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2부 피자걸 예슬이와 데이트(2)
* * *
“아, 그게요. 오빠. 제가 피자집 알바 그만 두고 다른 알바를....... 아. 그 노, 노래방! 노래방에서 일해요!”
“노래방이요?”
설마 예슬이가 이 예쁜 외모로 불건전 업소에서 일을?
피자 아르바이트가 힘들어서 돈을 많이 주는 노래방 알바로 옮긴 건가?
온갖 나쁜 생각이 들어 만감이 교차한다.
“노래방에서 무슨 알바 하는 데요?”
나는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예슬이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그러니까, 호객 행위를 해요!”
“호객 행위요?”
“네.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그런데 전단지 나누어 주는 노래방 알바랑 안무 연습이 무슨 연관이 있어요?”
예슬이가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아, 그. 인형 탈을 쓰고. 판다 옷을 입고 춤을 추면서 전단지를 나눠주거든요. 그래서 안무 연습이 필요해요.”
아......
젠장.
이렇게 연약하고 예쁜 예슬이가 원래 세계라면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인형 옷을 쓰고 전단지 나누어 주는 알바를 하다니.
이 더운 날씨에 너무 안쓰럽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판다 옷을 입고 춤추는 예슬이를 상상하니 너무 귀엽다.
나는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혹시나 예슬씨가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알바 하는 줄 오해했어요.”
내 말에 예슬이의 귀여운 눈이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네? 여자가 무슨 노래방 도우미를 해요. 남자면 몰라도.”
아 맞다.
생각해보니, 이 세계는 남녀가 역전 된 세계.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찾는 건 일반적으로 남자가 아닌 여자들이겠구나.
나는 대화주제를 바꾸었다.
“아, 예슬씨 배 안 고파요? 우리 음식 주문해요. 사장님~!”
내가 만나분식 사장님을 부르자, 주인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예슬이를 보고는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이고. 우리 예슬이도 왔네. 그런데 예슬이 시현이랑 아는 사이야?”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예슬이가 귀엽게 웃으며 말한다.
“아. 네. 아주머니.”
주인아주머니가 나와 예슬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둘이 같이 있으니까 아주 그냥 우리가게가 빛이나네 빛이 나! 역시 선남선녀는 서로를 알아보는 가 봐? 둘이는 또 어떻게 알게 됐네? 혹시 둘이 사귀는 사이야?”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예슬이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나는 예슬이가 곤란할까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사장님. 그냥 아는 오빠 동생 사이에요. 그 것보다 주문이나 받으세요. 예슬씨 뭐 먹고 싶어요?”
예슬이가 살짝 토라진 얼굴로 볼을 부풀리며 말한다.
“떡볶이요.”
응? 예슬이가 왜 갑자기 토라졌지?
여자란 정말 알 수가 없는 동물이다.
나는 주인아주머니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주문을 이어갔다.
“사장님. 저희 떡볶이 2인분 주세요.”
그런데, 그 때 예슬이가 나를 길 잃은 고양이처럼 바라보며 말한다.
“사람이 두 명인데....... 떡볶이 2인분을.”
응? 우리 예슬이는 혼자서 1인분도 못 먹나? 하긴, 남녀역전 세상의 다른 여자들에 비하면 우리 예슬이는 체구가 작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둘이서 떡볶이를 1인분 시키면 완전 민폐인데.
내가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예슬이가 내 고민을 깨끗이 날려 주었다.
“아주머니. 여기 떡볶이 3인분 하고요. 순대 2인분. 김밥 2인분. 꼬치어묵 4개. 모둠튀김. 그리고......”
여기까지 주문하던 예슬이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예슬이의 먹성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란 내 얼굴을 봤나보다.
“이, 이렇게만 주세요.”
예슬이의 말에 주인아주머니가 이상하다는 듯 말한다.
“아니. 예슬이. 오늘 몸이 안 좋아? 왜 이렇게 조금 밖에 안 시켜? 거기에 떡라면이랑 쫄면 추가해야 예슬이 세트 완성 되는 거 아니야?”
예슬이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푸욱 숙인다.
“아니에요. 제가 언제 그렇게 많이 먹었다고요. 아주머니는 참. 사람 부끄럽게.”
그제야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아. 오늘 예슬이 남자친구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구나. 아줌마가 눈치가 없어서 미안해요~ 얼른 준비해서 차려 줄게.”
만나분식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예슬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혼잣말을 한다.
“치. 시현오빠는. 그냥 오빠 동생 사이라는데요 뭐.”
* * * * *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가 쟁반에 한 가득 음식을 담아서 가지고 나오셨다.
과연 떡볶이 3인분. 순대 2인분. 김밥 2인분. 꼬치어묵 4개. 모둠튀김의 양은 엄청났다.
그리고 주인아주머니의 손이 커서인지, 평범한 분식집의 양보다 거의 두 배는 대어 보였다.
“우리 시현이. 예슬이 많이 먹어. 둘이 같이 있으니까 참 예쁘고 보기 좋다.”
나와 예슬이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간 떡볶이를 예슬이가 간절히 먹이를 원하는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빠, 오늘은 제가 알바비 받은 기념으로 사는 거니까 많이 드세요. 모자라면 더 시켜 드릴게요.”
여기서 음식을 더 시킨다고?
그러면 진짜 이 노쇠한 테이블이 음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질 것만 같다.
“아니에요. 예슬씨. 이 정도면 충분........”
이라고 말을 하려는데, 예슬이는 이미 떡볶이를 콕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거리고 있다.
참 먹는 모습도 인형같이 예쁘고 매력적이다.
우물우물 꿀꺽!
예슬이가 떡볶이를 삼키고는 이번에는 순대를 포크로 찍으며 나에게 말한다.
“오빠, 빨리 드세요. 떡볶이 식으면 맛없어요.”
“아. 네. 예슬씨도 많이 먹어요.”
예슬이는 먹는 것에는 꽤나 진심인 편인 듯, 한 동안 음식에만 집중을 하며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그 많던 떡볶이, 순대, 김밥, 튀김, 어묵이 예슬이의 귀여운 입속으로 쏘옥 사라져갔다.
그런데 예슬이가 너무 분식을 복스럽게 먹어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
이래서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구나········
예슬이가 먹는 게 너무 맛있어 보여서 궁금해서 나도 떡볶이를 콕 찍어서 먹어 보았다.
음. 맛은 항상 먹던 만나분식 그 맛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예슬이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며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진다.
“하아. 살 것 같다!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오빠 많이 드셨어요?”
이제야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예슬이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드디어 음식에서 관심이 나에게로 옮겨온 것이다.
분식에 밀리는 처지라니.
그렇다고 분식을 질투할 수도 없고.
“네. 나도 많이 먹었어요.”
예슬이가 나를 또랑또랑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오빠. 그런데 오빠 저한테 그냥 반말 하면 안 돼요? 오빠가 존댓말 하니까,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좀 불편하고 그래요.”
사실, 나도 아까부터 예슬이한테 말을 놓고 싶었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 그래? 그러면 말 놓을게. 예슬아.”
예슬아!라고 친근하게 부르자 예슬이의 기분이 좋아졌는지, 예슬이가 보조개가 들어가도록 예쁘게 웃는다.
아, 진짜 너무 귀엽고 예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때 예슬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예슬이가 나에게 전화를 받아도 되겠냐는 양해를 구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보세요. 네. Z드래곤 오빠. 웬일이세요? 아. 저녁이요? 저 지금 친구랑 분식 먹고 있는데요. 네? 네. 괜찮아요. 오빠. 다음에요. 네~ 이따가 전화 드릴게요.”
예슬이한테 어느 놈팡이 같은 남자 녀석이 저녁 같이 먹자고 전화를 했나 보다.
그런데 이름이 Z드래곤?
유치하지도 않나. 연예인 이름이나 따라하고.
Z드래곤은 현재 대한민국 연예인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다.
얼마나 인기가 많으면 샤넬, 구찌 같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Z드래곤에게 제발 모델이 되어 달라고 구애를 다 할 정도다.
물론 나도 신인 아이돌 중에서는 최근 반짝 뜬 케이스이긴 하지만, Z드래곤 같이 오랜 기간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활동하는 진짜 아티스트 연예인에 비하면 그야 말로 아직 부끄러운 수준의 실력과 인기이다.
나는 질투가 나는 것을 숨기고 여유로운 척 하며 예슬이에게 말한다.
“예슬아. 방금 전화 한 사람 이름이 Z드래곤이야? 요즘도 연예인 이름으로 가명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
예슬이가 조각상처럼 굳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 그러게요. 오빠. 대게 촌스럽죠? 아,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가 봐요. 하하.......”
그리고 그 때 내 전화벨도 울린다.
예슬이가 얼른 전화를 받아보라고 손짓 한다.
“여보세요. 네? 네. 진영이 누나. 아니에요. 아무 일 없었어요. 아, 예. 아니에요. 클럽이요? 지금은 곤란해요. 예. 아는 동생 만나고 있어서요. 예. 다음에요. 네에.........”
내가 전화를 끊자 예슬이가 귀엽게 도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오빠. 누나들한테 인기 많은가 봐요. 클럽 가자는 누나도 있고. 그런데 그 누나는 이름이 진영이 누나에요? 치 무슨 JYK 김진영도 아니고.”
윽.
나는 진짜 JYK 김진영 누나 맞는데.
이걸 말을 할 수도 없고.
나도 예슬이처럼 어색한 얼굴로 웃어 넘겼다.
“그, 그러게. 그런데 뭐 김진영 이라는 이름은 흔하니까.”
그렇게 예슬이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배가 너무 불러와서 좀 밖을 걷고 싶었다.
예슬이도 마찬가지인지 나에게 먼저 제안을 한다.
“오빠, 우리 이제 배도 부른데, 밖에 걸으면서 산책이나 좀 해요.”
“그러자 예슬아. 사장님 여기 계산이요!”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려는데, 예슬이가 내 앞을 막아선다.
“오빠! 어디서 은근슬쩍 계산을 하려고 해요! 오늘은 제가 산다니까요. 다음에 만날 때 오빠가 사요.”
다음에?
예슬이를 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순순히 예슬이가 계산하도록 양보했다.
“고마워요~ 또 와!”
만나분식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는 예슬이와 나는 거리로 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알아 볼 까봐, 모자와 마스크로 단단히 얼굴을 가렸다.
예슬이는 갑갑한지 쓰고 있던 검은색 모자를 벗어서 한 손에 들었다.
예슬이의 길고 검은 생머리가 바람에 사라락 흩날리는데, 길을 가던 행인들의 시선이 예슬이에게 쏟아진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예슬이를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일단 발걸음이 느려진다.
그리고 천천히 우리 앞을 지나가면서 예슬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감탄한다.
그리고 지나친 후에는 곧 뒤돌아보며 예슬이를 다시 한 번 쳐다본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봤어도 곧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예슬이가 그냥 너무 예쁜 것이다.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이 예쁜 예슬이와 나란히 길을 걷고 있는데, 쿵짝! 쿵짝!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보니 길 한가운대에 음악을 틀어 놓고 최근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에 맞춰 길거리 공연 댄스를 선보이고 있는 것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