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동철 과장과 신입사원 김아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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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영씨. 김아영씨! 지금 이걸 보고서라고 작성해서 올린 거야!”
내가 고함을 치자, 신입사원 김아영이 깜짝 놀라서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 깐다.
나는 김아영 사원이 나에게 제출한 보고서의 오류를 하나씩 지적하기 시작 한다.
“이거 줄 간격이 왜 이런 건데? 줄 간격 회사 양식으로 맞추는 건 기본적인 업무 아닌가? 그리고 보고서를 어디서 대학교 리포트다운 받아서 ctrl + V 라도 한 거야. 뭐야? 양만 많고 정작 아영씨가 분석한 내용은 하나도 없잖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보니까, 작년 방송품질평가서 프로젝트를 좀 참고해서 재구성을........”
나는 책상을 쾅!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고? 지금 이건 참고가 아니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거 아니야! 아영씨! 지금까지 회사 다니면서 뭘 배운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팀장이었던 사람이 고작 리포트를 이렇게 밖에 작성 못하나? 이럴 거면 그냥 회사 때려 쳐! 아영씨 아니어도 우리 회사 다니고 싶어 하는 여자 사원들 세고 셌으니까!”
김아영 신입사원이 고개를 푸욱 숙인다.
살짝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씨발, 아직 내가 당했던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정도로 밖에 혼내지 않았는데 말이다.
“30분 내로 다시 정리하고 프린트해서 내 자리로 가지고 와요. 그 때도 지금같이 리포트가 개판이면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김아영 신입사원이 내게 USB를 다시 돌려받으며 말한다.
“30분이면 팀장님 너무 시간이 짧은데요. 어떻게 30분 안에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고 프린트까지........”
“아니, 김아영씨. 그건 아영씨 사정이고. 그러면 처음부터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든가. 아 뭐해요? 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보고서 다시 작성하지 않고. 꼴도 뵈기 싫으니까 빨리 가요. 빨리!”
“예.........”
김아영이 축 처진 어깨로 USB를 든 채 자리로 돌아간다.
사실 나도 30분 안에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고 프린트 까지 해 오는 건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뿌린 대로 거둔 다고 하지 않나?
김아영이 팀장이었을 때 항상 나를 이렇게 못 살게 굴었다.
김아영이 조교 되어서 갱생하기 전 까지만 현 세계에서 내가 당했던 것을 제대로 복수 할 생각이다.
김아영을 눈물이 쏙 빠지도록 갈구고 난 뒤, 팀장 의자에 편히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카통이 울린다.
카통, 카통 왔섭!
카통을 확인 해 보니 우리 귀여운 예슬이한테 온 카통이다.
[한예슬: 오빠, 일하고 있어요? 오빠 옷 사이즈가 어떻게 되요? 지금 옷 사러 왔는데, 제 옷 사는 김에 오빠 옷도 하나 사고 싶어서요. >.< 그냥 오빠가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티셔츠가 보여서 그래요. 커플티 같은 거 아니니까 부담 같지 말고 말 해 주세요!]
역시 우리 예슬이는 완벽한 외모에 비해 너무 착하다.
원래 예슬이 정도의 외모면, 남자들이 하도 공주님 대하 듯 해줘서 싸가지 없기 마련인데, 마음이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천사 같다.
[나: 아, 예슬씨. 안 그래도 되는데....... 그냥 와요. 예슬씨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아요.]
[한예슬: 히잉. 오빠~ 진짜 오빠가 입으면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래요. 네! 말해줘요. 오빠 사이즈. 안 그러면 제가 마음대로 살 거예요!]
아무래도 예슬이가 나에게 주고 싶어서 봐 둔 옷이 있나 본데,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나: 알겠어요. 예슬씨. 저는 M 사이즈에요. 예슬씨가 무슨 옷 샀는지 기대 되요! 그럼 이따가 7시에 만나분식에서 봐요!]
[한예슬: 네. 오빠! 이따가 봐요. 오빠 다시 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설레요. ♥]
역시 우리 예슬이는 메시지도 참 예쁘게 보낸다.
아, 예슬이 보고 싶다!
잠시 눈을 감고 예슬이와 데이트 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또각또각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니 보고서를 들고 아영 사원이 나에게 걸어오고 있다.
얼마 시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수정을 다 끝냈다고?
아영 사원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보고서를 제출한다.
“다 했습니다. 팀장님.”
나는 매 같은 눈으로 아영 사원이 제출한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살펴본다.
하아........
아무리 봐도 어제까지 팀장이었던 사람이 작성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엉성한 보고서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작년에 내가 만든 방송품질평가서 프로젝트 보고서의 내용에 수치만 조금 바꾼 거다.
그런데 그 수치도 엉망진창이다.
명색이 리서치 회사에 다니면서 SPSS 교차분석도 제대로 못 다루는 것 같다.
“후우.......”
내가 보고서를 읽다가 말고 한숨을 쉬며 김아영 신입사원을 바라보자, 아영사원이 내 눈빛을 피하며 손을 부들부들 떤다.
사실 이 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매도 차라리 맞으면 나은 데, 맞기 전이 더 긴장되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아영 사원이 건네 준 보고서를 한 장 쫘악 찢어서는 손으로 꾸깃꾸깃 구겼다.
그리고는 김아영 사원의 얼굴에 던지며 소리쳤다.
“아영씨. 아니. 김아영! 지금 나랑 장난 해? 이거 작년 보고서에 수치만 바꾼 거잖아!! 그리고 수치도 이게 뭐야? 오차 설정. 확률. 다 개판인데? 아영씨 리서치 회사 다니는 거 맞아? 아니 미국에서 통계학 전공 대학원 나왔다며, 왜? 보고서를 한국어로 쓰려니까 어려워서 그래? 영어로 써 올래요? 아, 진짜. 내가 화를 안 내려고 해도 화를 안 낼 수가 없어!”
얼굴에 종이 뭉치를 제대로 맞은 김아영 사원이 수치스럽고 서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흐흑. 너, 너무 오랜만에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까, 감을 잃어서.”
팩트로 조근 조근 까 버리니까 김아영 사원도 나에게 감히 반박을 하지 못한다.
“아. 됐어요. 진짜. 하여간 나이만 많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팀원들에게 말했다.
“자, 다들 이리 모여보세요. 아영 사원이 일을 거지같이 해서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신입사원 김아영이 고개를 들지 못한다.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일로 까이는 것 보다 더 망신스러운 일은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어제까지만 해도 팀장이었던 사람이.
팀원들이 다들 모이자 내가 천천히 똑 부러지게 말했다.
“우리 아영 사원이 일을 크게 만드네요. 다들 업무를 분담할 수밖에 없겠어요. 설문지 작성부터 합시다. 방송품질평가서 프로젝트 설문지 문항 30개씩 만들어서 30분 후 까지 제출 하세요.”
내 말에 팀원들이 다들 김아영 신입사원을 째려본다.
안 해도 될 일을 김아영 신입사원 때문에 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에 김아영 신입사원이 수치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군대로 치면 말년 병장이었던 왕고 군인이 한 순간에 내무반의 고문관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 진짜. 보고서 하나 똑바로 못 써서 우리까지 개고생을 시키네.”
아영 사원이 마음에 안 드는 미영대리가 먼저 다 들으라고 한 소리 한다.
“그러게요. 진짜. 씨발 필리핀 톤도는 내가 아니라 아영 사원이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팀에 도움도 하나 안 되는 것 같은데.”
김미희 주임도 대 놓고 아영 사원을 깐다.
“아, 다들 그만 해요. 뭐 얼굴이 예쁘니까 머리는 좀 비었을 수도 있지.”
이건 아영 사원을 도와주는 건지, 더 까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동철과장이 한다.
다들 내 업무 지시를 받고는 불만이 가득 한 얼굴로 아영 사원을 째려본다.
아영 사원은 완벽하게 고문관으로 찍혀서, 다른 팀원들의 시선을 피할 뿐이다.
“자, 그러면 설문 문항 만들어서 제출 해 주세요. 제 시간에 제출 해 주세요. 안 그러면 오늘 야근 들어갑니다!”
야근이라는 말에 사람 좋은 성현대리와 그나마 아영사원의 편인 서유리 마저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아영사원을 째려본다.
아영 사원은 진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치욕적인 순간일 것이다.
원래 업무가 끝나기 전 한 시간 정도는 회사에서 가장 느긋한 시간이다.
보통 내일 업무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몰래 몰래 신문기사 따위를 읽고는 한다.
그런데 그 소중한 휴식 시간을 김아영 사원의 고문관 짓 때문에 다들 설문지를 만드느라 골머리를 썩게 생겼다.
모두의 불만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김아영 사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열심히 설문지 문항을 만들기 시작했다.
설문지 문항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서, 고문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인 것이다.
째깍째깍째깍.........
업무 마감 전에 주어진 일을 하면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김아영 사원이 마지막 30번 째 설문지 문항을 만들고는 마음에 드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김동철 과장이 은근슬쩍 아영 사원의 컴퓨터 모니터를 훔쳐보며 말한다.
“이야! 아영씨. 설문지 잘 만들었네? 나도 아영씨 것 좀 참고하자. 응?”
아영 사원이 급하게 모니터를 가리며 말한다.
“아니, 과장님! 저 이거 힘들게 만든 거예요. 과장님은 과장님이 새로 만드셔야죠.”
“아, 진짜. 아영씨. 빡빡하게 왜 그래 사람이. 나는 영업업무만 하다가 와서 설문지 잘 몰라서 그래. 손 좀 치워 봐. 옳지. 그래. 1번 문항은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이야, 아영씨. 얼굴만 예쁜지 알았는데, 머리 좋다!”
아영 사원이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며 발악을 했지만, 김동철 과장이 순식간에 아영 사원이 만든 설문지 문항을 자기 컴퓨터에 옮겨 적었다.
“아영씨 고마워요. 덕분에 설문지 쉽게 만들었어, 어떻게 내가 술이라도 한 잔 살까? 오늘 시간 어때? 시원하게 우리 막걸리나 한 잔! 캬~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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