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한예슬과 한강에서 데이트(4)
* * *
“오빠, 사실 저. YJ에서 새로 데뷔할 아이돌 연습생이에요. 미안해요. 오빠. 거짓말해서.”
응?
지금 예슬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YJ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닌가?
내가 소속된 JYK보다 더 크고 잘 나가는 회사인데.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예슬아. YJ에서 인형탈을 쓴 아이돌을 데뷔시킨다고?”
“아, 아니요. 오빠. 인형 탈 쓰고 아르바이트 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너무 당황되어서 오빠한테 대충 둘러 된 거예요.”
“하지만 예슬이는 저번주까지 피자 배달걸로 일하지 않았어?”
“네. 오빠. 사실 피자배달 알바는 잠깐 동안 하던 알바에요. 엔터테인먼트 회사 오디션 보러 다니면서요. 아는 언니가 도와달라고 해서요.”
나는 그제야 왜 천사같이 예쁜 예슬이가 피자 배달걸로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돌 오디션 보러 다니는 동안은 수입이 없으니 용돈이 궁해서 잠시 아는 언니를 도와드렸던 거다.
예슬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한다.
“오빠. 정말 미안해요. 오빠. 제가 거짓말해서 오빠가 저 더 이상 안 본다고 해도 이해 할 수 있어요. 다. 제 잘못인걸요. 하지만 오빠가 저 거짓말 한 거,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인거 이해해 주면, 저는 오빠랑 계속 만나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오빠. 예슬이 나쁜 아이라 실망하셨죠.”
아, 아니야.
예슬아.
나는 이미 데뷔까지 한 JYK 아이돌 박지훈인걸.
윽, 예슬아 너가 이렇게 나오면 나는 진실을 밝히기 더 힘들어 지잖아.
나는 어색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괜찮아. 예슬아. 사실 나도.......”
“아니에요. 오빠! 오빠, 안 괜찮은 거 알고 있어요. 오빠 아이돌 연습생 하다가 데뷔 직전에 JYK에서 버림받으셨다면서요. 오빠한테 상처주고 싶지 않았지만, 오빠에게는 꼭 진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 그게, 아니라. 버림받은 게 아니라, 아니라. 예슬아. 오빠 말 좀 들어 봐.”
그런데 예슬이가 물기가 촉촉해진 에메랄드 같이 예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어? 이게 아닌데.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나도 빨리 내가 사실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아이돌 중에 한명인 박지훈이라는 걸 밝혀야 하는데........
“오빠, 그래요. 제가 말실수 했어요. 오빠는 버림받은 게 아니라, JYK 이 나쁜 고릴라 아줌마가 오빠의 가치를 못 알아 본거죠. 하지만, 제가 본 오빠는 그 누구보다도 반짝 거리는 보석 같아요. 그러니까 오빠도 오빠의 가치를 알아주는 엔터테인먼트만 만나면 연습생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어요. 우리 같이 힘내요. 오빠.”
“아, 아니야. 예슬아, 그게 아니라고.........”
“쉿. 오빠. 다 알아요. 오빠 마음. 사실 저도 오빠처럼 데뷔 직전에 팀에서 강제 탈퇴 당한 적이 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에 서늘한 비수가 꽂힌 것처럼 아픈 걸요. 우리 시현이 오빠.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삼 년이나 연습하고 데뷔도 못했다니.”
예슬이가 촉촉이 젖은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와서는 내 등을 끌어안고 토닥거린다.
예슬이의 머리에서 나는 상큼한 샴푸 냄새와 아기 같은 비누 향.
예슬이의 품에 안기다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에라, 모르겠다.
지금은 일단 그냥 JYK에서 데뷔 실패한 연습생 유시현인 척 하자.
“오빠, 힘내요. 그리고 오빠도 다시 연습생 할 수 있게 제가 도와줄게요.”
연습생?
연습생이라니!
유시현의 기억을 통해 본 아이돌 연습생의 일상은 실로 끔찍하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다시 새벽까지 댄스, 노래 연습.
그것도 모자라서 체중 조절을 위해 하루 종일 닭 가슴살과 풀떼기만 먹어야 한다.
지금도 다시 아이돌 생활로 돌아가면 어느 정도의 체중 조절은 필요하지만 연습생 시절만큼 처절하진 않다.
인지도가 생긴 만큼, 소속사에서도 연습생 시절처럼 노예 굴리듯 굴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이 열심히 연습해서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가라니.
윽, 다시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거린다.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예슬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빠 괜찮아요? 혹시 저 때문에 충격 받아서 그런 거예요?”
“아니야, 예슬아. 연습생 시절 생각을 하니까.”
“아, 오빠. 연습생 시절이 그리워서 그런 거죠? 미안해요. 바보 같이 오빠 배려를 했어야 하는데.........”
그립다니.......
으.
연습생 시절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군대를 두 번.......
아, 아니. 이건 취소다.
아무리 힘들어도 군대보다 좆같진 않지.
“아니야, 예슬아. 오히려 오늘 예슬이가 오빠를 너무 잘 챙겨줘서 감동 받았는걸.”
오히려 감동받았다는 말에 예슬이의 천사 같은 얼굴이 활짝 펴졌다.
원래도 예쁘지만,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예슬이는 정말 예뻐도 너무 예쁜 사기캐다.
보고 있는 나 까지도 덩달아 행복해 지게 만들 만큼.
보조개가 쏙 들어간 하얀 얼굴의 인형처럼 예쁜 예슬이의 얼굴.
원래 경국지색의 미인은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더 예쁘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예슬이의 천사 같은 얼굴에서 눈을 떼는 건 쉽지 않다.
한 번 보면 계속 보게 된다.
그런데, 내가 무알콜 맥주를 마시고 취하기라도 한 걸까.
예슬이의 얼굴이 어째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예슬이도 무알콜 맥주와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 분위기에 취했는지 얼굴이 복숭아처럼 살짝 달아 오른 듯하다.
“오빠, 그러면. 저 오빠한테 거짓말 한 것 용서해 주는 거죠?”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응, 예슬아. 뭘 그런 걸 가지고 사과까지 해. 예슬이가 한 거짓말은 악의 없는 선한 거짓말인 걸. 예슬이도 소중한 누군가가 악의 없는 거짓말을 했을 때는 꼭! 용서해 주어야 해.”
음.
결코 내가 박지훈 인걸 들켰을 경우의 미래가 걱정되어서 한 말은 아니다.
“알겠어요. 오빠. 그러면 오빠가 저 용서해 주었으니까, 저도 오빠한테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요.”
“선물? 안 주어도 되는데. 예슬아. 뭐 이런 걸로 선물까지.”
“오빠가 좋아할지 안 좋아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제 선물 오빠한테 꼭 주고 싶어요.”
선물이라니.
나는 그저 이렇게 가까이에서 예슬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오빠, 부탁이 있는데요. 잠시만 마스크 좀 벗으면 안 돼요? 오빠 얼굴 보고 싶어요.”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늦은 시간이라서인지 한강 매점 주변의 테이블에는 우리 말고는 몇 커플의 연인들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인들은 나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 정도라면 잠시 동안 마스크를 벗어도 내가 박지훈인걸 들키지 않을 것 같다.
안 그래도 갑갑하기도 했고.
나는 손을 뻗어서 쓰고 있던 검은색 마스크를 훌렁 벗어버렸다.
그리고 한강의 달빛 아래 드러난 내 얼굴.
예슬이가 내 얼굴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한다.
“마치 천사가 달빛 아래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아.”
예슬이의 얼굴을 보니 빨개진 볼에 살짝 미약한 열기가 느껴진다.
예슬이 열이라도 있는 건가?
걱정이 된다.
“오빠, 저, 제가 준비한 서, 선물 드릴게요!”
예슬이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잠깐만 눈 좀 감아보세요. 잠깐이면 돼요!”
나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뭐지? 도대체 무슨 선물을 주려고.......
예슬이는 먹을 걸 좋아하니까 핫바라도 주려는 걸까?
눈을 꼬옥 감고 기다리는데.........
점점 더 기분 좋은 향기와 두근두근 거리는 숨소리가 느껴진다.
그리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이 잠깐 동안이지만.
내 볼에 살포시 와 닿았다 사라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부끄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귀여운 예슬이가 보인다.
“오, 오빠. 혹시라도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오빠랑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용기내서 오빠한테 볼 뽀뽀 선물 했어요. 누군가의 볼에 뽀뽀 하는 건 처음이라 너무 떨렸지만.......”
나는 부끄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예슬이의 작고 조각 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귀한 엘프의 후손처럼 보이는 긴 생머리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하얗고 결점 하는 없는 신비스러운 투명한 피부.
작은 계란형 얼굴.
아기와 같이 귀여운 이마
에메랄드 같이 크고 예쁜 눈.
반듯하면서 귀여운 코.
루비처럼 반짝이는 촉촉한 입술.
천천히 얼굴을 기울여 예슬이의 작은 얼굴을 향해 다가가자 예슬이의 상큼한 향기가 느껴졌다.
예슬이도 내 체취를 느꼈는지, 가냘픈 몸을 살짝 떨었다.
예슬이가 입술이 타는지 살짝 혀를 내밀어 입술을 훑었다.
예슬이의 붉은 입술이 더욱 붉은 색으로 반짝 빛났다,
투명하고 하얀 피부에 루비처럼 반짝거리는 붉은 입술.
예슬이의 입술은 매혹적이었다.
아니 신비스럽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녀석에게도 예슬이의 첫 키스를 뺏기고 싶지 않다.
내 입술이 예슬이의 얼굴과 맞닿을만한 거리에 이르렀을 때,
예슬이가 몸을 내게로 살짝 기대어 왔다.
소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상큼하고 신비로운 체취가 내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나는 예슬이의 가냘픈 몸을 살짝 끌어안으며 예슬이의 하얗고 가냘픈 손을 잡아주었다.
예슬이가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예슬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루비처럼 반짝이는 붉은 입술을 향해 내 입술을 덮쳐갔다.
상큼한 과일향이 나는 부드러우면서 촉촉한 감촉.
투명한 눈처럼 반짝거리는.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
그 것이 바로 내 스물여섯 살 여름.
예슬이와 나의 첫 번째 키스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