만한 존재가 아니다.
내가 봐도 Z드래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품격.
그리고 다비드 상 같이 조각 같은 외모는 아무리 내가 이세계에 와서 미소년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감히 비빌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사람의 외모를 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면 Z드래곤의 인간 같지 않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외모는 나보다 두 등급은 더 높을 것이다.
그야말로 천상계에나 존재하는 신과 같은 완벽한 외모다.
넋을 놓고 Z드래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Z드래곤이 미소 지으며 말을 건다.
“지훈씨. 지훈씨도 여기 있었네요. 음방 방송 때 보고 오랜만에 보네요. 잘 지냈죠?”
그의 완벽한 외모에 얼어붙어서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한다.
“네? 넵. Z드래곤 선생님. 아, 아니 선배님도 잘 지내셨죠?”
Z드래곤 선생님이라는 말에 Z드래곤이 푸훗 웃으며 미소 짓는다.
“지훈씨. 아무리 내가 아이돌로 데뷔한지 오래되었다 해도 선생님은 좀 너무 한다. 그리고 우리 저번에 형 동생 하기로 했잖아요. 기억하죠? 말 편하게 해요.”
“아. 넵! 예? 예···”
아무리 노력해도 연예인중의 연예인 Z드래곤 앞에 서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Z드래곤 오빠! 우리 밥 언제 먹어요?”
“오빠! 우리 콘서트 특별 게스트로 한 번 들려주세요. 네에~!”
나까지 인사를 끝낸 Z드래곤이 계속해서 들러붙는 판도라 멤버들에게 귀찮은 파리 쫒듯이 건성건성 대답한다.
“아. 알겠어요. 나중에, 나중에.”
아무리 현재 대한민국 걸그룹 탑 티어 판도라라고 해도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자 세계적으로까지 탑스타로 인정받는 Z드래곤 앞에서는 아양을 떠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하지만 Z드래곤의 관심은 오직 한 소녀만을 향하고 있었다.
“예슬아. 미안해. 미국에서 빌보드 시상식 참여하니까. 전용기 타고와도 너무 늦었네. 예슬이 첫 공연인데 늦으면 안 됐는데 말이야.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 용서해줄래?”
신사적이고 품격 있는 Z드래곤의 식사초대.
예슬이를 바라보는 판도라 멤버들의 얼굴이 질투가나서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예슬이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오빠. 아직 샤넬 프리미엄 클럽 파티 안 끝났는데요?”
Z드래곤이 예슬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괜찮아. 어차피 이제 볼 것 도 없어.”
그렇게 말하며 예슬이의 귀에 작게 속삭인다.
“판도라 애들 피날래 공연 밖에 안 남았는데 뭐. 그리고 너희 멤버들이랑 형숙 대표님한테는 내가 말해뒀으니까, 예슬이는 차에 타기만 하면 돼. 알았지?”
이미 다 말해두었다는 Z드래곤의 말에 예슬이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 거린다.
“알겠어요. 오빠.”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못 내 아쉬운지 나에게만 향해있다.
Z드래곤도 그걸 알아챘는지, 살짝 그의 붉은 입술을 깨문다.
아무리 완벽한 인간이라고 해도 가질 수 없는 여자에 대해서는 질투심이 느껴지나 보다.
“지훈 오빠. 저 가 볼게요. 이따가 연락할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남들이 보든 말든 애정이 가득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예슬이.
나 역시도 예슬이가 Z드래곤과 떠나는 것이 아쉽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예슬이를 보내 줄 수 밖에 없다.
“응. 예슬아. 이따 연락하자.”
귀여운 예슬이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못 내 아쉬운 발걸음으로 뒤를 돌아서 Z 드래곤의 롤스로이스 팬텀에 타는 예슬이.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한가 보다.
Z드래곤 때문에 예슬이와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더 예슬이와 함께 있고 싶어진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흔한 것보다 누구나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소중한 걸 원하는 게 바로 사람의 본성이다.
부우웅!
Z드래곤의 차 롤스로이스 팬텀이 예슬이를 태우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뒤를 돌아서자 판도라 멤버들도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샤넬 프리미엄 클럽 파티의 마지막 무대는 그녀들이라고 했으니.
파이널 무대를 준비하러 간 것이다.
하아···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그렇게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는데, 그런 나를 흥미롭다는 지켜보는 미유키.
그녀가 나를 보며 요염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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