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샤넬 프리미어 클럽 파티(4)
* * *
그래.
나는 유시현이다.
겉은 박지훈이지만 영혼은 유시현이다.
페미년들의 이지메 속에서도 회사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바퀴벌레 같은 끈질긴 생명력의 유시현.
언제나 당당하고 거침없는 유시현.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나이.
그래 이 정도 위기쯤은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다.
예슬이의 응원을 받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사실 이번 정규 앨범 컨셉은 없습니다.”
앨범 컨셉이 없다는 말에 사회자가 당황해서 나를 바라본다.
“네? 컨셉 앨범이 없다니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다시피··· 제 싱글 앨범 컨셉도 기존에 없던 스타일이었죠. 그 전 까지 남자 아이돌의 노래는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노래들이었습니다. 안무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제 싱글앨범은 그 전까지 남자 솔로 가수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카리스마와 시크함이 공존하는 절도 있는 안무가 컨셉이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이곳에서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제 정규 앨범도 싱글앨범 처럼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입니다. 기존의 남자 아이돌 틀에서는 찾아 볼 수 없던 완전히 새로운 앨범이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설명이 됐나요?”
사회자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 거렸다.
“아! 역시 박지훈씨. 항상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가는 모습. 역시 정규앨범 컨셉도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정말 기대 됩니다!”
정규 앨범 컨셉이 없다는 건 사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대답이었다.
앨범에 대한 사전 스포도 없으면서, 고리타분한 기존 음악에 지친 팬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킬 수 있는.
진영이 누나를 바라보았다.
진영이 누나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위로 올려 보였다.
예상했던 대답보다도 내 대답이 훨씬 간결하고 신비감을 불러일으켜서 마음에 쏙 들었다는 표시이다.
예슬이도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예슬이와 눈을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 지훈씨. 지금 그 표정 너무 좋아요. 사진 찍습니다.”
“와! 살인미소! 자연스러운 미소 너무 좋습니다!”
쏟아지는 카메라들의 파팡! 거리는 소리!
사방에서 카메라들이 나를 찍기 시작했다.
“우리 신문 내일 스포트라이트 사진은 이겁니다! 오늘 포토존 타임 사진 중에서 최고예요!
“천사가 내려 온 것 같아요. 어쩜 이래!”
기자들의 계속되는 칭찬세례 속에서 나와 예슬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미소로 서로를 응원했다.
포토타임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자 진영이 누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지훈이. 말솜씨가 많이 늘었어? 처음 데뷔했을 때만해도 어린아이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 대표님한테 배운 거죠.”
“어머, 아부하는 것 좀 봐. 하여간 이제 능구렁이 다 되어 간다니까. 그런데 말이야. 지훈아.”
“네?”
진영이 누나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한다.
“너. 블랙블루 예슬이 바라보는 눈빛 심상치 않던데. 둘이 별일 없는 거지? 너도 알다시피 너도 그렇고 걔도 그렇고 아직 신인이라. 연애는 안 돼. 팬층이 두꺼워지고 인지도가 쌓이면 모를까. 아무리 지훈이가 올해 상반기를 휩쓸었다고 해도. 신인은 신인이야. 팬들이 지훈이 연애 하는 거 알아 봐. 쉽게 얻은 인기만큼 쉽게 돌아선다. 너. 이거 다 누나 경험에서 나온 말이야. 알지?”
하아·······
사실 연예인으로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연예인으로서의 성공보다는 예슬이와 그저 같이 있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다.
나뿐만 아니라 예슬이도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기나긴 연습생 생활 끝에 겨우 데뷔하게 된 예슬이인데.
피해를 주면 안 되지.
대충 둘러 된다.
“네. 알았어요. 누나. 어서 자리에 가서 앉아요. 사진 찍는 게 생각보다 기를 많이 뺏겨서 힘드네요.”
“그래. 지훈아. 우리는 저기 앞 VIP자리야.”
진영이 누나를 따라서 화려한 조명들을 가로질러 들어가자, 럭셔리 해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박지훈, 김진영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파티를 즐기며 먹을 수 있도록 간단한 다과와 과일들도 놓여 있었다.
진영이 누나가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며 아쉬운 듯 한마디 한다.
“아. 여기 닭 가슴살은 없나? 파티에 기본이 안 되어 있네. 기본이.”
아니 사실 파티에서 누가 닭 가슴살을 찾아요? 라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진영이 누나의 헬스로 다져진 단단한 몸을 보자 그 생각이 싸악 가셨다.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서 단백질 쉐이크를 타 마시는 진영이누나.
아무리 신체능력이 향상된 박지훈의 몸이라고 해도 진영이 누나한테는 못 이길 것 같다.
저 단단해 보이는 몸과 고릴라 같은 얼굴로 인상이라도 쓰면.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그런데 지훈아. 너 노래 연습은 좀 했니? 외모는 워낙 천사같이 예쁘고. 춤도 타고 났고. 진짜 너는 노래만 좀 되면 대한민국 아이돌 계를 다 씹어 먹을 텐데. 진짜 지훈아. 우리 노래만 어떻게 좀 해보자. 지금이야 아직 싱글앨범 밖에 없어서 어떻게 막아줄 수 있지만. 정규앨범 냈는데도 노래 실력이 그 정도면. 솔로 활동 접고. 보이그룹 들어가야지. 방법이 없다.”
“보이그룹이요?”
“응. 다른 멤버들이 있으면 지훈이 단점을 커버해 줄 테니까. 물론 지훈이가 하고 싶은 노래를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하고 싶은 노래를 못한다.
그 말은.
정규 앨범 나올 때 까지 노래 실력을 향상시키지 못하면, 내가 원래 살던 세계의 소녀 그룹처럼.
누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엉덩이 흔들고 애교나 떨면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건 사나이로서 정말 죽어도 싫다.
다른 건 몰라도 하루라도 빨리 노래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확실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진영이 누나와 앉아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진영이 누나가 나와 단 둘이 VIP테이블 자리를 잡은 것은.
평소에는 서로 만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일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다른 아이돌들과 함께.
그리고 진영이 누나는 JYK 회사 이사진들과 함께 자리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일 얘기를 하고 있는데, VIP테이블 앞에 설치된 무대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샤넬에서 준비한 행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 샤넬 프리미어 클럽파티에 초대 되신 국내외 귀빈 여러분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샤넬 프리미어 클럽파티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화려한 조명이 무대를 비추었다.
팡! 팡! 파파팡!
무대 위로 금빛 가루가 쏟아져 내리며 카리스마있게 등장하는 여자 그룹.
바로 블루블랙이었다.
무대에 서 블루블랙의 멤버들.
그리고 시작되는 블루블랙의 신곡
“HOW YOU LIKE ME NOW."
강렬한 비트와 절도 있는 군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빛나는 것은 메인 보컬이자 비쥬얼 센터 예슬이었다.
원래도 빛이 나는 여신같이 아름다운 외모였지만, 무대에 선 예슬이는 귀여우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거리며 무대를 은하수로 수놓는 것만 같다.
순식간에 객석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처음 보는 무대였지만, 그 만큼 예슬이와 블루블랙의 무대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앗아갈 만큼 대단했다.
무대를 지켜보던 진영이누나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예슬이라고 했던가··· 이번에 SN이 대단한 물건을 발견했네. 이거 우리도 긴장해야겠는 걸.”
* * * * *
블루블랙의 환상적인 무대가 끝나고, 화장실에 가는데 카통이 울린다.
카통, 카통왔섭!
딸칵.
핸드폰을 열어서 확인해보니, 방금 전까지 무대에서 공연을 했던 예슬이었다.
[한예슬: 오빠! 저희 무대 봤어요? 처음 큰 무대에 서는 거라 심장이 두근두근 거려 죽는 줄 알았어요!]
[나: 응. 예슬아. 오빠도 봤어. 예슬이 진짜 잘 하더라! 오빠도 자리에 앉아서 예슬이 응원 많이 했어.]
[예슬이: 에이. 거짓말 하지 말아요! 너무 긴장해서 실수 많이 했는데. 오빠 위로해 주려고 그러는 거죠?]
[나: 아니야. 진짜야. 진영이누나도 예슬이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던데. 특히 보컬이 안정적이라면서.]
[예슬이: 진짜요? 진영이누나가 그랬어요? 헤헤. 그래도 무대를 아주 망치지는 않았나 봐요!]
[나: 망치기는 우리 예슬이가 무대에서 얼마나 보석처럼 빛났는데. 진짜 예쁘고 라이브도 잘하더라.]
[예슬이: 오빠! 저, 오빠.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혹시 괜찮으면 우리 무대 뒤 주차장 쪽에서 30분 후에 잠깐 볼래요? 오빠도 저도 지금 같은 때 아니면 언제 또 볼지 모르잖아요.]
예슬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보자고 한다.
그만큼 내가 보고 싶은 걸까?
방금 전까지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천사같이 아름다운 예슬이를 단 둘이 본다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설레 인다.
[나: 응. 예슬아. 그러자. 나도 잠깐이라도 예슬이 만나고 싶어.]
[예슬이: 오빠. 그럼 30분 후에 봐요! 오빠 볼 수 있어서 예슬이도 너무 설레요.]
예슬이와 카통을 끝내고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섰다.
이렇게 두근두근 거리는 기분은 10대 이후로 처음이다.
풋풋하면서 설렘 가득한 이 감정.
사실 예슬이와 내가 마음 놓고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설레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 사람이란 건 못하게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니까.
특히 그것이 사랑일 때는 더욱 더.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세익스피어의 소설은 시대를 뛰어넘어 아직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설렘을 가득 안은 채, 다시 VIP 자리로 돌아가는 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