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걸레들이 후회하며 집착한다(14)
* * *
한우에 스테이크라.
생각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그래.
다들 좋은 여자들인데, 내가 너무 배가고파서 민감해 진거야.
한우에 스테이크.
스탈벅스 커피까지 사서 조공한다는데.
몇 시간만 참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에이, 뭐. 그렇게 비싼 거를. 그냥, 뭐 삼겹살이나 갈비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나 좀 사다줘요.”
“우리 팀장님 웃는다. 이제 화 풀린 거죠?”
“삼겹살이랑 갈비 오케이! 접수 했어요. 팀장님.”
“우리 팀장님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진짜 베이비 페이스야. 무슨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겠어.”
다시 화기애애한 팀원들.
그렇게 다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 진짜. 동철이 형. 그 페라리 같은 여자가 누군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시현씨였다.
갑자기 분주해진 팀원들!
내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다정씨와 유리씨가 당황하기 시작한다.
“아, 씨발. 이거 어디다 숨겨.”
“몰라요! 아, 진짜. 미치겠네. 숨어있으라니까. 여기는 왜 와가지고! 하여간 눈치는 더럽게 없어.”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다시 폭탄 취급이다.
발을 동동 구르던 최다정 차장이 서유리씨 앞에 있는 빈 책상을 가리킨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 서유리와 최다정이 좁디좁은 빈 책상 아래 공간으로 나를 구겨 넣는다.
“아! 아, 아파! 너무 좁아서 안 들어간다니까!”
내가 소리를 질렀으나, 살기가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며 서유리와 최다정이 내 입을 막는다.
“조용히 하고 있어요. 혹시 시현씨한테 들키면 진짜 팀장이고 뭐고 없으니까.”
이건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시현씨에 대한 집착이다.
여기서 들키면 진짜 다구리 당할 것 같다.
점심 도시락도 사다준다고 하고.
일단은 참아보기로 한다.
어느 덧 사무실로 돌아온 시현씨.
“자! 다들 주목해 주세요. 주목!”
시현씨가 외치자, 팀원들이 일제히 시현씨를 바라본다.
“팀 비도 두둑하게 있는데. 회사 앞에 있는 갈비집에서 갈비 뜯으시죠. 한우는 무리고. LA갈비 어때요?”
LA갈비!!!!
생각하는 것만으로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씨발!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왜 이런 날에 LA갈비를 회식으로 뜯냐고!
감칠 맛나게 양념이 벤 갈비를 지글지글 불판에 구워서 한입 뜯으면.
하으·······
그 것 보다 더 한 천국이 어디에 있을까!
거기다 시현씨의 귀여운 얼굴을 보면서 먹으면.
그야말로 무릉도원.
아, 나도 시현씨랑 LA갈비 먹고 싶다.
그런데 LA갈비에 너무 몰두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오고 말았다.
“가, 갈비? 나 갈비 좋아하는데.”
화들짝 놀란 미희 주임과 서유리가 나를 노려본다.
꿀꺽······
“어? 방금 아영 사원 목소리 들은 것 같은데. 다들 들었죠?”
눈치 빠른 시현씨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동철과장도 귀를 쫑긋 세우며 말한다.
“나도 들은 거 같은데. 이상하네. 오늘 하루 종일 안 보이던데?”
시현씨가 서유리를 보며 말한다.
“유리씨. 방금 아영 사원 목소리 아니에요?”
하지만 서유리가 시치미를 딱 떼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말한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영 사원이라니요. 아영씨 지금 외근 나갔잖아요. 저한테 전화 왔었어요. 오늘 외부에서 밥 먹고 회사 들어온다고요. 그쳐? 미희주임님?”
김미희 주임도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내가 숨어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그리고 서유리 사원과 내가 안 보이도록 가리며 말한다.
“그래! 나도 들었어. 유리씨가 아영씨랑 전화하는 거. 어머. 팀장님 이상하시다. 환청 들으시나봐.”
씨발.
외부에서 내가 이미 밥을 먹었다고?
배고파 죽을 것 같은데.
킹받네. 진짜!
너무 킹받아서 나도 모르게 다시 입 밖으로 말이 나온다.
“아, 진짜. 나도 갈비 좋아한다고. 무슨 외부에서 밥을 먹어 먹기·······”
그때 서아영 사원과 김미희 주임이 내 양쪽 볼을 한 쪽씩 잡고 꽈악 꼬집는다.
“아. 아아아!!!”
씨발, 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시퍼렇게 날이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서유리, 김미희, 최다정.
흐윽.
무섭다. 일단 지금은 참자.
하지만 눈치가 빠른 시현씨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말한다.
“유리씨. 지금 책상 밑에 뭐 숨기고 있는 것 있어요?”
“네? 수, 숨기다니요. 제가 숨기긴 뭘 숨겨요.”
서유리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너무 좁은 공간에 몸이 구겨진 상태라 갑갑해 죽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튀어나오려 한다.
하지만 김미희 주임과 서유리가 손으로 내 머리를 꼬옥 누른다.
흐윽····
내가 무슨 거북이도 아니고.
이 좁은 공간에서 구겨진 상태로 얼마나 버텨야 하는 거야.
차라리 지금 심정으로서는 시현씨한테 들켜서 나도 LA갈비 먹고 싶다.
터벅터벅!
이상함을 느낀 시현씨가 유리 사원의 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유리 사원에게 다가가는 시현씨를 보고 김미희 주임이 다정 차장에게 눈빛을 보낸다.
그러자, 다정 차장이 불도저처럼 시현씨에게 바짝 붙는다.
출렁출렁 거리는 크고 하얀 젖가슴을 시현씨 옆구리에 바짝 붙이며 팔짱을 낀다.
불여우 같은 년.
진짜, 시현씨한테 존나 달라 붙네.
“팀장님. 빨리 밥 먹으로 가요. 저 배고 파요.”
“아, 진짜. 왜 이래요. 다정차장님. 아침부터 계속 가슴을 들이 밀고.”
다행히 우리 순결한 시현씨는 최다정 차장의 가슴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낸다.
김미희 주임도 엉덩이를 들이밀며 합류한다.
“팀장님. 저도 배고파 죽겠어요. 이러다 제 탱탱한 엉덩이 근육 빠지기라도 하면, 팀장님 보여드리려고 산 섹시한 팬티도 안 어울리겠다. 빨리 가요~ 팀장니임~”
거기다가 서유리까지.
“아~ 오늘따라 왜 이리 발바닥이 가렵지. 식당에도 지압 슬리퍼 신고 가야겠다. 팀장님. 이 슬리퍼 처음에는 발바닥 아프고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계속 신다보니까 운동화보다 더 편해요.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고. 그리고 굵고 큰 것이 내 발바닥을 꽉꽉 누를 때 마다 팀장님 생각도 나고요.”
변태 같은 년들. 진짜!
나도 내 매력을 발산하며 시현씨한테 몸을 비비고 싶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은밀한 곳이 젖어 온다.
진짜 나 왜 이러지.
남자를 생각하면서 자위를 할 정도로 젖어버리다니.
나 설마 레즈가 아니라 이성애자인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데, 여자 팀원들의 육탄공세를 못 이기고 시현씨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가기 시작한다.
하아·····
결국 나만 두고 가는 구나.
혼자서 한탄을 해 본다.
“씨발. 의리 없는 나쁜 년들. 지들만 맛있는 거 먹으로 가고. 나도 갈비 먹을 줄 아는데·······”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맛있는 갈비나 삼겹살을 포장해서 사무실로 오겠지?
그 동안 배고픔을 잊기 위해 잠이라도 자야겠다.
몸을 웅크린 자세에서 곰이 동면에 빠지듯 천천히 잠에 빠져들어간다.
* * * * *
“오랜만에 진짜 배 두둑하게 먹었네. 고맙다. 시현아.”
성현대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으·······
얼마나 잠든거야?
입가에 주르륵 흘러내린 침을 닦는다.
“팀장님. 오늘 갈비 진짜 최고였어요! 어쩜 우리 팀장님은 맛 집도 많이 알아요? 오빠랑 데이트 하면 식당 걱정은 없겠다.”
서유리는 오늘 갈비 회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격양된 목소리로 앵앵 거린다.
“시현씨한테 잘 보이려면 다이어트 해야 해서 조금만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많이 먹어버렸네. 이거 다 시현씨 책임이니까. 내 인생 책임져! 시현아.”
김미희 주임도 맛있게 먹었나 보다.
잠에서 깬 내가 서유리를 향해 싸인을 보낸다.
어서 도시락을 조공해라! 라는 싸인이다.
나를 발견한 서유리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저 표정!
씨발! 설마!
최다정 차장에게도 싸인을 보낸다.
이제는 정말 한계에 가까워졌다.
최다정 차장이 나를 발견하더니 급하게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이 미친년들이!
설마. 내 점심이랑 커피를 잊어버리고 지들만 먹고 온 거야?
김미희 주임은········
이 년은 사실 기대도 안했고.
배는 요동을 치고.
짜증은 나고.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그런데 이 미친년들은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개무시한 채 지들끼리 시현씨 쟁탈전을 하기 시작한다.
“야! 서유리. 지금 말 다 했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보자보자 하니까! 너, 식당에서 밥 먹을 때도 은근슬쩍 우리 시현이한테 계속 다리로 건드리면서 수작 걸더라?”
“그러는 차장님은요! 식당에서 사람들 다 보는데 가디건은 왜 벗는 건데? 무슨 스트립쇼 하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데 젖소 같은 가슴이 출렁출렁 거리면, 부담돼서 우리 시현이 오빠 밥이나 제대로 먹었겠어요?”
“둘 다 그만 둬! 하여간 어린 것들이 회사에서 싸우기나 하고. 우리 시현이 스트레스 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하여간 우리 시현이 걱정하는 성숙한 여자는 나 밖에 없다니까.”
씨발.
그래, 이제 다 알았어.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년들.
내가 진짜.
이런 개같은 년들을 위해서 밥도 못 먹고.
하루 종일 폐품처럼 구겨져있고.
이 고생을 해야 해?
공허함과 배신감이 몰려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