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샤넬 프리미어 클럽 파티(3)
* * *
“자, 자자. 기자님들 다른 연예인분들도 사진 찍어야 하니까요. 판도라 분들은 이제 그만 보내 주시죠. 판도라분들. 인기가 너무 많아서 힘들죠?”
사회자의 말에 판도라의 리더인 혜민이 귀엽게 웃으며 활짝 웃는다.
"아니에요. 다 여러분들이 사랑해주셔서 저희 판도라가 있는 거죠. 정말 기자님들 질문에 다 답변해 드리고 싶은데,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네요. 이따, 프리미어 파티장에서 뵐 게요~”
손으로 하트까지 그려가며 예의바르게 답변을 한 혜민이 90도로 기자들에게 인사를 한다.
외모와 행동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탑 아이돌이 괜히 탑 아이돌이 아니구나.
판도라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에 비하면 나는 아직 햇병아리에 불가하다.
원래 모든 것에는 오픈빨이라는 것이 있다.
나처럼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서 여심을 사로잡는 외모로 반짝 인기를 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인기를 몇 년 동안 유지하는 것은 몇 십 배는 더 힘든 일이다.
외모와 더불어 다른 매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팬들은 새롭고 더 빛나는 별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다.
판도라가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고 떠나려는 데.
생각지도 않았던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작고 하얀 얼굴에 완벽한 브이라인 얼굴형.
정갈한 눈썹
크면서 귀엽고 요염한 눈빛.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귀여운 오뚝한 코
루비처럼 빨간 입술.
하얀 얼굴에 루비처럼 빨간 입술의 신비로운 분위기.
판도라가 아무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 그룹이라고 할지라도 맹세코 현세계에서도 이세계에서도 지금 이 소녀보다 완벽한 내 이상형은 없을 것이다.
포토존에 서 있던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기자들에게 소개를 시작한다.
“다음으로는 이번 샤넬 프리미어 클럽 파티에서 프로모션 무대를 가질 YJ의 새 걸 그룹 블랙 블루입니다.”
소개를 받은 블랙블루 멤버들이 포토존 앞에 섰다.
블랙블루의 멤버들도 하나 같이 다 미인들이었지만, 역시나 내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은 소녀 예슬이.
그녀만이 유독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평소에도 공주님처럼 귀엽고 아름답지만 오늘처럼 전문적인 연예인 메이크업에 명품 옷을 입은 예슬이의 모습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것만 같다.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쳐다보는 게 눈이 부실 지경이다.
기자들도 예슬이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 동안 정적이 흐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막 연습생을 벗어난 블랙블루의 인지도는 대한민국 최정상 걸그룹 판도라에 비하면 아직 미비하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블랙블루보다는 판도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판도라! 여기 좀 보세요!”
“판도라,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판도라, 유럽 투어는 다시 재개하는 건가요?”
포토존에 선 신생그룹 블랙블루는 판도라 바로 다음 차례였기 때문에 모든 관심을 판도라에게 뺏겨버리고 말았다.
사회자도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는다.
“아, 기, 기자분들! 블랙블루분들 촬영 하셔야죠. 오늘 쇼케이스도 있는데요. 기자분들!”
무시당한 신생그룹 블랙블루.
물론 블랙블루도 YJ가 키우고 Z드래곤이 봐주고 있는 초대형 신인 걸그룹이긴 하지만 이미 인기 최정상을 달리고 있는 판도라에 비할 바는 아니다.
최정상 걸그룹 바로 다음이라니.
주목을 받기에는 포토존에 들어서는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블랙블루의 포토타임이 끝나갈 때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파티장으로 들어가던 판도라의 멤버 설영이 갑자기 뒤를 돌아서 블랙블루를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다.
포토존이 다시 활기차게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포토존 앞으로 다가선 판도라의 막내 멤버 설영.
그녀가 갑자기 손을 뻗어서 블랙블루의 멤버 예슬이를 꽈악 끌어안았다.
예슬이의 눈동자가 당황해서 흔들려 보였지만, 예슬이도 설영의 포옹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설영이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예슬이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정말 다행이다. 언니도 이제 데뷔하는 거야?”
“으응. 설영아.”
“예슬이 언니. 언니가 데뷔도 못하고 아이돌 그만둘까봐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언니 YJ에서 데뷔 하는가봐?”
“응. 그렇게 됐어.”
너무나 반가워하는 설영에 비해 딱딱한 표정의 예슬이.
기자들이 보기에 선배인 판도라의 멤버가 저렇게까지 관심을 보이는데, 무표정한 신인 걸그룹 멤버 예슬이가 좋아 보일 리 없다.
“다행이다 언니. 진짜. YJ는 키는 안 보는 가봐? 우리 SN도 키 안 봤으면 언니도 우리랑 같이 데뷔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인정받아서 다행이야. 예슬이 언니.”
‘키’ 라는 말에 기자들의 눈이 예슬이가 신고 있는 하이힐로 향한다.
역시나 다른 멤버들에 비해 힐이 높다.
기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어쩐지 얼굴은 예쁜데 아직까지 데뷔를 못한 게 다 이유가 있었네.”
“역시 YJ는 SN보다 등급이 아래라니까. SN에서 데뷔 못한 연습생을 YJ에서 데뷔시키는 걸 보면.”
“아이돌 하기에는 키가 작은 것 같은데. 실력이 특출나나?”
“쟤 혹시 걔 아니야? 얼마 전에 남자랑 길거리 공연 뉴튜브에 나온 애? 혹시 어떻게 YJ 잘나가는 남자 이사진 꼬셔서 블랙블루에 들어 간 거 아니야?”
판도라 막내 멤버 설영의 말 한마디에 블랙블루는 일순간 등급 낮은 걸그룹이 되어버렸다.
들려오는 기자들의 소리에 예슬이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안 그래도 수줍음이 많은 예슬이인데.
“언니. 그럼 사진 잘 찍고 가요. 오늘 프로모션 무대도 있다고 했지? 기대하고 있을게.”
“응. 설영아.”
예슬이를 꽈악 껴안는 판도라 막내 멤버 설영.
수줍음 많고 착한 예슬이는 그녀의 포옹을 거절하지 못한다.
예슬이를 껴안으며 보이는 설영의 여우처럼 입 꼬리가 올라간 밝은 미소.
그런데.
나에게는 그녀의 웃음의 정체가 보였다.
얼굴은 예쁘지만, 기자들을 이용해서 예슬이를 가스라이팅하는 박쥐같은 웃음이었다.
저 비열한 웃음.
분명 내가 많이 보던 모습이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라던가 하는 곳에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른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 그룹이든.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여자 배우이든.
다 상관없다.
이 미친년이 돌았나?
감히 예슬이를.
아이같이 순수한 우리 예슬이를 건드리다니!
* * * * *
“수고하셨습니다. 블랙블루 분들.”
사회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블랙블루의 포토타임을 끝냈다.
그 때 옆에 서 있던 진영이 누나가 나를 슬쩍 밀며 말했다.
“지훈아. 지훈이도 건재하다는 걸 세상에 알려야지?”
“예? 예··· 대표님.”
하아········
긴장되고 설레서 미칠 것만 같다.
이렇게 많은 기자들 앞에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하다니.
일주일 전 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인데.
잘 해 낼 수 있을까?
물론 관중 앞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길거리 공연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작은 공연에 불과했었다.
물론 그 파장 효과는 엄청났지만.
사실 길거리 공연을 멋지게 끝낼 수 있었던 건.
얼굴도 가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들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감이 없어서였다.
그에 반해 지금은.
다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대한민국이 떠오르는 신인 국민 아이돌 박지훈.
비록 진짜 박지훈의 영혼은 어딘지 모를 다른 곳에 있지만.
박지훈의 몸에 빙의된 이상
나는 그를 대신해서 아이돌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긴장된 발걸음으로 포토 존을 향해 걸어간다.
나를 발견한 기자들이 다시 포토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막 쇼케이스크를 가지는 신인 걸그룹 블랙블루 보다는 검증된 신인 국민아이돌 박지훈이 훨씬 흥미롭기 때문이다.
“지훈씨! 박지훈씨! 여기 좀 보세요!”
“오늘 진짜 멋있어요. 만화 속에나 나오는 미소년 같아요!”
“지훈씨!!!! 현재 활동 휴식기이신데 정규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수많은 누나 팬들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진짜는 다르네요! 최근 박지훈씨를 닮은 남자가 유튜브에 출현했다는데 알고 계시나요? 그런데 박지훈씨 실물 보면 절대 그런 말 못할 것 같긴 하지만.”
“지훈씨. 그동안 신곡 연습은 좀 하셨나요? 기자이지만 팬으로써 정규 앨범 기대가 큽니다!”
파파팟!
파밧!
번쩍 번쩍!
헤아릴 수 없는 카메라들이 내 얼굴을 찍어대고 있다.
사회자가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지훈씨.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이번에 JYK에서 지훈씨 정규앨범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던데. 기대가 큽니다. 정규 앨범 컨셉에 대해서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으······
미치겠네.
분명히 소리는 들리는데, 너무 긴장해서 말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데.
이런 걸 보고 무대 공포증이라고 해야 하나?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진영이 누나가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평소에는 친근하고 편한 누나이지만 일에 대해서는 칼이다.
이런 실수를 용납할리 없다.
“지훈씨? 지훈씨 대답 좀 부탁드립니다.”
점점 더 사회자의 말이 내 목을 옥죄어 온다.
그런데.
그 때.
어두운 광야 속에서 한 줄기의 빛처럼 보이는 예슬이의 모습.
예슬이가 나를 보며 천사같이 미소 짓고 있다.
그리고 귀여운 손을 들어서 꽈악 쥐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시현 오빠. 파이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