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한예슬과 한강에서 데이트(1)
* * *
“외, 외모가 미쳤나 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귀공자 미소년처럼 완벽할 수가 있어!”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시현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머리에 깊게 눌러쓰고 있던 모자가 에어트랙을 도는 동안 날아가 버린 것이다.
“오, 오빠아아앗! 꺄아아아악!!! 꺅!!!!!!”
“흐윽. 오, 오빠!!!!! 오빠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여자들이 이성을 잃어갔다.
남녀의 비율이 10대 1로 남녀가 역전된 시대.
춤만 잘 춰도 남자의 외모가 슈렉처럼 못 생겨도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다.
그런데 유시현은 전설로 남을 만한, 절도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것만 해도 남자가 힘 빠지는 흐느적거리는 춤만 봐온 남녀역전 세계의 여자들에게는 신세계다.
춤만으로도 여자들의 혼을 쏙 빼 놓았다.
그런데.......
백옥 같이 하얀 피부에 완벽한 브이라인의 작은 얼굴형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크고 맑은 귀여운 눈.
터프하고 섹시한 춤으로 오줌 지리게 만든 댄서가.
외모까지 귀족 미소년을 떠오르게 하는 얼굴이라니.
남녀역전 세계의 여자들이 눈이 확 미쳐 돌아가서 발광을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릴라처럼 무대 위로 뛰어드는 여자들.
유시현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데, 그 때.
작고 하얀 고운 손이 유시현의 손을 잡았다.
토끼같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니, 어느 덧 다가온 예슬이가 유시현의 손을 잡은 것이다.
“오빠, 달려요.”
유시현의 손을 잡은 예슬이가 말했다.
유시현도 이것저것 생각 할 것 없이, 예슬이의 귀여운 하얀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어떻게 유시현의 몸을 한 번 만져보기라도 하려고 몰려드는 여자들을 피해 정신없이 달렸다.
다다다다다다!
다행히 비도오고 어두워서 유시현과 한예슬은 여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하악.. 허억.......”
예슬이가 숨이 찬지 바닥을 짚고 쭈그려 앉아 거친 숨을 내 뱉었다.
* * * * *
“예슬아 괜찮아?”
내가 예슬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걸자, 예슬이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빠 괜찮아요. 그 것보다 오빠. 이거......”
예슬이가 왼손을 들어 내 모자를 건넸다.
에어트랙을 도는 동안 날아 가버린 모자를 예슬이가 주운 것이다.
“고마워, 예슬아.”
나는 예슬이에게 넘겨받은 모자를 한 손으로 잡아서 탁! 탁! 소리가 나게 털고는 다시 머리에 썼다.
그리고 마침.
투두둑. 툭 툭.........
여름날의 소나기도 지나가는지 비가 멈추고 있다.
예슬이가 우산을 접으며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이제 소나기가 그치려나 보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퍼붓더니. 멈출 때는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네. 오빠도, 갑자기 왔다가는 여름 소나기처럼 사라질까봐, 두려워.”
“응? 예슬아. 그게 무슨 말이야?”
예슬이는 자신의 혼잣말을 내가 들은 것을 알고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아, 아니에요. 오빠. 그것보다 오빠, 얼굴에 흙탕물이 묻었어요. 춤추다가 묻었나 봐요. 어서 티슈로 닦아요. 여기.......”
예슬이가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보며 티슈를 꺼내기 위해 손을 뻗으려다가, 그제야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들을 둘러 싼 여자들에게서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손을 잡고 있던 것도 잊어버리고 있던 것이다.
예슬이가 잡고 있는 손을 고양이 같이 큰 눈으로 바라보며, 얼른 손을 놓으려 한다.
“오빠, 미안해요. 달아나느라 경황이 없어서 오빠 손을 잡고 있는지 몰랐어요.”
예슬이의 작고 따뜻한 손.
나는 예슬이의 온기가 느껴지는 꼭 잡은 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손 놓고 싶지 않아.
잡고 있던 손을 황급히 놓는 예슬이의 귀여운 손을 나는 다시 꼬옥 잡았다.
예슬이가 놀라서 토끼같이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예슬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예슬아, 비도 그쳤는데. 우리 한강으로 산책 갈까? 그리고 이 손은 잡는 건 예슬이 마음대로였지만, 놓는 건 내 마음대로야. 그러니까 오늘은 우리 이렇게 손잡고 걷자. 그러고 싶어.”
예슬이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수줍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예슬이도 놓았던 손을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움켜쥐듯 조심스럽게 다시 잡았다.
“그, 그래요. 오빠. 나도 오빠랑 오늘 밤 이렇게 헤어지는 건 아쉬워요.”
수줍음이 많은 예슬이의 입장에서는 꽤나 용기를 내어서 한 말이었다.
나는 그런 예슬이를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예슬이도 인형같이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본다.
아… 뭐라고 말로 할 수 없는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
오늘밤은 너무나 달콤하고 기분이 좋아서,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발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그렇게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예슬이와 손을 맞잡은 채, 한강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 *
부아아아앙!!
오토바이의 엔진이 엄청난 연기와 배기음을 내뿜으며 도로를 질주한다.
“오빠. 꽉 잡아요! 제 허리 놓으면 안 돼요.”
“아, 알았어. 예슬아. 걱정 마!”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나는 예슬이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서 예슬이의 가녀린 허리를 붙잡고 있다.
마치 엄마에게 매달린 아기판다처럼 오토바이에서 떨어지기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예슬이의 오토바이 뒤에 매달리게 된 건 20분 전의 일이다.
손을 맞잡고 길을 걷던 예슬이가 택시를 잡으려는 나를 만류하며 말했다.
“오빠, 택시는 비싸요. 저 타고 온 오토바이 있으니까, 우리 그거 타고 가요.”
“예슬이 오토바이 운전도 할 줄 알… 아! 예슬이, 피자 배달했었으니까 당연히 오토바이 운전 할 줄 알겠구나.”
“네. 오빠. 걱정 마세요. 저 이래 뵈도 오토바이 운전경력 꽤 돼요. 소속사 다닐 때도 항상 오토바이로… 아, 아니 알바랑 학교 갈 때도 항상 오토바이 타고 다녔는걸요.”
“그래? 그러면 알겠어. 예슬이 오토바이 실력 좀 볼까?”
그랬다.
분명히 예슬이의 오토바이 운전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다만, 한 가지 잘 못된 점이 있다면.
너무 오토바이 운전을 배달용으로 배웠다는 거다.
피자 배달은 시간 싸움이다.
고객은 식은 피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슬이의 오토바이는 쉬지 않는다.
물론 교통신호는 완벽하게 지키며 운전하고 있지만, 지름길과 언제 신호등이 켜지는지를 미리 다 알고 있다.
거기다 차가 안 막히는 길을 찾는 것에는 도가 텄다.
그러다 보니 예슬이의 오토바이는 마치 영화 속에서 악당을 피해 전속력으로 주행하는 오토바이처럼 풀가동.
뒤에 타고 있는 나는 점점 더 빨라져만 가는 오토바이 속도에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큭. 내가 한국의 배달 라이더들을 너무 우습게 봤구나.
이 정도 운전 실력과 속도라면 세계 모토 GP대회에 나가도 크게 밀릴 것 같지 않다.
과연 우리나라는 배달 속도에 죽고 사는 배달의 민족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신없이 예슬이의 오토바이 뒤에 짐짝처럼 매달려 가는 것도 장점은 있다.
바로 예슬이의 백옥처럼 하얀 매끈한 허리를 뒤에서 껴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예슬이의 몸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기분 좋은 체취와 바람 냄새.
예슬이의 체취는 마치 아기에게서 나는 우유 냄새 같다.
거기다가 상큼한 샴푸냄새까지.
예슬이의 등에 볼을 바짝 붙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찌릿! 찌릿!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저려오기 시작한다.
이, 이거 왜 이러지.
처음 느껴지는 고통과 이상한 감각에 얼굴이 찡그려 진다.
으, 으윽.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진다.
그리고 마치 주마등처럼…
기억들이 거꾸로 빠르게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예슬이와 손을 잡으며 설렜던 일.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르는 관객들과의 멋진 공연.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
미유키라는 재벌가 일본 소녀를 만났던 일.
강세나와의 지하철에서의 첫 만남.
남녀가 역전된 세계로 떨어졌던 첫날 밤.
그리고 …
내 기억은 내가 원래 살던 현세계가 아닌 이세계의 유시현으로 이어진다.
매일 같이 밤을 새며 엄청난 춤과 노래 연습을 소화하는 이세계의 유시현.
정말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만으로도 토가 나올 정도의 하드한 트레이닝이었다.
우읍.......
구역질이 올라온다.
그래 이 정도로 하드한 트레이닝을 받았으니, 생각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경지가 되었겠지.
거기다 식단 조절을 하느라, 양 새끼처럼 매일 채소와 과일만 뜯어 먹던 기억.
곱창이 먹고 싶어서 새벽에 몰래 소속사를 빠져 나갔다가 진영이 누나한테 걸려서 밤 새 설교를 들었던 기억도 있구나.
차라리 몇 대 맞는 게 낫지.
으윽.
밤 새 설교라니.
정말 끔찍하다.
그 이후로는 식당에서 진영이 누나와 닮은 여자만 봐도 등골이 오싹거렸었군.
하아........
시간은 계속해서 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중학교.
이세계 유시현의 유년시절 까지.
그리고 마침내 뜨는 나에게만 보이는 하나의 메시지.
[두 개의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