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걸레들 노예 조련(7)
* * *
동철과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작은 박스를 하나 꺼내서 성현대리에게 내밀었다.
“성현이형. 형 선물도 준비했어요.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리님 없었으면 그동안 혼자서 저 미친년들 감당을 어떻게 했겠어요.”
성현대리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야. 됐어. 선물은 무슨. 집어넣어라. 선물을 주려면 내가 너한테 줘야지. 요즘에 시현이 때문에 회사도 편하게 다니는데.”
“에이. 그래도 포장지 뜯어 라도 보세요.”
“됐다니까 그러네. 집어넣어. 부담 되어서 이런 거 싫다.”
나는 할 수없이 성현대리에게 내밀었던 선물을 도로 집어넣기 위해 손을 뻗으며 작게 혼잣말로 말했다.
“아, 이거. 참. 대리님 주려고 특 A+급으로 준비한 한우........”
그 순간 빛보다 빠르게 성현대리의 손이 냉큼 내가 준비한 선물을 움켜쥐었다.
“시현아. 고맙다. 날 알아주는 사람은 시현이 밖에 없구나.”
역시 먹이에는 극도로 약한 성현대리였다.
그렇게 성현대리에게도 선물을 전달하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서 마시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뺀질이! 야, 이거 어떠냐? 좀 괜찮나?”
이 목소리는?
흑채를 들고 화장실로 사라졌던 김동철과장이었다.
사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적당히 잘 어울린다고 맞장구 쳐 주기 위해 뒤돌아보는 순간!
흐억! 아니 이럴 수가!
목소리는 김동철과장이 맞는데, 얼굴은 20대 중반의 훈남이 씨익 웃으며 서 있었다.
“야. 어때? 잘 어울려? 좀 어색한 것 같긴 한데........”
이거야 말로 반전 중의 반전!
나도 성현대리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한다.
정말 남자에게 있어서 머리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다.
동철과장이 입버릇처럼 머리털이 있을 때는 대학교 때 과에서 장동검으로 불렸다는 말이 그냥 하는 개소리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진짜 머리털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났다.
이래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역시 머리카락은 남자면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소중한 것이다.
“이야! 과장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동철이형! 진짜 형 맞아? 완전 몰라보겠네. 몰라보겠어.”
성현대리와 내가 추켜 세워주자 동철과장이 쑥스러워하며 코를 찡긋거린다.
“그래에? 나는 잘 모르겠는데. 뭐 어찌되었든 어울린다니까 좋네. 야. 가자. 가. 점심시간 끝나겠다.”
그렇게 순식간에 흑채의 효과로 머리카락이 자라버린 동철과장이 콧노래를 부르며 회사를 향해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 *
“하아. 진짜 김미영 미친년. 그딴 머리숱도 없는 아저씨 새끼가 뭐가 그리 좋다고.”
아영 사원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화장실에서 조인트 까이면서 미영대리에 갈굼 당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정말로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자신한테 잘해주고 남자다운 면은 있었지만, 남자든 여자든 외모가 중요한 아영사원에게 김동철 과장이 전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자격미달!
아니 애초에 이성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속마음도 모르고 미영대리는 동철과장에게 여우짓을 한다는 둥. 꼬리치지 말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무려 30분 동안이나 숨도 못 쉬도록 갈궜다.
“씨발. 그냥 재수 더럽게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잊자. 잊어.”
힘도 직위도 김미영 대리보다 딸리는 지금 상황으로서는 미영대리에게 복수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밀려오는 피곤함 때문에 머리를 사무실 책상에 푹 박고 눈을 감고 있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아영씨. 그렇게 차가운 곳에 얼굴대고 잠들면 입 돌아가요. 자, 이거라도 깔아요.”
아영사원이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누구지?
그리고 눈을 뜬 그녀 앞에.
보여 지는 천사같이 미소 짓고 있는 훈남.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우리 회사에 저렇게 귀여운 사원이 있었나? 신입사원인가?
평소 귀여운 여자를 좋아하는 김아영 사원이었지만, 저 정도로 천사같이 귀엽다면 남자도 ok였다.
자기도 모르게 보지가 움찔움찔 떨린다.
원래 사랑에 빠지는 건 뇌가 아니라 보지가 하는 것이라는 명언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는 존재한다.
따뜻한 오후의 햇살.
부드러운 목소리와 배려심.
거기다가 귀여운 얼굴에 천사 같은 미소라니!
너무 완벽한 이상형이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기, 누구세요? 혹시 저희 팀에 새로 온 신입 사원?”
아영 사원이 머릿속으로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
신입사원이라면 자신의 노련함으로 가리켜 줄 수 있는 것이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딱 붙어서.
갑자기 지옥만 같던 회사생활에 한줄기 빛이 쏟아지는 것 같다.
같은 신입사원끼리 야근하다 보면, 은밀하게 스킨십 할 기회도 생길 테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외박과 격렬한 섹스.
꿀꺽........
군침이 싹 돈다.
어느새 몇 단계는 건너 뛴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아영 사원.
그런데 그런 그녀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미영대리가 다가와서는 방해를 한다.
“아영씨.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화장실에서 알아듣게 말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동철씨 홀리면서 여우짓 하고 있는 거야!”
동철씨 홀리면서 여우짓이라니?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여기에 김동철과장이 어디에 있다고?
아무리 눈을 휘둥글리며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건 환하게 천사처럼 웃고 있는 귀엽게 생긴 훈남 밖에 없다.
“아니. 미영대리님.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억지까지 쓰면서 저를 갈구려는 거예요? 도대체 김동철 과장이 어디 있어서 제가 동철과장한테 여우짓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영사원도 참을만큼 참았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남 신입사원 앞에서 미영대리와의 기싸움.
밀리고 싶지 않다.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훈남 신입사원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야, 이거. 미영씨는 안 속네. 안 속아! 목소리만 좀 깔았더니 다른 직원들은 다 속았는데. 어때요? 아영씨. 저 머리카락 있으니까 완전 다른 사람 같죠? 아영씨 동생해도 되지 않겠어요?”
그제야 아영 사원은 묘하게 지금 눈앞에 있는 귀여운 훈남이 동철과장과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서, 설마. 동철씨에요? 김동철 과장?”
“이야! 이거 우리 아영씨 많이 놀랐나보네. 저 김동철 맞아요. 에이. 미영대리 때문에 들켜버렸네. 재미없게. 이제 우리 팀에서는 들켜버렸으니까, 다른 팀에 가서 새로 온 직원인 척하고 놀아야지.”
그렇게 장난꾸러기 같은 말만 남기고 동철과장이 후다닥 다른 팀원들이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저게. 동철과장이라니. 저렇게 귀엽게 생긴 남자가. 그동안 내가 눈이 삐었었나봐.
한순간에 반해버렸던 남자가 김동철과장이라는 것을 늦게 알아 챈 아영사원.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는 미영대리.
삼각관계의 신호탄을 알리는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 *
[유시현 시점]
점심을 먹고 회사에 도착해보니, 최다정 차장이 여전히 책상에 앉아있다.
점심시간까지 일을 할 정도로 회사에 진심인 사원이 아닌데?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최다정 차장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최다정 차장은 멍한 눈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노예피아라는 웹소설 사이트였다.
웹사이트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19금의 여성향 소설이 주를 이루었다.
순위 1위부터 100위까지 TOP today가 메인 화면이다.
그런데 메인 화면의 표지들은 요염한 여자가 미소년의 가슴을 핥고 있는 다던가.
자지가 큰 남자가 중요 부분만 가린 채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는 다든가.
미소년이 야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를 밧줄로 묶고 있는 야한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정씨. 점심시간에도 소설을 다 읽고. 독서에 진심이네?”
최다정 차장의 귓가에 대고 은밀히 속삭이자, 최다정 차장이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노예피아 웹사이트를 닫았다.
“아, 아니요. 팀장님. 미영대리가 추천해 줘서 그냥 잠깐 구경만 한 거예요.”
“누가 뭐래요? 최다정 차장. 어차피 점심시간은 자유시간인데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 거죠. 야한 소설을 읽든. BL소설을 읽든. 제가 관여할 봐는 아니에요.”
“아? 네? 네.........”
내가 괜찮다고 말을 해도 야한 소설을 읽다가 들킨 게 부끄러운지 최다정 차장이 수줍어서 붉어진 얼굴을 푹 숙였다.
“아, 그것보다. 최다정 차장. 잠시 시간 있어요?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선물이요? 어떤 선물을.........”
최다정 차장의 눈에 의구심이 가득하다.
“왜요? 싫어요?”
내가 날카롭게 최다정 차장의 고양이처럼 요염한 눈을 바라보며 속삭이자, 최다정 차장이 눈을 내리깔며 말한다.
“아, 아니에요. 좋아요. 팀장님.”
“그렇죠? 역시 최다정 차장은 김미희 주임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네요. 선물을 여기서 주기는 좀 그렇고. 비품창고 알죠? 비품창고에서 봅시다.”
“네? 여기에서 선물을 주기가 그렇다는 건......... 혹시 또 저를 모텔에서처럼 가둬두고 조교 하시려고.”
최다정 차장이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엉덩이를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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