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2부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1)
* * *
[누나는 왜 내 마음을 몰라요.
여자라면 남자가 수줍어서 고백 받아주지 못 한 거 이해해 줘야 하잖아.
나는 매일 밤마다 누나 생각하며, 보내지도 못 할 편지를 서랍 속에 간직하고 있는 걸.]
다시 한 번 MCT의 타이틀곡이 흘러나온다.
노래 자체는 멜로디도 좋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다.
걸그룹이 불렀다면 확실히 흥행할만한 요소가 있는 꽤나 괜찮은 노래였다.
걸그룹이 불렀다면 말이지.
예슬이는 MCT의 노래가 나오자, 천천히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MCT가 했던 안무를 거의 비슷하게 따라 하기 시작한다.
응? 분명히 예슬이, MCT노래와 안무 오늘 처음 봤다고 하지 않았나?
거기다가 기본기는 오히려 예슬이가 MCT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비트에 따라 강, 약을 조절하는 유연한 움직임.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쫘악
다리를 찢고 다시 일어서며 킥하는 부분의 연결 동작이 훨씬 깔끔하고 파워풀 하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예상치 못했던 예슬이의 화려한 춤 실력에 놀랐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다물 줄을 모른다.
[누나 답답하게 망설이지 말아요. 내 마음 알아줘요~]
마침내 MCT의 노래가 끝나고 예슬이가 숨을 헐떡이며, 흐르는 땀을 닦는다.
너무 더웠는지 예슬이가 살짝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예슬이의 조각 같이 아름다운 얼굴이 그대로 관객들에게 드러났다.
춤도 춤이지만, 예슬이의 반짝반짝 거리는 청순하고 귀여운 외모는 단번에 관객들의 흥미를 사로잡았다.
“와! 모자 써서 존예 인 줄 알았는데, 모자 벗으니까 이건 완전 더 미친 외모인데?”
“진심 일반인? 내가 본 걸그룹 아이돌 중에서 외모는 완전 원탑인데? 헐....... 왜 방송국에 안 있고 여기 출연?”
“에이........ 일반인 이라니. 말도 안 돼. 신인 걸 그룹 아이돌이 깜짝 출연한 거겠지. 실험카메라야. 실험 카메라. 그런데 연예인이라고 해도 외모가 완전 미쳤다. 김테희 미모 리즈 시절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와. 실물 진짜 대박이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듣고는 예슬이가 다시 급하게 모자를 썼다.
춤추는 상어가 트윈치에서 미친 듯이 터지는 별풍선과 구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씨발, 오늘 완전 대박이다! MCT 공연보다 더 대박 난 것 같은데?”
흥분한 춤추는 상어가 재빨리 다시 무대로 걸어가서는 예슬이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와! 춤도 아이돌 급으로 잘 화려하게 추시는데, 외모는 더 화려하시네요! 진자 예슬씨 때문에 오늘 방송 대박 났어요. 혹시, 예슬씨 소속사 있으신가요?”
소속사라는 말에 예슬이가 곤란해 하며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아니에요. 저,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 들어가 볼게요. 노래가 잘 모르는 노래라서......... 춤도 엉망으로 추고. 미안합니다.”
헉.......
예슬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고, 잘 아는 노래가 나왔다면 저것보다 더 잘 출 수 있었다는 건가?
지금 춤만 해도 MCT보다 몇 배는 더 깔끔하게 소화해 낸 것 같은데.
예슬이가 들어가려 했지만, 시청률과 별풍선 복사기 예슬이를 춤추는 상어가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요. 한 곡만 더 추시고 들어가세요. 아니 춤추기 힘드시면 노래라도 좀 하시고. 좀 만 더 있다 가세요. 특별히 예슬씨에게는 1,000만원의 상금이 걸린 춤추는 상어 월말 결산 도전권 제 권한으로 참가 자격 드릴 테니까요. 좀 저희 방송 좀 살려주세요!”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좀 곤란해서요. 들어가 볼게요. 수고하세요.”
예슬이가 정말 더 이상 출현은 곤란한지 급하게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춤추는 상어가 황금알을 낳는 예슬이를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팔까지 꼬옥 붙잡고 진상을 피운다.
후우.........
할 수 없지.
나는 마스크와 모자를 단단히 착용하고 터벅터벅 무대 위로 걸어갔다.
내가 무대로 걸어오자 예슬이가 도와달라는 간곡한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춤추는 상어는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당당하게 걸어가서는 춤추는 상어에게 예의바르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제가 예슬이 아는 오빠인데요. 예슬이가 곤란해 하니까 이제 좀 놓아주시죠.”
춤추는 상어가 자신의 방송을 방해하는 나를 아니꼽게 바라보며, 이번에는 타겟을 예슬이에게서 나로 바꾸었다.
“아! 예슬씨 아는 오빠분! 그러면 오빠분도 춤 잘 추시겠네요? 저희 관객 분들과 시청자분들을 위해 한 번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헉.......
춤? 춤이라니.
춤에는 나름 아픈 기억이 꽤나 많다.
초등학교 때 장기자랑으로 2005년 한참 유행하던 보이그룹 빅방의 춤을 일주일 동안 죽도록 연습해서 멋있게 커버 댄스 했다.
그런데 춤이 다 끝날 때 까지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가 당시 임청정의 코믹댄스를 추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가 춤을 너무 웃기게 춰서, 다들 배를 잡고 뒤집어 질만큼 큰 웃음을 주었다는 거?
물론 멋지게 빅방 춤을 춰서 반 여자애들에게 호감을 사고 싶었던 내 의도와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중학교, 고등학교 때 춤을 춰 보았으나.
남들이 추면 개간지 나는 힙합 춤도 내가 추면, 간질병 환자가 몸부림치는 걸로 보인다고 했다.
대학교 때도 나름 춤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댄스 동아리에 들어갔었으나, 열정적으로 춤을 가르쳐 주려던 선배들도 한 달 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하고 말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뻣뻣한 몸에, 박치.
한마디로 댄서로서는 타고난 개쓰레기였다.
춤에는 타고난 개 쓰레기인 걸 아는 내가 망설이자, 춤추는 상어가 다시 타겟을 예슬이로 바꾸었다.
“아니. 예슬씨. 오빠 분이 나오셔서, 춤도 안 추시고 저희 방송 분위기도 많이 다운 시켰는데, 예슬씨가 책임지고 분위기 한 번 띄워 주시죠!”
아, 씨발.
예슬이를 구하러 나왔다가 오히려 예슬이에게 짐이 되게 생겼네.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내 뒤로 예슬이를 보호하며 춤추는 상어를 향해 말했다.
“제가 춤, 출게요. 그러니까 예슬이는 이제 그만 들여보내시죠. 싫다는 사람 자꾸 부담주면서, 뉴튜브 출연하라고 하는 것도 보기 안 좋습니다.”
내 가시 돋친 말에 춤추는 상어도 찔리는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예슬씨 대신에 오빠 분이 책임지고 저희 방송 분위기 확 살려주셔야 합니다!”
방송 분위기를 살려 주라고?
코믹댄스로 그게 가능하려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춤을 출 수 밖에.
예슬이가 내 뒤에 숨어서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오빠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그런데 오빠 춤 출줄 알아요? 괜찮겠어요? 오빠 많이 곤란하면 제가 커버댄스 한 곡 더 추고 들어갈게요.”
나는 예슬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살짝 오버해서 말했다.
“걱정 마. 예슬아. 오빠가 그래도 왕년에 장기자랑에서 춤도 추고했어. 반응이 얼마나 폭발적이었는데.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예슬이는 어서 자리로 돌아가서 오빠 기다려.”
사실 반응이 폭발적이긴 했다.
간질병 환자 춤의 일인자로 내가 춤만 추면 다들 웃겨서 뒤집어 졌으니까.
예슬이가 내 말이 꽤 믿음직한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예슬이의 양 볼에 귀엽게 보조개가 들어간다.
“오빠, 그럼 오빠만 믿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오빠. 나, 지켜줘서.”
예슬이의 아름답고 귀여운 미소를 보니까, 예슬이가 달리는 차에 뛰어들라고 하면 뛰어들 수 있을 만큼 무모한 용기가 솟아올랐다.
그야말로 귀엽게 웃고 있는 예슬이의 미모는 한 나라를 좌지우지 할 만큼 경국지색이었다.
예슬이가 고개를 숙이며 자리로 돌아가자, 춤추는 상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예슬씨 오빠분. 그런데 모자도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너무 가려서 앞도 잘 안 보일 것 같은데 춤 추는 거 괜찮겠어요?”
춤추는 상어의 말에 관객들도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쟤는 뭐야? 예슬이 매니저라도 되는 거야? 괜히 나와 가지고 살판 다 깨네.”
“얼마나 못생겼으면 모자랑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 가려보이고 무대에 나와? 왠지 피부도 개 더러울 것 같다. 눈도 존나 단추 구멍만하고.”
“키나 얼굴 비율은 웬만한 탑 모델만큼 괜찮은데, 얼굴이 존나 빻았나? 그러니까 저렇게 가리고 나왔겠지.”
“모자 저렇게 푹 눌러쓴 거 보니까 분명히 대머리 아저씨 일거야. 옷만 젊게 입고. 에휴, 우리 얼굴 천재 MCT동생들 화려한 댄스 보다가, 아저씨 탑골공원 경로당 춤이나 봐야 하다니.”
“거, 아저씨. 술 마셨으면 대충 추고 들어가요. 괜히 분위기 깨지 말고.”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관객들의 반응이 안 좋았다.
관객들 생각에는 내가 괜히 나서서 진행 잘하고 있던, 춤추는 상어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자, 그럼 음악 틀어주세요. 그, 오빠 분은 자신 없으면 좀만 추다가 자리로 들어가 주셔도 됩니다.”
춤추는 상어의 목소리에는 내 댄스에 대한 기대감은 전혀 없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예슬이가 자리로 돌아가자 물밀듯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MCT의 두 번째 타이틀 송, [소주 프리!]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귀를 간질이는 보사노바 스타일의 부드러운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괜히 끼어들어서 자신의 뉴튜브 생방송을 방해했다고 생각했는지 춤추는 상어가 춤을 추기에는 정말 어려운 부드러운 발라드 스타일의 노래를 내 댄스곡으로 정한 것이다.
씨발, 아주 그냥 제대로 망신 좀 당해봐라.
이런 의도인 것 같다.
나는 춤추는 상어의 쪼잔 한 복수에 후우~ 한 숨을 쉬며 천천히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