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신입사원 김아영의 남녀역전 세상에서의 하루(2)
* * *
역시 우리 서유리씨 밖에 없어.
내가 혼자 사기 힘드니까 도와주려나 보다.
나는 서유리를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네, 서유리씨. 도와주려고요? 안 그래도 마침 도움이 필요........”
그런데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서유리가 냅다 말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도 김미희 주임님이랑 같은 걸로 한 개 부탁해요. 감사합니다!”
“네... 네????? 서, 서유리씨!!!”
씨발.... 씨발!!!!!!
서유리 너 까지 나를 배반해?
그것도 김미희 주임이랑 같은 거면 제일 비싸고 제일 큰 사이즈 음료수 아니야.
말을 마친 서유리가 급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미 회사로 걸어가고 있는 팀원들에게 합류하기 위해 달려갔다.
흐윽............
이번에는 정말로 눈물이 억울하고 서글퍼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른 팀원들이야 원래 개새끼들이니까 그렇다 쳐도.
서유리 너까지 나를 물 먹여?
내가 너를 얼마나 감싸주고 예뻐라 했는데.
씨발.
황사로 뒤덮인 서울 거리가 오늘따라 더 좆같아 보인다.
1.
딸랑~!
좆같은 기분으로 스탈벅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는 키 작은 호빗 같은 새끼들만 가득하다.
씨발 진짜 이세계는 진짜 좆 구리다.
모델 같은 여자들이 호빗같은 땅딸보 남자들을 위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커피를 사다 바치고 있다.
아, 오늘 따라 스탈벅스 줄은 또 왜 이렇게 길어.
이세계 남자 새끼들은 일은 안하고 다들 커피만 마시나.
나는 맨 뒤에 가서 줄을 섰다.
그런데 내 앞으로 5명 까지는 땅꼬마 남자새끼들이다.
다들 키가 160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인다.
안 그래도 기분 좆같은데 이 땅꼬마 새끼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네?
나는 자연스럽고 스무스하게 땅꼬마 남자 새끼들을 재치고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꽤 섹시해 보이는 여자 바로 뒤에 시치미 뚝 떼고 섰다.
이세계에서 단 하나 좋은 점은 여자들이 다들 모델처럼 몸매가 좋고 예쁘다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여자도 얼굴이 인형처럼 예쁘고 몸매도 섹시하다.
내가 그녀의 요염한 뒷자태를 바라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기분 나쁘게도 내 뒤에 서 있던 땅꼬마 남자 새끼가 내 등을 툭! 툭! 친다.
무례하게 어디서 감히! 허약한 남자 새끼가!
나는 어깨를 흔들며 그 새끼의 손짓을 무시한다.
그러자 그 새끼가 열 받았는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짹짹 거린다.
“이봐요! 여보세요!! 지금 당신 뭐하는 거야?”
목소리가 여자같이 하이톤이다.
남자가 하이톤 목소리라니 재수 없게.
“뭐하긴? 커피 사려고 줄 서고 있지. 그런데 너, 나 알아? 왜 초면부터 반말이야. 반말이!”
“뭐? 이 여자가 미쳤나. 얼른 다시 뒤로 가서 줄 안 서? 그리고 너는 왜 반말인데? 남자가 반말했다고, 어디 여자가 남자한테 반말이야. 반말이!”
뭐? 이 허약한 남자 새끼가 미쳤나.
감히 여자한테 대들어?
그것도 자기보다 키도 크고 힘도 쎈?
자격지심이 커서 미쳐버린 건가?
아무리 이세계가 남자한테 유리하다고 해도, 그것도 정도가 있겠지.
남자가 여자한테 먼저 반말 하면서 시비 거는 건, 이세계에서도 분명 여자를 무시하며 성차별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나는 오늘 생리까지 하는 아주 조심스러운 날이다.
그래 오늘 너 잘 걸렸다.
안 그래도 유시현 새끼한테 식당에서 개 털려서 기분이 좆같은데. 오늘 너 이 새끼 아주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깜빵에 보내버릴 테다.
나는 사자후를 장착하고 화통하게 소리쳤다.
“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씨발새끼야. 남자는 여자한테 반말해도 되고. 여자는 남자한테 반말하면 안 돼? 너 이거 성차별이야, 성차별! 알아? 얼굴은 병신 같이 생겨가지고 장애인도 아니고. 또 키는 160은 되니? 내가 진짜 너 충격 받을까 봐 이런 말은 안하려 했는데. 너희 부모님은 너 같은 새끼 낳고, 좋으셨대? 쯔쯔쯔. 진짜 나 같으면 너 같은 새끼가 내 자식이면 콱 그냥 동반 자살 했다. 이 병신아!”
내가 사자후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정곡을 콕콕 찌르는 말을 하자, 쥐똥만한 남자 새끼가
나를 바라보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순식간에 스탈벅스 매장 안이 조용해 졌다.
새끼들. 다들 존나 쫄았구나.
그러게 딱 봐도 싸대기만 슬쩍 쳐도 엉엉 울 것 같은 허약한 남자 새끼가 어딜 건드려.
건드리길.
새치기 당했으면 그냥 누나가 바쁘구나! 하고 이해해야지.
병신 같은 새끼들이.
기가 막혀서 진짜.
그런데, 한 동안 조용하던 스탈벅스의 정적이........
나에게 한 소리 들은 남자새끼의 울음소리와 함께 깨지고 말았다.
“어,, 어머..... 지, 지금. 당신 나보고 못 생겼다고 하고, 우리 부모님 욕한 거야?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응? 아빠아아아.... 흐흑. 흐흐흐흐흑.”
뭐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스탈벅스에 있는 사람들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 내 앞에서 울고 있는 남자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아주 잡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재수 없는 썅년을 보듯 다들 매서운 눈으로 째려본다.
남자 새끼들만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면 안 쫄린데, 나보다 키도 크고 몸도 좋아 보이는 여자들까지 나를 죄인 보듯 바라보니 살짝 쫄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앞에서 펑펑 울고 있는 남자새끼를 향해 화해의 말을 건넸다.
지금은 조금 몸을 사리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니. 남자 새끼가 여자가 소리 좀 질렀다고 울면 어떡해? 남자가 그렇게 담이 작아서야. 그럴 거면 꼬추 떼어버려야지. 안 그래? 씨발, 네가 우니까 내가 나쁜 사람 된 것 같잖아. 야, 그만 울어라. 씨발. 그만 울라고!”
이 남자 새끼가 자꾸 흑흑 거리면서 쳐 우니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흐흐흑. 누, 누가 경찰한테 신고 좀 해주세요. 씨발..... 이 아줌마가 저희 부모님 욕하고, 꼬추 떼라고 성추행 하고. 윽박지르면서 협박하는 거 다 들었죠?”
아, 아니. 이 새끼가.
경찰을 부르라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진짜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네.
고작 말다툼 좀 한 것 가지고 경찰을 불러?
아니야. 침착하자. 침착.
아무리 이세계라고 해도, 설마 이 정도 말다툼으로 진짜 경찰이 오겠어?
진짜 경찰이 오면 그게 미친 나라지.
거기다가 고추 떼어버리라고 했다고. 성추행?
그게 어떻게 성추행이 되는 건데.
그냥 남자답지 못하면 꼬추 떼어버려!
이거...... 누구나 하는 말이잖아.
씨발 괜히 사람 쫄게 만들려고 아무 말이나 막하는 거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나도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야, 무슨 일이야? 저 남자 왜 울고 있어?”
“어, 저 앞에 미친 여자가 글쎄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성추행하고, 협박했데. 완전 또라이야. 또라이. 개 또라이.”
“뭐? 진짜? 혹시 정신병자 아니야? 남자를 성추행 해? 그것도 이렇게 사람 많은 스탈벅스에서? 감옥에서 한 10년은 썩어야 정신 차리겠네. 저 미친년.”
아, 씨발.
뭐야 사람들 반응이 왜 이래.
난 잘 못 한 거 하나도 없는데.
내 앞에 줄 서 있던 섹시한 여자도 자기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와 속삭인다.
“자기야, 저 여자 미쳤나 봐. 방금 저 남자한테 한 말 들었어? 요즘 세상에도 저렇게 앞만 보고 막나가는 여자가 있네. 저 여자 말하는 거 내가 다 녹화 했는데 진짜 살벌하더라.”
“자기 놀랐지? 우쭈쭈. 자기는 걱정하지 마. 저런 미친년이 자기한테 접근하면 내가 다 막아줄게.”
“진짜? 하여간 우리 아름이 누나는 너무 든든하다니까, 그런데 경찰 오면 저 여자 어떻게 되는 거야? 누나 변호사니까 이런 거 잘 알잖아.”
“응. 범준아. 저 여자 경찰오기 전에 합의 못 보면 진짜 보지되는 거지. 공공질서 위반, 인격무시, 성차별, 성추행, 협박.... 해당되는 죄가 너무 많아서 다 세지를 못 하겠다. 최소 5년은 감옥에서 살아야 할 걸?”
꿀꺽........
아, 미치겠네.
들려오는 소리들이 전부 말도 안 될 정도로 소름끼치는 얘기들뿐이다.
아니, 고작 새치기 좀 하고 말싸움 좀 했다고 감옥에서 5년을 썩어야 한다고?
정말 나는 내가 뭘 잘 못했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아니꼬웠지만 일단 여전히 울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남자새끼와 화해를 시도해 본다.
“저기, 그. 아까는 제가 너무 흥분해서 소리 질렀는데. 미안합니다. 이렇게 사과도 했으니까. 우리 그냥 좋게좋게 해결하면 안 될까요? 경찰오고하면 서로 피곤하고 안 좋잖아요?”
땅꼬마 남자 녀석이 울다가 슬쩍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왜? 경찰 불렀다니까 이제 와서 쫄려? 씨발년아. 너 경찰 와서 진상조사하면 최소 감옥에서 5년이야. 5년! 알아!!”
아, 씨.
진짜 돌아버리겠네.
오늘 일진이 왜 이러는 거야.
진짜 하늘에서 저주로 쏘나기라도 퍼부은 듯 나쁜 일이 끈임 없이 일어난다.
설마 내가 현세계에 있을 때 남자들을 너무 막 대해서 업보스택이라도 쌓인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숨이 막히고 불안해서 죽을 것만 같다.
진짜 이러다 경찰서에 끌려가서 조서라도 쓰면 회사에 소문 다 날 테고.
안 그래도 회사 분위기 안 좋아서 정리해고 칼바람 분다는데.......
이건 위험하다.
지금은 치사하고 더럽더라도 경찰오기 전에 합의를 봐야 한다.
나는 최대한 밝게 미소를 지으며 땅꼬마 남자 새기한테 말한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다시 맨 뒤로 돌아가서 줄 서면 경찰 안 부르실래요? 그러면 되는 거죠? 네?”
하아.
김아영 성질 진짜 다 죽었다.
나한테 반말이나 찍찍 하는 남자 새끼한테 존댓말 쓰면서 부탁이나 하고 있고.
그런데 이 남자 새끼가 쪼잔 하게도 그걸 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여전히 쀼루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 아줌마. 지금 나랑 장난 해? 씨발, 우리 부모님 욕하고, 내 인격 모독하고. 거기다 공개적으로 성추행까지 했으면서. 지금 그걸로 퉁 치시겠다고? 하아, 내가 어이가 없네.”
그런데 지금 보니 이 새끼 어느 덧 서럽게 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다 연기였다.
이 새끼처럼 연약한 척 연기하며 남자의 영혼까지 빨아 먹던 저런 여자들을 내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 자주 본 것 같다.
하아.. 존나게 불안해서 자꾸만 몸이 덜덜덜 떨려온다.
* * *