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2부 피자걸 예슬이와 데이트(3)
* * *
“오빠, 우리 저기 구경하러 가요.”
예슬이가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다.
예슬이의 아름다운 크고 맑은 눈에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린다.
“그래, 예슬아.”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대답했다.
천사 같이 예쁜 예슬이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다.
거기다가 나 자신은 심각한 몸치였지만, 춤추는 것을 보는 것은 꽤 좋아했다.
그래서 현세계에 있을 때도 world of dance 같은 댄스 대회 영상을 뉴튜브로 자주 보고는 했다.
그리고 수많은 댄스 장르 중에서도 특히 내가 좋아하는 댄스 장르는 얼반댄스라고 하는 장르였다.
얼반댄스는 음악에 맞추어 댄서가 자유롭게 안무를 창작해서 추는 춤인데, 힙합과 팝핀등 여러 가지 장르가 한데 어우러져 뒤섞인 매력적인 춤이었다.
특히 남자 댄서로는 샤이닝 태밍의 루팡 안무를 만든 아이언 이스트우드를 가장 좋아했고, 여자 얼반 댄서로는 여자이지만 남자처럼 파워풀 한 춤을 절도 있게 잘 추는 차치 곤잘레스를 좋아했다.
음악과 댄서의 몸이 마치 하나가 된 듯한, 얼반 댄스를 보고 있자면 카타르시스와 희열이 느껴졌다.
“오빠, 우리 여기 앉아서 구경해요.”
예슬이가 공연하는 사람들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응. 예슬아.”
나도 털썩 예슬이 옆에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밀집해서 앉아있는 까닭에 사람들이 밀면, 내 손이 살짝 살짝 예슬이의 하얗고 고운 손에 닿았다.
그리고 예슬이의 예쁜 손에 내 손이 스칠 때마다 내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다.
마치 초등학교 때 짝사랑하는 여자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처럼 설렜다.
거기다가 예슬이에게서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달콤하면서 상큼한 비누냄새.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멍 때리며, 예슬이에게 푹 빠져있는데,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나와서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네, 안녕하세요. 춤추는 상어! 입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저희 뉴튜브 채널. 춤추는 상어!를 보기 위해 와 주셨는데요. 먼저 감사드립니다.”
아, 이게 그냥 길거리 댄스 버스킹이 아니라 뉴튜버가 진행하는 공연이었구나.
어쩐지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공중파 프로그램만큼은 아니었지만, 카메라도 2~3대 정도 있었고 음향 장비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혹시라도 카메라에 찍혔다가 날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다.
현재 대한민국 아이돌 인기 1위라는 녀석이 여자와 둘이서 느긋하게 뉴튜버가 진행하는 공연이나 보고 있다니.
대한민국이 뒤집어 질 일이다.
거기다가 최근 내 부탁 때문에 JYK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잠정적으로 박지훈(내 연예인 이름)은 다음 정규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활동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나는 최대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도 완벽하게 얼굴을 가리도록 올려 썼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가렸으니 우리 엄마도 내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라, 예슬이도 주위 눈치를 보며 다시 모자를 푹 눌러썼다.
보아하니 예슬이가 너무 눈에 띄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예쁘다 보니, 어느덧 힐끗 힐끗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있었다.
그래, 예슬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면 부담스럽겠지.
아무리 남녀 비율이 1대 10인 남녀역전 세상이라도, 예슬이 정도의 천상계 미모를 지닌 여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어 있다.
우리가 서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가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와 예슬이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떠밀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MCT다! MCT가 왔어!!!!”
“찬열아!!! 와, 장난 아니다. 존나 귀여워어!!!! 어떻해! 나 오줌 지릴 것 같아!!”
“사랑해요, 정지훈! 좋아해요 정지훈! 우주 최강 정지훈!! 지훈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MCT! MCT! 꺅! 꺄아아아앙!”
“우유빛깔 최찬열! 댄스황제 정지훈! 최강섹시 조유진! 패황음색 이정진! 얼굴천재 서유성! MCT!!! 짱!!!”
으........
여자들이 너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바람에 나와 예슬이는 시끄러워서 양쪽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자, 자! 진정들 하세요. 진정들. 환호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저희 MCT 분들이 스케줄이 바쁘셔서 저희도 빨리 진행을 해야 하니까, 협조 부탁드립니다.”
춤추는 상어라는 듬직하게 생긴 여자 뉴튜버가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안녕하세요. MCT 여러분! 요즘 MCT 인기가 정말 어마어마한데요. 저희 뉴튜브 채널에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MCT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조유진! 입니다. 저희도 구독자 100만명! 춤추는 상어 뉴튜브에 나와서 영광입니다!”
그렇게 춤추는 상어 뉴튜버와 MCT간의 상투적인 얘기가 오고 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MCT를 보던 예슬이가 귀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시현 오빠. 오빠 저 사람들 알아요? 연예인 인가 봐요.”
MCT라.......
나는 내가 원래 살던 세계의 기억으로 MCT라는 그룹에 대해 기억해 내려 해 보았으나,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 여자 걸 그룹 아이돌이면 모를까........
남자 그룹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알만큼 정말 유명한 엑스. 빅방, BDS 같은 그룹들 빼고는 잘 몰랐다.
“응? 나는 모르겠는데. 신인인가? 그런데 예슬이도 저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 그래도 여자들은 남자 아이돌에 관심 많지 않아?”
예슬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 그게요. 오빠. 저는 피자 알바도 하고 공부하느라 바빴어서, 최근 몇 년간은 가요프로그램이나 이런 거 본 적이 없어요.”
에휴.........
불쌍한 우리 예슬이.
정말 가정형편이 많이 어려웠나 보구나.
그러니까 알바 하느라 자기 또래 여자애들은 다 보는 남자 아이돌 볼 시간도 없었지.
예슬이가 살짝 얼굴에 홍조를 띠우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빠. 연예인 별거 아닌데요? 오빠가 저 사람들보다 100배, 아니 1,000배는 더 잘생겼어요.”
예슬이의 직설적인 수줍은 고백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봐도, 저 MCT라는 그룹 멤버들보다는 객관적으로 내가 훨씬 낫기는 했다.
다들 키는 160~165cm 사이.
거의 뼈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도하게 몸이 말랐다.
그래도 남자라면 기본적인 근육이 있어야 옷발도 잘 받고, 아이돌로서의 카리스마도 나오는 건데.
여자도 아니고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앙상한 모습들이다.
얼굴도 화장으로 덕지덕지. 분칠을 과하게 해서, 본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화장으로 분칠한 얼굴조차, 내가 원래 살던 세계의 훈남 정도면 그냥 쌉 발라 버릴 정도로 평범하게 생겼다.
그런데, 저 얼굴과 몸매에 얼굴천재에 최강섹시라는 구호를 붙이다니.
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의 남자들 외모 퀼리티가 얼마나 낮은지 기가 찰 정도다.
외모 버프가 안 된 내 원래 외형으로 남녀역전 세계에 빙의가 되었어도, 얼굴천재는 아니더라도 나름 훈남 소리는 들었을 것 같다.
그렇게 예슬이와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MCT라는 보이그룹이 무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래.......
외모는 별로여도, 실력이 있으니까 인기가 많은 거겠지.
나는 한껏 기대를 품고 MCT라는 그룹의 무대를 보기 위해 기다렸다.
“자, 그러면 우르 MCT! 최근 한창 난리가 난 노래죠! 누나는 왜 내 마음을 몰라! 청해 듣겠습니다!”
으음.
노래 제목이 참........
누나는 왜 내 마음을 몰라! 라니.
이런 제목은 내가 살던 세계라면, 걸 그룹 아이돌에게나 어울리는 소녀스러운 제목인데.
그래도 설마 노래까지 소녀스러울까?
명색이 댄스황제라는 칭호까지 붙은 멤버가 있는.........
어.....
씨발, 이건 뭐야.
으윽.........
MCT라는 그룹이 앙증맞은 노래에 맞춰, 소녀 같은 포즈로 무대를 시작했다.
[누나는 왜 내 마음을 몰라요.
여자라면 남자가 수줍어서 고백 받아주지 못 한 거 이해해 줘야 하잖아.
나는 매일 밤마다 누나 생각하며, 보내지도 못 할 편지를 서랍 속에 간직하고 있는 걸.]
노래 가사도 완전 내가 원래 있던 세계의 걸 그룹 취향에 맞는 가사.
춤은 더 여성스럽다.
흐느적흐느적 다리를 꼬며 엉덩이를 흔들질 않나.
머리 위로 손을 들어서 토끼가 된 듯 위로 깡충깡충 뛰고 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비위가 제대로 상해 버렸다.
예슬이도 MCT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
“오빠, 저 사람들 춤을 너무 대충 추는 것 같은데요. 남자라면 좀 더 엉덩이를 귀엽게 흔들고, 토끼 춤을 출 때도....... 깡충깡충 군무가 안 맞는데........”
음.......
나와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MCT의 무대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하여간 상당히 소녀 같은 MCT의 무대가 끝나자,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MCT를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주최강 MCT! MCT!"
"어쩜 저리 하나같이 귀엽고 섹시할까! 우리 집 지하에 가둬 두고 매일 야한 짓만 하고 싶다!”
“유진아! 조유진! 누나랑 집에 가자! 진짜 손만 잡고 잘게!!! 누나 무서운 사람 아니야!”
하아, 하여간 보이그룹을 보고 발정난 여자들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 음습하고 변태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