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샤넬 프리미어 클럽 파티(7)
* * *
“아, 그거야 당연하죠. 혜민씨.”
혜민의 말을 진영이 누나가 중간에 끊었다.
“물론 수민이 언니랑도 추후 협의 할 겁니다. 회사 대 회사차원으로, 지금은 그저 판도라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들른 사적인 자리에요. 아무리 회사끼리 합의를 한다고 쳐도 피쳐링을 하는 건 판도라 분들이니까요. 자 그럼. 판도라 분들은 우리 지훈이 정규앨범에 피쳐링으로 참여 해 주시는 거 동의하시는 거죠?”
진영이 누나가 달변으로 판도라 멤버 혜민을 몰아붙인다.
혜민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 시작한다.
“대표님. 저야 지훈씨 앨범에 참여하면 영광이죠. 그런데. 저희 다른 멤버들 의견도 중요하고. 다들 바쁜 스케줄들이 있어서··· 특히 설영이는 이번에 새로 촬영 들어간 드라마도 있고요.”
“아. 드라마요? 그런데 그 드라마 액션씬이 많나 봐요? 설영씨 손에 피 묻은 것 같은데?”
눈썰미 좋은 진영이 누나가 설영의 손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발견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형들을 구타할 때 묻은 피가 아직 손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급하게 설영이 숨겨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진영이 누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한다.
“요즘에는 뉴튜브가 발달해서 아무리 잘 나가는 걸그룹이라도 한 번 민심 어긋나면 바닥 간다던데. 판도라분들도 조심하셔야죠. 안 그래요? 이런 지루한 얘기 계속 할까요? 아니면 우리 행복하게 지훈이랑 같이 작업하는 얘기 할 까요?”
진영이 누나의 눈빛을 읽은 혜민이 입술을 꽉 깨문다.
하지만 곧 해맑게 웃으며 진영이 누나를 향해 말한다.
“그러게요. 요즘 뉴튜브에 근거 없는 뜬소문이 그렇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대표님. 우리 그런 지루하고 유치한 얘기는 그만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지훈씨 피쳐링 작업. 얘기나 해 보죠. 생각해 보니까, 지훈씨가 노래는 좀 약하잖아요. 그 부분을 저희 메인 보컬 하이린이 커버하고···”
구체적으로 내 정규앨범 작업에 관한 얘기가 시작 되었다.
역시 진영이 누나의 사업 수단은 대단하다.
약점을 놓치지 않고 캐치해서 이용한다.
현재 내 가수로서의 인지도 레벨이 5라고 한다면, 판도라의 인지도는 레벨 9정도다.
그야 말로 엄청난 차이.
판도라가 내 앨범의 피쳐링으로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은 뻔하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저 싸가지 없는 년들이랑 같이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괴롭겠지만, 회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정말 큰 대어를 잡은 것이다.
거기다가 내 가장 큰 약점인 보컬도 피쳐링 곡에서는 커버가 가능하다.
하아···
“그럼, 잘 부탁드려요. 판도라 분들.”
“저희가 잘 부탁드리죠. 진영 대표님.”
“에이. 대표님은 무슨. 그냥 언니라고 해요. 언니.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진심이 전혀 담기지 않은 대화들이 끝나고, 진영이 누나가 차가운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내 어깨를 손으로 슬쩍 툭 치며 말한다.
“지훈아. 얼굴 풀어. 너 싫은 티 너무 낸다. 나도 지훈이가 쟤네들 싫어하는 거 아는데. 이건 일이잖니. 사적인 감정으로 접근하지 말고, 프로답게 행동하자.”
잠시 생각을 해보았지만, 진영이 누나 말이 맞았다.
나도 굳은 얼굴을 풀며 진영이 누나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누나.”
“그래, 지훈아. 누나는 잠시 SN 사람들 만나봐야 할 것 같으니까. 먼저 자리로 돌아가. 알겠지?”
“네. 누나.”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진영이 누나와 헤어졌다.
마침 예슬이랑도 약속이 있기 때문에 진영이 누나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예슬이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어디에선가 귀여운 소리가 들린다.
“냐옹~ 냐아옹~!”
보아하니 아기 고양이 소리인데.
최근 들어 길냥이들이 차 안에 숨어들어가 있다가 차에 깔려 죽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는 집사로서 걱정이 된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예슬이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까지 시간도 남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하 주차장에서 아기 고양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냐앙~ 냐아옹!”
점점 더 가까워지는 고양이 소리.
그리고 보이는 하얀색과 검은색이 조화롭게 난 귀여운 아기 고양이.
반짝반짝 거리는 큰 눈에 작고 까만 코.
아직 어려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지 비틀비틀 거리고 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아기 고양이를 향한다.
집사로서의 본능이 발동 된 거다.
가까이 다가가도 아기 고양이는 갸르릉~ 거리면서 그 자리에 있다.
보통 길냥이들은 도망가기 마련인데.
자세히 보니 몸이 삐쩍 마르고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도망을 안 간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서 못 간 것이다.
불쌍한 마음에 아기 고양이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되어 쓰다듬어 주었다.
만져주자, 사람의 손길이 싫지 않은지 귀여운 얼굴을 손에 부비며 갸르릉 거린다.
“엄마는 어디 갔니? 고양아?”
아기 고양이가 워낙 귀엽게 생기기도 했지만, 사람까지 잘 따르자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보아하니 몸이 약해서 엄마 고양이에게 버림 받은 것 같다.
길냥이의 삶은 약한 몸으로 견딜 수 있을만큼 만만하지 않으니까.
다른 아기 고양이들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고양이를 지금 데리고 갈 수도 없는데.
유독 나를 잘 따르는 아기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서 작은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아··· 고양이 주인?”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붉은 머리에 보석 같이 아름다운 홍안의 눈을 가진 인형같이 아름다운 소녀가 양손 가득 햄버거와 오렌지 주스를 들고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 * * * *
그녀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놀라고 말았다.
내가 놀란 이유는 그녀가 너무 여신처럼 아름다워서도 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아는 소녀를 만나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 손 가득 햄버거와 오렌지 주스를 들고 서 있는 소녀는 바로.
일요일에 만나기로 한, 연예계의 떠오르는 샛별 강세나였다.
“세나씨?”
내가 세나를 보며 반갑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나의 대답은 의외였다.
“네? 누구···?”
아···
그제야 나는 지금 세나가 알고 있는 유시현이 아니라, 연예인 박지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외모야 비슷하기 한지만, 메이크업과 무대 의상을 입은 나는.
사실 나라도 단 번에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긴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거기다가 세나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회사원 유시현이 아이돌 박지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힘들겠지.
그저 비슷하게 생긴 사람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굳이 세나에게 알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모르는 척 연기 해 본다.
“아, 그 요즘 뉴튜브에서 유명하셔서.”
“아. 뉴튜브.”
세나가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고는 눈길을 아기 고양이에게 돌린다.
“이 고양이. 그 쪽 거예요?”
나는 손을 휘저으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요. 저도 방금 발견했어요.”
그런데 아기고양이는 너무 친근하게 계속해서 내 손에 자기 머리를 부비고 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세나가 부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자세히 보니 세나의 손등에는 여기저기 할퀴어 쥔 자국이 보인다.
저거 설마. 아기 고양이가 그런 건가?
내가 세나의 손등을 바라보자 세나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손을 허리 뒤로 감춘다.
그리더니 내 옆에 살짝 쪼그려 앉으며 봉지에서 주섬주섬 햄버거와 오렌지 주스를 꺼낸다.
“고양이. 아까부터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배고파요.”
지금 보니.
세나가 이 아기 고양이를 돌보다가 잠시 먹이를 사러 자리를 비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고양이를 발견한 것이고.
그런데 아기 고양이에게 주는 먹이로 햄버거와 오렌지주스라니.
이건 고양이 집사로서 실격인데···
세나가 햄버거를 꺼내서는 잘게 부스고 오렌지 주스 뚜껑을 따서는 그 위에 오렌지주스를 살짝 부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수줍은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것 좀 고양이한테 주실래요.”
세나의 눈빛을 보니 살짝 겁먹은 듯한 눈빛이다.
분명 고양이를 바라볼 때는 눈에서 꿀이 뚝뚝 흘러내릴 듯 사랑스러워하는 눈빛이었는데.
“네. 알겠어요.”
나는 세나에게 햄버거와 오렌지주스를 받아서 아기 고양이 앞에 내려 놓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기 고양이는 냄새만 킁킁 맡아보고는 먹지를 않는다.
그저 내 손에 얼굴을 부비며 갸르릉 거리기만 한다.
하지만 비틀비틀 위태위태해 보이는 아기 고양이.
세나가 불안한 눈빛으로 고양이를 바라본다.
“고양이. 왜 안 먹니? 먹어야 살아. 강해져야지.”
그러면서 용기를 내어 고양이에게 햄버거 부스러기를 가져다 된다.
하지만.
키얏옹!
고양이가 세나 냄새를 맡더니 화를 내며 발톱으로 세나의 손등을 긁어버린다.
세나가 고운 이마를 찡그리며 손을 재빨리 뒤로 뺀다.
하지만 세나의 손등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괜찮아요?”
걱정이 되어서 세나에게 물어보자 세나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괜찮아요. 고양이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요. 저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