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꿈속의 그녀.
* * *
이 늦은 시간에 세나가 나에게 카통을?
뉴튜브에 내가 나온걸 알아보고 카통을 보낸 걸까?
아니면 예슬이와 한강에서 데이트 한 것을 들키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지.
아직 세나와는 아무 관계도 아닌데, 예슬이와 만나는 것을 들켰다고 해도 꺼림칙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 왜 나에게 카통을 보냈을까?
아무래도 궁금하다.
늦은 시간이라 답장을 보낼까 말까 망설였지만, 답장을 보내 봤다.
[나: 세나씨. 늦은 시간에 웬일로 카통을 다 보내셨어요?]
[세나: 오빠. 저 궁금한 게 있어서요. 혹시 오빠 한강.......]
아! 뭐지!
궁금한 것이 있다니.
역시 예슬이와 데이트 한 것을 들킨 건가?
[세나: 오빠, 혹시 한강 좋아해요? 저희 이번 주 일요일에 점심에 초밥 먹고 한강에 갈래요? 요즘에 날씨가 좋아서, 한강에서 지는 노을을 보면 멋질 것 같아서요.]
하으.......
아니구나!
다행이다.
그런데 또 한강을 가자고?
이걸 거절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이유도 없이 거절하기는 또 그렇다.
한강 한 번 갔다고 두 번 못 가겠냐.
그래, 가자. 가.
[나: 그래요. 세나씨. 그럼 일요일에 초밥 먹고 한강에 가요.]
[강세나: 고마워요. 오빠. 역시 오빠는 착한 것 같아요. 그럼 일요일에 봐요.]
[나: 네. 세나씨. 그럼 일요일에 봐요]
[강세나: 오빠, 아무리 여름이라도....... 물에 젖은 상태에서 찬바람 맞으면 감기 걸릴 수 있으니까, 꼭 따뜻하게 하고 자요. 잘 자요.]
[나: 네. 세나씨도요.]
하아........
이렇게 해서 일요일에는 세나와 초밥을 먹고 또 한강에 가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세나한테 지하철에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이번에는 세나가 원하는 곳에 가줘야겠지.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세나와 카통을 끝내고 나니 뭔가 내가 놓친 게 있는 것 같다.
그게 뭘까......
라고 생각하며 세나와의 카통을 열어보는데.
다시 카통 소리가 울린다.
카통! 카통왑섭!
이번에는 누구야!
하고 카통을 열어보는데..........
[미유키: 오빠,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윽.
이번에는 미유키다.
아니, 왜 소녀들이 연달아 이 시간에 카통을 보내는 건데!
라고 생각하며 살펴보니.
음.........
내가 예슬이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동안 미유키에게서 카통이 꽤나 와 있었다.
다만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 뿐.
나는 서둘러 미유키에게 답장을 보냈다.
[나: 아니에요. 미유키씨. 답장이 늦어서 미안해요. 제가 이제야 미유키씨 카통을 봤어요.]
[미유키: 아니에요. 남자란 자고로 바빠야죠! 너무 쉬운 남자는 매력이 없다고 한국 TV에서 봤어요. 한국 여자는 남자가 넘어 올 때까지 기본 10번은 도끼로 찍는다면서요. 미유키도 열심히 한국여자처럼 시현 오빠 도끼로 찍어 볼게요!]
아. 미유키는 한국 TV를 너무 많이 보나 보다.
한국문화를 TV로만 배워서인지, 자칫 잘 못하면 오해 살 말을 쉽게 한다.
남자를 도끼로 찍다니.
생각만 해도 무섭다.
[나: 아. 예.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카통을?]
[미유키: 오빠. 저희 토요일에 한국 문화 체험하기로 했는데요. 미유키 한국에 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어요. 그래서 오빠랑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서 카통 했어요.]
서,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미유키: 오빠. 저희 토요일에 한강에 가면 안 될 까요? 한국 드라마 보면 연인들이 한강에서 데이트 하더라고요. 미유키는 그래서 신랑감이 생기면 꼭 한강에 같이 가는 것이 일본에 있을 때부터 소원이었어요.]
역시 한국 드라마가 외국인들 다 망쳐 놓는다!
왜, 하필 또 한강이야!
일주일에 한강을 세 번이나 가야 하다니.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골치 아프다.
하지만, 일본에 있을 때부터 한강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하니 거절하기도 힘들다.
하아, 할 수 없지.
그런데 신랑감이라니?
아마 농담이겠지.
이제 겨우 한 번 만났을 뿐인데.
그것도 식당에서 잠시 스치는 정도로.
나는 미유키에게 카통을 보냈다.
[나: 네. 알겠어요. 그럼 토요일에 한강에 가요.]
[미유키: 오빠. 고마워요!!! 오빠 도끼로 찍은 보람이 있어요. 사랑해요! 그럼 잘 자요. 내 꿈꿔!♥♥♥♥♥]
하으........
역시 미유키는 한국어를 드라마로 배워서인지 표현이 직설적이고 부끄러움이 없다.
메시지를 읽고 있는 내가 다 닭살이 돋을 정도다.
그렇게 미유키와도 토요일에 한강에 가게 되었다.
아, 진짜 한강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 놓았나.
왜 다들 한강에 가자는 거야.
뭐 사실 딱히 서울에서 한강 말고 데이트 할 만 한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한강 주변에 있는 아파트들이 그렇게 비싸겠지.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이번에는 진영이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딸칵!
“여보세요.”
[야! 유시현, 너 지금 어디야? 아직도 바깥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대표님. 지금 택시타고 집에 가고 있어요.]
[그래? 어서 들어가. 그리고 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탑 아이돌이 길거리에서 춤이나 추고. 아무리 얼굴을 모자랑 마스크로 완벽하게 가렸다고 해도. 휴가 줬더니 무슨 스텝업 영화 주인공 흉내나 내고 있고 말이야. 누나가 뭐라 그랬어. 너는 춤 보다는 노래를 연습해야 한다니까. 공기반 소리반! 복식호흡!]
"알겠어요. 누나.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정중하게 사과를 하자, 그제야 진영이 누나 마음이 좀 풀어졌는지 살짝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그렇고. 너 춤 더 늘었더라. 언제 또 그렇게 연습을 한 거야? 잘 추는 건 알았지만, 오늘은 차원이 다르던데. 외국 정상급 트레이너라도 구한 거야? 국내에서는 그 정도 feel 나는 댄스 트레이너 없을 텐데. 하여간 퍼포먼스는 잘했어.]
국내에서 최정상급 실력을 가진 진영이 누나에게도 인정을 받자 내 춤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아니에요. 누나. 그냥 외국 전설적인 댄서들 보면서 연습 좀 했어요.”
[그래? 영상만 보고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뭐 그건 그렇고. 그 여자애 YJ연습생이던데. 너랑 같이 있던 여자애. 이번에 데뷔 할 걸 그룹 블랙블루 중에서도 비쥬얼 담당. YJ에서도 지금 난리 났어. 그 영상보고. 걔. 한예슬인가? Z드래곤이 특별히 트레이닝 시키고 관심 가지고 키우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
그래. 그런 거였구나.
역시 예슬이의 우아하고 품격 있는 외모는 YJ가 전력을 다 해 키우는 초특급 걸그룹 블랙블루 중에서도 비주얼 담당을 할 정도였어.
그러니까 예슬이를 잠깐이라도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다들 뒤 돌아 볼 정도로 예뻤던 거겠지.
그리고.
그렇다면 예슬이에게 중간에 전화 걸었던 사람이 진짜.
국내. 아니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연예인들의 연예인 Z드래곤?
그렇게 생각하니 나와 예슬이 사이의 벽이 더 높아만 보인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야. 유시현.
너도 이 세계에서는 탑 티어 아이돌 박지훈 이잖아.
꿀릴 것 없어.
자신감을 가지자.
“아. 예슬이요. 그냥 아는 동생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누나”
[그래. 시현이가 다른 건 몰라도 자기 관리는 철저하니까. 누나가 믿는다. 밤도 늦었는데, 어서 들어가서 자. 휴가 기간 동안 노래 연습 좀 하고. 알겠지?]
“네. 누나. 주무세요.”
딸칵!
진영이 누나와 전화를 끊을 때쯤이 되자 어느덧 집 앞 아파트에 도착해 있었다.
택시기사 아줌마에게 택시비를 지불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띵!
엘리베이터가 12층에 올라가는 동안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을 눈을 감고 떠올려 봤다.
YJ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우는 초대형 신인 걸그룹 비주얼 담당 예슬이와 키스를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마치 10대처럼 설레서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띵! 지이잉!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멈추었다.
찰카닥, 덜커덩.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
예슬이가 이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쏴아아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바로 눕는다.
오늘은 피곤한 하루여서인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 * * * *
몽롱한 상태에서 눈을 떴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지?
뜬금없이 화려한 호텔에서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아 그렇다면.
지금 이 곳은 꿈속인걸까?
흔히들 말하는 꿈속에서 본인이 꿈이라는 걸 인지하는 상태.
자각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기분 좋은 상큼한 라일락 향기가 호텔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품격 있고 멋진 장소에 있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와있는 느낌이라 불편하다.
꿈속이라면 이 갑갑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내가 꿈속이라는 것을 인지한 이상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건 뭐지?
그렇다고 해서 가위에 눌린 건 아닌 것 같은데.
하여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내가 움직이는 걸 허수아비처럼 바라보는 것 밖에 없다.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꼭두각시처럼 마음대로 움직인다.
발이 하나 둘!
앞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들려오는 웅장한 클래식 음악소리.
내가 내 몸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감각은 느껴진다.
심장이 긴장해서 터지도록 빠르게 뛰고 있다.
식은땀도 나는 것 같고.
걸어가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대부분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부모님은 알아 볼 수 있다.
부모님은 곱게 한복을 입고 계신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턱시도를 쫘악 빼입고 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곳은 결혼식장.
나는 신랑인 것이다.
꿀꺽.......
긴장이 되는지 목이 타고 입술이 바짝 마른다.
긴장해서 로봇처럼 발걸음이 딱딱해진다.
긴장해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처럼 무겁다.
하지만 드디어 그 길을 걸어서 주례자 앞에 선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아름답고 우아한 음악소리.
중년 남성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빛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하얀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너무 아름답고 순결해서 감히 똑바로 볼 수가 없을 정도다.
점점 가까워지는 우아하고 청순한 소녀와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중년의 남성.
그렇다면 저 천사 같은 소녀는 내 미래의 신부이고 중년의 남성은 장인어른이시구나.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신부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천천히 내 미래의 신부와 장인어른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점점 거세게 쿵쾅 거리는 심장소리.
그리고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 숨이 멎을 것 같이 아름다운 소녀.
그녀는 바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