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걸레들이 후회하며 집착한다(8)
* * *
“하여간, 지금 중요한 건. 시현씨에게 아직 선물을 받지 못한 팀원이. 아영팀장님 밖에 없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요? 뭐? 어쩌라고! 씨발. 다들 선물 받아서 좋겠네.”
아영 팀장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아니요. 팀장님. 그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영 팀장이 화를 내도 다들 아영팀장은 시현씨에게 아직도 선물을 못 받아서 히스테리 부리는구나! 라고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그런 사실이 아영팀장을 더 왕따로 보이게 만들어서 짜증나게 만든다.
아영팀장의 눈치를 보며 서유리 사원이 말을 이어간다.
“그러니까요. 이건 제 예측이지만. 시현오빠는 아마도 저희 팀원들 모두에게 선물을 다 주고 퇴사를 할 것 같아요. 아영팀장님만 빼 놓고 안 줄 리가 없죠. 시현 오빠는 그렇게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말이죠. 그러니까·······”
서유리 사원이 머뭇거리며 말하기를 주저하자 다정차장이 재촉한다.
“그러니까 뭐요? 빨리 좀 말해 봐요! 사람 답답하게. 유리씨는 참!”
서유리 사원이 두 손을 꼭 쥐며 아영팀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팀장님. 팀장님이 저희를 위해 희생을 좀 해주셔야겠어요. 저희가 시현 오빠가 퇴사하지 못하도록 다른 방안을 생각해내기 전까지의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나요? 내가 뭘········”
아영 팀장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서유리 사원을 바라본다.
안 그래도 시현씨한테 자기만 선물을 못 받아서 왕따 당한 느낌이라 기분이 거지같은데.
희생까지 하라니.
희생하라는 단어가 기분도 나쁘거니와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도 가지 않는다.
서유리 사원이 다른 여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더니 마지막으로 아영팀장을 바라보며 굳건하게 말한다.
“지금은 이 방법 밖에 없어요. 아영팀장님.”
아영 팀장의 양손을 꼬옥 붙잡는 서유리 사원.
“네? 아, 진짜. 왜! 나한테 뭘 시키려고!”
아영 팀장이 불안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그제야 서유리 사원이 강한 어조로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한다.
“도망치세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도망치라니?”
의문이 가득한 아영팀장의 목소리.
“내일부터 시현 오빠 보면 팀장님은 무조건 숨든가 도망치라고요. 시현 오빠가 팀장님한테 선물 못 주게. 지금은 그 방법 밖에 없어요. 시현 오빠 성격에 팀장님한테 선물 주기 전까지는 절대로 회사 못 그만 둬요. 알았죠?”
그제야 아영 팀장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그러네. 진짜. 그 방법이 있었네.”
“아영 팀장님. 고등학교 때 달리기 빨랐다고 하지 않았어요? 잘 됐다. 휴우. 이걸로 시현이가 회사 계속 다닐 수 있겠다.”
“팀장님. 진짜 저희를 위해서 부탁 좀 드려요. 다음 주 까지는 다른 방법을 고안해 낼 테니까. 다음 주까지만 시현 오빠 눈에 안 띄게 도망 좀 다녀요. 업무는 저희가 다 커버해 드릴게요. 팀장님만 믿어요!”
유시현의 퇴사를 막고 싶은 세 명의 여직원과 입장이 곤란해 진 아영팀장.
그녀가 속으로 씨발! 좆 됐네! 를 외치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씨발. 왜 또 다들 나한테 지랄들인 건데········ 나만 아직 선물 못 받은 것도 킹받아 죽겠는데!”
* * * * *
(회사 유시현 시점)
도대체 아영 사원은 어디에 있는 거야!
오늘 출근하고 나서부터 보이지 않는 아영 사원.
그녀 자리에 가방이 있는 걸 보니 분명히 출근은 했는데.
아영 사원의 옆 자리에 앉은 동철과장에게 물어 본다.
“동철 과장님. 아영 사원 못 봤어요?”
“어? 아영 사원? 글쎄, 출근은 한 것 같은데. 영 안 보이네. 그나저나 뺀질아. 나 물어 볼게 있는데 말이다.”
동철과장이 나름 분위기를 잡고 진지한 말투로 말을 건다.
“예, 과장님. 뭔데요?”
동철과장이 손가락을 뻗어서 가까이 붙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동철과장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자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뺀질거리고 얼굴도 좀 생겼으니까, 여자랑 그것도 많이 해봤지?”
“여자랑 그거요? 그게 뭔데요?”
“얌마. 알면서 그래. 섹스 말이야. 섹스.”
하아···
동철과장이 낮부터 아픈 곳을 칼로 후벼 파는 구나.
“아, 몰라요. 그런 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경험 많은 성현대리님한테 물어보시지.”
“얌마. 벌써 물어봤지. 성현이는 자기 부인 말고는 해 본적이 없데. 그런데 너 좀 이상하다. 너 설마......... 뺀질이 주제에 아직 숫총각이냐? 어?”
하여간 그런 쪽으로 눈치는 빨라가지고.
“네. 저는 유니콘이라 아직 여자랑 그런 거 안 해봤습니다.”
“자식이. 안 해 본 게 아니고 못 해 본거겠지. 유시현이 뺀질이 자식. 이거 완전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여자랑 섹스도 한 번 못해보고. 안되겠다. 너 이제부터 뺀질이 아니고. 그냥 고자해라 고자. 유고자.”
아무리 그래도 여자랑 섹스 못 해 봤다고 고자라니.
너무 하잖아.
“아이. 진짜. 이상한 말 그만 하시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뭐에요?”
“어? 자식. 화났냐? 그래, 고자는 좀 심하긴 했다. 미안하다. 야. 그러니까 말이야. 뭐 섹스는 아직 못해봤어도. 너도 들은 건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오늘. 아, 아니. 그러니까 최근에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그게 우연히 말이야.”
“예. 그래서요?”
“그게 처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찮게 그 여자랑 아주 그냥 환상적인 섹스를 했거든.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좀 많잖나? 그런데, 이번에 만난 여자랑 한 섹스는 진짜 차원이 틀리더라니까. 키도 크고 몸매가 쫙 모델처럼 잘 빠져서 그런지. 그 전에 섹스 했던 여자들이 무슨 티코, 모닝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 만난 여자는 진짜 쫘악 잘 빠진 람보르기니, 페라리 같은 느낌이었다니까.”
젠장. 그 여자가 누구지?
페라리에 람보르기니라니.
얼마나 좋았으면 그런 느낌이 날까.
얘기를 듣고 보니 부럽긴 개 부럽다.
“좋으셨겠네요.”
“얌마. 좋다 뿐이냐? 아주 그냥 천국 몇 번 갔다 온 것 같다. 그런데 말이야. 그게 문제가 아니고. 섹스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 아니면 죽을 것처럼 적극적으로 매달리던 여자인데. 섹스하고 나서 이 페라리 같은 여자가 나한테 관심을 안 보이네. 야 이거 진짜! 김동철이 35년 인생 중에 이렇게 여자한테 푹 빠져 버린 건 처음이다. 처음!”
“그거야. 과장님. 여자랑 처음 제대로 만난 게 일주일 밖에 안 됐잖아요. 이세계로 빙의되고 나서부터. 그 전에는 맨날 까이기만 했지.”
“야! 뺀질이. 하여간 이자식은 산 통 깨는 게 특기라니까. 특기. 얌마. 그건 그 쪽 세계 여자들이 남자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거고. 하여간. 지금 문제가 뭐냐면. 아무리 다른 여자들이 나 좋다고 대쉬를 해도 내 눈에는 지금 그 페라리 같은 여자 밖에 안 보인다는 거야! 이런 게 진정한 사랑인가 보다. 야. 그런데 그 여자는 나를 따 먹고 관심이 없는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나를 봐도 본 체 만 체 하고. 하아~ 진짜 미치겠다. 미치겠어! 나한테 적극적일 때는, 진짜 관심 1도 없었는데. 나 따 먹고 무시하니까 미치도록 가지고 싶다. 진짜!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응?”
아니. 이런 연애 문제를 나한테 얘기해 봤자.
나도 연애 초보인 건 똑같다.
하지만 뭐, 그래도. 사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YJ의 걸그룹 멤버와 키스까지 나눈 사이 아니겠는가!
그래, 내가 여태까지 안 해서 그렇지.
의외로 연애에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
“에이. 과장님.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럴 때는 말이죠.”
“그럴 때는?”
동철과장이 두 눈을 번뜩이며 내 말을 경청한다.
누군가가 내 조언을 바라고 집중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연애 한 번도 안 해 본 녀석들이 연애 상담은 제일 잘한다는 얘기가 나왔나 보다.
나는 자신 있게 동철과장에게 말했다.
“그럴 때는 무조건 들이대는 것이 답이죠. 과장님. 옛말에 있잖아요. 10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계속 찍는 거예요. 넘어 갈 때까지.”
“그래? 역시 그렇지? 아. 짜식. 나도 실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괜히 물어봤네. 그래. 그렇지? 넘어 올 때 까지 계속 찍다보면 넘어오겠지?”
“물어 뭐해요. 당연하죠. 계속 쫒아 다니면서 찍으세요. 아. 생각하니. 킹받네. 과장님만 여친 생기고. 그나저나 누구에요? 저도 아는 사람이에요?”
나도 아는 사람이냐는 말에 동철과장의 얼굴이 수줍어서 빨개진다.
“아, 몰라. 임마. 하여간 뭐. 쓸모없는 조언이긴 하지만 잘 들었다. 이제 일해야지. 일. 아. 그나저나 나 오늘까지만 너희 팀에서 근무하는 거 맞지?”
“예. 오늘까지죠 뭐. 어차피 시범으로 운영하는 부서이동 프로젝트였잖아요.”
“그치? 아, 아쉽네. 이거. 하여간 월요일에 보자. 난 이제 일 좀 해야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앉는 동철과장.
하여간 자기 볼일 끝나면 냉철한 남자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한데.
동철과장이 왜 월요일에 보자고 하는 거지?
우리팀에서 근무는 오늘까지 일텐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