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2부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4)
* * *
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굵은 빗줄기를 맞고 있다.
관중들의 대부분은 이미 비를 피해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아직도 내 심장의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처음 받아보는 나만을 위한 사람들의 환호.
동경어린 사람들의 시선.
비록 박지훈의 숙련된 몸을 이용한 퍼포먼스였지만, 춤을 추는 동안은 처음으로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이 느낌 다시 느껴보고 싶어.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주먹을 꽈악 쥐어 보았다.
투둑, 투두둑, 쏴아아아!
조명도 없는 비가 오는 어두운 무대.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
나는 고개를 들어 예슬이를 바라보았다.
예슬이는 우산을 쓰고 관객석에 서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예슬이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녀의 하얗고 인형같은 얼굴에 귀엽게 보조개가 들어간다.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예슬이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나도 예슬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관객들이 없어도 예슬이가 봐 줄 테니까 상관없다.
하아........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쏴아아아아..........
장대비가 쏟아지는 거리, 이제 남아 있는 건 예슬이와 단지 몇 명의 관객 뿐.
춤추는 상어도 더 이상 방송은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스텝들과 비를 피해 한 쪽에 서 있다.
예슬이가 핸드폰을 들어서는, 핸드폰의 조명을 켜서는 나를 향해 비춘다.
하얀색 빛이 빗줄기를 통과하여 나를 비춘다.
그리고 예슬이의 핸드폰에서 자그맣게 들려오는 노래.
익숙한 전주.
핸드폰을 통해 재생되는 음악이라, 소리는 작지만 온몸이 전율로 떨린다.
지금 내 몸의 본캐라고 할 수 있는 박지훈의 몸이 반사적으로 비트를 타기 시작한다.
수 천 번.
아니 수 십 만 번!
들어서 가사까지 전부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하는 노래.
에미넴의 Lose your self가 빗소리와 함께 거리에 울려 퍼진다.
+
Look, if you had one shot, or one opportunity
이봐, 한순간에 바라던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있는
To seize everything you ever wanted, in one moment
기회가 네게 단 한 번, 한 번만 주어진다면
Would you capture it, or just let it slip?
붙잡겠어? 아니면 그저 날려버리겠어?
+
하아.......
그래 단 한 번의 기회.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단 한 번의 기회 일 수 있다.
쏴아아아아........ 쿠르르 쾅! 쾅!
번쩍!
번개까지 치며, 빗줄기가 더 굵어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남아있던 몇 명의 관중들도 굉음을 내 뿜는 번개에 놀라 자리를 뜬다.
관객이라고는 나를 봐주는 소녀 한 명.
그래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예슬이는 아이돌 박지훈이 아니라, 나 유시현의 공연을 보기 위해 거친 빗줄기를 이겨내고 있으니까.
Lose yourself 비트에 맞춰 격렬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
[Yo! His palms are sweaty, knees weak, arms are heavy
손바닥은 땀에 젖었고, 다리는 떨리고, 두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There's vomit on his sweater already: Mom's spaghetti
스웨터에는 이미 엄마의 스파게티를 토한 자국이 있지
He's nervous
긴장감이 맴돌아
But on the surface he looks calm and ready to drop bombs
얼굴은 평온하고 무대를 박살낼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But he keeps on forgetting what he wrote down
적어뒀던 가사는 떠오르지 않아
The whole crowd goes so loud
관중들은 소리를 지르고
He opens his mouth, but the words won't come out
입을 열지만 아무것도 뱉을 수 없지]
+
핸드폰으로 재생되는 음악과 한 줄기에 빛에 의지하며 춤을 춘다.
수 천 번, 수 만 번 연습했던 박지훈의 노래가 아니다.
스텝이 자연스럽지 않고, 비트를 쪼개는 연계 동작이 쉽지 않다.
하지만........
+
[He's choking, how? Everybody's joking now
숨을 쉴 수가 없어, 다들 비웃고 있네
The clock's run out, time's up, over—blaow!
시간은 계속 가네, 이젠 끝이야
Snap back to reality, oh there goes gravity
현실로 돌아와, 중력이 날 짓눌러
Oh, there goes Rabbit, he choked
저기 래빗이 가네, 숨도 못 쉬던데
He's so mad but he won't give up that easy
화는 나지만 그리 쉽게 포기는 안 해
No, he won't have it, he knows
절대 그만 안 둬, 알아
His whole back's to these ropes*, it don't matter, he's dope*
이미 벼랑 끝이지만 괜찮아, 쩔어주니까]
+
쉽게 포기는 하지 않는다.
나를 봐 주고 있는 단 한 명의 관객.
예슬이를 위한 무대.
I bet We will nail it.
그녀를 위해 무대를 씹어 먹어 버릴 테니까.
Loseyourself가 계속 될수록 점점 박지훈의 몸도 비트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빠르게 360도 턴을 돌고는, 그대로 공중 위로 몸을 날린다.
쿠콰콰 쾅!
천둥이 치며 하얀 섬광이 번쩍인다.
거센 빗줄기를 피해 피신해 있던 사람들의 눈에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화려한 동작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여 진다.
쏟아져 내리는 비와 함께 천둥이 조명이 되어 극적인 효과가 더해진다.
“바, 방금 뭐야? 저게 가능하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져 내리는 거센 비를 뚫고 유시현의 공연을 보는 것은 망설인다.
그 때,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용기를 내어 한예슬 옆으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서 그녀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유시현을 향해 조명을 비춘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Eminem의 Lose yourself.
점점 더 하이라이트를 향해 치닫고 있다.
+
[He knows that but he's broke
빈털털이이고
He's so stagnant, he knows
발전 같은 거 없는 것도 알지만
When he goes back to this mobile home**
컨테이너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That's when it's back to the lab again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야지
Yo, this whole rhapsody
이 랩소디 좀 보라지
Better go capture this moment and hope it don't pass him, and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붙잡아
You better lose yourself in the music
지금 당장 음악에 몸을 던져
The moment, you own it, you better never let it go
네 손에 들어온 이 순간은 절대 놓지 말고
You only get one shot, do not miss your chance to blow
기회는 한 번뿐, 날려버리지 말아
This opportunity comes once in a lifetime, yo
이런 기회는 인생에 단 한 번뿐이니
You better lose yourself in the music
지금 당장 음악에 몸을 던져]
+
흥건히 비로 고인 스트리트.
온 몸을 날리며 쫘악 미끄러지다가 무릎으로 턴을 돈다.
촤아아아악!
바닥에 고여 있던 빗물이 사방으로 튀며 핸드폰 조명과 함께 부서져 내린다.
예슬이와 어린 소녀는 내 춤에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 둘.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불빛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멀리서 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핸드폰 조명을 키며 다가와서는 관객석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다가왔던 중학생 소녀가 예슬이에게 수줍게 말을 건다.
“언니 지금 이거 제 트윈치 방송에 내보내도 되요?”
예슬이가 나를 바라보자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가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Eminem의 Lose yourself에 맞춰 춤추는 모습과 점점 다가와서는 핸드폰 조명으로 무대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촬영한다.
미친 듯이 퍼붓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한 명의 춤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그리고 빗속에서 월드 클래스 급의 기술을 구사하며 춤을 추는 한 남자.
이 영화 같은 장면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급속도로 빠르게 SNS를 타고 퍼져 나가기 시작하며 화제가 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조명은 점점 더 밝아진다.
거기다가.
“잠깐만요.”
예슬이와 잠깐 대화를 주고받던 여자가 구석에 주차되어 있던 스포츠 차를 몰고 왔다.
그리고 우리 앞에 주차를 하더니 앰프가 설치된 오디오로 Eminem의 Lose yourself를 거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게 튼다.
노래 소리가 커지자 내 춤 동작들도 더 정교해지고 화려해 진다.
관객들 스스로 내 춤을 보기 위해 만들어 준 무대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어떤 무대보다도 더 소중하다.
춤추는 상어의 수익 목적을 위한 무대가 아니다.
관객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아니 그 이상을 보여주고 싶다.
Bboy와 힙합, 팝핀 댄스의 동작들이 생각하는 대로 이세계 유시현의 몸을 통해 거의 완벽하게 구현이 되고 있다.
내가 상상한대로 춤을 출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설마 그것도 가능할까?
하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르고 설레게 만들었던 춤.
나는 그 춤을 상상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