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 제발 가지 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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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
이번에는 김미희 주임이 엉덩이를 부비적부비적거리며 거만하게 말한다.
“치, 고작 슬리퍼? 나는 우리 시현씨가 준 소중한 선물이 은밀한 곳에 박혀 있는데 말이야. 한시라도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시현씨의 애틋한 마음 아니겠어요? 하응. 아. 엉덩이가 왜 이렇게 꽉 조이지. 우리 시현씨 생각해서 흥분했나?
이에 질세라 최다정 차장이 젖소 같은 젖가슴을 쭈욱 당당하게 앞으로 내밀며, 도도한 자세를 취한다.
“오늘따라 제 가슴 평소보다 더 크지 않아요? 모양도 예쁘고. 다들 뭘 모르나 본데. 시현씨는 미희씨나 유리씨. 아영씨 같은 빈유 가슴 따위 관심도 없거든요. 적어도 저 정도의 D컵 이상의 슴가는 가져야 시현씨 여친 후보에 오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빈유들이라서 그런지 다들 뭘 모르시네요. 흐윽. 시현씨 생각하니까 가슴에서 또 민감한 자극이 오네. 열심히 우유 만들어서 시현씨에게 대접해 드려야지. 우리 아기 같은 시현씨. 제가 모유 먹이면서 잘 키울 거니까 아무도 건들지 마세요. 가슴이랑 등딱지랑 구분도 안 가는 주제에.”
최다정 차장.
김미희 주임.
서유리 사원.
하나 같이 붉어진 자안의 눈동자를 빛내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유시현에 대한 독점욕을 드러내고 있다.
아영 사원은 서로 유시현을 차지하겠다고 으르렁대는 여자직원들을 바라보며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안 돼!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 돼!
아영 사원이 속으로 절규하며 이번에는 대화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남녀역전 전 세상의 유시현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래, 지금 이세계의 유시현은 얼굴도 존잘 미소년에 카리스마도 있는 게. 여자들이 반할만하지. 하지만, 다들 예전 원래 우리가 살던 세계의 유시현을 생각해봐요. 얼마나 우유부단하고 찐따에 병신 같았는지.”
우유부단한 찐따에 병신.
아영 사원이 유시현에 대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사용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단어들이 불러 올 엄청난 파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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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역전 된 세계의 유시현이 아니라 원래 살던 세계의 유시현을 욕하자 다들 아무 말이 없다.
드디어 흐름을 탔다고 생각했는지 아영 사원이 더 신나게 떠들기 시작한다.
“유시현 그 새끼 남녀가 바뀐 세상으로 오기 전까지는 진짜 개 호구였잖아. 좆같은 잡일은 그 새끼한테 다 몰아주고 유리씨랑 그 새끼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진짜. 그거 생각나요? 유리씨? 아침에 오전회의 있다는 것도 안 알려주고 왜 회의 준비 안했냐고 다그치니까 그 새끼가 창백해진 얼굴로 당황하던 거? 주제도 모르고 대들기에 같잖은 그 새끼 부모님 욕 시원하게 해주니까 거의 울려고 하던데. 그때 그 유시현새끼 얼굴을 핸드폰으로 찍어두고 지금같이 이 새끼가 양아치처럼 굴 때 매일 돌려봤어야 하는 거였는데. 진짜. 아, 참. 그리고 그건 또 얼마나 통쾌했는데! 오전 회의 때 유리씨가 뻑난 USB파일 들고 가서 그 새끼한테 가져다주고 회의 준비하라고 하니까. 그거 복구한다고 유시현새끼 오줌 마려운 개새끼처럼 쩔쩔매던 거. 생각나죠. 유리씨? 진짜, 지금 생각해도 고소하다니까.”
아영 사원이 신나서 떠들수록 유리사원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르고 숨이 거칠어졌다.
아영 팀장의 유시현 흉보기가 절정에 달했을 즈음 유리 사원이 스탈벅스 테이블을 손으로 쿵! 치며 소리쳤다.
“그만해요. 팀장님. 저 개 같은 년 이었던 거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고개를 푸욱 숙인 유리사원이 혼잣말로 넋 나간 여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안됐어. 내가. 진짜, 그러면 안됐는데.......... 시현씨한테. 내가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마음약한 시현씨가 나 같 얼마나 나 때문에 상처 받았을까. 미안해요. 시현씨. 시현씨이........”
신나서 자신과 맞장구를 칠거라 생각했던 유리사원이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고개를 푹 숙이고 넋 나간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아영사원이 이번에는 김미희 주임을 바라보며 동조를 구한다.
“미희씨. 미희씨도 진짜. 유시현 새끼 굴리는 건 참 잘했는데. 택배 온 물건 받아오라고 매 번 1층부터 10층까지 왔다갔다 똥개 훈련시키고. 한 번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유시현새끼 그 계단을 하루에 여섯 번이나 미희씨 택배 받으러 1층에서 10층까지 계단으로 왔다 갔다 했잖아. 마지막에는 거의 탈진되어가지고 땀범벅으로 화장실 앞에서 헥헥 거리고 있는데, 얼마나 쌤통이던지. 그때 다정씨도 같이 짜고서 엘리베이터 이미 작동하는데도 계단으로 갔다 오라고 시키고, 진짜. 그렇게 똥개 훈련이나 받고 회사 다니던 새끼가. 진짜 많이 컸어. 안 그래요. 미희씨?”
아영 사원의 말을 듣던 김미희 주임이 붉어진 얼굴로 양손을 꽈악 쥐었다.
“씨발....... 1층부터 10층까지 계단을 오르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걸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여섯 번이나........ 아무 이유도 없이. 시현씨가 탈진 할 때까지 똥개 훈련을 시키다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니. 이 미친년아. 씨발. 사람 같지도 않은 미친년아.......”
그렇게 중얼거리던 김미희 주임이.....
오른손을 들어서는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쫘악!
찰진 소리가 스타벅스에 울려 퍼졌다.
얼마나 쎄게 때렸는지 순식간에 붉게 물든 아름다운 김미희 주임의 왼쪽 뺨.
하지만 그 걸로도 자신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자신을 책망한다.
“당장....... 시현씨에게 가서 무릎 꿇고 빌어야해.......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시현씨를 개처럼 굴렸으니. 지금 당장 용서해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서유리 사원과 김미희 주임의 반응.
당황한 아영사원이 최다정 차장을 바라본다.
“다정 차장. 오늘 유리씨, 미희 주임 다들 너무 이상하다. 그치? 그런데 다정 차장은 나 이해하지? 사실 시현이 새끼 눈에 가시처럼 가장 싫어한 게 다정 차장이었잖아. 다정 차장이 유시현 새끼가 사적인 자리에서 우리 뒷다마 깐 거 말 안 해줬으면, 그 새끼가 박쥐처럼 자기 본 모습은 숨긴 채, 우리랑 친하게 지냈을지 알아? 그, 새끼랑 친하게 지내다니. 으휴, 생각만해도 진짜 끔찍하다. 끔찍해.”
하지만 최다정 차장 역시 눈빛이 정상이 아니다.
아영 사원의 말에 최다정 차장이 있지도 않은 유시현이 마치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고백하며 혼잣말을 쏟아내고 있다.
“시, 싫어한 거 아니었어. 시현씨를. 그저 처음에는 당황하는 모습이 순진하고 귀여워서. 그래서 그런 거였어. 원래 그런 거잖아. 좋아하면 더 장난치고 싶고, 놀리고 싶어지고. 시현씨........ 나 정말 그런 거야.”
그리고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멍해진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이제 정말 숨겨왔던 내 마음. 마음속으로 시현씨를 상상하며 키워 온 마음. 내 진심 다 보여 줄 테니. 시현씨. 마지막으로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나에게 기회를 줘........ 알잖아. 시현씨. 다른 사람들이 시현씨를 싫어하면 그 만큼 시현씨가 내 것이 될 확률이 더 높아지니까. 그래서. 그래서....... 시현씨에게 몹쓸 짓을 해버렸어. 제발. 시현씨. 제발 한 번만 만회할 기회를 줘........ 미안해. 시현씨. 정말............”
사실 인간의 마음이란 건 복잡 미묘해서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다.
누군가를 괴롭히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안함 마음이 들기도 하고, 시기하면서도 반대로 부러워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원래 세상에서는 유시현에 대한 마음이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쪽으로만 흘렀다면, 지금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유시현에게 조교를 당하면서 다른 갈래의 마음의 길이 열린 것이다.
문제는 유시현을 향한 그 다른 갈래의 마음의 길이 너무 크게 열려버렸다는 것.
그러자 원래 살던 세계에서 그녀들이 유시현에게 했던 파렴치한 행동들에 대한 후회가 아영사원과의 대화를 통해 물고가 트이고, 바로 지금 그 행동들에 대한 후회감이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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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씨발. 이건 다 최다정. 너 때문이야. 이 씨발년아! 나는 정말 우리 시현이랑 잘 지내고 싶었는데, 너 이 씨발년이 착한 시현이를 가스라이팅해서 나랑 우리 시현이 사이가 틀어진 거 아니야!”
자신의 뺨을 갈기며 셀프 자책하던 김미희 주임이, 눈물을 글썽이며 최다정 차장을 향해 소리쳤다
최다정 차장도 지지 않고 김미희 주임을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로 김미희 주임을 바라보며, 윽박지른다.
“미친년아! 너는 잘했고? 시현씨가 거절 잘 못한다는 걸 이용해서, 너 이 미친년이. 얼마나 우리 시현씨를 못살게 굴었는지 내가 다 말해줘? 괜히 옮기지 않아도 될 무거운 화분을 매일 이쪽, 저쪽 옮기라고 똥개 훈련 하 듯 시키고. 우리 시현씨 화분 옮기다가 허리라도 나가면, 이 미친년아. 어디서 남의 남편 될 사람. 밤일도 못하게, 허리를 혹사시켜! 그리고 매일 점심시간에 시현씨한테 스탈벅스 커피심부름은 왜 시켰던 건데? 미친년아. 시현씨도 점심시간에는 좀 쉬도록 놔둬야 할 거 아니야.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 정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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