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 제발 가지 마!(5)
* * *
내가 그 때 왜 그랬을까.
팀장이라면.
제대로 된 팀장이라면........
아무리 다른 부하직원들이 유시현을 왕따시키고 흉을 봐도.
시현씨를.
우리를 대신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시현씨를 팀장으로서 지켜주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주도해서 다른 팀원들과 같이 구박하고 갈구고 못살게 굴었으니.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건 다 내 탓이야.
그제야........
아영팀장도 다른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유시현을 갈구기만 했던 자신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원래 세계에서 계속 머물렀더라면 아영팀장 스스로 유시현을 괴롭힌 것을 후회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녀가 역전된 이세계로 평행이동하면서 바뀌어버린.
남존 여비가 팽배한 사회의 분위기.
예상치 못했던 여자 팀원들의 지난날에 대한 뼈 때리는 후회까지 겹쳐지면서 아영팀장 자신도 모르게 유시현 퇴사가 마치 모두 자기 때문인 것 같은 후회가 들었다.
아영 팀장은 유시현이 퇴사 못하도록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고 울먹거리고 있는 다른 팀원들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그래. 이 모든 건 팀장인 내 책임이야.
나 때문에 시현씨가 퇴사를 한다면········
유시현이 해오던 업무를 감당 못해 패닉에 빠진 채.
자신들 때문에 유시현이 회사를 나갔다는 죄책감 때문에 후회와 실의에 빠질 팀원들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아영팀장은 주먹을 꽈악 움켜쥐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밖에 없어.
내가 어떻게든 시현씨를 퇴사 못하도록 잡아야 해.
29년 동안 소중하게 지켜 온
내 순결을 시현씨에게 바쳐서라도.
* * * * *
“에취!”
이상하게 겨울도 아닌데 오한이 느껴지고 몸이 부슬부슬 떨린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설마 팀원 중에서 나한테 한이라도 품은 여자가 있나?
에이, 설마·······
꺼림칙한 생각은 뒤로 하고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띠딩!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귀여운 예슬이 프로파일 사진으로 도배 된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조금 닭살스럽기는 해도.
뭐 어떤가. 나 말고는 바탕화면 보는 사람도 없는데.
하아, 진짜 예쁘다.
언제 봐도 잘 세공된 보석처럼 반짝반짝 거리는 완벽한 미모의 예슬이다.
그래 누가 봐도 한 눈에 반해 버릴 정도의 외모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YJ의 걸그룹 아이돌 비쥬얼 멤버를 하는 거 아니겠어?
컴퓨터를 킨 김에 길거리 댄스 공연 뉴튜버 동영상을 다시 찾아서 클릭했다.
딸칵.
사실 내가 춤추는 모습이 궁금해서는 아니었다.
영상 초반에 나오는 귀여운 예슬이의 생생한 얼굴.
이건 너무 귀엽잖아!!!
이리보고 저리 봐도 너무 귀여워서 얼굴 한 가득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저렇게 천사같이 귀여운 소녀와 첫 키스를 하다니.
비록 가벼운 입맞춤에 불가한 뽀뽀에 가까운 순결키스였지만, 그 때 느껴지던 예슬이의 달콤한 숨결과 두근거림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아····
예슬이 만나고 싶다.
핸드폰을 열어서 카통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예슬이에게서 온 연락은 아직 없다.
하긴. 걸그룹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당연히 바쁘겠지.
그래도 조만간 같이 노래방에 가서 같이 노래 연습하기로 했으니까.
벌써부터 예슬이와 단 둘이 노래방에 갈 생각에 설레고 두근거린다.
뉴튜버 동영상이 끝나고 새로 달린 댓글들도 체크해 보기 시작했다.
필터링을 인기 댓글순으로 정렬했다.
[물병보틀] ♥ 15,232
여러분 시간 아껴드림.
1분 40초부터 제대로 초점 잡히고, 레전드 댄스 감상 시작.
본인은 2분 30초부터 팬티 다 젖어서 기저귀 차고 끝까지 봤음.
[초코민트] ♥ 13,037
진짜 혼자서 춤추는 거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개소름 돋게 만든 건 얘가 처음
[댄스튜브] ♥ 11,211
이 춤의 포인트는 처음에는 간질병 환자처럼 추면서 실력을 숨기다가 박지훈 춤 출 때부터 실력 나오기 시작하더니, Eminem lose yourself 출 때는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개간지로 무대 부셔 버리는 게 포인트. 오랜만에 설렘가즘 제대로 느꼈다.
[디오니소스] ♥ 9,790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독보적인 댄서가 또 나올까? 이건 십 수 년이 지나도 레전드로 남을 듯
[Ilovekorea] ♥ 7,290
I will never shut up about how amazing this choreography is
(이 댄스가 얼마나 멋있는지에 대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어!)
한국 뉴튜버 구독자뿐만 아니라 해외 뉴튜버 구독자들에게까지 영상에 흥미를 느꼈는지, 영어, 스페인어. 태국어. 터키어 등
외국인들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댓글을 남겼다.
뉴튜브 조회 수 역시 영상이 올라간 지 이제 고작 하루 밖에 안 지난 시점인데 벌써 100만회를 돌파하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의 월드 클래스급 가수들의 동영상은 1억 만 뷰를 넘는다고도 하지만, 고작 길거리에서 춘 무명 댄서의 동영상 치고는 무서운 급상승세였다.
그렇게 댄스 동영상 리플들을 내리며 읽다보니, 날카로운 지적이 담긴 리플들도 보였다.
[참치초밥] ♥ 134
저 동영상 속 주인공 JYK 박지훈 아님? 아무리 얼굴을 안 보이게 꼭꼭 가렸어도. 키나 얼굴체형이 너무 비슷한데?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어도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답글 10개 보기
[미키유청 16분 전]
노노.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셈.
내가 지훈이 오빠 팬인데, 춤선이 완전히 다름.
지훈 오빠 보다 저 댄서가 춤 선이 훨씬 여자 같이 역동적임.
억측 제발 그만. 그 시간에 지훈 오빠 정규 1집 준비 하느라 JYK 사무실에 감금당해
있었음.
[보라돌이 13분 전]
너. 지훈 오빠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 오빠 실물로 본적 있음 절대 말 못함.
지훈 오빠였음 잘생김이 모자와 마스크를 뚫고 나왔음.
다행스럽게도 박지훈의 극성팬들로 인해, 영상 속 나를 박지훈으로 추측하는 댓글들은 악플로 집중 공격 받고 있었다.
JYK에서 풀은 댓글군단들도 있을 테고.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내가 아니라, 예슬이였다.
[검댕이] ♥ 382
영상 초반에 나오는 여자. YJ신인그룹 블랙블루 멤버 예슬이 아니에요? 우리 XEO 오빠들 YJ 출근하는 거 구경 갔다가 본 것 같은데요?
+답글 5개 보기
[정나라 35분 전]
맞음. 쟤 블루블랙 비쥬얼 센터 한예슬임.
그런데 YJ 연습생이 왜 저기 있지? 혹시 저 댄서도 YJ에서 키우는 비밀병기 아님?
YJ에서 일반인인 척 뒷 광고 한 거 아님?
[z드래곤우리신랑 27분 전]
oo. 한예슬 맞아요. Z드래곤 오빠가 키우는 YJ 신인 걸그룹 블루블랙 멤버.
이번에 투자 확실하게 했다던데. 저러고 다니네.
그런데 예쁘긴 존나 예쁘네. 역시 연예인은 다르구나.
[블루블랙천국] ♥ 125
예슬이 누나 실물 장난 아님. 나 다른 걸그룹 팬이었는데, YJ사무실에서 예슬이 누나 실물보고 바로 블루블랙단으로 돌아섰음. 진짜 얼굴에서 천사처럼 후광이 반짝반짝거림.
내가 본 연예인들 중에서 단연코 탑임. 헤으응~
아직 데뷔도 하기 전인 걸그룹 블루블랙인데.
확실히 대형 기획사에서 키워서인지 벌써부터 예슬이를 알아보는 팬들도 있었다.
아무리 연습생이라지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데뷔하는 걸그룹인데.
남자와 데이트를 하다가 딱 걸렸으니.
아니 걸린 정도가 아니지.
아예 대놓고 뉴튜브에 출현해 버렸으니, YJ에서 불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가 났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YJ가 아티스트의 연애에 관해서 자유로운 편이긴 하지만.
그것도 다 서로 급이 맞고 성공해서 이미 한국에서 유명해진 다음에나 가능한 일.
아직 데뷔도 안 한 연습생인 주제에 밖에서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게 들킨다면,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것은 기본이고.
24시간 매니저의 철통 감시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예슬이를 위해서 예슬이가 어떻게든 짬을 내서 먼저 연락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겠지?
예슬이한테 카통이라도 짧게 보내고 싶었지만 일단 참기로 한다.
나와 예슬이가 나오는 길거리 공연 댄스 뉴튜버 동영상을 닫고, 실시간 급상승 영상을 클릭해 본다.
역시나 먹방, 여행, 연예인 뉴튜버가 많다.
그런데.......
눈에 띄는 소녀의 동영상이 하나 보인다.
어?
수많은 영상들 가운데 섞여있었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본 얼굴.
주저 없이 클릭한다.
딸칵.
그러자 상큼한 음악과 함께 재생되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
동영상 속의 소녀는 좀처럼 웃지 않는 무표정임에도 불구하고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다만 눈빛이 차가워서 쉽게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 할 정도의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그래서 분명히 아는 얼굴임에도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상냥했던 그녀와는 너무나 다른 차가운 표정과 도도한 모습.
영상 속의 주인공은 바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